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는?
        2009년 10월 27일 10:4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황제를 장악한 조조파의 다음 과제는 연주에서 가장 가까운 곡창지대인 서주를 집어 삼키는 것이었다. 이 서주를 ‘최대한 힘들이지 않고 빼앗는 것’이 조조파의 핵심 문제의식이었다. 이를 위해 조조는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을 추진한다. 두 호랑이가 하나의 먹이를 두고 서로 다투게 하는 이른바 ‘이호경식지계’였다.

    조조는 황제의 이름을 빌려 유비에게 여포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 위해 일단 천자께 아뢰어 유비를 정동장군으로 봉하고 서주목으로 삼는다는 조서를 내리도록 한다. 물론 조조는 이러한 공식적인 조서와 함께 따로 ‘여포를 죽이라’는 한 통의 밀서를 딸려 보낸다.

    만약 유비가 밀서에 있는대로 여포를 죽이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유비와 여포가 서로 싸우게 되는 것이고,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황제의 명을 어기는 것으로 간주해 서주를 공격할 요량이었던 것이다.

       
      ▲ 그림=억수씨

    이것은 예전에 조조가 당했던 수법과 비슷한 방식이었다. 이곽과 곽사는 조조를 제거하기 위해 황제의 이름으로 조조에게 청주 일대에 대한 황건적 토벌을 명했었다. 그것은 조조를 농민무장세력과 싸우게 하여 조조의 힘을 빼려는 계책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조조는 이각과 곽사의 의도를 뻔히 알고 있었음에도 황제의 명이라는 형식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조조는 황건적과 싸우기보다는 농민들과 적절히 타협하여 이른바 청주병이라 부르는 자신의 군사적 기반을 오히려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조조는 과거에 자신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유비를 괴롭히기로 한 셈이다.

    당한대로 돌려주는 조조

    서주에 있던 유비에게 천자의 칙사가 온다는 전갈이 날아든 것은 그 때쯤이었다. 유비는 맨발로 뛰쳐나가 황제의 칙사를 맞았다. 유비는 칙사를 성 안으로 맞아들인 후 크게 잔치를 벌였다. 유비는 칙사가 고마웠다. 유비는 도겸으로부터 패인을 물려받기는 했으나 조정에서 공식적인 하명을 받지 못해 꺼림칙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제가 정식으로 서주태수를 명하는 조서를 내리니 몹시 기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잔치가 끝나가자 사자는 유비에게 한 통의 밀서를 건네주었다. 유비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사자가 준 밀서를 펼쳐 보았다. 하루속히 여포를 죽이라는 황제의 밀서였다. 유비는 순간 얼굴이 파랗게 굳어지고 말았다.

    "잠시 시간을 주십시오. 여포는 천하에 그 무용을 날리는 장수라 지금 당장은 힘드니 일단 계책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밀서를 읽어 본 유비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핑계를 대고 일단 자리를 피했다. 유비는 아연실색했다. ‘난데없이 여포를 죽이라니!’ 의도가 무엇인지 너무나 뚜렷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황제의 밀명인지라 유비는 이를 대놓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황제의 명을 거부한다는 것은 곧 반란이었고 조조에게 또 다시 출병의 명분을 주는 일이었다.

    유비는 고심했다. 그렇다고 여포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도 없었다. 여포를 죽이면 다음 순서는 유비 자신이 될 것이 분명해보였다. 게다가 여포는 얼마 전 자신이 떠나겠다는 것을 유비가 잡아서 데리고 있는 것 아닌가? 참으로 이렇게 하기도 곤란하고 저렇게 하기도 곤란한 상황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유비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황제의 명령을 어기지도 않으면서 여포도 죽이지 않는 그런 방법은 뭐가 없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네, 고민에 빠진 유비

    생각다 못한 유비는 관우·장비 두 아우를 불러 밀서를 보여주며 의논했다. 전부터 여포를 받아들이는데 크게 반대해 왔던 장비가 말했다.

    "잘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여포를 확 죽여 버립시다.!"

    그러나 유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세. 여포는 의지할 곳이 없어서 내게 온 사람인데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이렇게 죽인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하겠는가?!"

    장비는 여포를 죽이자고 거듭 말했으나 유비는 끝내 말을 듣지 않았다. 유비는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되고 말았다. 그 때였다. 눈치도 없는 여포가 서주성으로 찾아왔다. 여포는 유비가 조정으로부터 정식으로 서주목의 직위를 인정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해주러 온 것이었다.

    "유공께서 천자의 명을 받들어 서주목이 되셨다니! 정말 축하드립니다.!"

    여포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유비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여포를 죽이라는 황제의 밀명을 받아든 유비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나중에 이 사실을 여포가 알면 나에게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는데…’

    유비는 ‘비밀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여포의 귀에 들어갈 것 같았다. 유비는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이 말하지 않는다면 조조가 이 사실을 의도적으로 흘릴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유비는 위기를 기회로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역으로 이용해 여포에게는 조조의 밀서를 핑계로 삼아서 여포와의 관계를 되레 돈독히 하고 조조에게는 여포의 핑계를 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쪽엔 저쪽 핑계를 대고, 저쪽엔 이쪽 핑계를 대면서 이러기도 곤란하고 저러기도 곤란한 상황을 피해가자는 계획이었다.

    유비는 황제가 보낸 밀서를 여포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공을 죽이라는 황제의 밀서가 도착했오!"

    여포는 눈을 휘둥그래 뜨고 말했다.

    "고맙소이다. 진정 고맙소이다."

