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머로와 2009년 손석희
    2009년 10월 26일 09: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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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포스터. 

한 언론인이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미래의 역사가들이 지금 3대 방송국 1주일분 녹화자료를 찾아낸다면 실상과는 거리가 먼 퇴폐주의, 도피주의만 발견할 것입니다.” 그 언론인이 진행하던 시사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물러나는 자리에서 하는 말이다.

시사 프로그램 폐지된 이유

“우리는 불쾌한 정보를 외면하려 하고 매체는 그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이렇듯 TV가 주로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우릴 속이는데 이용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TV와 광고주, 시청자, 방송 제작자들은 자기 기만을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한 말일까? 2009년 가을 한국 방송계에서 퇴출당하는 누군가가 한 말인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1958년 10월 28일, 미국에서 에드워드 머로우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그러니까 한참 냉전논리가 휩쓸던 지난 세기, 방송 진행자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담배 회사가 그 방송 진행자 이미지를 빌어 광고를 하던 흑백 방송 시절의 이야기인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남자 주인공 역할로 익숙한 조지 클루니의 두 번째 감독 작품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기에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방송인들의 신념과 용기에 대한 영화다.

1950년, 증거자료 하나 없이 미국 국무성 내에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느닷없이 주장한 상원의원 조 매카시의 폭탄 발언은 공포와 감시의 시대를 열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이 시기, 매카시는 1954년까지 반미활동조사위원회를 이끌며 숱한 정치가, 예술가, 시민들을 공산주의자로 직접 고발하고, 서로서로 고발하게 하고, 지난 시절의 작은 경험조차 단죄하고, 심지어 이혼한 전 배우자의 집회 참가 여부조차 불온한 사상의 징표로 만드는 비이성의 시대를 이끌었다.

공산주의자로 몰릴까봐 두려웠던 사람들은 불의 앞에서 침묵하거나, 핍박을 피해 외국으로 달아나거나,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심판대에 세우며 빠져 나갔다.

매카시즘과 언론

<굿 나잇, 앤 굿 럭>은 이런 매카시즘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기에 침묵을 그치고 진실을 보도했던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데이빗 스트래던)와 그가 진행했던 시사 프로그램 ‘시 잇 나우(See It Now)’, 그리고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었던 동료들에 관한 영화다.

역사를 부정할 수는 있겠지만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는 신념으로 카메라 앞에 선 머로는 늘 "안녕히, 그리고 행운을(Good night, and good luck)"이라는 인사로 방송을 마친다. 공포의 시대를 사는 이들의 간절한 바램이 이 짧은 인사에 담겨 있다.

   
  ▲영화 한 장면.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5년, 런던 특파원으로 전쟁 소식을 전하면서 CBS에서 언론인의 길을 걷기 시작한 머로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에는 CBS의 시사 프로그램 <시 잇 나우>를 진행하는 중견 방송인이 되어 있다.

이 무렵 방송국에는 충성서약을 하라는 문서가 은밀히 돌고 있다. 서약을 하지 않으면 해고가 될까봐 두렵고, 서약하자니 언론인의 자긍심이 손상되는 상황에서 직원들은 대놓고 반발하지도 못하고 속을 끓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머로는 프로듀서 프레드 프렌들리(조지 클루니)에게 마일로 라둘로비치라는 공군이 재판 없이 강제 전역당한 사건을 보도하자고 제안한다. 라둘로비치의 전역 사유는 공산주의자로 추정되는 아버지와 누이를 고발하라는 강압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CBS, 광고에 무릎꿇다

공산주의자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이 부당하기 이를 데 없는 연좌제의 희생양이 된 라둘로비치 사건을 보도하는 것은 그때까지 사실 보도 외에 사건에 대한 논평을 하지 않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머로에게는 하나의 전환점이 된다.

머로는 부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을 때 어느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매카시 의원의 공산주의자 마녀사냥의 부당함을 직접 공격하는 프로그램까지 제작한다. 이제 매카시는 머로와 머로의 프로그램을 탄압하기 위해 목을 죄기 시작한다.

매카시는 머로를 몰아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반박 방송이랍시고 TV에 등장해서 머로의 논리와 증거에 대한 반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머로가 원래 사상적으로 문제적 인간이었다는 흑색선전을 펼치는 것은 기본.

머로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드는 스탭 가운데 결혼한 부부에게는 사내결혼 금지라는 사규를 어겼다고 해임을 통고하고, 매카시를 지지하는 반동 언론을 통해 머로를 지지하는 후배 언론인을 협박해서 자살로 몰아넣기까지 한다.

방송의 편집권을 침해할 수 없는 CBS 사주는 프로그램의 광고를 끊어 방송국 재정을 압박해 들어오는 매카시 측에게 무릎을 꿇고 머로가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보다 제작비가 삼분의 일밖에 안들이면서 광고수입은 더 많이 벌어들이는 오락 프로그램에게 편성시간을 내어주고 ‘시 잇 나우’는 간혹 주말 특별 편성으로 내치고 만다.

   
  ▲영화의 한 장면. 

가장 부끄러운 ‘또라이’로 남다

그러다가 프로그램이 영영 폐지되는 퇴임의 자리가 영화 <굿 나잇, 앤 굿 럭>이 시작하는 자리가 된다. 1954년에 시작된 머로와 매카시의 싸움은 4년 만에 이렇게 올곧은 한 언론인의 퇴출과 프로그램 폐지로 끝났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진정한 승자와 패자가 누구인지 영화를 통해서 뿐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도 밝혀지고, 매카시라는 이름은 미국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또라이’로 남아 있다.

머로가 라둘로비치 사건을 보도했던 순간이 미국 언론사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라고 믿어왔다는 조지 클루니는 연기자들이 절제된 연기를 어두운 시대에 맞서는 방송국의 상황을 재현해내는 극영화 안에서 매카시의 모습만큼은 철저하게 기록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굿 나잇, 앤 굿 럭>은 매카시를 영화 안에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소환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머로가 매카시의 반박에 대해 방송을 통해 입장을 밝히는 장면에서는 방송을 진행하는 실제 머로와 스튜디오 모니터에 비친 영상 속의 머로의 모습을 동시에 비추되 양쪽에 번갈아 초점을 맞추며 보이는 모습과 비춰진 모습이 일치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인의 모습임을 보여준다. 이 시기의 암울함을 흑백의 영상에 담아내면서 흑백논리의 시대가 이미 과거가 되었음을 노래한다.

조지 클루니가 감독으로서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오르고, 미국 내에서 비평이며 흥행 모두 성공을 거둔 <굿 나잇, 앤 굿 럭>은 공산주의자의 사상의 자유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계가 있지만, 언론인이 부당한 현실 앞에서 지켜야 할 사명에 대해서 냉철하면서도 묵직하게 짐을 지우는 영화다.

그 짐을 마다한다면 머로가 단호하게 지적했듯이 "TV는 가르치고,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인간이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노력이 없는 한 TV는 바보상자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라는 경고를 들어야 할 것이다.

50년대 미국과 지금 한국 방송 꼬락서니

현 정권에게 밉보인 오락 프로그램 진행자를 잘라내고, 대표적인 시사토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물러나게 만드는 지금 한국의 방송계의 꼬락서니는 1950년대 미국의 방송국 안에서 담배피던 시절 모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그토록 악랄하던 매카시는 머로가 퇴출되기 한 해 전에 이미 자신을 지지하던 공화당으로부터도 버림받고 마흔 여덟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을. 그때 매카시 앞에서 굴복해서 동료 영화인들을 팔아넘겼던 엘리아 카잔같은 사람이 영화사에서 얼마나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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