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2009년 10월 12일 08: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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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에 재정전략이 도입되어 있다. 국가재정 편성권을 가진 정부는 자신의 국정운영전략에 따라 분야별로 재정지출 규모를 배분하고, 다시 이것을 5년 동안 확장한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작성한다. 이러면 앞으로 국가재정 지출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윤곽이 거의 잡히게 된다. 

    2013년 재정균형 달성하겠다는데…

    국가재정법에 따라 이명박 정부도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중기계획안에는 재정수입 및 지출, 분야별 재정배분, 재정수지 및 국가채무 관리계획 등이 담긴다. <표 1>은 지난 10월 1일 국회에 제출된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에 담긴 분야별 재정투자계획안이다. 

    <표1 > 2009~2013년 분야별 재정투자계획안

    (단위: 조원, %)
    구    분
     
    ’09
     
    ’10
     
    ’11
     
    ’12
     
    ’13
     
    연평균
     
     
     
     
     
     
     
     
     
     
     
     
     
    1. R&D
     
    12.3
     
    13.6
     
    14.9
     
    16.6
     
    18.4
     
    10.5
     
     
     
     
     
     
     
     
    2. 산업․중소기업․에너지
     
    16.2
    14.4
    15.1
    15.9
    17.0
    1.3
     
     
     
     
     
     
     
     
    3. SOC
     
    24.7
    24.8
    25.3
    25.9
    26.7
    2.0
     
     
     
     
     
     
     
     
    4. 농림수산식품
     
    16.9
    17.2
    17.4
    19.2
    17.6
    1.2
     
     
     
     
     
     
     
     
    5. 보건․복지
     
    74.6
    81.0
    85.3
    90.7
    96.9
    6.8
     
     
     
     
     
     
     
     
    6. 교 육
     
    38.2
    37.8
    40.7
    44.3
    48.3
    6.0
     
     
     
     
     
     
     
     
    7. 문화․체육․관광
     
    3.5
    3.7
    3.8
    3.9
    4.0
    3.4
     
     
     
     
     
     
     
     
    8. 환 경
     
    5.1
    5.4
    5.5
    5.7
    5.8
    3.5
     
     
     
     
     
     
     
     
    9. 국방(일반회계)
     
    28.5
    29.6
    30.9
    32.3
    33.7
    4.2
     
     
     
     
     
     
     
     
    10. 통일․외교
     
    3.0
    3.4
    3.4
    3.4
    3.4
    3.6
     
     
     
     
     
     
     
     
    11. 공공질서 및 안전
     
    12.3
    12.9
    13.2
    13.7
    14.0
    3.3
     
     
     
     
     
     
     
     
    12. 일반행정
     
    48.6
    49.5
    52.7
    54.0
    54.8
    3.0
     
     
     
     
     
     
     
     
    총 지 출
     
    284.5
    291.8
    306.6
    322.0
    335.3
    4.2
    – 출처: 기획재정부,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

    <표 1>을 보면, 우리나라 국가재정 지출은 올해 284.5조원에서 2013년 335.3조원으로 늘어난다. 평균증가율이 4.2%이다. 한편 관련자료를 보면, 중기 재정수입 증가율은 평균 5.6%로 재정지출 평균증가율 보다 1.4%포인트 높게 설정했다. 앞으로 그만큼 흑자를 기록해 2013년부터 재정균형을 달성하겠다는 로드맵이다.

    과연 재정균형이 바라는 대로 현실화될 수 있을까? 재정수입이 관건이다. 재정지출은 정부의 의지에 따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 그런데 수입은 다르다. 세제를 개편하지 않는 한 재정수입은 경제성장율에 따라 좌우된다.

    보통 명목경제성장율이 1% 증가할 때마다 세수가 약 1.5~2조원 확보된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잡은 연평균 실질성장율 목표가 약 5%이고, 중기 물가상승율 예상치가 2.6%이므로, 명목성장율은 7.6%에 이른다. 매년 경제성장을 통해 11~15조원의 세수가 증가되는 것이다.

