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노무현, 민주주의를 공격했다
경제주의에 빠진 사람은 조희연 교수"
    2009년 10월 28일 09: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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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하지만 사실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이유는 지난 번 글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것보다는 조금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그간 조 교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 맑스주의 국가관의 전기를 이룬 그람시

그런데 이번에 <성공회대 급진민주주의 세미나 창간 준비호> 에 쓰신  급진민주주의론의 개념적, 이론적 기초에 대한 시론」이라는 글을 조 교수가 직접 소개해주셔서 좀 더 많은 의문을 풀 수 있었습니다. 특히 왜 조 교수가 97년 체제와 08년 체제를 그토록 구별하려고 애쓰는지, 왜 민주당 및 친노세력과의 연합 전략을 그토록 강조하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지요.

상당히 긴 논문이지만, 그 중심적 문제설정을 저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근대사회는 전근대적인 ‘정치적 적대성’을 ‘경제적 경쟁’으로 치환하고 나아가 전근대적인 연대성을 광범하게 상품화의 영역으로 인입한 체제였다. 이런 점에서 근대자본주의사회는 연대적 사회성을 철저하게 해체하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근대사회는 적대적 사회성을 관리하는 민주주의적 정치방식이 존재하는 사회이다. 전근대사회와 달리 ‘예속적 관계’가 아니라 ‘법 앞에서의 평등’이 최소한 형식적으로 보장되고 자신의 요구와 이해의 적대성을 민주주의적 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표현할수 있도록 보장한다.

이런 점에서 근대사회의 또 다른 역설적 관계라고 할수있을것이다. 우리가 근대사회를 자본주의 자체로만 환원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급진화속에서 반反자본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현실화하고자 하는 것도 이러한 역설적 관계 때문이다.” (48~49쪽)

조 교수는 여기서 근대 사회를 정치와 경제가 ‘역방향’으로 접합되어 있는 사회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대 사회는 경제적 차원에서는 적대와 착취가 극대화되어 있는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역으로 정치적 차원에서는 억압이나 예속에 기반한 전근대의 통치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민주주의적 정치’가 수립된 사회라는 것이지요.

조 교수의 급진민주주의 전략이란 바로 이렇게 정치의 영역에 수립되어 있는 민주주의를 급진화함으로써 ‘경제적 자본주의’와 투쟁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조희연의 경제주의

그런데 제 관점에서 이러한 조 교수의 입장은, 외람되지만, 부지불식간에 ‘경제주의’로 빠지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는 조 교수도 ‘이건 누가 봐도 부당한 공격’이라는 말씀을 분명히 하실 것 같은데, 왜냐하면 조 교수는 누구보다도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위의 구절에서도 ‘정치적 급진주의’를 통해 ‘경제적 자본주의’와 투쟁을 하자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제가 조 교수의 입장을 ‘경제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저에게 정치주의는 정확히 경제주의의 쌍둥이, 또는 그것의 거울 반사에 불과하다는 관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경제주의는 단순히 정치를 경제로 환원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근원적인 수준에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원리적으로 또는 일차적으로, 경제를 정치 없이 독자적으로 규정할 수 있고, 또 정치를 경제 없이 독자적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경제주의’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치주의와 경제주의란 단지 거울 반사에 불과하다는 논리가 저에게 성립되는 거지요. 하지만 이것은 저만의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본』에서의 맑스 자신, 트론티, 알튀세르, 발리바르 등 많은 좌파 학자들의 공통된 관점을 이루는 것입니다.

라클라우와 무페 또한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에서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려는 관점을 ‘경제주의’로 비판하고,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의 핵심이 이러한 ‘분리’의 비판에 있었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확인합니다(특히 78쪽 이하를 보십시오).

