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고사 도입 정권, 일제고사로 망해?
        2009년 10월 12일 08: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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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일본이 일제고사 폐지를 천명했습니다. 교도통신(共同通信)에 따르면, 각료회의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카와바타 타츠오(川端達夫) 문부과학성 대신은 소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국학력테스트를 내년부터 현행 전수평가 방식에서 표집평가 형태로 전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교육전문가 및 학교 관계자와 협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일제고사 폐지에 대해 카와바타 문부과학성 대신은 학력테스트의 목적은 지역 교육수준의 균등화인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표집으로도 충분하다. 개별 학교가 성적을 올리는 것 자체만을 경쟁하는 방법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로써 일본의 일제고사는 부활 4년 만에 폐지됩니다.

    일본은 지난 1961년 처음으로 일제고사를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다가 4년 뒤인 1965년 전체 학생이 아니라 일부만 시험을 보는 표집으로 전환되면서 폐지됩니다. 경쟁이 과열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4년 11월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성 대신의 “어릴 때부터 경쟁하면서 절차탁마의 의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라는 발언 이후 속도를 내기 시작하여, 2007년 4월 일제고사가 부활합니다. 그리고 자민당이 무너지면서 다시 폐지됩니다.

    도입, 폐지, 부활, 폐지의 역사입니다. 첫 번째 폐지될 때에는 일본 선생님들의 희생이 컸습니다. 일제고사 반대운동의 과정에서 약 60여명의 교사들이 체포되었습니다. 두 번째 폐지는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일제고사가 경쟁을 부추기면서 각종 폐해를 양산하는 게 깔려있습니다.

     

       
      ▲일본에서도 일제고사 반대투쟁으로 교사 60여명이 체포됐다. 사진은 일제고사 거부로 해직된 교사들.(사진=손기영 기자) 

    한국은 ‘일제’고사 업그레이드 중

     

    한국은 2008년 부활했습니다. 지금까지 3번 치렀습니다. 4번째 일제고사는 당장 코 앞입니다. 그러면서 점차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이번부터는 전국적으로 대규모 채점단이 꾸려집니다. 시험일 이틀, 채점일 이틀에서 사흘 등 장기간에 걸친 수업결손이 우려됩니다만, 오로지 일제고사 성공을 위해 달려갈 태세입니다.

    내년부터 또 한 차례 업그레이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년 10월의 일제고사는 내후년 초에 결과가 나오는데, 그 때는 지금까지와 조금 다릅니다. ‘교육관련기관의 정보 공개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학교알리미로 공시될 예정입니다. 지역간 서열 경쟁에서 학교간 서열 경쟁으로 넘어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학교자율화, 일제고사, 교육정보 공개의 삼위일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학교자율화로 자율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풀이 수업 등이 앞다투어 진행되고, 일제고사로 점수를 매기고, 교육정보 공개로 학교 서열이 매겨집니다. 그 다음에는 ‘학교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학부모와 학생의 학교 쇼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속에서 ‘지금 시험보는 학생’은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시험공부하고, 스트레스 받고, 학교의 등쌀에 시달리는 노고에 비해 얻는 건 별로입니다. 정부는 부진아를 선별하여 보충교육을 하는 게 목적 중의 하나라고 하지만, 선별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같은 제도라도 환경에 따라 다른 법이라서, 우리 풍토에서 부진아로 선별되는 것과 보충반에 들어가는 것은 ‘낙인 효과’로 작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요? 학교관계자는 자기 학교 성적이 좋으면 유무형의 보상을 받습니다. 교육청도 유무형의 보상이 기다립니다. 교육감은 자기 치적으로 홍보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학생과 학부모, 즉 ‘지금 시험보는 이들’보다 어린 학생과 그 부모는 학교쇼핑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제고사 문제를 푸는 학생들은 다른 이들을 위한 들러리이기도 합니다.

    일제고사 폐지 법안은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일본의 경우를 본다면, 일제고사는 대중적인 저항과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그 운명을 달리 합니다. 우리도 두 가지 경로를 모두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저항은 지금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지속되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 과정에서 14명의 전교조 선생님들이 해직되었는데, 어쩌면 향후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일제고사의 교육적 폐해가 워낙 심해서 눈뜨고 보기 어려워하는 선생님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움직임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거부뿐만 아니라 ‘개기기’ 등 다양한 수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인 변화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하긴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음 정부가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다면, 또는 지자체가 교과부와 교육철학이 다르다면, 크고 작은 변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변화 중의 하나는 국회에서 일제고사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겁니다. 지난 3월에는 민주당 최재성 의원이, 7월에는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 현행 전수평가 방식을 표집평가 형태로 바꾸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법안은 아직 해당 상임위인 교육과학기술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잠자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대중적인 저항에 비해 정치적인 변화가 더딘 편입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의 상임위원장이 야당임에도 그러합니다.

    따라서 이래저래 보다 많은 열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일제고사가 10월, 12월, 내년 3월 등 세 번 정도 있은 다음,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때에는 16개 시도교육감과 교육의원들도 함께 선출합니다. 무엇이든 지금 한 발 내딛는 게 미래를 위한 초석이 됩니다. 힘들 땐 쉬어가더라도, 정반대의 길만 아니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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