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공사, 신입사원들에게 초임삭감 관련 각서 요구
    By 나난
        2009년 10월 28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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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허준영 사장이 신입직원의 초임삭감과 연봉제 도입과 관련해 지난 6월 노조로부터 고소를 당한 가운데 10월 중순경 삭감 대상자인 신입직원 8명에게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했던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경찰청장 출신인 허 사장은 지난 6월에도 노조로부터 단협 위반 등 혐의로 고소를 당한 바 있다.

    초임삭감 문제는 정부의 정책 기조 아래 한국철도공사 외에도 36개 공공기관에서 강행되고 있으며, 신규 노동자와 기존 노동자 간의 갈등은 물론 노동조합의 임금협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용창출 없이 노-노, 노-사 갈등만 양산하는 초임삭감은 신입직원에 대한 횡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28일 철도공사 노조에 따르면, 공사는 지난 5월 29일 이사회를 열고 보수특례규정을 통과시키며 이달 입사한 신입직원 8명에 대해 약 7%의 임금을 삭감했다. 이들은 이사회에서 보수특례규정이 통과되기 전 단체협약에 따라 기존 노동자들과 동일한 초임을 지급받았다.

    노조 동의없는 임금삭감은 불법

    이에 노조는 지난 6월 “노동조합의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았기에 불법”이라며 허준영 사장을 포함한 관련 임원진을 단체협약 위반 및 임금체불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당시 공사는 “입사 사원들에게 개인적 동의를 받아 문제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지난 16일 노동부가 “보수규정 개정 전에 들어온 직원의 경우 소급해 연봉제와 초임삭감을 적용하는 것은 개인의 동의절차와 무관하게 노동조합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며 “소급적용한 공사의 행위는 위법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음에 따라 공사는 관련 직원 8명에 대해 임금을 원상회복 시키고 노조에 고소를 취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노조가 “현 초임삭감에 대한 철도공사의 입장의 변화가 없는 이상 취소해줄 수는 없다”고 하자 공사는 지난 10월 중순경 당사자 8명에 대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동의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27일 8명 중 일부가 철도노조에 대책마련을 요구하면서 드러났다.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은 지난 2005년 경찰청장 재임시 시위 강경진압으로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을 숨지게 해 부임 8개월 만에 사퇴한 바 있는 인물로, 한국철도공사 취임 이후 인천공항 철도 인수, 5,115명 인력 감축, 70억 손해배상, 단체협상 개악 시도, 직원복지 일방적 축소, 노조탄압 등 철도현장의 갈등과 불신을 키워왔다.

    노조는 이번 공사의 각서 요구에 대해 “임금체불 고소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가해자인 사용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면 처벌할 수 없다’는 반의사불법죄를 악용하기 위한 것”이라며 “당사자 8명이 입사한 지 6개월 미만이고, 시보기간이라는 점을 악용해 또 다른 불법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입사 6개월 미만 신입에게 각서 요구는 또다른 불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는 “새로운 임금 체계는 개인별 연봉 인상에서 차등을 두고 정기상여금 300%를 폐지해 기본 연봉에 합산하는 등 매우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며 “지난 2월 기획재정부에서 신입사원의 초임을 삭감하는 지침이 내려와 보수특례규정을 제정했고, 올해 입사한 8명을 제외한 향후 입사자들은 이 규정을 적용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5월 29일 이후 채용되는 신입사원의 초임을 기존 직원에 비해 약 7% 삭감하겠다는 것. 철도공사의 이 같은 방침은 지난 3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초임인하 추진실태 점검 이후 본격화됐다. 당시 기획재정부는 초임인하 추진실태에 따라 기관장 평가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용걸 재정부 2차관은 지난 3월 철도공사, 주택공사 등 36개 공공기관 부기관장과 간담회를 갖고 "공공기관 대졸초임 인하가 조기에 정착되고 민간부문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며 “일부 공기업에서는 노조와 협상 때문에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부의 방침을 잘 이해하고 초임 인하가 조기에 정착되도록 해 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의 초임삭감은 그간 기존 임금체계와의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 조치인데다 사회적 발언권이 미미한 신입사원에서 희생을 강요하는 부당한 차별이라는 이유로 비판받아 왔다. 여기에 신규채용 억제와 비정규직 행정인턴제 확대 등에 대해 경제위기의 고통을 취업계층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도 일었다. 

    "경제위기 핑계, 구직 청년들에게 횡포"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이병훈 위원장은 "정부는 일자리 나누기의 일환으로 임금삭감을 추진했지만 이것이 고용이 유지되거나,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되는 형태가 아닌, 구조조정 강행, 인턴 채용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또 "기존 재직 근로자의 경우 노동조합에 가입해 임금삭감이나 구조조정에 보호능력을 갖출 수 있지만 경기불황 속에서 보호능력이 없는 청년들에게 정부는 부당한 양보를 강요하며 횡포를 휘두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년들은 초임삭감이라도 해서 당장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에 감사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결국 노-노, 노-사의 복잡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며 "정부가 경제위기를 핑계로 신입직원에게 초임삭감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부당하며, 조직 내에서도 균열이나 노사문화를 해치는 수준으로 강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철도공사 노조 백남희 선전국장은 “초임삭감 문제는 기존 노동자와 신규 노동자 간의 갈등은 물론 임금체계의 이중화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에도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며 연봉제 역시 1년에 한 번 열리는 임금교섭을 무력화하기 위한 장치”라며 “향후 신규직원에 대한 초임삭감이 발생할 경우 원상회복 투쟁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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