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진화의 전제 조건들
        2009년 10월 19일 11:0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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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며칠간 러시아어 <한국통사>를 출판준비하느라 거의 잠을 설치고 독서도 못할 지경입니다. 거의 10년 간 작업해서 만든 교과서인데, 이제 노태우 말기까지 조명하는 강만길 선생님의 <고쳐쓴 한국현대사>의 러문 번역본을 합쳐서 한국사의 일반을 다 커버하는 완성판을 내게 된 것입니다.

    인과관계  복원 불가능

    이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가꾸면서 자꾸 드는 생각인데, 역사에서는 사건의 복원까지 하기는 쉬운데 인과 관계의 복원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실생활에서 인과관계가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죠. 하도 다선이다 보니 이를 간단하게 몇 마디의 설명으로는 도저히 정리를 못 합니다.

       
      ▲ 필자

    예컨대 같은 반공 전선 국가인 한국, 대만, 싱가폴인데 그 세 나라에서 1970~80년대의 민주화운동은 너무나 서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싱가폴에서는 비교적으로 미미한 일부 지식인/직업적 운동가 움직임 정도고 대만에서는 외성인에 대한 본성인의 ‘민족해방운동’, ‘대만독립운동’과 같은 모습으로 많이 기울여지고 남한에서는 아주 보기 드물게 정치적으로 급진화되어 1980년대에 반공주의 진영의 동아시아에서 마르크스주의를 가장 폭넓게 수용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물론 예컨대 잠재적인 비판자들의 출국을 가능케 하는 비교적으로 개방적인 국가인 싱가폴, 대만과 출입국을 동유럽 못지 않게 심하게 관리했던 1987년 이전의 한국의 ‘군사화의 정도’부터 시작하여 한국의 대기업 위주 공업화가 가져다준 노동 집중의 효과 등까지 거론할 수 있는데, 완벽한 설명은 되지 못합니다.

    아니면, 이와 같은 대조는 어떤가요? 우리는 보통 통념적으로 ‘상대적 궁핍화’가 다수의 급진화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상 그게 정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가 ‘궁핍화’시대였나요? 삼저호황, 지속적 고성장, 반도체 진출, 야간 통금 철폐 등 일상의 부분적 탈군사화, 그리고 선정적인 대중문화의 전성기 시대이었습니다.

    중산계급에는 물론 못미쳤지만 노동자의 실질소득은 사실상 소폭으로 오르고 있었으며, 빈곤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젊은 지식인, 노동자의 계속적 급진화는 결국 1987~88년의 대승리 – 정치적 민주화와 민주노조의 탄생을 가져다줄 수 있었죠.

    성장 시대의 급진화, 빈곤 시대의 보수화

    반대로는 1998~2008년의 시대는 말 그대로 ‘점차적 궁핍화’의 시대를 맞았습니다. 상대적 도심인구 빈곤율은 1990년대 중반의 7%에서 지금의 15%로 껑충 오르고,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상율은 물가 인상율보다 2배나 돼 학생들을 ‘안정적 고용의 전망이 전무한 빚쟁이’로 만들고, 성장세의 지속적 둔화 속에서 근로자 다수가 비정규화됐고…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부동산 가격의 거품인데, 그것까지 꺼지면 대다수의 전체적 빈곤화를 중산층까지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상대적 빈곤화의 시대가 정치적으로 낳은 게 무엇인가요? 노동운동의 침체(대체로 수세적 자세), 노조의 고립화, 진보정당 운동의 답보상태 (민노, 진보신당을 합쳐도 전체 지지율은 10~12%의 한계를 절대 못넘죠), 그리고 40~50%의 지지를 받는다는 ‘괴물적인’ 극우정권의 안정화입니다.

    미래를 빼앗기고 현재에서 하루 하루 힘겹게 ‘쩐의 전쟁’을 치루고 있어야 할, 그 부모만큼 잘 살 확률이 없는 ’88만원의 시대’는 꼭 "보수화됐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시적으로 진보화돼가는 조짐은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 정치에서는 진보성의 부족은 벌써 기존 현실의 암묵적 지지, 즉 보수성을 의미하죠.

