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사는 길
        2009년 10월 26일 08: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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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가끔 가다가 국내 고등학생이나 대학상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 출세를 위해 공부 아닌 공부에 매달리는 것부터 더 이상 참기 힘들지만 제 주위에서 그 어떤 대안적인 삶의 방식도 볼 수 없어 답답해 죽을 지경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아 왜 사는지 모르겠다."

    정신건강 유지하며 살기 힘든 삶

       
      ▲필자.

    사람마다 질문하는 방식은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략적인 골자는 거의 같습니다. ‘신분’과 ‘돈’이 지배하는 사회가 싫은데, 가족 등 주변의 압력이 있어서 다른 ‘모두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진다, 대안이 무엇이냐, 이것입니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실 좀 곤란하기도 합니다. 저만 해도 과연 국내에서 사회화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칠 만한 인내력이 되었을 것인지 상당히 의심이 갑니다.

    고교 시절에 3년 동안 하루 거의 16~17시간씩 작동돼야 하는 경쟁적인 암기 기계가 되는 것부터, 그 다음에 인생의 18개월 동안 하고 싶지도 않은 살인 교육을 받으면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타인들과 합숙생활하는 것까지, 이 모든 시련을 거쳐가면서 제가 과연 정신건강을 유지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물론 막상 부딪치다 보고, 또 생존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뚜렷한 의식이 있다면 또 달라질 수도 있는데, 어쨌든 ‘외부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국내 청소년/청년 훈육 과정은 대단히 잔혹해 보이긴 하죠.

    그리고 아마도 이 과정에 어쩔 수 없이 흡수되어져야 하는 이들에게는, 근본적으로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게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격이 아니냐, 생존을 위해 이렇게 고생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위한 생존이냐 이런 질문들은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만 해도, 만약 이와 같은 사회화 과정에 선택의 여지없이 강제 편입돼 ‘오로지 생존’을 위해 할 일 못할 일을 다 해야 됐다면 아마도 정신건강이 유지된다 해도 엄청난 허무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신의 주체성을 포기하거나 미지각하여 타율적으로 살아야 할 때에 필수적으로 허무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대한민국의 수많은 젊은 (집단) 피해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실 강약의 차이가 있지만 북조선 젊은이를 만나서 남이 엿듣지 않는 사담을 하게 된다면 그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하고는 별 차이는 없습니다. 남북의 차이란, 이와 같은 성질의 이야기를 공개해도 되는가 정도의 차이일 것이겠죠?

    체제의 언술을 믿지 말자 

    1.

    체제를 우리가 당장 바꿀 힘은 없어도 일단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즉, 이 체제가 강요하는 사회화 과정을 개인적으로 이탈해버리면 막대한 개인적 피해가 따를 것이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이게 아니다"는 정신을 간직할 수는 있죠.

    체제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계급적 위치의 확정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체제가 ‘대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계급적 질서를 뒷받침해주고 있는 학벌 집단 형성의 시공간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체제가 ‘매체’라고 부르는 것은 극소수의 비판적 매체를 제외하고서는 체제 순응적 ‘국민’ 형성의 도구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잘 기억해서 저들이 하는 말을 아주 선별적으로만 믿으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저들이 저들의 통치 명분이나 정통성과 관련되는 이야기를 할 때에 이는 객관적인 사실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의하면 됩니다. 북한의 김일성 왕조의 건국신화들이 말그대로 ‘신화’에 지나지 않다는 것은 외부자에게 거의 자명하지만 남한 통치집단의 ‘자기 이야기’도 –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 어디까지나 아전인수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총독부와 미군정의 통치권을 인수한 이들이 상해임시정부 요인들을 물리적으로 내지 정치적으로 다 제거한 뒤에 ‘임정 법통’을 논하는 것이나, 미-일의 자금과 시장, 그리고 월남전 특수나 일본 사양산업들의 점차적 인수 과정에 기댄 재벌 위주의 수출형 경제 개발 과정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한반도 북반부를 김일성의 빨치산 부대가 스스로 다 해방시켰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쟀든 ‘체제의 말’이 어디까지나 체제의 자기 합리화일 뿐이라는 점을 알고 내면적 독립이라고 이룬다면 그 다음에 체제 안에서의 인간다운 생존이라도 꿈꿀 수 있을 듯합니다.

