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의 질주엔 브레이크가 없다
        2009년 10월 20일 04: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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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탄이나 석유에 비교했을 때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원자력이 녹색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원자력은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발전소 건설과정, 우라늄 생산과 이동, 그리고 발전과 폐기 등 전체 주기에서 발생하거나 발생할 수 있는 파괴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결코 녹색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는 기후변화 위기를 핑계 삼아, 원자력을 녹색으로 분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2008년 6월 4일 정부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밝히는 공개토론회에서, 고유가 대책으로 해외 에너지 개발률을 높이는 한편, 2030년까지 기존의 운영․건설․계획 중인 28기의 원자력발전소 이외에 추가로 9~13기를 더 짓겠다고 밝혔다.

    고유가 대책이 ‘원전’이라는 말은 정부의 의도적인 거짓말이다. 원자력발전소는 전기만을 생산하는 발전소이고, 우리나라 발전부문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3.5%밖에 안 된다. 비싼 석유를 원료로 하는 석유발전소는 전력피크 시기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가를 이유로 원전을 증설하자는 주장은 국민을 현혹시키는 말에 불과하다.

    원전을 추가 건설하겠다는 것은 그만큼의 새로운 원전 부지를 선정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부안과 경주 등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선정과정과는 비교가 안 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감수하겠다는 일종의 대국민 ‘선전포고’와 다를 바 없다.

    고유가에 대비하자며 나 혹은 나의 친지와 동료가 생활하는 인근에 고유가와 상관없는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선포한 것이다. 고유가에 따른 위기감에 편승한 정부의 일방통행, 혹은 ‘여론 맛보기’는 위험수위를 넘었다.

    한편,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에 원전을 수출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 수장의 발언은 심히 우려가 된다. 전기가 부족한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은 상호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이미 바이오 연료의 원료인 팜 플랜테이션으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환경이 파괴되고, 생존권이 박탈되고 있다. 더구나 인도네시아는 산유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석유자본에 포섭되어 원주민은 에너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그곳에 한국형 원자력발전소 건설로 또 다른 사회적 갈등을 안겨주려고 하는지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진다.

    원자력 발전소 12기 증설로 저탄소 녹색사회 만든다고?

    이명박 정부 에너지정책의 핵심은 ‘원자력’과 ‘해외자원개발(자주개발)’로 압축할 수 있다. 자주개발은 다음에 다루도록 하고, 원자력 정책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이명박 정부 들어 네 개의 주요한 에너지 비전을 발표하였는데, 정책의 핵심을 관통하는 것은 역시 원자력발전소 추가 증설과 중장기적으로 소비 전력의 60% 이상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먼저, 지난 2008년 8월 ‘국가에너지기본계획(2008~2030)’을 발표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총에너지 중 2030년까지 원자력 설비를 전체 에너지 설비 중 41%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최종에너지 기준으로 환산하면 60%에 육박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전력의 대부분을 원자력에 의존하는 구조로 재편된다.

       
      

    둘째, ‘기후변화대응종합기본계획’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발표 이후 1개월의 격차를 두고 발표됐고, 정책의 상당부분이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의 틀에 머물러 있다. 에너지 효율화 문제를 제외하면 ‘기후변화대응종합기본계획’ 상의 에너지 관련 대책은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획기적으로 개선(2006년 2.24% → 2030년 11%)”하겠다는 것과 “원자력 설비비중은 2007년 26%에서 2030년까지 41%로 확대(발전비중은 59%)”하겠다는 내용이 전부인데, 이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동일하다.

    셋째, 2008년 12월에 발표된 ‘제4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08~2022)’은 국내 총 전력소비량이 연평균 2.1% 증가하여 2022년에 5,001억kWh(’08년의 1.4배)로 전망하고, 원자력발전소 12기, 석탄 7기, LNG 11기 등을 추가 건설할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2년 원자력의 설비비중은 33%, 발전비중은 47.9%로 2008년의 24.8%, 34%보다 대폭 상승한다.

    넷째, 2009년 7월 발표된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5개년 계획’은 기존 계획들을 구체화시켜 단기적으로 어떤 정책들을 어떤 우선순위로 추진할 것인지를 발표한 것인데, "2020년까지 세계 7대, 2050년까지 세계 5대 녹색강국 진입"을 목표로 세워진 구체 정책 전략이다. 정부는 3대 전략 10대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10대 정책방향 중 두 번째가 ‘탈석유·에너지자립 강화’이고, 2050년까지 원자력 발전설비 비중을 41% 이상 늘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2030년 경 40여 기의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세계 최대의 핵 발전 밀집단지가 될 것이다. 핵 발전 밀집도는 사고의 위험성과 국가의 핵 발전 친밀도를 생각할 때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이다. 현재 1위의 밀집도를 갖고 있는 벨기에나 3위의 밀집도를 갖고 있는 대만은 모두 경상도만한 면적에 각각 7기와 6기의 핵발전소가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국가 전체면적으로 계산할 때 한국은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2030년경 2위와 상당한 차이를 두는 1위가 될 것이다. 핵 발전은 사고 위험성과 파급력 이외에도 온배수나 대규모 송전탑 등 황경적 문제, 핵 발전 단지 건설로 인한 지역공동체 해체와 사회적 수용성 문제, 전력생산과 소비의 부정의 문제 등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다.

