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노무현만 빼고 애국선열 묵념,
    도시락 남았으니 사무실로 오세요”
    By mywank
        2009년 10월 20일 07: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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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1시 종로 종묘공원 한편에 군가가 울려 퍼지자 삼삼오오 모여 있던 노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해졌다. 이들이 향한 곳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어버이연합)이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공원에서 진행하는 ‘안보강연회’ 현장이었다.

    낯익은 노인들

    이곳에서는 지난 19일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서 만났던 낮익은 노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개인 자격으로 왔다”고 주장했던 한 노인은 기자와 마주치더니 “자네가 여기에 무슨 일로…”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의 상의 한쪽에는 어버이연합 배지가 달려있었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안보강연’.(사진=손기영 기자) 

    그는 안보강연회에 참석하기 전, 공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어버이연합 사무실을 찾는다고 했다. 그곳에 가면 공짜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부터 종로구 측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좋지 않는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공원에서 무료급식을 금지시켰다.

    어버이연합 회원이 아니라고 밝힌 한 노인은 "공원에 있으면 무료할 때가 많은데, 가끔 강연회에 가면 ‘옛날 추억’도 떠올릴 수도 있고, (그 전에) 점심 식사도 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결국 공원에 있는 노인들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자연스레 사무실을 찾으며 어버이연합과 인연을 맺고 있었다. 또 신분증과 증명사진이 있는 노인은 무료로 회원 등록이 가능했다. 이들에게 나눠주는 도시락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인 박찬성 목사를 통해 제공받고 있다고 어버이연합 측은 전했다. 그는 올해 초 어버이연합 공동대표를 맡기 전에도 이 단체에 대한 지원을 해왔다.

    ‘공짜’가 아닌 무료 도시락

    현장에서 만난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박 목사가 예전부터 조금씩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셨다. 하지만 요즘은 그쪽도 형편이 어려운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분들도 어버이연합을 지원해주나"고 묻자, 그는 “박목사가 주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고 답했다.

    어버이연합은 지난 2006년 만들어진 단체로, ‘좌파세력 척결’을 표방하며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퇴진 △정연주 전 KBS 사장 및 엄기영 MBC 사장 퇴진 시위 등을 벌여왔다. 재정은 대부분 형편이 넉넉한 일부 회원들이 내는 ‘자발적인’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강연회에 참석한 노인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어버이연합 측은 지난 19일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서 소란을 부린 쪽이 자신들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추 총장은 "그날 오전 사무실에서 단체 지부장들과 회의를 한 뒤, 안보강연회 도중 지부장들의 인솔 하에 일부 노인들이 공원을 빠져나와 행사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어버이연합은 강연회를 안보연설 뿐만 아니라, 노인들에게 ‘집단행동’을 권유하는 자리로 활용하는 듯했다. 이날도 이들은 “다음 주 중 국립묘지를 찾자”며 노인들에게 공지한 뒤, “안 가실 분들은 손을 들어 달라”며 인원 체크까지 했다. 300~400백 명의 참석자 중 손을 든 이는 2명. 이들은 앞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이장을 요구하며, 국립현충원 앞에서 소란을 부린 전력이 있다.

    “15대 16대(대통령)만 빼고, 우리 애국선열을 위해 묵념”

    오후 1시 20분경, 두 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담긴 국민의례로 시작된 이날 강연회의 화두는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서 벌어진 ‘거사’였다. 사회를 맡은 추선희 사무총장은 노인들을 향해 “어제 뒤에서 ‘농땡이(요령)’ 부리신 분들은 각성하라”, “어제 큰 일했다고 영웅심리에 빠지면 안 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어제 농땡이 부린 분들 각성하세요"

    소란의 주인공들이 ‘무용담’을 나누며 한껏 고무돼 있는 상황에서 추 총장의 ‘꾸지람’은 노인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특히 앞에 앉아 있는 자신들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손자병법’을 들먹이며 훈계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불만의 웅성거림이 터져나왔다.

    상황을 읽은 추 총장은 곧바로 화제를 바꿔 주변 지인의 6.25전쟁 참전 무용담 이야기, 얼마 전 한 공중파방송에서 방영된 ‘해외 고려장’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여러분은 나라를 위해 6.25 전쟁에 나섰고, 황무지에서 포도밭을 일구신 분”이라며 노인들을 추켜세웠다.

       
      ▲박찬성 목사가  ‘희망과 대안’ 사태를 보도한 20일자 조간신문을 들고, 열변을 토하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잠시 뒤 강연회장을 찾은 박찬성 목사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 그의 손에는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서 소란을 부린 노인들의 모습이 실린 조간신문이 들려져 있었다. 옆에 있던 기자에게 “요즘 언론들이 너무 악의적이야”라고 말하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박 목사는 매주 수요일 안보강연회에 연사로 나서고 있지만, ‘희망과 대안’ 창립식에 참석했던 노인들을 ‘치하’하기 위해 특별히 이날 강연회장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여러분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떳떳했다. 여러분들은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외치자, 노인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어버이연합회원은 행동하는 양심?

    박 목사는 ‘희망과 대안’에 대해 반감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정치를 하려면 민주당이나 민노당, 진보신당에 들어가면 되지, 왜 시민단체의 탈을 쓰고 있느냐”며 “어제 국민의례를 하기 싫으니까 도망간 것 아니냐”며 막말을 쏟아냈다. 그가 ‘희망과 대안’ 참여인사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하자, 노인들의 욕설이 쏟아졌다.  

    이날 안보강연회는 “좌파세력 척결위해 뭉치자, 싸우자, 이기자”라는 사회자의 구호에 따라, 노인들의 만세삼창으로 마무리되었다. 강연회를 자축하는 박수 소리도 잠시, 황급히 자리를 빠져나가는 노인들을 향해 사회자는 외쳤다.

    “저기 도시락이 남았으니까 사무실로 오세요.”

       
      ▲사진=손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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