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주의 적 MB 아니라 야당들”
        2009년 10월 15일 10:3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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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들이 전체 의석의 2/3에 달하는 의석을 차지했다. 이들은 자신있게 소수의 경제적 강자들을 위한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실시하고, 자신들의 통치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경찰력, 인사권을 통해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발한 야당과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이들을 과거 독재시절로 회귀하려는 권위주의정권=민주주의의 적으로 규정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며 광범위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진정한 적은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아니라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을 비롯한 야당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나, 대동단결적 구호, 이명박 정권에 대한 악마화는 이명박 정권을 약화시키기는커녕 강화시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어느 여론조사에서나 안정적으로 50%를 넘기고 있다. 더 이상 여론조사 기관의 친정부성, 여론조사의 신뢰도를 문제 삼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계속된 폄하는 시민들에게 이들에 대한 기대수준을 낮춰 오히려 작은 변화에도 시민들이 지지를 보낼 수 있다는 최장집의 진단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더욱 심각한 점은 야당들이 단순히 이명박 정권을 강화시키는 수준에서 그치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민주주의를 압살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가장 간명하게 정의할 때 ‘야당이 집권할 수 있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야당이 집권당의 비전, 정책들에 대응해 대안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시민들의 동의를 얻어 집권할 수 있을 때 건전한 민주주의의 원동력인 정당 간 경쟁이 시작된다.

    이제 정당들은 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해 시민들의 이해에 부합하는 정책들을 내놓기 위해 경쟁한다. 만약 정당 간 경쟁이 없다면, 집권당은 시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책들을 추구하는 대신에 자신들에게 이해를 제공하는 권력집단들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집권여당과 집권능력을 상실한 야당들만이 존재하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다수의 지배의 이상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죽은 민주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볼 때 이명박 정권을 비판하는 데에서만 자신들의 존재의의를 찾다가 정작 자신들을 쇄신하지 못해 집권능력을 영원히 상실해가는 야당의 문제는, 야당의 자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운영체계인 민주주의 전체를 질식시켜버리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김제동의 하차는 야당들의 책임? – 민주주의의 적은 야당이다

    여기에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김제동, 손석희 하차, 진중권 해임 등으로 대표되는 정권의 민주주의 압살을 거꾸로 해석할 수 있다.

    흔한 해석은 독재체제로 회귀하려는 집권세력이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영속화하기 위해서 김제동, 손석희, 진중권, 황지우 등 을 쫓아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 논리관계는 전도되어 있다.

    집권세력의 압력에 의해서 비판적 방송인, 지식인들이 쫓겨났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들은 민주주의를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민주주의가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비판자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이들의 자리를 챙겨줄 수 있었던 것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는 비판적 지식인, 방송인인 김제동, 손석희, 진중권을 쫓아내도, 결코 야당들이 이에 대한 비판여론을 흡수해서 자신들의 차기 집권을 위협할 능력이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정권은 이들을 각자의 자리에서 폭력적으로 추방할 수 있는 것이다.

    김제동의 스타골든벨 하차 소식이 전해지자, 야당들은 모두 앞다투어 이를 정권의 탄압이라며 민주주의의 회복을 부르짖었다. 허나, 말은 바로 하자. 집권 시절 자신들의 집권 기반이었던 중산층, 서민들을 양극화의 수렁에 빠뜨리고 나서도 반성의 기미 하나 없이 허구적인 민주주의의 수복의 주문을 외치는 민주당!

    한나라당에 반대하며 열린우리당, 민주당에서도 희망을 찾지 못한 이들의 기대를 모아 20% 이상의 지지까지 누렸지만 거대 노조 중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비현실적 이념만 내세우다가 결국 분당사태 까지 맞은 진보정당, 민노당, 진보신당. 집권 가능성을 잃어버림으로써 한나라당의 강경노선을 지지해주고 있는 당신들이야 말로 민주주의의 적이다!

    야당들의 철저한 자기반성을 요구한다

    진정 야당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갖고 집권하기를 원한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더더욱 가난해지는 양극화된 경제, 투기는 증가시키고 근로의욕은 감소시키는 부동산 문제, 스펙을 쌓아봤자 미끄러지기만 하는 청년실업 문제, 가난이 대물림 되는 교육문제에 대해 그저 집권정당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다른 대안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자기주장이 없는 반대만을 위한 반대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우리는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도의 고공행진을 통해 확인하고 있다.

    먼저 현 사회의 지배적인 갈등이 사회경제적 문제임을 자각하는 일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한 사회의 지배적인 갈등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갈등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현 시점에서 지배적인 갈등은 당연히 경제적인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남북 평화,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지배적 갈등을 우회하지 말고, 전면적으로 경제갈등을 다루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이명박 정부처럼 대기업 중심의 고도성장을 약속한다든지 식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에 관해서는 한나라당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세력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안세력들은 이명박 정부의 경제 프레임에 대항하는 새로움 경제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의 대안은 무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시민 각각의 적응이 아니라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부족했던 시민들에 대한 사회의 책임의 강조, 즉 공공성의 강화에 토대를 두어야 할 것임은 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들의 과거에 대한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하다. 과거 이들은 개혁의 이상을 걸고 집권을 했거나 높은 인기를 얻었었다. 하지만 이들의 실정은 시민들의 진보에 대한 열망, 공공성에 대한 믿음을 산산이 깨뜨려 버렸다. 시민들의 보수화가 자신들이 집권을 못하는 이유가 아닌, 자신들의 집권의 결과라는 것을 이들이 겸허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바탕 위에서만 이들은 다시 회생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 또 다시 시민들을 가르치려 한다면, 이들의 집권 가능성은 영영 사라질 것이다. 당분간은 아무리 야당들이 노력해도, 한 번 신뢰를 잃어버린 이상 쉽사리 시민들이 지지를 보내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겸허한 마음을 갖고 지난 10년간의 실정에 대해 끊임없이 사죄하며, 끊임없이 설득하며 대안세력들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떻게든 한 방에 정국을 역전시켜보겠다는 정치공학은 절대 삼가해야한다. 그건 성공할 가능성도 없을 뿐 더러, 성공한다 해도 한 순간의 바람으로 쌓은 모래성 같은 지지율은 순식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야당들이 철저한 자기 쇄신으로 비전을 창출하고 자신들 때문에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시민들에 대해 낮은 자세로 꾸준히 설득해야만 야당이 살고, 야당의 부활을 통해서만 민주주의는 다시 생명력을 되찾을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는 이상 야당들에게 덧칠된 민주주의의 적이라는 더러운 이름도 결코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야당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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