    결국 재정수지가 2013년에 균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연평균 5% 실질성장율이 달성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이나 부동산시장을 통한 경기부양에 목을 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정지출 통제 강화될 듯

    이제 재정지출 내용을 살펴보자. 이명박 정부가 향후 5년간 설정한 평균 지출증가율이 4.2%이다. 이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재정지출 규모를 읽을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물가상승율이다. 재정지출 명목증가율이 물가상승율에 못 미칠 경우 지출은 실질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번 중기재정운용계획안에 담긴 재정지출 실질증가율은 물가상승율 2.6%를 공제한 1.6%일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3년까지 5%의 실질성장율을 전망하면서도, 실질 재정지출 증가율은 1.6%로 한정했다. 재정지출의 고삐를 죄겠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중기 중기운용계획안은 재정수지 적자에 몰린 이명박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제하겠다는 것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이명박 정부의 공약이 작은정부론이었음을 기억하면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진보정권이라면 어떻게 배분했을까?

    다음으로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 분야별 증가율이다. <표 1>을 다시 보면, 평균지출 증가율이 4.2%인데 반해 분야별 증가율은 1.2~10.5%로 매우 다르다. 정부의 전략적 재정배분이 낳은 결과다.

    우리의 주된 관심인 복지분야를 보자. 재정지출 분야 중에서 가장 많은 금액이 복지에 배정되었다. 2013년 96.9조원으로 1백조원에 육박하고 평균증가율도 6.8%로 전체증가율 4.2%보다 높다. 아마 이명박 정부는 앞으로 5년간 매년 역대최고 복지지출이라고 노래할 것이다. 정말 괜찮게 늘어나는 것일까?

    복지에는 제도적 자연증가분이 있다. 사회복지가 형성기에 있는 나라에서 발생하는 일이다. 4대 공적연금, 기초노령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이 대표적 영역이다.

    예를 들어, 연금수급자가 늘어나면 자동으로 연금지출이 증가한다. 내년에도 전체 제도적 증가분이 3조원을 넘어 복지지출 총액의 4%에 육박한다. 따라서 평균 6.8%의 복지증가율에서 4%를 공제하면 실제 정부의 정책의지가 작용하는 복지지출 증가는 3%에 불과해 진다. 그런데 물가상승율이 2.6%이다. 결국 제도적 자연증가분을 빼고 물가상승율을 감안하면 다른 정책적 복지사업은 계속 제자리 걸음 하겠다는 중기계획안이다.

    과연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정상적인 수준인가? 이명박 정부가 내년 설정한 복지지출 규모가 81조원이다. OECD 기준으로 재산정하면, 필자의 계산으로 90조원, GDP 9%를 조금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OECD 평균은 GDP 20%이다. 금액으론? 그렇다. 우리나라 복지지출이 110조원 부족하다. (우리나라 정부와 OECD의 복지지출 산정방식의 차이는 이후 연재에서 곧 다룰 예정).

    이는 우리나라가 OECD 회원 값을 하려면 내년에 110조원을 복지지출에 더 배정했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까마득하다고? 진보정권이 필요한 이유다. 만약 진보정권이 올해 중기계획을 짰으면 복지 지출을 어떻게 설정했을까? 잠시 직접 전략적 재정배분을 해보는 ‘즐거운 작업’을 해보기 바란다.

    중기재정운용계획, 재정을 재정답게 만들다

    필자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이 도입된 것에 지지한다. 비로소 재정을 재정답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래까지 우리나라 국가재정 운용은 단년도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틀에서는 정부의 예산 편성이 다음해 예산 증가율 혹은 경제성장율이 기술적으로 반영되는 ‘전년 답습식’으로 이루어졌다. 만약 내년 정부수입이 5% 증가하면 각 부처 사업이 그만큼 늘어나는 방식이다.

    특히 단년도 재정운용은 시장경제의 경기순환과 동행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정부는 경기호황 시에는 더 걷힌 세금만큼 다음 해에 지출하고, 반대로 경기불황 시에는 세금이 줄어든 만큼 지출을 축소하는 경기동행식 재정운용에 안주했다. 

    그 결과 시장 경기가 가열되어 진정제가 필요할 때는 재정이 투입되어 거품을 부풀리고, 경기가 침체되어 영양제가 필요할 땐 오히려 재정지출이 줄어들었다. 국가재정이 시장의 경기순환 변동성을 제어하기 보다는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원래 정부의 재정은 시장의 흐름과 거꾸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림 1>에서 보듯이, 호황일 때 지출을 자제해 경기안정에 기여하고, 불황일 때는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부양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재정운용이 단년도 방식을 넘어 중기 호흡을 가져야 한다.