    성장 시대의 급진화, 그리고 빈곤화 시대의 보수화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일단 잠정적인 답은, 경제적 추세와 정치적 상황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작동한다기보다는 사회 조직 내지 이데올로기와 같은 중간기제를 통해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회 조직과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는 급진화의 전제 조건은 대체로 다음과 같습니다:

    반체제 이데올로기 확산이 중요성

    1. 피지배층의 전위(예컨대 상대적인 박탈감이 강할 수 있는 ’88만원 세대’ 등)의 상황과 취향에 맞은, 호소력이 강한 반체제 이데올로기의 확산입니다. 이데올로기라는 ‘풀’이 없으면 원자화된 개개인들은 서로서로에게 ‘붙여지지’ 않아요.

    1980년대에는 학교, 군대에서 집단규율에의 복종을 철저하게 익힌 아이들에게는 이와 같은 동원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조직과 리더에게의 복종을 가르쳐주는 스탈린주의라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오늘날처럼 이미 상당부분 탈군사화된 한국사회에서는 높은 규율성을 요구하는 1980년대식 운동이데올로기는 웃음거리 이상 되기가 힘들 것입니다.

    사회가 강요하는 ‘일 중독’이나 저질 대중문화, 일차원적인 행동양식(‘출세를 위한 총력전’, 시간과 정력의 소비를 ‘투자’로 개념화하여 ‘전략적으로만’ 움직이는 타산적인 생활양태 등)에 지칠대로 지친 ’88만원 세대’에는 차라리 계급성의 논리와 인간성 회복의 논리를 연결시킨 신좌파 – 마르쿠제, 프롬부터 홀거 하이테 류까지 -가 더 호소력이 있겠지만 레닌주의의 ‘파생상품’ (전형적 스탈린주의부터 트로츠키주의까지)들은 이미 한국화돼 어느 정도 수용돼도, 신좌파는 소개만 됐지 제대로 토착화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결국 새로운 혁명의 수단은 체제전복은 돼도 그 궁극적 목적은 일에, 가정에, 돈에 갇힌 인간의 다차원적인 ‘해방’은 될 터인데, 이와 같은 ‘인간성 해방 혁명’을 위한 이론은 아직도 국내에서 정형화, 대중화되지 못하고 있어요. 이진경 선생 같은 분들은 바로 이와 같은 ‘신혁명 이론’에 근접하시고 계시지만, 너무나 계급적 명확성이나 계급운동과의 관계를 잃어서 문제입니다.

    88만원 세대의 급진화

    2. 대규모 조직이 현실적으로 지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목표는 필요합니다. 1980년대는 이론적으로 백가쟁명의 찬란한 시대이었지만 다들 "독재 타도, 민주화, 노조 자율화" 정도의 최소강령을 그나마 공유했기에 운동 전반은 탄력을 받을 수 있었죠.

    지금 운동의 ‘병목 현상’을 타파하자면 그 전선에 있는 수많은 단체, 집단들은 – 거기에서는 좌파민족주의자부터 불교적 환경생태론자까지 온갖 분들이 다 계시겠지만 – 적어도 몇 가지의 간단한, 그리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최소한의 공동 강령’ 정도 제정, 보급하는 것은 좋을 듯합니다.

    예컨대 "사유제한으로 비정규직 양산을 막고, 기업세, 고소득자 소득세를 대폭 올려 교육, 의료 무상화 달성하자" 아니면 "직장 안정화, 분배 정의"라고 아주 간단히 하든지요. 이게 우리의 당면 목표라는 절실한 의식이 대중화된다면 다음에 진보정치는 그나마 소수의 섹트 정치에서 대중 정치로 발전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행동보단 말이 쉬운 것입니다.

    위와 같은 전제 조건이 충족된다면 ’88만원 세대의 급진화’를 상상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운동 전선’은 1980년대의 유산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해 ’88만원 세대’와 동등하게 대화할 줄 계속 모른다면 앞으로의 젊은층의 점차적 빈곤화는 급진화가 아닌 극우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극우화라는 것도 일종의 급진화입니다. 우파적 의미의 급진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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