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외박’이 그녀들에게 남긴 것
        2009년 10월 12일 03: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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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박’. 2007년 6월에 시작해 해를 넘겨 2008년 11월에야 끝난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파업 510일을, 김미례 감독은 그렇게 불렀다. 지난 4월 서울여성국제영화제에 영화 ‘외박’이 처음 상영되었을 때 이랜드 해고자 4명, 홍윤경, 이경옥, 이남신, 김경욱과 함께 신촌의 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았다.

    2007년 6월 30일, 계산대를 점거하고 그 사이사이에 삼삼오오 누워 시작해, 510일 후 조금은 쓸쓸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얘기들을 울고 웃으며 함께 본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동안 화면 저 너머에 있는 그녀들의 특별하고 생생한 외박기를 함께 했다.

    그들과의 동행, 그 두 번째

    결혼 후 처음 집을 나와 본, 가족 아닌 남과는 하룻밤도 자 본 적 없는 ‘아줌마’들이, 510일 동안 한뎃잠 자며 원했던 건 어서 이 긴 외박을 끝내고 다시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었다.

       
      ▲ 2007년 6월 30일 밤. 500여명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은 월드컵 홈에버 계산대에서 ‘외박’을 했다.

    그러나 510일 동안의 외박은 그녀들에게 뜻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그녀들은 더 이상 이유 없이 움츠리거나 주눅 들지 않게 되었고, 남자 뒤에 숨거나, 남자에게 결정을 의지하지도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보금자리보다 가족을 떠나 꾸린 그녀들만의 파업공동체를 더 행복하고 편안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510일 동안의 파업은 그녀들의 일상을 넘어 인생마저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무엇이었을까? 이들을 행복하게 만든 것의 정체는? 510일 동안 그녀들은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던 것일까?

    여전히 가시지 않은 물음을 지닌 채 두 번 째 동행에 나섰다. 이번엔 부산이다. 부산영화제 초청상영을 보러 가는 길. 기분 좋은 가을볕과 함께 한 1박 2일의 특별한 나들이에 해고자 4명은 살짝 들떠 있었다.
    이랜드 투쟁의 4인방이었고, 지금은 해고자 4인방이 된, 이경옥(전 이랜드노동조합 부위원장), 이남신(전 이랜드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 홍윤경(전 이랜드노동조합 사무국장), 김경욱(전 이랜드노동조합 위원장)과 함께 한 1박2일 부산 나들이 길은 내내 즐거웠다.

    첫 출발부터 유쾌한 소란이 있었다. 이남신, 홍윤경, 이경옥 셋은 서울역에서, 김경욱 위원장과 나는 광명역에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도중에 길이 막혀 도착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김위원장은 출발을 1,2분 남겨두고 “무슨 일이 있어도 기차를 세워주세요, 곧 들어갑니다”하는 지침(!)을 내렸다.

    "거봐요. 탈 수 있다고 했잖아요"

    택시 안에서 마음 졸이고 있는 내게 김위원장은 특유의 자신감 있는 말투로 “걱정 마세요, 이남신 수석은 몰라도 우리 두 여성(이경옥, 홍윤경)은 기차를 꼭 잡아둘 사람들이니 저만 믿으세요” 한다. 아줌마들의 힘이란다. 역시, 언니들이었다.

    우리는 출발시간을 2분 지연시켜 그예 기차를 탔다. 두 여성이 승무원에게 사정사정했단다. 뛰어 들어오는 우리를 발견하고 승무원들이 무전기를 타전해 출발하는 열차에 극적으로 올라탔다. 김위원장은 씨익 웃으며 “거봐요. 내가 탈 수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4명이 앉아가는 동반석에 마주 앉은 이들은 이것저것 주전부리를 하며 여행을 시작했다. 기차타고, 여행가고, 바다 보고, 영화 볼 생각에 너무 신이 난다는 홍윤경 사무국장과, 이른 아침부터 중계아울렛 선전전에 가서 조합원들 만나고 왔다는 부지런쟁이 이경옥 부위원장은 노조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못간 곳들을 해고자가 되니 이렇게 가게 된다며 연신 웃어댔다.

