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재 존폐 여부 국민에게 묻자
        2009년 10월 30일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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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논리가, 분노가 의미가 있을까. 언론법 처리 과정이 명백하게 위법한 것이지만, 그것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는, 헌재의 결정으로 모든 말과 논리는 힘을 잃었다. ‘말의 시대’는 끝났다. ‘법치의 세상’도 더는 아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재가 ‘관습헌법’이라는, 기상천외한 논거를 들어 의회와 행정부를 농락했을 때 헌재 재판관들은 그 정체를 드러낸 바 있다. 그들은 헌재를 정치적으로 오염시켰을 뿐만 아니라, 헌재의 이름으로 헌법과 헌법정신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쿠데타적 결정을 서슴지 않았다.

       
      ▲미디어법 공개변론을 듣고 있는 헌법재판소.(사진=손기영 기자) 

    헌재의 쿠데타적 결정

    헌재는 이번 언론법 결정을 통해 다시 한 번 헌법과 상식을 짓밟았다. 이번 헌재 결정에서 소수 의견을 낸 조대현, 송두환 두 재판관의 신랄한 지적은 그 정곡을 찌르고 있다.

    “법안 처리과정에서의 위법성(심의 표결권 침해)을 확인하면서도 그 위헌성․위법성을 시정하는 문제는 국회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분명한 결정(무효 확인이나 취소선언)을 회피하는 것은 국가 작용이 합헌적으로 행사되도록 통제해야 할 헌법재판소의 사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헌재의 양식은, 사법의 정의는 그러나 속절없이 무너졌다. 교언영색의 복잡한 법리는 권력에 대한 사법의 치욕스런 ‘충성서약’을 분칠하는 분장일 뿐이다.

    헌재는 위법하지만 합헌이라는 결정으로 법치의 근간을 허물었다. 국회의 위법을 적시하고도, 법의 논리로 권력의 폭력적인 힘의 남용을 용인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고 말았다. 3권 분립이라는 이유로 사법부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함으로써 3권 분립을 와해시켰다.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본질서를 송두리째 망가트렸다.

    바로 이런 점들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헌재의 결정은 유효하다. 헌법과 헌법 정신의 최종 수호기관이 스스로 헌법을 파괴하고 있는 현실, 그것이 드러내고 지시하고 있는 바는 무엇인가?

    헌재, 존재 이유 사라졌다

    언론법 문제는 이제 단순히 언론법 차원을 넘어섰다. 언론법 논란의 핵심이 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에 관한 것이었다면, 언론법 헌재 심의는 이 땅의 모든 헌정 시스템, 공공적 체제에 대한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재검토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당장에는 헌재의 존재 이유를 공론에 붙여야 할 때가 됐다. 민주주의와 헌정질서의 근간이 결정적으로 위태롭게 될 때마다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배신하는 헌재라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지극히 정치적이며 기회주의적인 헌재의 결정을 존중해 언론법의 재심의를 정부 여당에 기대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일 뿐이다. 언론법에 대한 불복종 정도는 어찌 보면 부차적이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헌재의 존폐 여부를 곧바로 시민들에게 물을 때가 됐다.

    비단 헌재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불법적인 재판 간여가 명백하게 확인돼 대법원장의 사실상 사퇴 권고에도 불구하고 뻔뻔스럽게 대법관의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에서 과연 공정한 재판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 대법관 같은 이들이 사법부에 어디 한 둘일까?

    어디 헌재뿐이랴

    그런 사법부의 심판에 과연 누가 승복할 수 있을까? 사회 정의의 실현이라는 본래의 역할은 저버린 채 되레 권력의 통치 기구로 전락하고 있는 검찰 체제를 이대로 두고 과연 어떤 사법적 정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용산 참사 사건 1심 재판은 사법부가 사회적 정의 실현에 얼마나 역행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법시스템뿐만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과 공공적 질서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다. 그 근원을 살펴보면 시스템도 시스템이지만, 결국 공공 부문에 복무하는 ‘사람의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게 제기된 때도 없다.

    공공부문에 종사해서는 안 될 사람들, 공공부문의 책임과 역할을 감당할 의지와 품성을 갖지 못한 사람들, 기득권 세력의 대변자로 전락한, 권력과 자본의 사병과 그 조직들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일본의 하토야마 정권은 개혁의 첫 째 대상으로 공무원 조직과 관료주의를 꼽았다. 공무원 사회의 쇄신 없이, 관료주의의 혁파 없이는 정책의 일대 전환은 물론 일본 사회의 쇄신과 개조가 힘들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 부분의 구체적인 정책적 대안 제시와 함께 그 전제 조건으로 공무원 조직과 관료체제의 혁파를 내세우고 정치의 복원을 선언했다. 하토야마 정권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내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지난 10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경험, 그리고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공공부문의 기가 막힌 변신은 한국 역시 공직사회와 공공 조직의 일대 쇄신 없이는 그 어떤 전향적인 정치 사회적 변화도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여실하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헌재는 어제 그것을 극명하게 재확인해주었다.

    공공권력 교체가 진정한 사회변화 기본

    대한민국에 앞으로 필요한 것은 비단 정권 교체뿐만 아니다. 권력은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반세기 이상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관리하고 지배하고 있는 ‘공공부문’과 ‘공공권력’의 교체야 말로 진정한 정치 사회적 변화의 기본 요건임을 새삼 절감케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그 구체적인 청사진을 마련할 때다. 필요하다면 모든 공직 사회와 공공 조직을 전면적으로 쇄신하는 청사진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그 맨 앞에 헌재의 존폐를 상정해도 좋을 것이다. 그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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