그런데 조 교수는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오히려 정치와 경제를 원리적으로 또는 일차적으로 분리하고, 각자가 고유한 메커니즘을 갖는 어떤 것들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양자의 ‘역방향’으로의 접합은 독자적으로 규정된 각각의 것이 오직 사후적으로만 결합함으로써 일어나지요. 이는 조 교수가 이 양자 사이에 아무 관련도 설정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 교수는 그 관련을 오직 ‘사후적’인 상호 영향 관계들로 축소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근대 민주주의는 (대의제라는 “원형적 결손”을 가지고는 있지만) 전근대의 억압적 통치기제와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인민의 정치’를 출발시킨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규정될 수 있고, 다만 그것은 사회적 위계들이나 경제적 위계들에 의해 영향을 받음으로써 점차 왜곡되어 왔다는 식의 설명(34쪽 이하에서 조 교수가 “현실권력들에 의한 민주주의의 식민화와 포획”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경제와 정치의 분리에 대한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사회구성체의 이러저러한 영역이 따로따로 규정되기 때문에, 조 교수의 논의에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의 대당(opposition)’ 또한 그대로 복귀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제가 판단하기엔 조 교수 주장의 가장 약한 고리를 이루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조 교수는 그람시를 좇아 근대 사회 구성체를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눕니다. 정치사회, 시민사회, 그리고 경제가 그것이지요.

정치사회, 시민사회, 경제

여기서 먼저 정치사회란 ‘국가’를 일컫는 것으로, 그것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엘리트주의적인 ‘대의제’에 의해 지배되는 영역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사회적, 경제적 위계권력들이 국가로 수렴하고 민주주의를 식민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인민주권을 왜곡하는 이러한 국가의 대의제적 측면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일체의 대의제를 비판하는 것이 조 교수에게는 매우 중요해집니다.

반면 시민사회란 많은 사람들에 의해 통상 정치적이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곤 하지만, 사실은 정치사회보다 더욱 정치적인 영역, 민주적 정치의 중핵을 이루는 영역으로 규정됩니다. 시민사회 내부로부터 제기되지만, 기존의 국가정치에 의해 정치적 이슈들로 인식되지 못하는 문제들을 정치사회 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영역은 그 자체로는 정치와 상관이 없는 영역이고, (고리가 다소 모호하긴 하지만) 거기서 제기되는 문제들은 오직 시민사회에서의 정치운동을 통해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영역으로 자리 잡습니다.

정리하자면, 조 교수의 도식은 ‘정치 = 국가 + 시민사회’이며, 이러한 의미에서의 ‘(광의의) 정치’는 ‘경제’와 원칙적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조 교수가 체제론이 경제를 부차화하면서 체제를 기본적으로 ‘정치레짐’으로 규정하자고 역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도식에 입각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러한 관점에서 조 교수에게 가장 중요해지는 것은 정치의 두 가지 근본 방향 사이에서의 투쟁이 됩니다. 곧 ‘정치의 국가화’인가, 아니면 ‘정치의 사회화’인가?

조 교수에 따르면, 정치의 국가화는 “정치가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현실 권력들의 재생산을 위협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쉽게 풀어 말하면, 지배적 헤게모니를 시민사회 속에 지속적으로 구축해 냄으로써 ‘국가에 대한 동의’를 강화시키는 방향을 가리키지요.

반면 정치의 사회화는 “정치를 사회와 일치시키도록 하는, 즉 정치가 사회적 요구를 실현하는 장이 되도록 하고 동시에 정치가 (인)민들의 자기통치와 자기권력 상태의 실현으로 근접하도록 하는 시도”를 의미합니다(66쪽).

조 교수에게서 정치의 국가화가 국가적 지배를 강화하는 부정적 방향으로, 정치의 사회화는 지배에 저항하는 긍정적 방향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관점은 기본적으로 그람시의 ‘초기’ 사고에 훨씬 더 접근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기에 그람시는 ‘정치 = 국가 + 시민사회’라는 도식을 택하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적대를 강조하면서, 국가를 부정적인 것으로, 그리고 시민사회를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람시의 정정

그러나 아시다시피 후기로 가면서 그는 이러한 관점의 문제점을 깨닫고 자기 도식에 중요한 정정을 가하게 되지요. 그 결과 다음과 같은 전혀 다른 도식이 나오게 됩니다. 곧 ‘국가 = 정치사회 + 시민사회.’