    가족보다 가까운 비혈연가족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불매 이랜드’ 티를 곱게(?) 차려입고 나왔고, 김경욱 위원장은 이들을 보자마자 요즘 새로 시작한 자신의 일에 대해 보고를 했다. 한 집에 사는 가족처럼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들, 아니 가족보다 더 가까운 가족이 아니라 비혈연가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오랜만에 떠나는 가족나들이에 그들은 즐겁게 얘기보따리들을 풀었다. 하지만 이따금씩,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었다. 우스개라고 내뱉는 말들에 가슴이 선득했던 것이다. 영화 ‘외박’의 배경음악이었던 살사의 음결과 같았다고 할까. 열정과 슬픔이 공존하는, 경쾌함 속에 담겨진 그 한없이 처연한 느낌, 그랬다.  

    숙소인 콘도가 오래된 곳이라 후줄근할 텐데 하는 염려를 하면,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우리처럼 후줄근한 인생이 어딨어. 우리는 그런 거 전문이야.” 하며 자기들끼리 까르르 웃고, 다음에 어디에 놀러 가면 거기에 누가 있으니 누구 불러내면 되겠다고 하다가도, “아무도 부르지 마, 해고자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부르지 마. 우리는 거지떼야, 거지떼” 하며 또 까르르 웃는 식이다. 조합원 수 백 명을 복직시키는 대신 해고자가 된 사람들, 이들의 자학개그를 들으며 나는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T’팬티를 입고 싸운 이야기

    하루 외박이면 끝날 줄 알았던 매장 점거 투쟁이 결국 20일 넘는 점거와, 농성, 그리고 510일이라는 긴 ‘외박’ 투쟁으로 이어지게 된 과정에 대해 이들은 또 긴 수다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하루 점거 투쟁일 줄 알고 속옷을 준비하지 못해 남성들에게 사오라 했더니 ‘T’자 팬티를 사와 남편 앞에서도 안 입어본 야한 속옷을 입고 싸웠다는 이야기, 이경옥 부위원장이 빠져나올 때 인간레이더라 불리던 보안대 직원과 눈이 딱 마주쳤는데도 안 잡히고 나온 건 어쩌면 그 직원의 배려였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이경옥과 홍윤경이 밖에 나와 2선을 꾸릴 때 안에 남은 이남신, 김경욱 남성 임원 2명의 무심함에 조합원의 원성이 자자했다는 이야기, 구속되기 전날 조합원들 수십 명이 돌아가며 안아줬는데 (유부녀들이라)행복해 할 수 없었다는 김경욱 위원장의 너스레까지…재미있는 파업 뒷이야기들이 이어졌다. 3시간을 달려 부산역에 도착할 때까지도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어둑해질 무렵 부산에 도착했다. 이랜드노조 임원들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꼭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며 부산의 어느 노조위원장이 자갈치시장으로 안내했다. 이들을 맞아주는 여러 분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어딜 가나 내 대신 싸우고 고통 받은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이랜드 투쟁은 그런 부채감으로 연대한 사람들이 많았다.

       
      

    스스로 너무 많은 걸 받고 행복하게 싸웠다고 말 할 정도로 이들은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양심을 흔들었다. 그런 분들과 함께 시작한 자리는 숙소가 있는 해운대로 넘어간 후에도 끝나지 않고 이어졌다. 바다가 보이는 술집에서 밤늦도록 얘기보따리를 풀다 결국 해 뜰 무렵에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영화표가 팔자마자 매진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부산영화제의 관객들은 과연 이 ‘외박’을 어떻게 볼 것인가 궁금해졌다. 임원 4명과 김미례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젊은 일반관객들이 오는 영화제라 ‘노조’, ‘파업’, ‘아줌마’ 같은 낯선 이야기를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해 하며 극장으로 향했다. 나는 두 번째지만 이들은 벌써 세 번째 보는 것이다.

    시작부터 눈물바람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 커다란 화면에 다시 이랜드 ‘언니’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 속 그녀들은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고, 웃는데 이경옥과 홍윤경은 시작부터 눈물바람이다. 잘 울지 않던 이남신, 김경욱도 눈물을 훔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내겐 2시간짜리 영화지만, 이들에겐 510일 동안의 투쟁이고, 길게는 십년 넘도록 살아온 자신들의 삶에 대한 기록일 테니.

