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의 제국, 미래의 제국
        2009년 10월 08일 10:3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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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27일, 불교와 군사주의의 관계를 연구하는 저희 학자 일동은 학회를 모두 다 마치고 오슬로 산책을 좀 했습니다. 산책을 하다가 옛날, 16~17세기에 덴마크 정권이 축성한 아케르슈즈성을 배회하게 되고, 결국 거기에 있는 제2차세계대전시 노르웨이 저항 운동 (Hjemmefront ; 국내 전선) 박물관으로 가게 됐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전쟁기념관과 독립기념관의 혼합인 셈인 것이죠. 거기에 다가오자 오슬로대에서 인도종교학 등을 가르치는 제 노르웨이 동료 한 분이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 박노자

    “참, 우리가 지난 며칠 간 학회하면서 온갖 민족주의적인 종교의 신화 등을 까는 데에 열중했는데, 여기를 보시면 노르웨이 국가가 만들어놓은 한 민족적 신화를 잘 분석해보실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공식적 국사(國史) 담론은 절대적으로 언급을 피하는 몇 가지 부분이 있거든요. 예컨대 1940~45년 독일 파쇼군 점령 기간 내에 자치 정부까지 꾸릴 수 있었던 노르웨이가 사실상 파쇼들한테 ‘특별대우’를 받았다는 사실, 즉 동유럽 등에 비해서 우대됐단 사실은 당연히 잘 언급 안 되죠.

    그리고 노르웨이의 저항 운동도 유고나 구소련의 빨치산과 비교조차 안 될 수준이었죠. 노르웨이에서 전쟁 기간 내에 약 1만 명만이 희생됐는데, 그게 동유럽에 있었던 독일의 그 흔한 죽음의 공장에서 2~3시간 내에 대량 도살된 인원수와 맞먹죠. 하여간 우리도 신화를 생산하면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노르웨이를 웬 이유 때문인지 대단히 ‘도덕적인 국가’ – 참, 형용 모순이 아닌가요? 국가가 도덕적일 수 있나요? – 라고 생각했던 일부 참가자한테 충격을 던진 발언이었지만 사실 제가 거기에다가 몇 가지 더 덧붙일 수도 있었어요.

    숨겨진 국사, 노르웨이의 부역

    노르웨이에서 전쟁 5년간 반파쇼 저항 운동의 참여 인원은 약 4~5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독일군에 자원 입대하거나 파쇼 조직(NS ; 민족 연합당)에 자원 가입한 이들은 약 6만 명에 이릅니다.

    그리고 위에서 이야기한 전쟁 희생자 1만여 명의 5분의 1 정도는 노르웨이 유대인들이었는데, 그들을 구속해서 독일 쪽에 넘겨준 것은 노르웨이 자치 정부 하의 노르웨이 경찰들이었죠.

    그 작전을 지휘한 총경이 나중에 전후에 재판을 받았다가 ‘단순히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라고 하여 무죄판결이 나고, 평생토록 계속 경찰 복무하여 행복하게(?) 은퇴한 사람에요. 이런 이야기를 하노라면 노르웨이가 과연 파쇼 독일의 피해자였는가, 노르웨이의 공식적 역사 담론에 상당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고문실에서 죽어나갔던 공산주의자들이나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유대인들이야 피해자임에 틀림없지만 하나 같이 독일군의 수주를 열심히 받은, 그리고 당연히도 전후에 하등의 처벌을 받은 일이 없었던 노르웨이 대기업들이야 차라리 수혜자에 가까웠습니다.

    사실,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죠. 정신대로 근로보국대로 끌려간 수많은 가난뱅이들이야 당연히 일제 전쟁의 피해자이었지만 황군 군납으로 돈을 번 경방의 김연수, 일본제국 국회의원으로까지 출세한 윤치호와 같은 그 시절의 경성의 거물들은 차라리 수혜자 축에 들죠.

