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5일 일한 후엔 언제나 텅빈 손
    By mywank
        2009년 10월 23일 06: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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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비가 오고 날씨까지 춥다. 경찰 때문에 농성장에 천막도 칠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적자 생활’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23일 오후 김경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전여농) 회장은 쌀값 폭락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여의도 국회 앞에 마련된 농성장을 4일째 지키고 있었다. 전남 나주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그는 지난 20일 전여농 회원들과 함께, 이곳에서 삭발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다. 

    여성농민들, 삭발에 노숙농성까지

    “여성농민들이 얼마나 힘이 있겠나. 머리라도 밀어야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지.”

    김 회장은 삭발한 자신의 모습을 잠시 보여주더니, 이내 모자를 깊게 눌러 섰다. 농성장에는 김 회장을 비롯해, 10명 안팎에 여성농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바쁜 수확 철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10년 전 보다 떨어진 쌀값 때문이다.

       
      ▲쌀값 폭락사태 해결을 촉구하며 여의도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여농 김경순 회장(왼쪽)과 강다복 부회장 (사진=손기영 기자) 

    여성농민들은 △쌀 생산비 보장을 위해 쌀 가격 21만원(1가마당) 보장 △수확기 쌀값 폭락에 대한 특단의 대책 마련 △쌀 문제 해결을 위해 대북 쌀 지원 법제화를 촉구하며, ‘전국농민대회’가 열리는 다음달 17일까지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이들은 농성장 주변에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선전전과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으며, 다음 주부터는 서울역, 청계광장 등 도심 곳곳에서도 이를 진행하기로 했다.

    쌀값 폭락…‘고단한 생활’의 연속

    잠시 뒤 전북 김제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강다복 전여농 부회장이 농성장을 찾았고, 두 여성농민은 자신들의 ‘고단한 생활’을 털어놓았다. 우선 김 회장은 다음 달 결혼하는 딸 이야기를 꺼내며 “(결혼 자금을) 보태줄 형편이 안 되는 것 같다”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대학까지는 보태주겠다’는 딸과의 약속은 지켰다"고 밝혔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을 대학에 보내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쌀값은 폭락하지만 농약 비료값 등은 올라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 되었기 때문이다.

       
      ▲23일 여성농민들의 농성은 4일째로 접어들었다. 이날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오른쪽)이 농성장을 찾았다. (사진=손기영 기자) 

    “딸이 디자인과에 다녀 재료비가 많이 들어갔다. 또 자취를 하는 딸에게 생활비도 붙여줘야 했다. 그래서 없는 형편에 앞집 옆집 뒷집 여기저기를 찾으면 돈을 빌린 기억이 난다. 또 다른 논에 ‘품팔이’를 뛰고 농사가 없는 겨울에는 작은 회사에도 나갔던 기억이 난다.

    쌀값이 폭락해 보통 3천 평 농사를 지으면 1년에 6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는데, 요즘 1천만 원을 내야 대학에 다닐 수 있다. 농사만 지어서는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없다. 빚을 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농민들은 바보 같이 다시 농사를 짓는다. 이거라도 안 하면 밥도 못 먹기 때문이다.”

    품팔이에 회사까지 다녀야

    강다복 부회장은 “사립대에 들어가면 등록금이 너무 부담이 되니까, 아들에게 ‘국립대에 들어가라’는 잔소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동안 제가 해준 것은 별로 없으면서”라며, 국립대에 입학하지 못해 군 입대를 선택한 아들에게 미안함을 나타냈다.

       
      ▲사진=손기영 기자 

    “쌀값은 폭락하고, 밥이라도 먹고 살려면 뼈 빠지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래서 자식들의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못 쓰고, 사교육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또 농촌지역 학부모들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자식들이 학비가 저렴한 국립대에 들어가길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촌지역 학생들이 모두 국립대에 들어갈 수 없지 않겠느냐. 저희 아들 역시 국립대에 지원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군 입대를 선택하고 요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를 지켜 봐야하는 부모는 어떻겠는가. 마음만 아플 뿐이다.”

    국립대 대신 군 입대 선택한 아들

    여성농민들은 “쌀값 폭락으로, 밤늦은 시간까지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대부분의 농촌지역 여성농민들은 농사일, 집안일, 마을의 일까지 챙기느냐 쉴 시간이 거의 없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역대 정부의 지속되는 반농업 정책에 농민들의 눈물과 저항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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