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지예산 정말 늘어났나?
        2009년 10월 08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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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09년~’13년까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이 발표되었고, 이와 동시에 국무회의를 통과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정부가 발표한 이 계획에 의하면, 내년도(2010년) 정부의 재정운용 목표는 경제 활력의 회복, 서민생활의 안정, 그리고 재정건전성의 확보로 요약된다.

    예산의 총 규모는 291.8조 원으로 올해에 비해 2.5% 증가하였으며, 이 중 보건복지 예산은 전년대비 8.6%의 증가율을 보였다. 분야별로 보더라도 보건복지 예산은 81조 원으로 전체 예산의 27.8%를 차지하였다. 정부는 이러한 수치들을 근거로 이명박 정부의 복지지출 비중이 역대 최대임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예산 정말 늘어났을까?

    하지만 복지예산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과연 이번 예산안이 사상 최대의 복지예산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첫째, 이번 복지예산 편성은 새로운 복지 부문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단순 자연증가분을 상당히 포함하고 있다. 즉 과거의 복지예산과 차별성은 거의 없고 단지 수치상의 증가분만을 보이는 구석이 많다는 것이다. 복지예산은 자연증가분이 반영되는 항목들이 많기 때문에 단지 숫자상의 증가는 큰 의미가 없다.

    추경을 포함한 수치로 계산한다면, 이번 복지예산 증가율은 사실상 동결에 가깝다는 주장도 있다. 9.5% 증가한 연금과 같은 법정예산은 정책의지와 관계없이 늘어나는 것이고, 기초생활보장예산 증가율 2.2%는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단지 수치상으로만 따진다면, 현재의 복지예산 항목이 전혀 변함이 없는 상태에서도 기초생활보장, 국민연금 등의 자연증가분만으로도 복지예산은 2011년에 또 다시 역대 최대가 될 것이 틀림없다.

    둘째, 복지 분야의 신규 사업을 위한 예산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물론, 정부는 새로운 복지 지출을 크게 늘렸다고 말한다. 정부는 보건복지 분야의 대표적인 새로운 사업으로 기초생활보호 대상자와 차상위층의 빈곤 해소를 위한 취업 지원과 자활능력 확충에 3,984억 원을,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13만 가구에서 18만 가구로 확대하는데 83,348억 원을, 중증장애인 연금의 신규 도입에 1,474억 원을 투입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조삼모사 혹은 용두사미

    그러나 경제위기로 인해 실업자로 전락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 약 1천억 원 정도 늘어났다고 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층의 취업 지원과 자활능력 확충에 관련된 예산은 실제로는 수급자 수가 2009년 158.6만 명에서 2010년 163.2만 명으로 4.6만 명 늘어난 것에 비하면 예산은 6.9조 원에서 7.0조 원으로 거의 변함이 없는 수준이다. 맞춤형 복지라는 이름으로 대상자 개인별로 지급되던 기존의 예산을 줄이는 방안이 아니면 불가능할 것인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운영방안이나 산출근거에 대한 설명은 없는 것 같다.

    중증장애인 연금의 경우도 유사하다. 온갖 생색을 내면서 신규로 도입된 중증장애인 연금은 기존의 장애수당이 폐지되면서 전환되는 것이며, 대상자와 지원 규모 등 내용적으로도 거의 차별성이 없다. 현재 장애수당은 최저생계비 120% 이하인 장애인을 대상으로 기초수급자에게는 월 13만 원을, 차상위 계층에게는 월 12만 원을 지원하고 있는데, 장애인 연금에서는 최저생계비를 150%로 상향 조정하되 기초수급자에게는 월 15만 원을, 차상위 계층에게는 월 14만 원을, 그리고 그 외의 경우에는 9만 원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즉, 기초수급자와 최저생계비 120% 이하인 차상위계층에게 단지 2만 원을 증액했을 뿐이다. 전체 지원 규모도 장애수당은 1,090억, 장애인연금은 1,474억 원으로 별 차이도 없다. 그야말로 조삼모사이고 용두사미다.

    셋째, 복지예산의 분류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서민주거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추진되는 보금자리주택 공급과 관련하여 총 2조 7천억 원의 예산이 증액되었다. 이는 전체 보건복지예산 증가 금액인 6조 4천억 원의 40%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과연 보금자리주택 공급이 복지예산에 포함되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분류법의 변화와 과장광고

    주택은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적 재화이므로 넓은 범주에서는 복지예산에 포함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논리라면 보금자리주택 외의 국토해양부에서 추진하는 도로와 항만 등 각종 건설 사업들을 모두 복지예산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 OECD 국가에서는 통상 주거비 지원이나, 주택임차료 보조 수당 등을 주거와 관련된 복지비용으로 분류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발표한 ‘사상 최대의 복지예산’은 새로운 복지 부문을 창출한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의 카테고리를 ‘건설’에서 ‘복지’로 바꾸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이 있다. 이것은 복지예산이 증가한 것이 아니라 ‘분류법의 변화’ 때문에 복지로 분류되는 항목이 증가한 것에 불과하다.

    넷째, 보건복지예산 중에는 오히려 감축된 항목도 있다. 일자리 관련 예산은 올해 4.7조 원에서 3.5조 원으로 감액되었는데, 이는 근본적인 정책의 목적과 대상이 분명하지 않아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희망근로사업”에 대한 비난을 의식하고, 내년에 어느 정도 경제상황이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설령,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는 등 경제상황이 나아지더라도 이에 비례하여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정부에서 발표하는 경제회복 지표들과 실제 서민들의 실체 체감하는 삶과는 괴리가 너무 크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자리 예산을 줄인 것 등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지점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올해와 내년의 실질적인 예산이 별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전체 예산 대비 증가율이나 타 분야 예산 대비 증가율을 얘기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이는 내용상의 차이도 없으면서 포장만 화려하게 꾸며대는 전형적인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복지 예산 비중이 역대 최고’라는 정부의 주장은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일종의 ‘과장 광고’라고 생각한다.

    2009년 10월 8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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