    체제가 강요하는 코스보다 욕망에 충실하자

    2.

    체제가 강요하는 기본적 사회화 코스(학교-대학교-군대-취업 등)를 전체적으로 내지 부분적으로 거부하는 데에 한 개인으로서 떠안기가 어려울 수도 있는 엄청난 피해, 즉 체제의 보복이 따릅니다. 예컨대 병역 거부의 경우에는 – 이는 국제적으로 ‘인권’으로 인정된 평화주의자의 당연한 권리임에도 – 전과자가 되어 평생 ‘2등 시민’으로,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성분이 나쁜 동요계급’ 일원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체제가 가할 보복의 규모를 정확히 인식하여 이 부분에 있어서는 그 어떤 결정도 아주 신중히 해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체제가 강요하는 코스를 비록 밟는다 해도 ‘나’의 욕망에 충실하도록 일단 노력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어 ‘나’는 평생 박물관에서 유물을 만지면서 살고 싶다면 비록 비인기 부문이고 월급도 낮고 사회 인지도도 별로 높지 않지만 일단 내가 좋은 대로 대학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비록 부모 등 가장 가까운 사람이 무조건적 명문대 지원 등을 강요한다 해도 이를 뿌리치고 ‘나’의 욕망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행복하게 살 확률이 객관적으로 없기 때문입니다.

    ‘행복’이라는 게 과연 뭔가요? 나는 ‘나’의 욕망대로 자아실현을 하고, 남들도 ‘나’의 자아실현에 도움을 받아 자리이타의 보살행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악기 연주자가 연주시에 청중의 눈빛을 보면서 행복감을 느끼곤 하죠. 비록 억만장자가 돼도 그 이상의 행복은 없습니다.

    투쟁이 희망인 이유

    3.

    우리 살아 생전에 이 체제가 과연 좋은 쪽으로 바뀔 것인지 아니면 지금대로 고정돼 그냥 온갖 문제들이 천천히 조금씩 곪을 것인지 우리로서 알 수 없습니다. 일본 등 인접국들의 보수화 과정을 보노라면 동아시아 (재벌 주도, 토건)형 국가에서의 급진적 변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단은 ‘노력’이라도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본에서 야스쿠니를 반대하면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심신을 기울이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본에 대한 호감과 기대를 주듯이, 대한민국 안에서 이주노동자 마녀사냥 등을 반대하고 한국 재벌의 각종 국내외에서의 악행을 규탄하는 이들의 존재는 한국 자본주의의 수많은 국내외 피해자들에게 역시 귀중히 여겨집니다.

    일본의 진보/사회주의 인사들이 일본적 체제를 바꾸지 못하듯이 한국에서도 ‘승리’를 기약할 수 없지만 일단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중요합니다. 사회화 과정에서 답답함과 억압감에 짓눌린 젊은이에게는 이와 같은 투쟁에 합류하는 것은 자리이타적 자아실현의 하나의 ‘길’, 답답함을 넘어 희망을 볼 수 있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투쟁을 실현하고 있는 집단/단체들이 천차만별인데, 여기에서 본인의 생각, 성격, 성향에 맞는 쪽을 잘 고르는 지혜는 중요할 듯합니다. 그런데 온건 사회주의자가 되든 급진 아나키스트가 되든 "나는 혼자 아니다"는 느낌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도저히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은 안보인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대체로 위와 같은 조언들을 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믿지 말라, 무조건 따르지 말라, 그리고 동류들을 찾으라… 아주 거칠게, 종합적으로 이야기하면 위와 같은 세 가지 충고인데, 또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를 천편일률로 다 적용하지 못할 수도 있죠. 어쨌든 ‘대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 자체는 이미 성공의 반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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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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