여기서 정치사회란 정부(government)를 의미하는데, 정확히 그람시는 이러한 도식을 채택함으로써 국가가 정부로 환원될 수 없고, 정부 플러스 시민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더욱 폭넓게 규정되어야 한다고 새롭게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무엇보다도 시민사회 내의 이러저러한 조직들도 국가적 헤게모니의 일부를 이룬다고 볼 수 있고, 심지어 국가에 ‘저항’하는 조직들조차 국가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within and against의 방식으로 존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람시 초기 도식 정치 = 국가(=정부) + 시민사회
그람시 후기 도식 국가 = 정치사회(=정부) + 시민사회

물론 조희연 교수가 정확히 초기 도식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이 두 가지 도식 사이에서 일정한 이론적 ‘타협’을 시도하는데, 그는 그람시 초기 도식인 ‘정치 = 국가 + 시민사회’를 기본공식으로 채택하면서도, 시민사회 전체를 저항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보다는, 그 중 일부는 정치의 국가화를 추구하는 지배적 헤게모니의 움직임에 종속되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정치의 사회화를 추구하는 대항 헤게모니의 움직임에 가담한다는 식으로, 그람시의 후기입장을 그 속에 약간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조 교수의 도식은 국가를 시민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그람시의 후기 도식과 크게 다를 뿐만 아니라, 정치를 시민사회와 일치시키는 ‘정치의 사회화’가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국 시민사회의 저항성을 강조하는 그람시의 초기 도식의 단순한 ‘변주’에 불과한 것으로 귀착된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 교수의 이론에 (후기 그람시가 명시적으로 포기한) 국가와 사회의 대당(opposition)이 ‘정치의 국가화 대 정치의 사회화’의 대당이라는 형태로 그대로 복귀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이론적 구상의 가장 치명적인 실천적 결과 가운데 하나가 제가 보기엔 바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한 조 교수의 판단으로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곧 김-노 신자유주의 정권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을 조 교수가 이론적으로 전혀 포착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제한된 수준에서나마 진전되었다는 식으로 오판하게 되는 것은 조 교수가 기본적으로 그람시의 초기 도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김대중과 노무현이 민주주의 진전시켰나?

다시 한 번 곰곰이 따져 봅시다. 정말 김-노 정권이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나요? 제가 보기에 그들은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기는커녕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 장본인들입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위해 재경부 기술관료들(테크노크라트들)에게 실권을 부여하고 사실상 국민의 중심 대의기관인 국회는 정부와 재경부에서 필요로 하는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입안하는 거수기로 전락시켰지요.

김-노 정권 시기는, 최장집 교수가 지적하듯이, 행정부가 비상하게 강화되고 입법부 및 정당정치에 대한 공격이 심화되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국민의 요구들을 대의해야 하는 의회정치의 기능 자체를 “민영화”하여, (“시민단체”라고 부르지만 어불성설이고 “민간단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한) 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들에게 위임, 대중의 불만들을 부분적으로 관리하게 만들었지요.

이 과정에서 친정부 성향 NGO들의 비대화, 심지어는 부정부패까지 나타났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경향신문>에 나온 하승우 씨의 예리한 글  박원순 변호사의 자승자박」을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정부 주변에 일정한 ‘완충지대’를 만들어 내면서, 김-노 정권은 다른 한 편 기층 민중운동들 또는 좌파적 사회운동들을 NGO들과 고립시키면서, 탄압을 점점 더 강화해 나가는 전략을 펼쳤지요. NGO 자신들도 다양한 담론 생산을 통해 기층 민중운동을 집단 이기주의적인 밥그릇 운동들로 폄하, 고립시키면서, 중산층 소비자 운동 따위만을 보편적인 시민운동의 본령인양, 심지어 중산층만이 시민인양 정치적, 사회적 시민권의 내용을 왜곡해 왔습니다.