    여포는 유비가 자신에게 밀서를 공개하자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는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조조의 이간책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공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상대의 이간책에 포용전략으로 나간 것이었다. 유비가 이렇게 여포를 안심시키자 여포는 유비의 넓은 도량에 감격했다. 유비는 그렇게 여포를 안심시킨 다음, 이번에는 황제의 칙사에게 돌아가서 다른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

    유비, 조조의 이간책을 모면하다

    "여포가 워낙 천하의 명장이라 우리도 쉽게 죽이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회를 봐서 꼭 처리할 테니까 시간을 좀 주시지요!"

    칙사는 그날로 허도로 돌아가 조조에게 유비의 말을 전했다. 조조가 상황을 가만히 들어보니 작전실패인 듯했다. 유비가 말로는 여포를 죽인다고 하나 왠지 말로만 그렇게 하면서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 같았다. 조조는 순욱을 불렀다.

    "유비가 우리 뜻대로 해주지 않는 것 같소. 어떻게 하면 좋겠소?"

    "흠. 그렇다면 다음 단계인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이리로 하여금 호랑이를 몰아내게 하는 책략)를 써야 합니다."

    "그건 또 무엇입니까? 누가 호랑이고 누가 이리란 말입니까?"

    "여포가 이리이고 유비가 호랑이입니다."

    "음. 동물들이 계속 나오니까 알쏭달쏭 합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원술과 유비를 싸우도록 한다는 얘기입니다."

    "아니 여포가 이리이고 유비가 호랑이라면서요. 갑자기 원술은 또 왜 나오는 겁니까? 자세히 말씀해 보시지요."

    "이번에는 유비에게 황제의 조서를 내려 원술을 치도록 하십시오. 동시에 원술에게도 몰래 사람을 보내 ‘유비가 당신을 공격하려 한다.’고 전합니다. 그러면 원술과 유비는 서로 싸우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호랑이 굴인 서주성이 방비가 허술해질 것이고 비어 있는 호랑이 굴을 이리가 그대로 놓아둘 리 없습니다. 여포가 텅 빈 서주성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즉 이리가 호랑이를 몰아내는 것입니다."

    조조가 가만 생각해보니 좋은 계책인 것 같았다. 유비와 원술에게 각각 이쪽에는 저쪽 얘기를 하고 저쪽에는 이쪽 얘기를 해서 양자를 한꺼번에 약 올리고 그 사이에 여포로 하여금 유비의 등에 칼을 꽂도록 유인하는 계책이었다. 조조는 갑자기 해법을 얻은 듯 희색이 만면했다.

    다음 날 조조는 원술이 있는 남양으로 급사를 보냈다. ‘유비가 당신을 공격할 것 같으니 조심하시오’ 라는 밀서를 함께 보낸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주성으로 다시 황제의 칙사를 내려 보냈다. 유비에게 원술을 치라는 명령이었다.

    다시 황제의 사신을 만난 유비는 황당했다. ‘지난번에는 여포를 죽이라더니 이번에는 원술을 공격하라고!!’ 그러나 황제의 명령이니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유비는 잠시 고민했다.

    ‘이번에도 역시 핑계로’

    ‘이번에도 지난번처럼 황제의 명을 따르는 척만 하고 실제로는 핑계거리를 찾아내서 원술과 대충 타협하고 돌아오면 되겠군!’

    유비는 이번에 좀 쉽게 생각했다. 조조의 두 번째 계략은 본질적으로 지난번의 이간책과 크게 것과 다를 바 없는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한번 해결해 본 경험도 있으니 별로 어려운 정치학숙제는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곧 유비는 원술과 대충 싸우는 척 시간을 끌다가 핑계거리를 찾아서 다시 퇴각할 생각으로 장비와 관우에게 군대를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관우가 말했다.

    "우리 셋이 모두 출정하면 서주성은 누가 지키게 되는 겁니까?"

    유비도 그것이 그 고민이었다. 유비가 잠시 생각에 잠기려는 순간 갑자기 장비가 불 쑥 입을 열었다.

    "형님, 제가 남겠습니다. 안심하고 출진하십시오."

    그러나 유비는 선뜻 응낙하지 않았다. 유비는 걱정스런 투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장비 아우가 성을 지킨다면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네. 아우의 불같은 성미하며, 술을 좋아하는 기질하며. 그런 것들이 차분하게 성을 지키기에는 맞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네!"

    "그렇지 않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형님들이 자리를 비우고 계신동안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못하게 서주성을 철통 같이 지키겠습니다."

    "흠. 그렇지만 아우는 술버릇이 안 좋아 술에 취하기만 하면 군졸들에게 매질을 하기 일쑤가 아닌가? 그러니 내가 또 어찌 마음이 놓이겠나?’

    유비가 장비의 술버릇을 아예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장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술을 끊겠습니다. 또한 성질 죽이고 가만히 앉아서 성을 지키는 데만 집중하겠습니다!!"

    장비는 말을 마치마자 늘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백옥 술잔을 꺼내 땅바닥에 팽개쳤다. 얼핏 보기에도 귀해 보이는 술잔 하나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장비가 평소에 아끼던 술잔까지 깨뜨리며 결의에 찬 의지를 보이자 유비는 그제서야 흔쾌히 장비로 하여금 서주성을 지키게 하였다.

    "이보게 장비 아우, 자네가 서주성을 지키고 있게. 우리는 시간을 끌지 않고 되도록 빨리 돌아올 테니! 서주성을 잘 지키고 있게!"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