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종훈 사제단 대표, 삭발 단식
        2009년 10월 13일 0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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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국기도회를 마무리하며 문규현 신부가 전종훈 신부의 머리카락을 깍고 있다. 전 신부는 이후 단식에 돌입할 예정이다.(사진=카톨릭뉴스 지금여기)

    용산참사 266일째 되는 날인 10월 12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주최로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전국에서 모인 200여 명의 사제들과 약 2000여명의 수도자, 신자가 함께 어우러져 시국기도회를 겸한 미사를 봉헌하고,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단식을 선포하며 삭발례를 행했다.

    미사를 시작하며 전종훈 신부는 눈 먼 자본과 탐욕의 정권에 죽임당한 용산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추구하는 것은 잇속을 둘러싼 싸움 뿐"이라면서, "중도실용, 서민행보 등 호들갑 떨지 말고 견리사의(見利思義)만 생각하라”고 주문했다. 견리사의란 안중근 의사가 남긴 말로 "이익을 볼 때 먼저 의를 생각하라"는 뜻이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안정되게 살도록, 용산참사 열사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고 유가족이 따뜻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반민주, 반민족, 반서민 정책을 일삼는 이명박정권의 역주행을 멈추게 하자”며 미사를 이끌어 나갔다.

    강론을 맡은 문규현 신부(전주교구)는 “우리는 용산참사 열사들이 참극으로 이승을 떠난 그 시간에 멈춰있다”고 말하면서, 용산참사가 일어난 그날은 “초죽음이 된 하느님을 보여준 날”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마음과 손길이 철저히 배신당한 날, 하느님의 외침과 통곡을 외면하고 피해간 날”이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멈춰버린 시간과 죽음의 시간, 그리고 만들어가는 시간과 생명의 시간의 두 차원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계절이 순리처럼 지나갔지만 시간은 그 날에 멈춰있다"고 다시금 강조하며, "불쌍한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냉동고속에 얼어있다. 유가족의 상복은 그날 그대로다. 피눈물과 고통도 그날처럼 그대로다. 매일이 지옥인 아내와 며느리와 아들은 여전히 울부짖고 있다”고 한탄했다. 약육강식의 대한민국과 자비와 동정심마저 사기로 변질시키는 나라와 공동체를 애통해 했다. 반면 "유가족들은 멈춰버린 시간을 딛고 죽음의 자리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생명의 시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1월 20일은 강도떼에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라고 하느님이 말씀하신 날이고, 정의와 평화를 구하기 위해선 절대 ‘아니오’ 해야 함을 절절하게 깨우쳐 준 날"이며, "진짜 강도떼가 누군지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공범자는 자신을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밝히며 "돈에 눈 먼 개발주의자, 투기꾼, 건설자본 등이 그 앞잡이고, 정권과 법원, 검찰, 언론, 경찰, 죽어가는 이웃을 외면하고 돌아가는 종교인,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는 우리들의 탐욕, 무관심, 이기주의가 바로 강도떼의 앞잡이며 공범자다.”라고 말했다. 용산에 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이 없다면, “결국 돌아가신 분들은 분신자살했거나 가족이 불태워 죽인 것인지” 문신부는 되묻고, “사회에 무슨 짓을 해도 외면하는 우리 모두가 공범이며 진짜 범인”이라고 성찰했다.

       
      ▲ 사진=카톨릭뉴스 지금여기
       
      ▲ 사진=카톨릭뉴스 지금여기

    문규현 신부는 “1월 20일부터 우리가 만들어 낸 시간은 반전의 시간으로, 회개와 참회, 낮춤의 시간이며 새로운 역사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들 자신이 "깊은 어둠 속에서 희망이 펼쳐질 수 있도록 망루를 세워 서로 나누고 연대하고 행동할 것"을 요청했다.

    나승구 신부(서울교구)는 제12차 천주교전국사제시국기도회를 마치며 사제단을 대표하여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제단은 성명서에서 “용산참사는 어제의 일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일로, 서민중산층에게 닥칠 무서운 재앙”이라고 표명했다. 또한 참사에 책임지지 않는 정부를 질타하고, 검찰의 수사기록 3000쪽 공개와, 의문투성이의 주검상태 등을 고려해 법원이 공정하고 엄정하게 시비를 가려줄 것을 요구했다.

    사제단 홍보위원장인 김영식 신부(안동교구)는 "오는 10월 29일이 용산참사 재판 1심 만료일이며, 그전에 1심 결정선고가 있을 것 같다"면서 정황상, 예정된 수순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결정된 판결을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사제단은 "세상과 언론과 권력을 향해 그리고 종교의 뼈아픈 현실을 반성하고 아파하며 삭발과 단식을 하느님 제물로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신부가 삭발례를 거행했다. 미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눈물로 그 뜻에 부응하며 삭발례를 지켜보았다.

       
      ▲ 사진=카톨릭뉴스 지금여기

    한편 수배를 피해 명동성당에 있는 용산범대위공동집행위원장인 박래군씨와 이종회씨는 한 달 전부터 명동성당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전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바벨탑을 넘어뜨릴 때까지, 철거민들의 눈물과 한숨을 걷어낼 때까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고, 가난한 사람들이 착취당하지 않는 민주사회를 이루어낼 때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서울교구 한강성당 교우인 안충남씨는 "낮은 곳에서 세상을 향해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드리는 이 미사에 감격했다"고 소감을 전하면서, 본당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본당신부와 신자들을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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