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놈, 잔인한 놈, 끈질긴 놈
    2009년 10월 23일 11: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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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놈이다. 

서울 여의도 KT건문 앞 천막에는 멀리 포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지난 14일부터 10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여의도의 매서운 강바람이 새벽의 추위를 사르고, 배고픔과 설움으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16층에 있는 ‘사장님’은 귀하신 ‘용안’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건물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물을 대접하고 있지만 ‘사장님’은 ‘졸개’들을 시켜 염탐만 할 뿐이다. 조합원들은 벌써 1년째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고문의 아들인 사장은 대화를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징계와 손해배상 가압류를 때렸다. 독한 놈들이다.

강남에 있는 한진중공업 앞에는 50줄의 늙은 노동자들이 서울의 찬바람을 맞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 없는 황량한 강남 벌판에서 그들은 회사는 잘나가는데 왜 경제위기의 책임을 늙은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냐며 높으신 ‘회장님’을 보러 왔지만 일주일 내내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다.

   
  ▲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가 10월 21일 한진중공업 부산영도공장에서 김주익 곽재규 열사 추모제를 열었다.(사진 금속노조)

6년 전 10월 17일 김주익 지회장이 35m 크레인에 올라 129일 농성을 벌이다 밧줄에 목을 매 자결한 곳이 한진중공업이다. 그 달 30일 곽재규 조합원은 그를 따라 4도크 아래로 몸을 던졌다. 1,200여명의 동료들은 10월 21일 크레인 아래서 추모제를 지냈고, 24일에는 솥발산 공원에서 묘소를 참배한다. 6년 전 그 끔찍했던 기억을 잊었는지 오늘도 자본은 임금 동결과 성과급 삭감을 요구하고 있다. 독한 놈들이다.

3분기 9791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려 분기 기준으로 최대 순이익을 냈고, 세계시장 점유율도 5.5%로 끌어올린 현대자동차는 경제위기의 고통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겨 500명 이상을 공장에서 내몰았다. 노름으로 31조를 날린 GM대우는 1천명의 비정규직을 쫓아내고, 정규직에게는 임금동결과 복지축소를 강요했다.

경제위기 속에서 가장 잘 나간 기아차 모닝공장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두 번씩 해고했고,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되어버린 기륭전자는 회사가 아파트 주민을 꼬득여 집회도 하지 못하게 하는 소송을 냈다. 셀 수 없는 노동자들이 경제위기를 이유로 쫓겨났지만 높으신 ‘사장님’이 책임과 고통을 나눴다는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돈 앞에서는 인간성도 없고, 이윤 앞에서는 양심도 팔아먹는 정말 독한 놈들이다.

독한 놈의 친구는 잔인한 놈이다.

쌍용차 파업노동자에게 물과 의약품마저 막고, 전쟁 살상무기를 동원해 살인진입을 했던 경찰은 이번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20억 5천만원의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노조원 100여명에게 재산가압류를 제출한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는 적군보다, 전쟁포로보다 더 끔직한 폭력과 보복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가하고 있다. 잔인한 놈들이다.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철거민들을 살인진압한 이명박 정부는 21일 농성자 3명에게 징역 8년, 4명에게 징역 7년, 2명에게 각 징역 5~6년을 때렸다. 변호인단은 “마치 20년 전 공안사건과 같은 분위기”라고 했다.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놈들이다.

   
  

용산 참사의 해결을 정부에 요구하며 11일째 단식농성을 벌이던 문규현 신부님이 22일 새벽 쓰러져 의식불명의 상태에 이르렀지만 저들에게는 안중에도 없다.

1년 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복직을 요구하며 무려 94일을 단식했지만, 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물며 말없이 쫓겨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독한 놈들과 잔인한 놈들에게 맞서는 일은 많은 용기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용기와 희생이 진실을 밝혀냈고, 끈질긴 투쟁이 역사를 한 걸음씩 진전시켜왔다. ‘끈질긴 놈들’의 용기있는 투쟁과 희생이 독재자를 끌어내리고, 정의를 세워온 것이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22일로 1,522일째 투쟁을 하고 있다. 용산의 유가족들과 철거민들이 10개월째 저항을 하고 있다. 10월 24일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철거민들이 서울역에서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 ‘끈질긴 사람들’이 손을 마주 잡고 진실이 승리하는 날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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