김-노 정권 시기는 이렇게 (대의제로서 뿐만 아니라 급진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정치’ 그 자체가 실종되고, 신자유주의적 ‘행정관리’가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조 하에 강화되었던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이러한 관점에서의 논의는 서관모 교수의  시민과 계급」이라는 글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조 교수의 이론적 틀을 취해서 이러한 현상을 보면, 매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완전히 물구나무를 서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 교수의 관점에서, 김-노 정권은 민주주의를 공격한 정권이기는커녕 근대 민주주의의 ‘원형적 결손’을 이루는 엘리트주의적 ‘대의제’를 공격하고, 시민사회의 운동단체들(NGOs)을 활성화함으로써 ‘정치의 사회화’를 주도한 민주적 정권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오판이 조희연 논리의 근거

조 교수가 (NGO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MB정권을 08년 체제로 완전히 구분하자고 말하면서, 민주당 및 친노세력과 좌파가 연합할 필요성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를 여기서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조 교수 논의의 비일관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조 교수의 “시론”에서 ‘경제주의적 탈정치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본인이 어떻게 비판했는지를 읽어보기만 하면 됩니다.

“경제주의적 탈정치주의는 정치의 고유한 위상을 부정하고 그것을 경제적인 논리 혹은 시장
기능에 위탁・해소하는 시각으로 나타난다. 시장의 가격체계가 개개인의 욕구와 필요를 표현하는 최고의 민주적 체제로 간주하는 하이에크 식의 인식에서 정치와 같이 비경제적인 요인들은 최소화되어야할 것으로 간주된다.

초기 자본주의의 자유방임주의적 정치관이나 현대의신자유주의적 정치관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고생각한다. 신자유주의는 전형적인 탈정치주의인데, 이는 시장자율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의 많은 부분을 시장의 기능으로 전치시킨다. 이 경제주의적 탈정치주의는 일종의 ‘정치부정론’이라고 할 수 있다.” (59쪽)

이 구절에서 조 교수는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제가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서) 신자유주의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종주의, 가족주의 따위의 신우파적 반민주적 가치와 접합될 수 있지만, 그것의 정치적 본질은 오히려 ‘자유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탈정치주의’, ‘정치기능의 시장화/민영화’에 놓여있다는 점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가 위에서 지적했듯이 정확히 김-노 정권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 일인데, 막상 조 교수가 김-노 정권의 정치를 실제로 평가하는 대목에 가면 정치와 경제를 완전히 분리하고 이들 정권이 경제영역에서와는 달리 정치에서는 신자유주의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부족하나마 민주주의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평가를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 교수의 논의가 일관성을 갖지 못하고 이토록 동요하는 것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비판, 또 국가와 사회의 대당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전 솔직히 조 교수가 최장집 교수와 예전에 논쟁한 것을 제대로 쫓아가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 교수가 논쟁 당시 제도정치를 옹호하는 최 교수의 입장에 대해 사회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 교수의 입장은 일견 급진적 좌파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그리고 저는 이 입장을 지지합니다), 그러한 표면적 입장의 이론적 근거들까지 그렇게 급진적이었던 것인지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으로 저에게 남아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대당을 ‘비판’하기보다는 ‘전제’하면서, 국가에 대해 시민사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조 교수의 위와 같은 입장을 반영한 결과인 듯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양가적이다

그러나 만일 적어도 우리가 ‘국가 = 정치사회(정부) + 시민사회’라는 그람시의 후기 도식을 택한다면, 우리는 단순히 국가와 시민사회 중 어느 하나를, 또 정치의 국가화와 정치의 사회화 중 어느 하나를 진보적인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시민사회가 ‘양가적’인 만큼이나 국가 또한 우리는 ‘양가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람시 자신은 최종적으로 여기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지만(그래서 그의 국가관은 모호한 것으로 남아있지만), 우리는 오히려 국가 그 자체, 또 국가와 불가분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대의제/대표제’라는 것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만 바라보곤 하는 좌파의 고질적인 관점을 해체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됩니다.

발리바르는 그의 저서 『대중들의 공포』가 프랑스에서 나온 1997년에 가졌던 Documenta-X와의 인터뷰(  세계화와 문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조금 길지만 인용해보겠습니다.