    중기재정운용계획은 중기 평균 경제성장율을 기준으로 놓고 단년도 재정지출을 탄력적으로 수행해 나가려 한다. 보통 이것을 재정의 ‘자동안정화’ 효과라고 부른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3~5년 기간의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고 이것을 단년 예산 수립의 토대로 삼고 있다.

    노무현 정부,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법제화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단년도 재정운용방식을 넘어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실제 중기재정운용이라는 개념도 존재했다. 1982년에 정부의 경제운영전략과 예산편성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하여 ‘중기재정계획제도’가 예산회계법에 명시되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임의규정에 불과했다. 실질적으로 중기재정운용 계획도 마련되지 않았다. 매번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집권 첫 해 국가운용전략을 밝히는 취지에서 중기재정운용 방향이 제시되었으나, 내용도 개략적인 수준이고 연도별 예산 편성과 연계된 것도 아니어서 ‘국정전략 홍보용’일 뿐이었다.

    마침내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국가재정체계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포부를 재정에 담고 싶었다. 이에 2004년부터 자발적으로 매년 중기 국가재정운용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2006년에 국가재정법을 제정하면서 이것을 의무화했다. 이제 전략적인 중기재정배분계획이 명시되고, 실제 단년 예산안 수립에도 기준이 되는 중기재정운용체계가 마련된 것이다.

    이전 글에서 강조했듯이, 전략적 재정배분과 중기재정운용계획을 사실상 정하는 곳이 재정전략회의이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재정전략회의에 주목해야 한다.

       
      

    중기재정운용계획, 누가 짜느냐가 관건

    우리나라 국가재정에서 중기재정운용체계가 도입된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국가재정이 ‘국정운용 전략’을 담을 수 있고, 경기동행적 재정 지출의 한계도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중기재정운용체계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중기 재정운용계획이 중요한 만큼 이를 추진하는 정부의 성격이 관건으로 작용한다. 어떤 정부가 재정전략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재정의 정치적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핵심 문제로 세입에선 낮은 직접세 수입, 지출에선 작은 사회복지가 지적된다. 그만큼 중기재정운용계획을 마련할 때 직접세율을 상향하고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는 전략적 배분이 필요하다. 만약 이러한 선택이 ‘전략적’으로 거부될 때 한국의 재정운용구조는 기존 틀에 더욱 갇히게 된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 포퓰리즘에 의해 만들어진 경제전망 수치가 재정운용계획 작성에 반영될 경우, 국가재정의 안정성마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내년부터는 부자감세로 초래된 재정수지 적자를 재정지출 억제를 통해 해소하려는 중기재정운용이 펼쳐질 것이다.

    둘째, 정부의 중기 재정운용 편성체계가 강화된 것에 비해 국회의 심의체계는 턱없이 허술하다. 현재 국가재정법은 행정부에게 중기 재정운용계획을 예산안과 함께 정기국회에 제출하도록 명하고 있다.

    그런데 예산안과 달리 중기재정운용계획안에 대한 국회 심의 조항이 법에 없다. 중기 재정운용계획에서 정부의 ‘편성권’은 있지만 국회의 ‘심의권’은 없는 상태이다. 예산안 심의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부처별로 진행되다 보니 부처를 뛰어넘어 분야별로 설계된 중기 재정운용계획은 국회에서 참고자료로도 이용되지 못하는 형편이다. 조속히 국가재정법 개정을 통해 국회심의권이 마련돼야 한다.

    중기재정운용계획이 씁쓸한 이유

    우리나라 현대사에 경제개발5개년계획이라는 것이 있었다. 1962년 시작되어 5년 단위로 운용되다 1997년 종료된 정부의 중기 경제정책계획이다. 민간자본이 미약한 시기라 정부가 핵심 산업주체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제는 한국의 경제정책에서 민간독점자본이 주도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가는 ‘비지니스 프렌들리’라는 명찰을 달고 그 옆을 보좌한다. 경기도 파주에 있는 LCD단지에서 반도체 투자를 결정하는 주체는 LG자본이고, 정부가 하는 역할은 재정을 들여 공장 앞 도로를 만들어주는 일이다.

    과거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있었다면 지금은 중기재정운용계획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국가재정체계는 개선되었지만 국가의 역할은 작아지고 있다. 중기재정운용체계를 반기면서도 한편 씁쓸한 이유이다.(다음 글에서 ‘예산제도의 변화: 프로그램예산제와 톱다운방식’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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