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 저항하였으므로 유죄”
        2009년 10월 15일 10: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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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C 71년 로마 집정관 크라수스는 아피아 대로 위에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이끌던 노예군대 6천 명을 모조리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다. 2년 동안 무적의 로마군단을 조롱하면서 로마의 귀족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전설을 지워버리기 위한 응징이었다.

    지금 평택에서는 77일 동안 공장점거파업으로 이명박 정권과 기업주들의 간담을 서늘케 만든 쌍용차 파업에 대한 ‘사법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과 사법부는 ‘점거파업’과 ‘연대’라는 두 단어를 노동자들의 머리 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리려 한다.

    쌍용차 점거파업에 참여했거나 연대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78명이 구속되었다. 경찰의 소환장 발부와 연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검·경의 피도 눈물도 없는 수사는 경찰특공대의 살인적인 진압작전에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있는 노동자들까지 잡아들이고 있다. 8월 5일, 특공대의 토끼몰이 때문에 공장옥상에서 떨어져 척추가 부러진 조합원까지 포함돼 있다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 쌍용차 노사 합의가 이뤄진 후 열린 결의 대회에서 한상균 지부장이 조합원들과 일일이 악수한 후 떠나는 조합원과 포옹을 하고 있다 (사진=노동과세계)

    한편 지난 10월 6일, 쌍용차 파업에 연대하면서 구속노동자들을 옥바라지 해왔던 구속노동자후원회 강성철 인권팀장이 구속되었다. 이런 경우는 구속노동자후원회가 15년 동안 활동해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파업 지지자까지 구속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이렇게 혹독한 탄압을 받고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너무나 잘 싸웠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중요한 과제”라며 공기업에서부터 민간 기업에 이르기까지 일사천리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려던 이명박 정권의 계획은 쌍용차 점거파업이라는 강력한 복병을 만났다.

    정부와 사측은 온갖 야만적인 인권유린과 술수를 동원해서 77일 만에 파업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끌어내긴 했지만,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쌍용차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고, 무엇보다 전무후무한 77일의 옥쇄파업은 다른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무하고 있다.

    구속은 오로지 ‘원활한 재판진행’을 위해 ‘도주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는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사법절차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전 형벌’처럼 남발되면서 엄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몇 개월만 감옥에 갇혀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구속되자마자 ‘범법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쓰는 것은 물론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거나 가장이 구속되면 한 가족의 생계가 파탄난다.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은 구속되기 6개월 전부터 월급을 받지 못해 생계가 파탄 난 상태였다.

    만일 이처럼 무시무시한 구속 제도를 범죄라고도 볼 수 없는 노동자, 서민들의 정당한 기본권 행사를 탄압하는 데 악용한다면, 인권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스스로 인권파괴행위를 자행하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유죄의 이유는… 혐의 사실 부정

    쌍용차 파업 사건을 재판하고 있는 법원은 최근 구속된 노동자들에게 잇달아 중형을 선고하고 있다. 판사들의 논리는 하나 같이 “혐의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니 너는 유죄”라는 식이다. 헌법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규정되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저들이다. 그런데 쌍용차 재판에서는 시치미를 뚝 딴 채,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면서 쌍용차노조 간부들과 연대단체 활동가들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1년 이상의 실형을 남발하고 있다.

    법 상식으론 ‘열심히 땀 흘려 일할 테니 일자리를 보장해 달라’고 하는 요구가, 인권침해를 저지른 경찰에게 항의하는 것이 유죄일 리 없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쌍용차 재판’은 너무나 정치적이어서 유·무죄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사법부는 2천여 년 전 크라수스가 로마 귀족들을 위해 했던 것처럼, 이명박 정권과 기업주들을 위해 냉혹하게 노동자들의 기억까지 응징하려 한다. 하지만 악랄한 응징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쿠스의 전설은 끊임없이 되살아나면서 로마제국의 몰락을 재촉했다. 착취와 억압의 조건이 사라지지 않는 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77일 동안 버텨냈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불굴의 투쟁정신은 그리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죽음 앞에서도 “내가 스파르타쿠스”라고 외치며 십자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던 그 옛날의 검투사들처럼, 공안탄압에 피 흘리는 쌍용차 노동자들과 어깨를 마주잡고 “내가 쌍용차 파업노동자”라고 외치며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들의 연대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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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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