“국가, 정치, 시민권, 그리고 민족성에 대한 시민권의 관계가 맑스주의 이론에게는 미래의 대상들이 아니라, 아예 접근 불가능한 대상들이라는 것을, 우리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거스르면서까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대상들은 단지 잠정적인 맹목점들이 아니라, 모든 가능한 맑스주의 이론화에 있어서의 절대적 한계들입니다.

많이 비난되는 맑스주의의 경제적 환원주의 때문이 아닙니다. 맑스주의의 아나키즘적 요소 때문입니다. / 저는 아나키스트가 아닙니다. 반대로, 저는 맑스가 너무 지나치게 아나키스트였다고 생각하고, 맑스 이후의 맑스주의자들이 국가의 사멸이라는 꿈 때문에 많은 대가를 치렀다고 생각합니다.

맑스는 바쿠닌보다 자기가 더 아나키스트적이라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바쿠닌이 “국가를 타도하자!”고 외치며 국가를 말로만 와해했던 반면, 맑스는 계급투쟁을 활용하면서, 국가를 현실에서 와해하려는 목표를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두 다 알고 있지요. 국가의 사멸이라는 담론은 전능한 국가를 옹호하는 실천을 출현시켰습니다. 저는, 국가는 사실 사회적인 기정사실(a social given)이 아니라 하나의 제도라고 말하고 싶고, 국가는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된 작용의 산물–풀란차스가 설명했듯이 하나의 응축, 결정화라는 의미에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맑스주의가 국가나 시민권의 문제에 접근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내보이는 것은 경제적 환원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론적) 아나키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이러한 아나키즘이 나타나게 된 것은 국가와 사회의 대당을 맑스가 비판했지만, 그것을 충분한 정도로까지 비판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바꿔 말해서 문제는 사회심급들 사이의 분리에 대한 맑스적 비판의 ‘부족함’ 때문에 생겨났던 것이지 그것의 ‘과잉’ 때문에 생겨났던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맑스주의와 아나키즘

이 자리에서 길게 설명하긴 힘들지만, 이는 핵심적으로 이데올로기라는 “정치의 또 다른 무대” 혹은 “또 다른 토대”와 정치의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맑스가 제대로 분석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데올로기를 단순한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고, 국가를 기본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한에서, 국가는 그에게 항상 최종적으로 사멸시켜야할 어떤 것으로 등장했지요. 국가 문제를 둘러싼 맑스주의의 오랜 동요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관점을 바꿔, 이데올로기를 그 자체 적대들에 의해 지배되는, 경제만큼이나 물질적인 하나의 사회적 관계로서 바라보면,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국가가 경제적 적대들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적대들에 의해 관통되는 어떤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데올로기 자체가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될 필요가 없어진다면, 이제 국가는 (시민사회만큼이나) 순수하게 긍정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수하게 부정적이기만 한 것도 아닌 어떤 것으로 나타날 수 있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국가는 궁극적으로 사멸시켜야 할 어떤 것이라기보다는 발본적으로 ‘변혁’해야 할, ‘민주화’해야 할 어떤 것으로 나타나게 되지요(이 관점에서 볼 때 맑스가 “고타강령 비판”에서 얼핏 보여줬던 국가에 대한 몇몇 새로운 정식화들이 매우 중요해집니다).

저는 좌파의 자기 혁신의 근본적인 몇몇 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러한 ‘이론적 아나키즘’에 대한 자기비판에 놓여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비판을 통해 좌파는 국가와 시민권의 문제를 완전히 다시 사고하고, 민주주의의 문제 또한 완전히 다시 사고해야 할 것입니다. 급진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망들과 대안들은 바로 이러한 자기비판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이론적으로 가공되어 나와야 하겠지요.

