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때문에” 정말일까?
    By 나난
        2009년 10월 14일 12:22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지난달 8일,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한국이 지난해 보다 6계단 하락한 19위를 기록하자 정부와 여당, 보수언론은 어김없이 이를 ‘강성노조 탓’으로 돌렸다. 노동운동이 국가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인 셈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노조의 불법파업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며 “엄정대처”를 촉구하며 이 같은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실제 몇 개의 지표는 노동운동이 정부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한다.

    파업 급격히 줄어

       
      ▲ WEF 국가경쟁력 보고서

    특히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노사분규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다는 통계는 정부가 내놓는 노조에 대한 비난들이 사실상 ‘매도’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지난 7일 노동부 국정감사를 통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287건에 달했던 노사분규가 급격한 하락세를 거쳐 지난해 108건, 올해 8월까지도 85건에 머물렀다.

    또한 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최근 발간된 <노동리뷰> 8월호 ‘2009년 상반기 노사관계 평가와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올 상반기 파업으로 인한 노동손실일수는 12만1천일로, 지난해 상반기 29만1천일보다 급격히 감소했다.

    여기에 지난 6월 말 현재 노사 단체교섭 타결률은 36.1%로 지난해 26.7%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난 반면 노사합의로 타결된 임금인상률은 1.4%로 1998년 IMF 경제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성희 박사에 따르면 실제로 임금인상에 합의한 사업장 중에는 노사합의로 임금을 동결하거나 삭감한 사업장도 상당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동결 사업장이 전체 임금협상 타결사업장의 46.1%에 달하는 1,129개 사업장이나 되는 것.

    임금인상률, IMF 이후 가장 낮아

    이를 이 연구위원은 “임금인상률이 낮고, 임금동결 또는 삭감사업장의 비중이 커지게 된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경제위기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다. “사용자측에서는 경영악화로 지불여력이 떨어지고 노조 입장에서는 무리한 임금인상 요구를 할 수 없는 조건이라서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경향이 확산됐다”는 것.

    이처럼 정부가 강조하는 노사분규는 줄어드는 반면 노동관련 지표들은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것이 이명박 정부에서의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민주노총이 발표한 지표에 따르면 OECD 30개국 중 저임금 노동자 비율, 성별 임금격차, 연간 노동시간, 인구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수는 1위였다.

    또한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7일 국정감사를 통해 발표한 국제노동기구(ILO)협약과 관련한 지표에서도 한국은 2009년 9월 현재 ILO 전체 협약 188개 중 24개만을 비준함으로써 ILO회원 183개국 중 128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ILO 회원국 평균 비준건수가 38개(OECD평균 63개)임을 감안하면 국내 노동환경의 열악함을 짐작할 만하다.

    특히 한국은 ILO가 비준의 최우선 순위로 삼는 핵심협약 8개 가운데 ‘강제근로 폐지에 관한 협약’, ‘결사의 자유에 관한 협약’ 등 4개 협약도 비준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ILO에 가입은 해 놓고 정작 노동권 보호에는 소홀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셈이다.

    김재윤 민주당 의원은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ILO협약을 더 많이 비준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며 “ILO의 권고가 진정으로 국제기준에 맞는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으로, ILO 이사국이라는 위상과 역할에 걸맞게 ILO의 권고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 양보교섭 증가

    이와 함께 노동부가 노사 간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중재한 흔적인 갈등조정건수와 조정설립률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7일 김상희 의원에 따르면 2005년 433건이었던 노동부의 갈등조정건수는 지난해 480건으로 늘어났지만 올해 8월까지 202건에 그쳤다.

    이에 대해 김상희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관료들이 국가경쟁력 약화 요인으로 노사분규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노사분규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며 “오히려 갈등조정자로서 노동부의 역할이 미흡한 만큼, 노동자들의 권리보호를 위해 더욱 노력해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이정호 정책국장은 “상반기 노동관계 지표에 따르면 근로손실일수는 줄어들고 노조의 양보교섭은 증가한 것이 객관적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며 ILO, OECD 등 국제회의의 권고는 무시한 채 국내 노동시장의 실태를 드러내기보다는 은폐하고 있다”며 “차라리 모든 국제회의에서 탈퇴하는 게 났다”고 비판했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