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저? 문제는 낸시랭 수준의 나라꼴
    2009년 11월 03일 0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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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윤계상이 좌파를 거론했다고 한다.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있었던 일이다.

거기서 그는 "아이돌 출신 때문인지 나를 배우로 인정해 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억울했다"며 "연기자로서 무시하는 게 아니라 한국 영화계의 본바탕이 좌파다. 굉장히 우호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한다.

   
  ▲ 윤계상 씨 (사진=윤계상 홈페이지)

윤계상이 배우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좌파로 튀었다. 정말 당황스런 논리전개다. 기자는 윤계상에게 무슨 뜻이냐고 거듭 물었다. 이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좌파 발언의 의미는) 막혀있다는 것이다. 내가 겪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 그런 성향의 사람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싸울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런 종류의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 …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 그게 사라지지 않는 것은 정말 괴롭다. 진정성을 갖고 얘기했을 때 깨끗하게 봐줄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단 얘기다 … 영화와 드라마를 합쳐 8작품을 했다 … 하지만 단 한번도 (아이돌 그룹 출신이라는 것을) 의심 안 받은 적이 없다"

사람의 진정성을 몰라주는 사람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 짜증나고, 답답하고, 차갑고, 편견에 가득 찬 사람들을 일컬어 무작정 좌파라고 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개념의 극치라 할 만한 발언이다. 일이 커지자 그는 곧 사과했다. 좌파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저지른 실수라고 했다.

낸시랭의 무개념

최근에 낸시랭도 어처구니없는 인터뷰로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아래의 내용 때문이다.

"그런 리플(악플) 다는 내용들을 보면 수준들이 한참 낮아서요, 저는 그냥 루저(Loser)들이라고 봐요. 시간이 굉장히 많으신 분들인 것 같아요. 대부분이 백수가 아닐까 생각을 해요"

이 발언이 당황스런 무개념인 이유는 백수를 질 낮은 패배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전혀 개념이 없는 발언이다.

현재 우리 사회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당신도 언제든지 루저가 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며 전혀 다른 사회로 변한 것이다. 누구나 언제든지 잘릴 수 있는 사회, 언제 몰락할지 알 수 없는 불안의 사회로.

이 새로운 체제의 특징은 일자리가 구조적으로 줄어든다는 데 있다. 구조조정과 다운사이징이 기본이고, 자산투기의 발호 속에서 제조산업 일자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 열풍으로 사회적 고용도 사라진다. 그나마 아직 남은 일자리의 질도 점점 퇴락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몫이 줄어드는데, 소수 대기업이나 상층부 일자리의 연봉은 상승하므로 상대적으로 나머지 다수의 소득이 더욱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자산 투기자나 고액 연봉자의 삶이 정상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나머지 다수는 사이좋게 루저의 길로 간다.

이것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의 풍경이다. 이미 이런 사회의 문제점을 수많은 사람들이 지적했고, 작년부터는 각국의 보수적 경제계 인사들까지 문제제기에 동참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민을 잠재적 백수로 만드는 경제사회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 낸시 랭 (사진=SBS)

이런 상황에서 낸시랭의 발언은 이른바 현대예술을 한다는 사람이 한 말치고는 ‘억’ 소리 날 만큼 무개념이었다. 낸시랭이 한다는 예술은 현실과 아무 상관없는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현대사회의 단면을 표현하거나 비꼬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계상과는 달리 낸시랭은 끝까지 당당하다. “내가 생각하는 백수의 정의는 직업의 유무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프로젝트에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며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백수라는 단어의 사회적 의미를 모르고 쓴 것이 문제가 됐는데, 여전히 자신의 주관적 정의만을 내세우는 무개념을 과시하고 있다.

무개념이 넘쳐나는 사회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이없는 무개념의 망언들이다. 이것이 단지 연예계에서 벌어진 해프닝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이런 무개념이 바다처럼 넘실댈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일이 잘못 됐을 때 당장 눈앞에 보이는 개인 탓을 하는 건 쉽다. ‘니가 노력을 안 했으니까. 니가 공부를 못 했으니까. 그래서 넌 루저야.’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체제의 구조를 문제 삼는 건 어렵다. 이건 고도의 사고능력을 필요로 한다.

한국사회의 사고수준은 일차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최근 10여 년간 민생파탄의 대응으로 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정치운동이 아닌, 각자 스펙 쌓기 각자 재테크하기 열풍이 불었다. 낸시랭 수준의 나라가 되어가는 것이다.

고통을 못 참아 비명을 지르고 저항하면, ‘에구 시끄러운 좌빨들. 그저 매사에 까탈스럽고 싸우려고만 들지’라며 윤계상 같은 편견으로 바라본다. 앞으로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질 수 있다.

입시경쟁 강화를 통해 한국인의 사고능력, 특히 사회적 사고능력을 근본적으로 거세하려는 교육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는 맞벌이하느라 바빠 아이를 제대로 교육할 수 없다. 그럼 미디어를 통해서라도 제대로 교육받아야 할 텐데 미디어는 어떻게 돼가고 있나? 미디어법이 한국 미디어의 장래를 말해주고 있다.

국민의료보험이 빨갱이제도라서 안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미국인들, 세계 최고의 선진적인 상업 미디어를 가진 죄로 선진산업국 최악의 멍청한 국민으로 퇴화한 좌빨 공포증 환자 미국인들이 한국인의 미래인 것이다. 그러므로 윤계상과 낸시랭의 망언은 미래 한국인의 모습을 선구적으로 보여준 사건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무지와 무개념의 대양으로 진입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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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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