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부들 죽을 수 있으면 다 죽겠다"
    By mywank
        2009년 11월 03일 01: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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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에서 철거민 다섯 분이 경찰의 강제진압을 목숨을 잃었는데도 국가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용산참사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 것도 해결될 수 없다. 신부들이 다 죽을 수 있으면 죽겠다. 끝까지 유족들과 함께 싸우겠다.” – 전종훈 신부 발언 중

    2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사제단)의 시국미사는 용산참사 발생 10개월이 되도록 사과 한마디 하고 있지 않는 현 정부에 대한 강력하고 지속적인 저항을 선포하는 자리였다. ‘살인진압’의 책임을 지지 않는 경찰, 수사기록을 은폐하고 있는 검찰, 철거민들에게 중형을 선고한 법원의 정의롭지 못한 ‘국가의 오른 손’들도 신부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만든 이유였다.  

       
      ▲이날 사제단 시국미사는 전종훈 신부가 집전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날 미사는 경찰의 강제진압으로 숨진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이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이기도 했다. 신부들의 따뜻한 위로는 유족들의 눈시울을 붉혔으며, 미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격려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 천주교에서는 오래 전(998년)부터 이날을 ‘위령의 날’로 정하고 전국의 성당에서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미사’를 바치고 있다.

    강추위 속 1천여 명 운집

    참석자들은 미사 시작 전부터 경찰의 봉쇄를 뚫어야 했다. 서울시의 불허 방침에 따라 경찰은 이날 서울광장에 54개 중대 4,000여명의 병력을 집중 배치했으며 잔디밭에 모인 이들을 포위하고 해산 경고방송을 내보내는 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충돌이 발생했으며 단식 중인 최헌국 목사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날 미사는 서울시가 주최한 ‘왕궁 수문장 캐릭터’ 홍보행사로 당초 예정된 시각보다 1시간 40분이나 늦어진 오후 8시 40분경에 열릴 수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강추위였지만, 신부와 수녀, 시민 1천여 명이 미사에 참석해 용산참사 문제 해결을 간절히 기도했다.

       
      ▲촛불을 밝히며 미사를 드리고 있는 시민들 (사진=손기영 기자) 

    긴급 공수된 소형 앰프 1대와 손전등 불빛에 의존한 채 진행된 이날 미사에서 김인국 신부는 강론을 통해 대한민국을 ‘급발진 자동차’, 대통령을 ‘자동차 열쇠’에 비유하며 현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급발진은 엔진을 켜면 자동차가 미치는 증상이며, 아무리 피해자가 ‘차가 문제가 있다’고 말해도 자동차 회사에는 ‘운전자가 잘못을 했다’고 주장한다. 대한민국은 급발진 공화국이다. 보통 3일에 1번꼴로 사고를 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미치면 키를 뽑아야"

    자동차 급발진 문제는 운전자가 도무지 통제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바로 자동차 키를 빼버리는 것이다. 그 키는 국민이 준 것이다. 대한민국이 미치면 그 키를 뽑아버리면 되는 것이다.”

       
      ▲사제단 신부들이 전경들 앞에서 ‘인간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김 신부는 최근 사법부의 행태에 대해서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배울 만큼 배우고 알만큼 알 만한 사람들이 초등학생들도 조롱할 만한 일을 저지르는 이유는 돈과 권력에 매수되었기 때문”이라며 “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종훈 신부는 미사 중 경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종교행사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부터 ‘용산참사 책임자들의 3대를 멸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이제는 ‘오늘 미사를 방해한 경찰들의 6대를 멸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겠다. 이명박의 대통령의 기도 발과 제 기도 발 중에 누가 더 센지 두고 보자.”

    "죄악의 독버섯은 활짝 꽃을 피웠다"

    사제단 신부들은 이날 ‘2009년 제4차 천주교전국사제시국선언문’에서 “불의가 검은 강물처럼 넘실거리고, 죄악의 독버섯은 활짝 꽃을 피웠다”며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짓과 노골적인 탐욕이 갈수록 당당하고 뻔뻔스러워지는데 허다한 생명들은 무참히 시들어간다. 바야흐로 신앙과 양심의 이름으로 ‘국민불복종’을 선언할 결정적인 때가 닥친 것”고 밝혔다.

       
      ▲미사 시작 전 김인국 신부(오른쪽)가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이들은 이어 “(대한민국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 한 재앙과 파국을 면할 길이 없다”며 “부디 불굴의 정신으로 정부의 탈선과 광기를 잠재우고 새로운 국가 공동체를 준비하는 일에 다 같이 신명을 내자. 군사독재의 흉악을 물리쳤던 우리의 저력을 기억하자”고 밝혔다.

    신부들은 또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8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박래군, 이종회 공동집행위원장 등 용산 범대위 대표자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으며, 미사 중 경찰의 강제진압에 대비해 전경들 앞에 서서 ‘인간 바리게이트’를 치기도 했다. 이날 시국미사는 오후 9시 45분경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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