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정치하기
        2009년 11월 01일 10: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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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 차를 몰고 길을 나선 한 사람이 갑자기 눈이 멀었다. 그 자리가 마침 교차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던 참이라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바쁜 시간 교통이 엉망이 되었다.

       
      ▲영화의 한 장면. 

    갑자기 앞이 안 보이는 증상 때문에 안과를 찾아간 사람, 병원에는 접수처에서 대기실까지 직원, 내원환자, 보호자, 간호사들이 복닥거린다. 검사를 해봐도 눈에는 이상이 없단다. 뭔가 알아낼 때까지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뭔지 모를 병, 첫 사례니 처방도 약도 없다.

    만남과 격리수용

    눈 먼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고, 의사는 다른 환자들을 진료한다. 그렇게 첫 환자의 하루가 저물 때까지 도둑도 만나고, 아내도 만나고, 의사도 만나고, 병원 직원도 만난다. 의사는 또 다른 환자들을 만난다. 그 중에는 아이도 있고, 노인도 있고, 창녀도 있다. 도둑은 경찰을 만나고, 창녀는 성매수 남성을 만난다. 누군가를 만나 각자의 일을 하다가 불현듯 이 사람들이 하나씩 눈이 먼다.

    퇴근한 의사, 의사는 자료를 찾아보고, 고민도 해보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 아무래도 새로운 병인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떴을 때 의사는 알게 된다. 자신도 앞이 안보이게 되었다는 것을. 그렇구나. 이것은 새로운 전염병이었구나. 병원과 보건당국에 알리고 대책을 기다리는 사이 눈이 멀어가는 사람은 자꾸 늘어간다. 갑자기 앞이 안보이게 될 때, 사람들은 호소한다. ‘도와주세요!’

    정부가 나선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격리수용. 눈먼 자들끼리 알아서 지내라고, 멀쩡한 사람들의 안전이 우선이라고, 그래서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눈먼 사람은 눈먼 사람끼리, 그 사람들과 접촉했던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몰아넣고 철저히 감시한다.

    수용소 안은 늘어나는 눈먼 자들로 넘쳐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험한 일들을 겪어야 한다. 배급품 독점, 폭력, 강간, 살인까지. 그러나 아무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죽더라도 거기서 죽고 묻혀야 한다.

    수용소 안의 상황이 가장 험악해진 날, 갇혀있던 자들이 죽기 아니면 살기로 수용소를 벗어나려던 날, 갑자기 감시가 사라졌다. 바깥세상까지 모두 눈이 멀어버린 탓이다.

    이성과 합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안도 밖도 없이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세상에 오직 한 사람, 첫 환자를 진료했던 의사의 아내만이 여전히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눈먼 자들을 돌보며 상황을 버텨낸다. 나눌 수 있는 것은 나누고,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맞서야할 것은 정면으로 맞서면서. 그러던 어느 날, 처음 눈이 멀었던 사람부터 하나씩, 갑자기 눈이 멀었던 것처럼 그렇게 갑자기 눈이 보이게 된다.

       
      ▲영화 포스터. 

    포르투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주세 사라마구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눈먼 자들의 도시>는 새로운 전염병이나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는 과학의 도전과 승리를 그리는 <아웃 브레이크> 류의 질병 극복 영웅담 영화가 아니다.

    초자연적 세계나 현실에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하는 ‘환상문학’을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 세계가 불가해한 현상 앞에서 무너져 내릴 때 겪게 되는 단절과 공포감 앞에서 이성이나 합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자체를 들여다보게 하는 영화다.

    영화 판권을 얻으려는 숱한 영화계의 구애에도 타락한 사회와 강간에 대한 폭력적인 자신의 책이 오역되는 걸 원치 않는다며 꿈쩍 않던 사라마구를 간신히 설득해 영화화한 만큼 페르난도 메이렐리스 감독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원작을 가능한 한 충실히 스크린으로 옮기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자들의 공포를 읽어내는 문학과는 다르게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대신하는 영화 매체는 갑자기 눈이 멀어 버리는 현상이 사람들 각자와 사회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러나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이어지며,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을 넘나들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독특한 문체를 영화의 스타일로 옮겨내지는 못한다.

    정치적 무관심이 불러오는 것들

    그래서 마술적이라기보다는 사실적인 영상이 되고,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겪는 인간의 공포보다는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고통에 중심이 옮겨가있다. 그래서 영화 포스터의 문구도 ‘보이는 자에게 더 잔인한 눈먼 자들의 도시, 가장 두려운 건 오직 나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가 된다.

    영화만 본 사람이라면 사실적인 수용소의 참상에 충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원작 소설을 먼저 읽은 사람이라면 문학에서 스토리가 아니라 스타일까지 영화로 옮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느끼게 할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문학에서 옮길 수 없는 스타일을 미술의 역사에서 빌려 온다. 줄줄이 어깨를 잡고 나아가는 장님들의 모습, 목욕하는 세 여인의 모습 등등.

    그러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졸업 후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반정부 공산주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독학으로 문학수업을 했던 주세 사라마구의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더 나아가 후속 작품 <눈 뜬 자들의 도시>까지 읽는다면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제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점점 윤리의식 따위는 희미하게 지워가는 이기적 존재인 개인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일상을 지속하는 사회에서 정치가 얼마나 쉽사리 권위와 억압을 내세워 독재를 펼칠 수 있는지를 사라마구는 똑똑히 보며 살아낸 것이고, 그것을 소설에 담아낸 것이다.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는 정치적 무심함이 선거라는 형식을 통해 독재의 수단이 되고자 할 때 눈이 멀었다 다시 보이게 된 사람들이 사는 사회에서 그런 상황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고립을 그린다.

       
      ▲영화의 한 장면. 

    낮은 투표율로 보수 우익 독재정권을 유지하려는 여당에 맞서 투표소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번번이 무효표로 ‘아니오’라는 의사 표현을 하는 사람들, 그런 초유의 사태 앞에서 감시, 감금, 봉쇄, 테러, 조직배후설까지 온갖 수단을 동원하는 정권의 작태, 그러다가 마침내 모두가 눈이 멀었을 때 혼자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부인을 배후조종 인물로 몰아세워 암살.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먼 정치인

    <눈먼 자들의 도시>가 보아야 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할 때 인간이 얼마나 추하고 절망적인 존재가 되는지를 이야기한다면, <눈 뜬 자들의 도시>는 눈 가리고 아웅 하고 싶은 독재 정권이 눈멀지 않는 자를 얼마나 두려워하고 증오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신종 플루에 학교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앓아눕고, 가족이 또 쓰러지고, 약이며 병원이 부족하도록 손이나 잘 씻고 김치, 고추장 많이 먹고, 마스크나 쓰고 다니라는 한심한 당국은 무슨 대책을 마련했던가. 지난 선거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할 문제가 불거져서 다시 치르게 된 보궐 선거에서 정치권은 또 무엇을 못 보고 지나갈 것인가.

    당장 저소득 계층 아이들이 신종 플루 증상을 보일 때 아무 대책 없이 등교하지 말라고 하면, 부모가 모두 직장에 나가있는 동안 아이들을 누가 돌보고 먹일 것이며, 확진 판정이 나고서야 검사비용 일부를 돌려준다는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부채공화국에서 검사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어찌 할 것인가?

    사망자 소식이 대책 없이 늘어난 다음에야 병원 늘리고, 약국 처방 허용하고, 백신 접종 앞당기겠다는 느슨함은 그들에게 눈이 있고, 머리가 있는지 의심스럽게 한다. 우리는 아무래도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눈먼 정치인들의 어깨를 짚고 줄줄이 행진하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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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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