    스스로 선택한 길이고, 후회 없는 길이라 해도 고통스럽거나, 감격스러웠거나,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그 어떤 느낌이라도. 내겐 ‘장면’인 것이 그들에겐 ‘서사’이고, 내겐 감동인 것이 그들에겐 회한일 터이다. 당사자라는 건…그런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과 대화가 이어졌다. 김미례 감독은 객석에 있는 그들을 관객 앞으로 불러냈다. 관객들은 파업을 하면서 느낀 보람에 대해, 인상 깊었던 일에 대해, 그리고 지금 이들 4명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엄마의 부재로 파업 기간에 큰아이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었다는 홍윤경 국장의 얘기와, 아내와 갈라서게 되었다는 김경욱 위원장의 얘기에 또 가슴이 아릿했다. 파업 한 번 한 대가가 이렇게 혹독하고 잔인한 나라. 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 이남신 전 이랜드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해운대 바다에서 부산영화제 방문 기념사진을 찍었다. 부산은 영화제의 열기로 가득했다. 도시 전체가 달뜬 느낌이랄까. 어디를 가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화려함으로 생동감이 넘쳤다. 도대체 돈 없어 밥 굶고, 살기 힘들어 목메는 사람들은 다 어디에 있는 것일까? 우리 일행은 마치 딴 세상에 온 듯 영화제 둘레를 서성대고 기웃거렸다.

    이남신 "올해의 워낭소리 되었으면"

    돌아오는 길, 이번 외박에 대해 물었다. 모두 즐거운 외박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남신 수석은 이 영화의 성공을 먼저 빌었다.

    “투쟁 끝나고 평가도 안 하고, 노조는 분리되고 경황이 없었는데 그나마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특히 이 영화가 지도부가 아닌 조합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게 무엇보다 고마운 일이다. 우리가 몰랐던 조합원들의 모습을 알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기록이다.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에게 따끔한 메시지도 전달하고, 요즘 같은 때 우리 조합원들의 활력을 본받아 힘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투쟁을 넘어서 훨씬 더 풍부한 의미가 담긴 영화였던 것 같다. 올해의 워낭소리가 되었으면 좋겠다(웃음).”

       
      ▲ 이경옥 전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

    하루치기 일정을 1박 2일로 바꿔 나름 전야제 프로그램까지 조직한 이경옥 부위원장은

    “김미례 감독에게 너무 고맙다. 이런 영화가 나올 줄 상상도 못했고, 영화를 보면서 다시 마음도 다지게 되어 내겐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이 여정에 함께 한 안재성 작가, 김영 교수, 젊은 쿠바인 오로, 감독과 스텝들까지 모두 너무 좋은 분들이 우리를 위해 배려 해 준 것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나 성공적인 외박이었다(웃음)!”

    고 했다. 언제나 모범생 큰언니 같은 모습. 조합원 앞에서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하는 견결한 투사지만, 가끔 애잔한 노동가를 듣다가 그만 울어버리는 사람. 참 좋은 사람….

    언니들 보고 싶단 생각밖에는

    홍윤경 국장은 예의 그 소녀 같은 웃음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홍윤경 전 이랜드일반노조 사무국장

    “외박이 어려운 가정형편인데(웃음) 즐거운 일탈이었다. 맨 처음엔 관객의 입장에서 어떤 영화일까 궁금함이 먼저였는데, 오늘은 내가 감독인 것처럼 엄청 떨렸다. 나는 우리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 번 여성영화제 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녀는 손수건으로 계속 눈물을 닦았다. 아무 생각도 없다고, 영화 시작하자마자 그저 저 화면에 나오는 언니들이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고 했다. 정 많고 눈물 많은 그녀는 화면에 언니들의 모습이 나올 때마다 그 이름을 맞춰보며, 해고돼서 저 언니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프다고 했다. 영화를 세 번째 보는 오늘도 여전히 그녀는 그 언니들 때문에 울고 있었다.

    4인방의 막내 김경욱 위원장은 1박 2일 내내 피곤해했다. 요즘 새로 시작한 일로 바쁜 탓이란다. 그는 영화 속 조합원들이 울 때 자기도 모르게 같이 눈물이 났다고 했다.

       
      ▲ 김경욱 전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

    “가끔 조합원들이 메일이나 문자를 보내온다. 어떤 조합원은 오늘 관리자에게 가서 불만사항을 말하고 왔다고 하더라. 떨리고 두려웠지만 참고 했단다.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예전에 조합원들에게 멘트까지 자세하게 알려주며 관리자와 말하는 법을 훈련시켰다. 그런 상황이 되니 노조지도부가 생각난 모양이다.

    "하늘의 아빠가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처럼"

    마치 혼자 남겨진 아이가 하늘 보면서 “아빠, 나 잘 하고 있지?”하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냥 읽기만 한다. 하늘의 아빠가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처럼…. 고맙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다. 사람의 연이란 게 참 징글징글하다는 생각도 든다. (영화 보면서)조합원들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가 언제 이런 영화제에 와 볼 수 있겠나. 우리를 초대해 준 분들에게 참 고맙다.”