    노르웨이와 한국 사이의 흥미로운 공통점을 이야기하자면, 양쪽이 각각 독일의 제3제국과 대일본제국의 상당히 우대 받는 병참기지였죠. 독일인에 비해 노르웨인이 ‘2등 아리안’ 이었듯이 조선인도 일본인에 비해 대동아공영권의 2등 신민이었지만, 일단 둘 다 3등이 될까 말까 하는 부류들, 폴란드나 중국의 점령지대에 대해 얼마든지 군림할 수 있었죠.

    한국, ‘2등 신민’

    그리고 ‘비인간’으로 분류된 제4지대, 구소련이나 중국의 국민당, 공산당 통치하 지역 주민들을 도살하는 전장으로 노르웨이인들도, ‘반도의 황국신민’들도 하급, 중급 장교 격으로 나아가 동참하면서 출세의 길을 닦을 수 있었죠.

    히틀러나 전시 일제의 희한한 잔혹성이야 다행히도 과거의 일로 남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이와 같은 서열질서적인 지역적 위계는 미국의 세계 제국, 달러 제국이 점차 패망돼가는 오늘날에 다시 한 번 돌아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단, 유럽에서 이 새로운 ‘지역적 제국’의 중심은 유로권의 중심인 독일 프랑스 등일 것이고, 동아시아에서는 아마도 – 새로이 집권한 민주당이 잘하기만 하면 – 중국의 발달된 남부 해안 지구들과 일본일 것입니다.

    유럽에서는 유로권의 중심 국가들이 핵심적인 제1지대를 이루고, 유로권의 취약한 경제(스페인 등)들이 제2지대가 되고, 유럽연합에 가입되었으나 유로 도입할 수 없는 유럽 주변경제(에스토니아 등)들이 제3지대가 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유럽연합에 들 희망이 없는 우크라이나 등은 제4지대로 편입될 듯합니다.

    물론 산업의 분업은 이들 4개의 지대 사이에서 아주 차별적으로 이루어질 듯합니다. 예컨대 아디다스사의 디자인 등을 독일이 맡겠지만, 오펠 자동차의 새로운 공장을 아마도 폴란드 정도의 나라에서 세울 것이고, 그것보다 환경적으로 영향이 나쁜 철강 산업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몫일 것입니다.

    통합유럽의 1지대에서 4지대까지

    그리고 아디다스사나 그 하도급 업체의 생산라인은 아예 유럽 밖에,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위치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죠. 이 4개의 지대 사이에서 자본이야 장애 없이 이동하겠지만 우크라이나 사람이 제1지대인 독일로 이동해서 노동으로 돈을 벌자면 가장 어렵고 더러운 직장에 취직하여 어렵사리 노동비자를 따내야 할 것입니다.

    시리아나 알제리아인은 아예 그런 비자를 따낼 확률 자체도 아주 낮을 것이고요. 하나의 피라미드처럼 분업구조를 이루고 일체 노동자들에게 ‘국적’이라는 명찰을 달아 그들의 이동을 철저하게 단속하면서 저임금노동력의 착취의 초과이윤을 톡톡히 버는 새로운 유럽연합제국.

    미 제국의 패망이야 사회주의자로서 눈물 흘릴 일은 전무하지만, 미국 제국 이후에 들어설 여러 지역적 분업 구조들에 의거한 새로운 제국주의적 세계질서는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환상을 버리는 게 좋을 듯합니다.

    자본주의가 과잉 생산의 위기로 접어들면 접어들수록 오히려 저임금 노동력 착취의 초과이윤 효과를 그대로 지켜내기 위한 ‘국적별’ 노동력 통제가 더욱더 가혹해질 것입니다. 주변부 노동자들이 중심이나 준중심으로 허가 없이 이동해버리면 그들에게 중심/준중심의 기준대로 임금을 높이 주어야 하는데, 그게 자본의 입장에서는 그 나라에 진출해서 거기에서 공장을 세우는 일보다 이윤이 훨씬 덜 나죠.

    그리하여 짐승사냥식의 이민자 단속은 아마도 앞으로 더욱더 잔혹해지고 파쇼적 냄새를 더욱더 풍길 듯합니다. 세계적 미국 제국이든 지역적인 패권국가 중심의 새로운 지역별 질서든 자본에 짓밟힌 노동자들은 그대로 늘 속출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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