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고 없애면 사교육비 사라질까?
        2009년 10월 23일 03: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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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목고 논란이 뜨겁다. 한나라당이 특목고를 사교육비 문제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외국어고를 폐지하고 자율고로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오더니, 이젠 특성화고 전환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 국정감사에서 외국어고 문제를 질타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발언을 보도하는 MBC 뉴스 화면

    이에 대해 외국어고 측은 마녀사냥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맞는 말이다. 사교육비가 폭증한 것은 고교평준화가 깨지고 고교다양화가 되면서, 수요자 선택권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고교다양화와 수요자 선택권 확대는 현 정부의 기본 정책기조다. 그런 기조를 유지하면서 특목고 하나만 때려잡으므로 마녀사냥이 맞다.

    외국어고 측의 대응과 그에 대한 한나라당 측의 맞대응을 보면 재밌다. 외국어고는 사교육비의 원흉으로 지목되자 듣기 폐지, 내신강화, 심층면접, 계층균형선발, 입학사정관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레파토리 아닌가?

    듣기 폐지만 빼면 가히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로 이어지는 시대의 입시대책 축약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력고사 선발이 많은 문제를 일으키므로 면접 등 다양한 전형방법을 도입하고, 학교격차가 지나치므로 내신을 강화하고, 양극화가 심하므로 계층별 지역별 균형선발제도를 도입하고,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완전한 입시제도인 입학사정관제로 끝을 보자’는 게 그동안의 흐름이었다. 외국어고가 그것을 그대로 제시한 것이다.

    의외로 강경한 한나라당?

    여기에 대한 한나라당의 대응은? ‘웃기지 마라!’라고나 할까. 단호하게 쳐버렸다.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선발은 선발일 뿐, 선발 자체가 문제인데 선발방식을 바꾸는 게 무슨 소용이냐?’라고 하며 학생을 선발하지 않고 추첨하는 특성화고로 전환하겠다는 안을 제출한 것이다.

    선발 자체가 문제라는 걸 이렇게 잘 알면서, 왜 대입 문제로 가면 입학사정관제같은 선발 방식의 조정이 대안으로 나올까? 고입 사교육비 대책일 땐, ‘선발 방식 조정? 웃기지마!’ 대입 사교육비 대책일 땐, ‘선발 방식 조정, 딱 좋아.’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나?

    진정으로 선발 폐지가 사교육비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대입에까지 일관되게 적용해야 한다. 입시경쟁의 근본은 대입에 있다. 대입에서 선발하는 한 그 아래 단계에서 어떻게 조정하든 파탄은 변하지 않는다. 대입 선발구조와 고교다양화가 온존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외국어고 때리기는 마녀사냥 포퓰리즘에 불과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교육부총리였던 김진표 의원은 최근 특목고 폐지 논란에 대한 토론에서, 일반 공립고의 경쟁력 제고가 문제의 궁극적인 핵심이라고 했다. 공교육다양화를 통해 고교 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얘긴 몇몇 특목고가 문제이니, 아예 공교육 자체를 말살하자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고교가 경쟁력을 높여 일류학교가 되는 길은 일제고사라든가 학교정보공개를 통한 성적공개 때 타 학교보다 높은 석차를 확보하고, 일류대 입학자를 많이 배출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을 포기하고 학원처럼 입시교육만 해야 한다. 이렇기 때문에 자율학교, 특성화고 등의 명목으로 자율성을 주면 학교가 학원으로 변신한다. 이것을 일반 공교육 전체가 따라 하면 이 땅에서 교육이 사라지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참여정부 교육부총리가 아직도 하고 있다. 이러니 한나라당을 아무리 비난해도 옹색하기만 하다. 이명박 정부도 이런 사고방식을 공유한다. 그러므로 한편으론 선발제도 자체를 공격하면서도, 한편으론 고교다양화와 공교육정상화를 통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말로는 고교평준화가 좋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고교평준화를 해체하려고 했다. 자율적이고 다양한 학교들을 만들려 한 것이다. 고교다양화, 학교 경쟁력 제고를 통한 공교육 정상화라는 망상에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도 대학입시경쟁을 그대로 둔 상태에서 고교다양화, 학교 경쟁력 제고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망상을 계승하고 있다. 특목고 때리면서 개방형 자율학교 내세운 노무현 정부, 특목고 때리면서 자율고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 판박이다.

    다양화의 결과 고교 제도는 점점 복잡해지고, 고교 입시도 복잡해지고 있다. 이것은 모두 사교육비 상승 요인일 뿐이다. 특목고 하나 선발을 폐지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자율고, 자사고는 공교육비인 등록금마저 올리고 있다. 설사 진짜로 외국어고가 사라진다고 해도 자율고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구조는 언제든 새로운 악의 축을 만들어낼 것이다.

    복잡함을 버려야 한다. 다양화는 경쟁과 서열화를 낳고 교육을 파괴할 뿐이다. 이런 구조에선 추첨도 결국 왜곡된다. 공교육 정책은 ‘평준화’ 이 한 마디면 족하다. 공교육을 정상화, 다양화한다며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다 실패한 노무현 정부 사례에서 배워야 한다. 특성, 자립, 자율, 기숙 등 복잡한 단어들을 모두 폐기해야 한다. 평준화의 확립 이외엔 그 어떤 것도 헛발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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