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문턱’ 낮추면 이란핵 풀 수 있다
    2009년 10월 19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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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보유도, 브라질이 핵연료 주기를 갖추는 것도 원하지 않았지만, 파키스탄은 핵무기를 손에 넣었고 브라질도 핵연료 주기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 세계는 이들 나라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중략) 우리의 문제는 어느 것도 아직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제 그 문턱에 서 있다. 핵무기 제조와 관련해 우리는 결코 그 길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핵연료 주기도 완성하지 못했다.”

   
  ▲ 하산 로완니

이란의 핵협상 대표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수장을 역임한 하산 로완니(Hassan Rowhani)가 2004년에 한 위의 발언이 새삼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발언 속에 이란의 목표와 핵문제 해법이 담겨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이란이 원하는 것은 핵무장이 아니라 핵연료 주기 완성을 통한 핵무기 개발 잠재력을 보유하고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하는 데 있다는 분석에 있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즈는 10월 14일자 기사에서 “로완니의 연설은 이란의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전술적인 이견은 존재하지만, 최종 목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리 알리 하메이니는 2005년에 핵무기 생산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란 문제 전문가인 주안 코일(Juan Cole)은 “이란의 목표는 핵 잠재력(nuclear latency)” 확보에 있다고 지적한다.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은 보유하면서도 핵무기를 만들지는 않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그는 “핵 잠재력 확보는 핵무장에 따른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실제 핵보유보다 이점이 많다”고 주장했다.

타협 내비치는 이란, 곤혹스러운 미국

이러한 분석을 바탕으로, 최근 이란 핵문제의 여러 전문가들은 미국이 문턱을 낮추면 이란 핵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란의 목표가 핵무장 자체가 아니라 핵연료 주기 달성이라면, 협상의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타협의 접점은 미국의 로비단체인 재미이란동포위원회 회장인 트리타 파시(Trita Parsi)의 제안 속에 담겨 있다. 그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이란의 목표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이고, 미국의 목표가 이란에 핵무기가 없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면, 윈-윈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불허’라는 비현실적인 목표를 거두고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모니터링과 검증 체제 강화를 선택한다면, 이란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이란은 타협안을 내비치고 있다. 이란은 10월 초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P5+1’(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과의 회담에서 두 가지 양보조치를 제안했다. 하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핵 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권한 강화에 동의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란이 자체적으로 저농축한 우라늄 연료를 러시아로 보내면, 러시아가 이를 추가적으로 농축해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란의 이러한 제안은 절묘하기까지 하다. IAEA의 역할 증대는 이란 핵 프로그램의 투명성을 증진시킨다는 점에서 이란의 의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러시아에서 2차로 농축한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제안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핵무기 제조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를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란은 이 두 가지 양보 조치를 통해 핵심적인 목표, 즉 자체적인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보유는 수호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공은 워싱턴으로 넘겼다.

이란의 제안 이후 국제사회에서 대이란 제재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눈에 띠게 줄었다. 이에 고무된 하메이니는 “이란의 일괄타결안에 힘입어 농축 중단이나 제재 주장은 사라지고 이란의 제안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이를 “이란의 승리”라고 주장했다.

이란을 궁지에 몰다가 궁지에 몰린 미국

실제로 이란의 제안 이후 국제사회의 분위기는 확 바뀌었다. ‘대화와 제재’라는 투 트랙 접근을 고수해온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유엔 안보리 회의를 직접 주재하는 등 적극적이 외교에 나서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의 군불지피기에 성공하는 듯 했다. 이란 제재의 열쇠를 쥔 러시아와 중국이 고려해볼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월 들어 분위기는 미국의 ‘짝사랑’으로 끝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러시아의 실세인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는 10월 12일 “이란 제재 논의는 성급하다”고 말했고, 이틀 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도 협상 진행 중에 제재 논의는 “비생산적”이라고 못 박았다. 또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도 이란의 레자 라히미 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양국은 에너지 협력과 무역을 증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해, 미국의 추가적인 대이란 제재 외교에 찬물을 끼얹었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자 이란의 핵심적인 에너지·무역 교역국들인 러시아와 중국이 추가 제재 반대 노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대화와 제재’라는 오바마의 투 트랙 접근은 근본적인 장애물을 만나게 된 셈이다.

오바마,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이제 관심의 초점은 오바마의 선택으로 모아진다. 이란의 제안을 일부 수용하면서 현실 가능한 해법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불허’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핵확산금지조약(NPT)과 IAEA 회원국이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비롯한 핵연료 주기 보유를 막을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추가 제재를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엔 안보리의 압박과 제재를 통한 문제 해결도 현실적인 힘을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이란 핵시설 공격은 ‘지옥의 문’을 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점에서 오바마의 현실적인 선택이 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인 해법은 이란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보유는 인정하면서 강력한 감시와 검증체제를 구축해 이것이 핵무기 개발용으로 전용되는 것을 차단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데 있다. 검증체제 강화 차원에서 이란에게 IAEA 추가의정서의 비준을 요구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참고로 이란은 IAEA 추가의정서에 서명은 했지만, 아직 비준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가 이러한 방안을 수용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 위험부담이 대단히 크다.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불허’는 부시뿐만 아니라 오바마의 공약 사항이다. 무엇보다도 저농축하면 핵연료로, 고농축하면 핵무기 재료를 만들 수 있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대표적인 이중용도 기술이다. 미국 강경파들이 이란에게 이러한 잠재력을 남기는 타협안을 가만둘 리 만무한 것이다.

이는 오바마가 이란의 제안에 기초한 타협안을 추진하면 미국 내에서 엄청난 후폭풍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스라엘 로비단체의 반격도 거셀 것이다. 이란 핵문제 해결의 현실적 필요는 날로 커지고 있는 반면에, 내년 의회의 중간선거와 2012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의 고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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