끝으로, 대안과 관련하여 원칙적인 한 가지와 보다 실천적인 한 가지만 논해보고 싶습니다. 원칙적인 수준에서는,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로부터 ‘자유’라는 개념을 좌파가 다시 빼앗아 올 전략을 수립해야 할 필요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의 재탈환은 라클라우-무페가 강조하고, 발리바르가 더욱 명료하게 정식화한 바 있듯이, ‘자유와 평등의 동일성(identity)’이라는 테제를 옹호함으로써 가능해질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평등 없는 자유 없으며, 자유 없는 평등 없다’는 테제, 또는 ‘평등과 자유는 오직 상호적으로만 확장될 수 있다’는 테제가 바로 그것이지요.

자유의 문제

이러한 관점에서 우선, (주로 평등만을 강조하는) 좌파 자신의 담론전략을 변화시켜야 하고, 그러한 변화된 관점에서 (자유를 평등과 분리시키는) 자유주의 세력 일반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바로 개인들 사이의 관개인적 관계들(transindividual relations)을 파괴함으로써 개인성 그 자체를 파괴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진정한 개인들의 자율성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개인들을 집산주의적으로 집단으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그/녀들을 민주적으로 접합할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국가적인 방식으로든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든 간에, 새롭게 발명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주의할 점은 여기서 국가적 경로들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면, 우리의 대안들은 오히려 현실적 설득력을 상실할 것이며 다시 국가와 사회의 대당의 함정에 빠질 뿐이라는 점이고. 이것이 바로 이승원 교수의 글에 제가 동의하기 힘든 이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 교수가 이번 글에서 새로운 지배어와 관련해서 ‘공공성’을 언급했는데, 저는 이것이 바로 이러한 관개인성의 새로운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다시 사고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서 이미 우리는 실천적인 수준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저는 얼마 전 미국에서 의료보험 개혁과 관련해서 오바마가 이른바 공공의료보험 선택지(public option)를 주는 식의 개혁 정책을 추진한 것이 (비록 지금 미국사회의 고질적인 자본주의 가치관에 부딪혀 실패하고는 있지만) 나름대로는 이러한 관개인성의 조직화를 시도한 예라고 여겨졌습니다.

개인들의 자율성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적 공공성의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지요. 이런 관점에서 보니, 우리와 같은 경우에 고민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교육 영역’에서 이러한 공공영역 선택지를 최대한 확장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를 들어, 현재의 국립대학들, 특히 서울대가 국립대학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현실을 발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전국의 국립대학을 통폐합, 평준화하고, 그것을 모두 “서울대”로 확장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프랑스의 파리 대학도 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듯이, 서울대가 서울에만 있을 필요는 전혀 없지요).

그렇게 해서 서울대 엘리트주의를 서울대 폐지라는 파괴적 방식이 아니라 해체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국립대와 사립대 사이의 경쟁을 조직함으로써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등록금과 교육비를 일정하게 끌어 내릴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립대학에 대한 일체의 지원과 특혜를 끊고(이것이 싫다면 언제든 사립대는 국립대로 자발적으로 전환할 수 있겠지요), 그야말로 철저히 사기업화하도록 하면서, 그 자원을 국립대학의 무상교육(또는 준무상교육) 실현을 위해 끌어당길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방의 국립대학들로 서울대 교수진 및 새롭게 영입되는 다양한 교수진, 그리고 학생들을 분산시킴으로써 지방 자치의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단지 어떤 특정한 계급, 사회집단에만 관련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더 보편적이고 광범위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물론 제가 방금 거론한 ‘서울대 해체론’의 경우에는 하나의 ‘가능한’ 정책대안일 뿐이며, 문제가 있다면 정정되거나 폐기될 수도 있는 하나의 제안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기대컨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상상을 하고, 더 많은 인식을 할수록, 우리에겐 ‘더 많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대안들이 쏟아져 나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는 이 ‘체제 논쟁’의 초점이 바로 그런 쪽으로 옮겨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글이 너무 길어져버렸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조희연 교수와 저 사이에는 물론 차이점도 많지만, 공통점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은 주로 차이를 강조했지만, 이것이 조 교수와의 대립만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조 교수님과 다른 분들이 이해해주시리라 기대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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