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플루와 통치의 기술
        2009년 10월 21일 02: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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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러스가 신고의 대상이라고?

    예민한 사람이라면, 신조플루와 관련해 곳곳에 붙어 있는 표어와 구호에서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온통 국민 계몽운동이다. 서울 시내버스는 앞머리에 "신종플루 예방요령을 실천합시다. 손씻기 생활화. 기침․재채기는 반드시 가리고!"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달린다. 지하철에도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의 첫걸음 1830 손씻기"라는 포스터가 시선 둘 곳 없이 붙어 있다. 마치 포고문처럼 ‘신종인플루엔자 국민행동 요령’이라는 포스터는 얼마나 위압적인가.

       
      ▲ 신종플루 현수막을 걸고 운행중인 시내버스

    권위주의적 분위기를 물씬 자아내는 국가기구의 계몽운동이 우리를 위압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구호와 선전으로 정치 행위를 시각화하려는 관료주의적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통치를 위한 욕망’과 ‘국민에 대한 관리를 통해 정당성을 확장하려는 정치기구의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건물의 내벽과 화장실 등에 붙어 있는 "신종인플루엔자 예방수칙"이라는 것은 눈여겨 보자. 이 포스터는 구시대적 발상으로, 일종의 복고풍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내용이 "가리고, 버리고, 손씻고, 신고하고"이다. "신고하고"라니, 누구를 누구에게 신고한다는 것일까.

    이 ‘신고하기’라는 활자는 ‘간첩신고’ ‘좌경용공세력 신고’ 등에서 나온 발상이고, 국민총동원령과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했음을 상기시킨다. 지금은 전쟁 중이니 오직 대동단결뿐이라는 것일까.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공세 속에서 한국 사회는 휘둘리고 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전쟁 같은 분위기라고나 할까.

    ‘5만 명 사망설’을 흘려 공포를 조장하는 정부

    실제로 신종플루는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발병한다. 발열․콧물․인후통․기침 등과 같은 증상과 징후로만 발병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 곳곳에서 검문검색처럼 시행되었던 ‘발열검사’는 신종플루를 검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격리와 분별을 위한 예비조치로서 징후를 발견해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염에 대한 공포로 인해 한국사회는 온통 비상사태다. 그 비상사태의 양상이 분단국가인 남한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유포’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때로는 민방위 훈련의 실제상황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이러한 국가 시스템의 총동원은 ‘공포’에 대한 예방책의 외양을 띠고 있으면서, 동시에 ‘공포’를 조장한다는 측면에서 흥미롭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8월 20일에 ‘2009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대비 업무지속계획(BCP) 수립 매뉴얼’을 각 부처에 발송했다.

    이 매뉴얼에는 "중증의 신종인플루엔자 대유행시 우리나라에서만 1만(현재와 같은 병원성)~5만 명(높은 병원성 변화시)의 사망자, 750만(현재와 같은 병원성)~1200만 명(높은 병원성 변화시) 이상의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국가가 나서서 실현되지 않은 최악의 상태를 미리 유포한 셈이다.

    한편에서는 은근히 신종플루에 대한 더 많은 공포를 조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 시스템을 총동원해 그에 대응하는 계몽을 시각화한다. 그러면서도, 현 정치권력이 전염병과 같은 무질서를 통제할 수 있는 책임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여기에 교묘한 통치술이 있다.

       
      

    이 통치 메커니즘에는 보수언론도 거들고 나섰다. 신종플루와 관련해 <조선일보>의 보도태도는 가관이다. 인터넷 판을 통해 “신종플루 경보 盧정부 때 묵살” 등과 같은 선정적인 기사를 내보내는가 하면, “신종 전염병을 국가의 기반을 흔들 수 있는 주요 재난”임을 강조한다. 이는 전염병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강조한 것이며, 동시에 전염병을 통해 노무현 정권을 공격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에코데믹(Ecodemic), 눈 먼 공포를 넘어

    사실, 4월과 5월에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갔던 ‘신종플루’ 공포도 세계적 차원에서는 그 공포가 잦아드는 분위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신종 플루가 일반적인 독감 이상으로 위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국내에서도, 결핵의 사망률이 7.4% 수준이라면 신종플루 사망률은 0.07%라며 그 위험성이 과장되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사회에서는 공포가 증폭되는 양상이고 좀처럼 잦아들 기미가 없다.

    국가기구는 질병을 ‘사회적 무질서’와 비교해 통치를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한다. 정치권력은 ‘질병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려 한다.

    따라서, 신종플루와 관련된 권위주의적이면서도 관료주의적인 계몽행위도 일종의 ‘통치 행위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중의 집단공포를 이용해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이 공포의 와중에서 독감접종 후 사망자가 7명이나 발생했다. 현재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는 20명이다.(10월 20일 현재)

    주제 사마구라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의사의 아내’의 목소리를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과연 공포라는 가림막으로 인해 우리들이 못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혹시 신종 플루가 발생한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 없이, 무조건 신종플루를 적대시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자연과의 전투를 통해서만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인간의 오만일 수 있다. 게다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는 더 큰 오만이다. 몇몇 전문가들은 매년 새로운 형태의 인간 질병이 발생하는 원인을 ‘자연계의 균형’에서 찾는다. 그래서 ‘에코데믹(Ecodemic, 생태병, 환경전염병)이라는 신조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 폭력적이었던 것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을 정치적 통치의 기술로만 활용하려는 오만한 권력이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전염병은 단지 질병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전염병도 통제의 대상이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확인하게 하는 계기적 사건으로 성찰할 수 있다.

    진정 위험한 것은 전염병을 상징화해,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누추한 현세주의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등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인간 질병을 똑바로 응시함으로써, 자연계의 균형 안에서만 인간의 생명이 영위될 수 있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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