    원자력 르네상스의 그늘

    국가의 예산이 수립․집행되는 과정을 보면 정부정책이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에너지 및 자원개발 부문 예산을 총괄 정리한 [표 3]을 보면, 우리나라 에너지 자원분야 예산의 66.5%는 화석에너지에 집중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태양광․풍력․바이오 등 11개의 신재생에너지 분야 예산은 전체의 5.6%에 불과하다. 국가 예산이 집행되는 추이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정부가 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원자력 분야를 중심으로 보면, 정부는 원자력진흥종합계획(1997~2006)에 따라 총 2조3천855억 원을 원자력 연구개발비로 조성했다. 매년 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기관 또는 단체와 협약을 맺어 연구했다. 이는 우리나라 1년 국가 연구개발(R&D) 투자총액의 1/3에 달한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자력의 연구개발비를 비교한 것이 [표 4]이다. 그 격차가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연구개발비에서 연평균 11배 차이가 난다. 신재생에너지는 11개 분야이므로, 단일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개발비로는 원자력과 재생가능에너지의 R&D는 무려 120배 이상 차이가 나는 셈이다.

       
      

    정부는 태양과 바람, 그리고 바이오 등 재생가능에너지보다 원자력이 미래에너지로서 120배 이상의 정책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일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비는 정부-기업-학계의 이해관계 사슬 망, 즉 ‘원자력카르텔’을 재생산하는 물적 기반이 되고 있다.

    게다가 정부는 원자력 핵융합에너지 분야를 강조하면서 막대한 예산을 투자할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원자력에 대한 연구개발투자 비중이 크게 낮아질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국제핵융합로(ITER)사0업에는 2015년까지 1조5천억 원(연구개발비 이외의 비용까지 포함)을 투자할 계획이다. 또한 차세대 초전도 핵융합 연구 장치(K-STAR) 운영, 한국형 핵융합발전소 건설 등의 국가핵융합에너지개발 기본계획에 따라 2035년까지 4조7천억 원을 투자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원자력은 지속가능한 기후변화 대응책인가?

    윤순진 교수는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과 부합되는 에너지를 “산업화의 주요한 동력으로서 경제적 효율성을 충족시키는 외에도 고갈가능성으로부터 자유롭고, 환경 친화적이어서 지구의 부양능력 안에서 공급․소비되어야 하며, 에너지이용의 편익과 비용이 세대 간에 그리고 세대 내에서 고르게 배분될 수 있는 에너지”라고 정의한다.

    또한 사회계층별, 지역별, 연령별, 세대별로 에너지 이용에 따른 비용과 편익의 배분문제는 “에너지에 대한 통제력을 누가 행사하고, 에너지정책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 사회․정치적 지속가능성의 문제”와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먼저, 원자력발전의 원료인 우라늄은 석유와 같이 금세기 안에 고갈이 예상되는 한정자원임이 분명하다. 또한 실적 기준 발전원가로서는 경제성이 높으나 폐로 비용과 방사성 핵 쓰레기 처리비용을 포함하는 전주기(全週期) 비용 측면에서는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환경적 측면에서 국내 발전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이 거의 없지만, 전 지구적 차원에서는 전주기에 걸쳐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므로 효과적인 대응전략으로 부적절하며, 방사능 누출 위험으로 기후변화에 버금가는 생태적 부담이 내재해 있다.

    중장기적으로 피크오일과 에너지 확보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 가속화에 따른 우라늄의 공급안정성이나 가격안정성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위험부담이 크고, 시민참여를 배제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으로 유지되어 오던 원전 정책이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통해 채택될 가능성이 미약하다.

    아울러 원자력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의 확산과 원자력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로 자기 지역 내 원전시설 입지에 대한 저항 등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전력생산지와 소비지의 이원화로 원자력발전에 따른 편익과 비용의 차별적 배분 등 원전의 집중화로 환경 불평등(부정의)은 심화된다.

    결론적으로 원자력은 경제․환경․정치․사회적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아니고, 기후변화 대응책으로 포장할 수 없다. 저탄소 녹색사회를 위해 원자력발전 중심체계로 전환하자는 것은 ‘자전거도로 확보를 위해 두물머리 유기농단지를 갈아 없애는 정책’ 등 비상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악질적인 삽질 정책 중 4대강 정비사업과 함께 대표 삽질로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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