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운동, 노동운동에 보탬됐나?
    By 나난
        2009년 10월 09일 05: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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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운동’으로 정리된다. 하지만 2009년 현재, 노동계 안팎은 입을 모아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우려한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진보정당의 분열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내 공장’의 벽을 뛰어넘는 산별노조운동도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현금인출기 같은 삶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공장 탈출”을 제안하며 “생산라인과 공장을 넘어 지역시민사회와 사회적인 힘에 기반을 둔 사회적 생존권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사진=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9일, <매일노동뉴스> 주최로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저자 조건준)출간 기념 토론회가 금속노조 9층 회의실에서 열렸다. 조 국장은 ‘잠일술 세대의 등장과 계급의 해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공장 또는 직장의 현장성, 혹은 현장조직 시스템이라는 것이 유지되는 조건에서 산별노조는 성공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 이유로 “IMF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구조조정 트라우마(상흔)를 깊게 새긴 노동자들이 ‘고용게임의 링’ 위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닌 ‘노동자에 대한 노동자의 투쟁’에 머물러 있다”며 “이에 대한 성찰과 해법 없이는 노조운동의 재활성화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87년 민주노조운동을 이끌었던 민주노조 조합원, 노동자들은 현재 어떠한 모습인가. 조 국장은 청년 비정규직을 ‘88만원 세대’라 표현한 것과 같이 기존 노동자들을 ‘잠일술 세대’라 표현한다.

    잠일술 세대란, “공장에 묶여 죽도록 일하면서 지친 몸으로 쓰러져 자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없는 시간 쪼개 술을 마시는 부모 세대”를 뜻한다. 이들의 삶은 “현금인출기에 불과할 뿐이며 ‘불통(不通)’이 돼 버린 노동자는 휴일조차 즐길 방법을 모른다.”

    시장독재시대에 맞는 새로운 운동 절실

    조 국장은 ‘잠일술 세대’의 탄생에 대해 “해방,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의 상실이자 노동에의 속박과 ‘계급의 해체’, 나아가서는 87년 이후 성공한 듯 보였던 노동운동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민주노조운동이 군사독재에 맞선 투쟁과정에서 탄생했다면 시장독재시대에는 그에 걸맞은 내용과 형식으로서 새로운 대안적 운동이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새로운 대안적 운동은 기존 민주노조운동의 전략적 과제였던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운동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출발한다. “87년 이후 성장해오던 노동운동이 IMF 경제위기를 겪으며 받은 치명적인 상처, 그 트라우마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산별노조운동의 본질적인 문제”라며 “여기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라는 기획은 그 상흔을 직접 치유하기보다는 엇나간 진단에 기초한 치유방식”이었다는 것.

    그는 “노동자의 정치세력화가 노동운동에 보탬이 되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라며 “운동의 권력게임을 현장에서부터 정치에까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해 놓았을 뿐 노동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데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그는 “정당이 진보적 대중정당이든 이념정당이든 이념적 측면을 중심에 둔 배타적 관계집단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사회운동 강화는 당과 노조 등 다양한 사회운동의 차이에 기반한 연대라는 새로운 관계 원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출간 기념 토론회가 금속노조 9층 회의실에서 열렸다.(사진=정기훈 / 매일노동뉴스)

    임단협 중심을 넘어서야 한다

    그는 대안노조운동과 같은 시도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생산라인과 공장을 넘어서 지역시민사회와 사회적인 힘, 즉 연합적 힘에 기초한 사회적 권리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생존권력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당과 노조의 사회운동화 촉진”을 제시했다.

    아울러 대공장의 사회화를 위해 “임단협 중심의 교육을 넘어 교육, 의료, 주택, 성, 환경 등 삶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주제들이 다뤄져 나눔과 연대를 위한 일상 활동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미 민주노조운동의 위기에 대한 논의가 현상적 측면을 넘어 본질적 문제까지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현장물신주의, 정파조직, 단기성과주의의 극복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이 연구위원은 “민주노조운동은 동아리, 지역, 산업, 정치 등과 같은 ‘또 다른’ 현장운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업과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며 “이념과 노선에 기반한 실천적 대안을 생산하고 이를 현장투쟁에 적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파운동이 모색돼야 하며, 실적 달성을 위한 자원의 소비가 아니라 전략적 과제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진억 민주노총 서울본부 조직국장은 “민주노조운동의 전략 과제가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운동이었지만 조합원들을 주체로 세우지 못했다”며 “다수의 비정규 노동자, 중소․영세노동자, 청년노동자, 실업노동자를 담아낼 수 있는 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산별노조 좌초할 수도

    김 국장 역시 지역에 기초한 사회운동노조를 제안했다. 그는 “미조직, 비정규, 중소영세노동자를 담아내고, 사회적 생존권 투쟁과 생활문화운동과 사회운동을 결합하는 새로운 노조운동을 모색하고 실험해야 한다”며 “향후 몇 년에 걸쳐 산별노조운동의 희망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산별노조가 후퇴하거나 좌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정순 고려대 교수(경제학) 역시 “‘공장 밖은 개념적으로는 ‘사회’로 지칭되겠지만, 구체적인 공간이라는 점에서는 ‘지역’으로도 대표될 수 있다”며 “한국 조직노동의 역사에서 주요한 취약 지점 중의 하나는 조직노동이 주도한 지역 공동체 구성의 역사적 경험이 매우 미미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이어 “‘공장 밖’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지역 내 진보 정치의 역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지역 내 진보적 (정당)정치 역량이 시민 사회와 노동조합간의 네트워크 역할을 (일정 부분) 담지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노조와 정당과의 연대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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