• 정규직 벗들은 어디 있을까?
        2009년 11월 06일 01: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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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사회에서 노동이 음지라면 비정규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은 음지의 음지라 할만하다.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인 박점규 현장기자는 잘 알려지지 않거나 감추어지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의 현장을 찾아 일기(날적이)를 적는다. 박점규 현장 기자가 전하는 [현장날적이]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 편집자 주

    부평공장 서문 앞에는 2년의 세월, 폭풍우와 눈보라의 상흔을 안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천막이 있다. 매주 목요일이면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그들에게 연대의 손을 내민 노동자들이 하나 둘 서문공장으로 모여든다.

    2007년 9월부터 2년 동안 비정규직지회를 이끌다 권좌(?)를 넘겨준 이대우 전 지회장은 카메라를 들고 집회의 모습을 담는다. 씩씩한 목소리로 당찬 연설을 하던 그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찍어대는 모습이 어색하고 재밌다.

       
      ▲ 금속노조 지엠대우자동차비정규직지회 홍동수 조합원

    새로 뽑힌 신현창 지회장은 ‘신삥’답게 의욕에 찬 발언을 한다. 그는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 문제”라며 침묵하는 정규직의 연대를 호소한다. 그의 얘기 사이로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빛이 흐른다.

    비정규직지회의 형님인 홍동수 동지가 오늘도 멋지게 한가락을 뽑는다. 가수 김성만 동지가 부르는 ‘감자탕과 순대국’은 노랫말처럼 구수하고 정겹다. 80년대 말 풍미했던 ‘닭똥집이 벌벌벌’을 비정규직의 아픔으로 바꿔서 부른다. 20년 세월이 흘렀건만 ‘이 놈의 노동자 살림’은’ ‘앉으나 서나 제자리’다.

    올해 이 공장에서 쫓겨난 1천 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을까? 그들은 새 일자리를 찾았을까? 길거리를 떠돌고 있을까? 비정규직 노동자로 5년에서 10년 청춘을 바쳐 지엠대우자동차를 만들었던 그들이 이 공장을 지나가면서 무슨 말을 할까?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저주를 퍼붓지는 않을까?

    맨 앞에는 10월부터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된 조합원들이 앉아있다. ‘신입 해고자’인 셈이다. ‘선배 해고자’들이 2년 넘게 복직하지 못했는데, 이들에게 복직의 희망은 있을까?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의 손길이 조그만 더 늘어난다면 이들에겐 희망의 빛이 더 보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

    올해 봄엔 멀리 현대차 울산공장 2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68명이 정규직의 연대로 일자리와 임금을 보장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가을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 ‘비정규직을 포함한 고용보장’을 내건 정규직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 기아차 선거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 2,300여 명이 정규직 선거에 당당하게 참여해 후보를 뽑았단다. 이런 꿈같은 소식을 언제쯤 이 부평공장에서 들을 수 있을까?

    지엠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안팎에 형형색색 현수막이 나부낀다. 부평공장 서문 앞에 쓸쓸하게 걸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수막이 아니다. 선거를 앞두고 내걸린 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수막이다.

    사회를 맡은 황호인 조합원이 전해준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늘 따뜻한 말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단다. 천막 앞에서 주차관리를 하시는 아저씨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다. 이분들이 웬 현수막이 이렇게 많이 걸렸냐고 물었다. 정규직노조 선거 때문이라고 얘기하자 이렇게 말했단다. “그럼 비정규직은 누가 되어야 젤 좋아?”

       
      ▲ 11월 5일 지엠대우차 부평공장 서문 앞에서 참가자들이 비정규직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사진 금속노조)

    누가 후보로 나오고, 누가 지부장이 될 지 모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바람은 그저 소박하기만 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을 한 번 더 잡아주고, 비정규직의 해고에 같이 항의해달라는 것이다. 집회에 함께 해주고, 천막에 한 번 들려달라는 것이다. 옛날 전태일의 대학생 친구처럼,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벗은 어디에 있을까?

    날이 어두워지고 야간조 출근시간이 되자 조합원들이 선전물을 한 뭉치씩 들고 공장으로 향한다. 밤샘 노동을 위해 출근 길 종종걸음을 걷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손에 ‘같이 살기 위해 같이 싸우자’는 비정규직의 바람이 한 장씩 전해진다.

    어둠이 짙게 내린 부평공장, 언제쯤 연대의 촛불이 타오를 수 있을까?

    2009년 11월 5일 지엠대우자동차 부평공장 천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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