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제고사, 학생 자고 교장 깨우고
    연인원 3만 명 연가투쟁 하는 셈
        2009년 10월 08일 08:4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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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가오는 10월 13일과 14일, 이틀에 걸쳐 전국의 초 6, 중 3, 고 1 학생 196만 명이 일제고사를 봅니다. ‘임실의 기적 만들기’가 들통 나 한 차례 고비가 있었지만, 가벼운 징계와 세부 방안 변경으로 MB 정부는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바 있습니다.

    일제고사를 원만하게 실시하기 위한 사전 준비는 어느 정도 끝났습니다. 0교시와 야자는 기본이고, 각종 모의고사와 초등학생의 방학 중 보충수업이라는 쾌거도 이룬 바 있습니다. 모든 게 학교평가와 교장 교감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한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그리고 내년 교육감선거를 염두에 둔 시도교육감들의 노력 때문입니다.

    이번 일제고사에서도 체험학습이나 각종 활동들이 펼쳐집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체험학습을 불허하라고 발빠르게 조치를 취해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을 테고, 정부와 언론은 그 수에 신경을 쓸 겁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일제고사처럼, 거부자의 숫자만 들면서 ‘무난하게 실시되었다’라고 언급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하지만 거부자 집계 현황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학교 안에서는 여러가지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이번 일제고사와 관련하여 소소하지만 재밌는 관전 포인트입니다.

    잠자는 학생과 깨우는 교장

    우리 교육의 오랜 전통은 추석날 쉬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 명절 바로 다음에 시험을 배치합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10월 초 추석, 뒤이어 중간고사입니다. 일제고사는 이 다음입니다. 중간고사와 일제고사 사이에 간격을 두지 않고, 바로 연결시킨 학교도 있습니다. 중간에 모의고사를 넣은 학교도 있습니다.

    스트레스 조금 쌓입니다. 내신에 반영되지 않는 일제고사라고는 하나, 학교의 압력이 상당합니다. 그렇게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시험공부, 부담감, 짜증 속에 시간을 보내다 일제고사를 맞이합니다.

    그런데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시험시간이 70분입니다. 문제지와 답안지 나눠주는 시간까지 합하면 80분입니다. 초등학생은 작년 시험시간만 60분이었는데, 올해 40분으로 줄었습니다. 그래도 준비시간까지 합하면 50분입니다. 평소 수업시간보다 깁니다. 초등학생은 10분, 중학생은 35분, 고등학생은 30분이 더 추가됩니다.

    문항 수는 많아야 40개입니다. 문제를 다 풀었지만 시간은 한참 남습니다. 검토하고 재검토하는 이들이야 언제나 있지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내신에 반영되지도 않는데 기를 쓸 필요 없습니다. 더구나 짜증나는 시험입니다.

    남아있는 기나긴 세월 동안 무엇을 할까요. 잡니다. 그게 남는 장사입니다. 하지만 교장이나 교감 샘은 다릅니다. 교실에도 감독교사가 2명 있고, 복도에도 있지만, 돌아다녀야 합니다. 자는 학생은 깨워야 하고, 설렁설렁 감독하는 교사에게는 눈치를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1점이라도 더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일단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말입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되는 그림이 ‘잠자는 학생과 깨우는 교장’ 되겠습니다.  

       
      ▲답안지에 적어놓은 ‘훌륭한 답안’. 

    낙서

    계속해서 자는 것도 지겹습니다. 백지동맹이나 일자형 답안지 등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괜히 찍히면 몸도 마음도 피곤해지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눈 앞에 종이와 펜이 있습니다. 낙서합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창의성, 사회비판의식, 그리고 자유입니다. 작년 12월 말에 있었던 중 1, 2 일제고사에서도 좋은 작품이 나온 바 있습니다.  

       
      ▲"이 면은 여백입니다."라고 돼 있는 부분이 여백없이 살 수밖에 없는 학생의 마음으로 변형됐다. ‘근조’ 일제고사 그림도 눈에 띈다.

    서울의 한 학생은 OMR 카드 답안지의 이름 기입하는 란에 “아 짜증나 이 시험 왜 보는 거야. 차라리 굶는 애들 밥이나 주지. 학교는 더 늦게 끝나쟈나”라며 훌륭한 답을 쓴 바 있습니다.