    이처럼 ‘외박’은 이들 4명에게 아주 특별한 영화지만, 이들 뿐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꼭 봐야 할 영화다. 영화에도 나오듯 비정규보호법이 시행된 첫 날, 그 법이 보호하겠다던 비정규직이 어떻게 그 법에 의해 내쳐지는지, 80만 원 짜리 아줌마들은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줬다.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에 한 획을 그은 비정규투쟁은 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겨지)던 ‘아줌마’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비장한 각오, 정연한 결의대회 대신, 흐드러진 노래자락과 쉴 새 없이 까르르 터지는 웃음이 있는 파업현장. 엄숙하지 않아도 근본을 놓치지 않는 ‘한 방’이 있는 모습은 노동운동의 주류가 아닌 아줌마들이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하룻밤의 일탈로 끝날 줄 알았던 ‘외박’

    파업 기간에도 교대시간이면 집에 돌아가 애들 밥 해먹이고, 청소하고, 남편 와이셔츠 준비까지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상. 오히려 밥 달라는 사람 없는 농성장이 훨씬 편하다는 여성들. 나와서 일하는 동안만큼은 아내나 엄마가 아닌 온전히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시간이기에 일터가 너무나 소중했던 여성들. 그 일터를 지키는 것은 자신을 지키는 것이었기에 그들은 타협할 수 없었다.

    가난한 조합 살림에 투쟁기금도 없어, 손수 도시락을 싸 와 곤궁한 파업을 이어 가면서도 그들은 끼니마다 잔치를 벌였고, 힘겨운 일상에 찾아 온 이 낯선 해방감을 마음껏 누렸다. 하룻밤의 일탈로 끝날 줄 알았던 그녀들의 외박은 그렇게 다른 인생을 살게 한 이탈이 되어버렸다.

    많은 동화와 설화와 신화에서 주인공을 성숙하게 만드는 건 ‘떠남’이다. 집을 떠나 긴 여정을 거쳐 다시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더 이상 집을 떠나기 전의 그가 아니다. 주인공이 떠남을 통해 경험한 많은 사건과 사람들을 통해 부쩍 성장하는 것처럼, 파업의 주인공인 그녀들도 더 이상 파업 전의 그 ‘아줌마’들이 아니었다. 해고자 4명의 말처럼, 이랜드노조의 비정규직투쟁은 지도부가 510일을 끌고 간 게 아니라 파업을 겪으며 스스로 의식화된 조합원들에게 끌려 간 것이다.

    영화 ‘외박’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달라’던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에게, 이 땅의 또 다른 여성노동자 김미례가 보내는 따뜻하고 지난한 영상편지다. 해고자 4인방이 입을 모아 말했듯, 이 영화는 아마 김미례라는 여성감독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저런 순간을 잡아냈을까 싶게 조합원들의 복잡다단한 마음결들을 담아낸다. 그리고 파업 너머 해방을 경험한 아줌마들의 모습 또한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영화 속 그녀들의 삶을 통해 정상가족, 주류운동, 노동운동에 대해 불편한 물음들을 툭툭 던진다.

    영화가 나에게 온 이유

    이들의 510일에 함께 했고, 510일 이후에도 그녀들과 헤어지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김미례 감독은, 요즘 작품 ‘외박’을 들고 계속 외박 중이다. 대학교, 독립영화상영회, 영화제, 일본의 영화제 등 그녀들의 얘기를 듣고 싶어하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영화를 나누고 싶어 공동체 상영도 추진하고 있다. 공동체 상영이 이어져 그녀들의 외박소문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 4인 4색이면서 4인 1색인 이들. 나는 이들을 ‘환상의 짝꿍’이라고 부른다.

    조합원들이 추석 쇠라며 쥐어 준 돈으로 기차표를 끊어 하루 외박 길에 나선 해고자 4명. 이들과 함께 한 1박 2일 부산 외박 길은 즐겁고 따뜻했다. 이남신 수석은 자신들 임원 4명을 가리켜 ‘당나라 군대치곤 참 잘 싸웠다’고 말했다. 4인 4색이면서 4인 1색인 이들. 나는 이들을 ‘환상의 짝꿍’이라고 부른다.

    내가 본 어떤 노동조합 간부들보다 밝으면서 조화롭고, 스스로 권위를 버림으로 권위를 얻은 사람들. 이들이 일터로 다시 돌아가 영화 속 조합원들과 만날 날은 언제일까. 아직 이들의 소박한 복직의 꿈을 응원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그걸 잊지 말라고 이 영화가 내게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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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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