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파, '오른쪽 깜빡이' 켜고 당선
    By 나난
        2009년 11월 04일 04:0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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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락 후보의 기아차 지부장 당선은 ‘민주파’가 승리라고 볼 수 있다. 이로써 조중동을 비롯한 다수 언론이 기대한 ‘기아의 이경훈’ 탄생은 무산됐다. 하지만 실리주의를 내세운 박홍귀 후보와의 표차가 1,069표로 마지막까지 박빙의 상황을 연출했다는 점에서 완전한 승리라고 보기 어렵다.

    김성락 위원장 당선자를 비롯해 5명의 지부장 후보 전원이 금속노조의 공식 조직 방침인 ‘지역지부 편제’를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은, 당선을 위해서는 ‘오른 쪽 깜박이’를 켤 수밖에 없는 대공장 노조의 현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산별 금속의 조직 발전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대목으로 읽힌다. 

    김성락 당선자의 박빙 승리는 이처럼 기업지부 유지라는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공약과 함께, 기존 민주파 집행부에 대한 불신, ‘민주파’ 내부의 분열과 일부 정파의 박홍귀 후보를 지지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이며, 이는 현대차 노조의 특정 정파가 당시 이경훈 후보를 지지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기업지부 유지’ 내걸고 당선

    이번 선거 결과는 이와 함께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기아차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에서 회사에 맞서 강력하게 대응해나갈 수 있는 집행부를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속노조 한 관계자는 “판매나 정비 부문에서 김 후보가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지부 유지 공약을 직접 내걸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분산돼 있는 자동차 완성4사의 판매, 정부 부문 노동자들은 고용관련 사안 등이 발생할 경우 지역지부는 기존의 기업지부만큼 힘있게 대응하지 못해 고용불안이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전직 금속노조 지도부 가운데 한 인사도 “지역지부 편제로 인한 불안감이 판매나 정비 부문의 표심을 끌어왔다”며 “(지역지부 편제시) 공장 조합원에게는 큰 상황적 변화가 없음에도 보수진영이 ‘지역지부로 가면 마치 죽는 것’처럼 선전을 한 것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김성락 금속노조 기아차 지부장 당선자.(자료=기아차 지부)

    기존 민주파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박홍귀 후보의 선전으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점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사업 국장은 “민주파에 대한 심판과 함께 불신이 박홍귀 후보로 대변됨에 따라 선거가 박빙양상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노동계 다른 관계자 역시 “박홍귀 후보가 지부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민심의 변화로 해석할 수 있다”며 “그간 금속노조와 기아차 지부가 현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현장을 기반으로 한 운동을 제대로 전개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파간 대립이 박빙 원인"

    그는 또 “현대차 이경훈 지부장이 실리실용을 주장하며 당선된 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며 “일부 언론에서 기아차선거를 놓고 ‘실용노선 탄생하나?’, ‘실용노선 가능성 높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는데, 이러한 대외적 영향이 조합원들의 정서에 일정부분 호소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속노조 내 정파 간 갈등이 결국 ‘범민주진영’을 하나로 묶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진보와 보수는 물론 민주진영이 갈라져 있는 상황에서 서로 간 감정이 좋지 않다”며 “민주진영은 당연히 박홍귀 후보와 김성락 후보 중 김 후보를 지지했을 테지만 이번 선거에서 그러한 범민주진영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없다”며 정파 간 대립을 적은 표차의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에 실제로 기아차 지부 내 한 정파의 후보는 지역지부 반대와 정치파업 중단을 주장하며 박홍귀 후보와 정책연대를 결정, 박 후보에 힘을 실어줬다. 이에 현장에서는 박 후보를 지지한 이 후보에 대해 ‘현장조직에서 제명하라’는 요구가 일기도 했다.

    "박 후보 채용비리, 걸림돌로"

    또한 박홍귀 후보의 채용비리도 문제시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박 후보는 지난 2005년 채용비리로 중도 사퇴한 바 있어 현장 조합원들의 불신이 컸다는 것.

    기아차 지부의 한 현장 활동가는 “박 후보는 1~2차 투표에서 생각보다 많은 표를 모으는 데 성공했지만 17대 위원장 시절 당시 일으킨 채용비리 사건에 대한 현장 조합원들의 불만과 불신이 그가 21대 위원장으로 선출되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진행된 1차 투표에서 박 후보와 김 후보는 각각 6,569(22.6%)표와 8,109표(27.9%)를 획득하며 1,540표차를, 3일 2차 최종 투표에서는 각각 1만3,758표(47.5%)와 1만4,854표(51.2%)를 획득하며 1,069표만의 표차를 보였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지역지부 편제는 금속노조의 산별노조운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5명의 지부장 후보 중 단 한 명도 ‘지역지부 편제’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점규 국장은 “금속노조에 대한 불신과 기업지부 해소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결국 조합원들에게 불신을 키웠고, 이로써 각 후보가 지역지부 편제를 공약으로 내걸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기업지부 해소에 대한 반감으로 ‘지역지부로 즉각 전환하자’고 공약을 내 지 않았을 뿐 현장 조직들은 지역지부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도 “(공약으로 내걸지 못한 것은) 타협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산적한 현안, 김 후보에 유리했다"

    그는 이어 “기업단위만으로는 민주노조운동이 힘들다는 것이 2009년 쌍용차에서. 98년 현대차에서, 2001년 GM대우에서 확인되며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과 함께 가는 산별노조운동이 태동하고 강조돼 왔지만 이러한 운동방향으로 조합원을 설득하지 못했다”며 “정책을 내지 못한 것은 반성하되,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해 지역지부 전환이 전체 노동자의 고용을 지켜내는 것임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민주진영 간 갈등과 현장 조합원들의 민주파에 대한 불신으로 실리주의 후보와의 표차가 적은 상황에서 김 후보가 주관을 가지로 리더십을 발휘, 현장을 모으고 지난 8월 이후 중단된 2009년 임단협을 마무리하는 것도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기아차 지부는 15차례의 교섭에도 불구하고 임금협상이 아무런 결실없이 장기화되고 있다. 이에 기아차  지부 내 현장 활동가는 “실리주의 박홍기 후보보다 강성의 김성락 후보가 당선된 것은 임단협과 구조조정 등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보다 강력하게 해결할 것이란 조합원들의 믿음이 작용한 것”이라며 “연내 임금협상 마무리가 큰 과제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전 간부는 이번 선거 결과와 관련해 “조합원들이 보수화된 게 아니라 활동가들이 보수화된 것”이라며 ”조합원들이 ‘특근을 더 많이 해야겠다’, ‘정치문제 신경 쓰지 말라’고 할 때 활동가들이 나서서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욕을 먹더라도 옳은 소리를 하는 집행부가 돼야 한다”며 “대의원선거나 임원 선거에서 표심을 잃을까봐 우려해 바른 소리를 하지 못한다면 100% 실리로 갈 수밖에 없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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