    다른 학생은 시험지의 남은 여백에 그림 그리고 시 쓰는 ‘여백의 미’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일제고사 영정과 향을 그린 다음, “이 면은 여백입니다”라고 인쇄되어 있는 부분을 “이 시험은 염장지르는 일제고사 쀍입니다”로 바꿉니다. 한 시대 동년배들의 마음이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수업결손

    이번 일제고사부터는 시험감독이 2명으로 늘어납니다. ‘임실의 기적 만들기’로 바꾼 풍경 중 하나입니다.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인해, 수업결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시험은 학교 전체가 보는게 아니라 한 학년만 치릅니다. 따라서 중학교 3학년이 문제를 풀 동안 1학년과 2학년은 수업을 합니다. 시간도 다르기 때문에, 조용히 수업을 해야 합니다.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나 교과 선생님들이 학급수의 2배 정도 되면, 2인 감독도 할만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른 학년 선생님들도 시험감독하러 들어가야 합니다. 교과부와 교육청은 ‘필요시 학부모 보조감독 활용’하라고 했지만, 학부모 모셔오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시험보지 않는 학년의 수업결손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미 수업시간표를 조정한 학교도 있을 겁니다. 어떻게 추가로 시험감독 들어가는 선생님이 없다고 하더라도, 시험분위기 조성에 걸맞은 수업을 해야 합니다. 소리나는 수업은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연인원 3만명 이상의 대규모 연가투쟁

    시험이 무사히 치러져도 끝난 게 아닙니다. 어쩌면 그 때부터가 시작입니다. 지난 번 임실의 성적 조작은 시험 이후 채점, 집계, 보고 과정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제고사부터는 새로운 방식이 동원됩니다. 학교에서 채점하는 일은 없어집니다. 시험지와 답안지는 모두 교육청에서 가져갑니다. 학교로 올 때도 두 단계에 걸쳐 컨테이너와 트럭 등으로 오더니, 갈 때도 보안을 유지하면서 운송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을 대상으로 수능 보는 격입니다.

    채점은 교육청이 정한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대체로 10월 29일이나 30일부터 시작하여 2박 3일이나 3박 4일 동안 채점만 합니다. 196만명의 5개 과목 답안지를 봐야 하니, 양이 상당합니다. OMR 카드에 기재된 선다형 답이야 기계가 읽지만, 서답형 답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 봐야 합니다.

    교육청 인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학교 선생님들을 ‘채점단’이라는 이름으로 차출해야 합니다. 서울의 경우는 초등교사 440명과 중등교사 810명 등 1,550명입니다. 충북은 초등 78명과 중등 222명 등 300명입니다. 강원은 초등 70명과 중등 250명 등 320명, 경남은 초등 140명과 중등 582명 등 722명입니다.

    전국 16개 시도의 채점단 총규모를 교과부도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서 정확하게 말하기 어렵겠지만, 서울 등 4개 시도의 사례에 비추어보면 최소 1만명 정도로 예상됩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가 11,160개교이니 한 학교당 한 명씩 빼오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이 인원이 10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나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합숙하면서 채점에 매진합니다. 놀토주가 아니기 때문에, 2일에서 3일 동안 전국의 학교에 구멍이 생깁니다. 연인원으로 따지면, 최소 3만명으로 추산됩니다.

    하루 인원 1만명, 3일에서 4일에 걸쳐 연인원 최소 3만명이라고 하는데, 이 숫자는 전교조 연가투쟁보다 많습니다. 하지만 전교조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수업결손 우려’ 등으로 이야기하던 분들이 웬일인지 대규모 채점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채점단이라는 게 일제고사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 새롭게 고안된 방식으로, 다르게 표현하면 ‘일제고사의 성공을 위해 MB정부가 동원한 대시민 연가투쟁’인데도 말입니다. 보수단체의 움직임을 기대합니다.

    이번 일제고사의 예산은 117억원입니다. 일반예산 17억원에다가 쌈짓돈이라 불리던 교과부의 특별교부금 100억원이 투입됩니다. 생쑈에 들어가는 세금 치고는 조금 많습니다.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무상급식 하려다가 좌초된 예산 171억원의 절반이 넘습니다. 앞서 한 중학생의 “이 시험 왜 보는 거야. 차라리 굶는 애들 밥이나 주지”라는 답이 생각납니다. 역시 청소년은 나라의 보배이자 미래입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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