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 동상이몽, 치열한 기싸움
    2009년 10월 07일 08: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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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냉전구조 청산과 비핵평화를 향한 대화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는 가운데, 회담 형식을 둘러싼 관련국들의 기싸움이 치열하다.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월 5일 원자바오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조선은 조미회담 상황을 지켜보며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북미 양자회담 성사에 관심

이는 북미 양자대화의 결과를 보고 6자회담 복귀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으로, 미국에게 조속한 양자대화 수용 및 포괄적 협상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비록 조건을 달았지만, 김 위원장이 직접 6자회담을 언급한 것은 6자회담에 대한 태도가 한결 유연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김 위원장이 9월 중순 다이빙궈 중국 특사와의 접견에서 “양자간, 다자간 협상에 임하겠다”고 말한 것에 비해서도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인 무게는 북미 양자대화에 두고 있다.

   
  ▲ 원자바오 중국 총리(왼쪽)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공을 넘겨받은 미국은 북한의 태도 변화에 긍정적인 해석을 보이면서도 북미 양자회담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회담’으로 간주하고 있다.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이 회담의 재개를 위해 외교적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 역시 북미 양자대화가 6자회담을 대체하는 것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나섰다.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다른 참가국들 역시 6자회담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북미 양자회담에 모아진다. 9월 중순 북미 양자대화 수용 방침을 밝히고 대화 시점 및 동맹국들과의 사전 협의에 몰두했던 미국은 10월 이내에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북한에 보낼 가능성이 높다.

11월 중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북핵 문제에 진전을 이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역시 6자회담 재개의 문을 반 쯤 열어 놓아 북미 양자대화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나섰다.

6자회담을 둘러싼 동상이몽

향후 한반도 비핵평화 협상과 관련해 핵심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는 ‘가장 적절한 대화 틀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북미 직접 담판을 선호하는 북한은 양자대화를 6자회담의 ‘대체재’로 간주한다. 반면 미국은 “양자대화는 6자회담의 틀 내에서만 가능하다”며, 양자대화를 6자회담의 ‘보완재’로 여기고 있다. 이를 반증하듯 미국은 연일 북미 양자대화의 목적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있다”고 못 박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6자회담을 선호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6자회담을 통한 북핵 해결은 오바마 행정부가 대선 유세 때부터 유지해온 대북정책의 기본 원칙이라는 점에서 쉽게 바뀔 성격이 아니다.

여기에는 북핵 문제는 핵비확산 체제의 맥락에서 다뤄야 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또한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중국 및 러시아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아울러 핵협상 타결시 대북 경제 및 에너지 지원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데, 6자회담은 비용 분담을 위한 적절한 틀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월 동아시아 순방에 앞서 밝힌 대북정책에서 북한의 핵포기 시 상응조치의 하나로 “다른 나라들과 함께 북한 주민들의 에너지 수요와 경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 대목이 주목된다.

끝으로 북한의 불응시 6자회담이 다자적 압박 구도로 유용하다는 점 역시 오바마 행정부가 6자회담을 고수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6자회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공식적인 입장은 “우리 공화국의 자주권과 평화적 발전권을 난폭하게 유린하는 데 이용된 6자회담 구도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는 6자회담 참가국들이 지난 4월 5일 북한의 위성 발사를 유엔 안보리로 가져가 문제 삼은 것에 대한 반발을 의미한다.

이를 뒤집어보면,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한의 위성 발사 권리를 비롯한 자주권과 평화적 발전권을 존중한다면,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핵문제와 함께 북한의 로켓 문제가 뜨거운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는 속사정은 또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은 6자회담에서 일본과 함께 찰떡궁합을 이루면서 대북 강경 자세를 선보였다. 대표적으로 작년 12월 6자회담에서 북핵 검증을 에너지 지원과 연계했고, 이는 6자회담 파탄의 결정적인 이유로 작용했다. ‘2012년 강성대국’을 앞두고 속도를 내고 싶어 하는 북한으로서는 구도도 바뀌고 시간도 많이 걸리는 6자회담을 선호할 까닭이 별로 없는 것이다.

굴곡 많았던 6자회담

6자회담의 재개 여부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굴곡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2003년 8월에 시작된 6자회담은 크게 세 차례의 변화를 겪어왔다. 첫째는 1차 회담부터 2004년 6월 3차 회담 때까지의 ‘북미 양자대화 없는 6자회담 시기’로, 실질적인 성과는 없이 북미간의 공방전으로 허송세월했다.

둘째는 2005년 8월 1단계 4차 회담부터 2006년 12월 2단계 5차 회담까지로 ‘6자회담 내에서 북미 양자 접촉이 병행된 시기’이다. 이 기간동안 포괄적인 문제 해결 원칙을 담은 9.19 공동성명이 나왔지만,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불거지면서 9.19 공동성명 이행은 지체되었고, 결국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셋째는 2007~2008년으로, ‘북미회담에서 타결과 6자회담에서의 추인 시기’이다. 2007년 1월 북미 대표가 독일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BDA 문제 해결 및 중유 제공과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 봉인 합의가 이뤄졌고, 한 달 후에 열린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통해 이를 추인했다.

또한 북한의 핵신고서 제출 문제로 난항을 겪던 2008년 4월에도 북미 대표는 싱가포르에서 만나 핵 신고서 제출과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골자로 하는 합의를 이뤘고, 7월 6자회담에서 이를 확인했다.

북핵 검증과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으로 갈등이 고조되었던 2008년 10월에는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 잠정 합의를 이뤘지만, 그 해 12월에 열린 6자회담에서 검증에 대한 최종 합의 도달에는 실패하기도 했다. 이러한 굴곡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핵협상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온 경우는 북미간에 실질적인 대화가 이뤄졌을 때가 많다.

6자회담의 향후 위상도 관심거리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실질적인 협상은 북미 직접대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 막바지 때처럼, 협상은 북미 대화에서 하고 6자회담은 이를 추인하는 형식을 의미한다.

반면 남한은 이러한 구도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북미 양자대화가 시작되더라도 그게 협상장이 되고 6자회담은 추인장이 되는 것은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입장은 미국과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북미 양자대화의 핵심 의제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이 수준을 넘어서면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에, 오바마 행정부는 포괄적인 논의가 가능하다는 방침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9월 15일 “북미 대화가 열릴 경우 상응하는 대가와 인센티브를 북한에 분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하겠다”며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밝힌 것에서도 이러한 기류 차이는 감지된다.

북한, 동시다발적 협상 추구하나?

그렇다면, 최근 북한이 북미 양자대화, 다자회담, 6자회담을 함께 언급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해답의 실마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입니다. 조선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조미 양자회담을 통해 조미간 적대관계가 반드시 평화관계로 바뀌어야 합니다. 조선은 조미회담 상황을 지켜보며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하길 원합니다.”

이 발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을 가장 중요한 회담 틀로 간주하고 있고, 양자회담에서 적대관계가 평화관계로 전환되는 데 성과가 있다면,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적대관계에서 평화관계로의 전환이란, 북미 관계정상화와 함께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그리고 미국의 대북 군사위협의 제거를 포함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 북한은 동시다발적인 협상에 나설 공산이 크다. 협상의 중심축은 북미 회담에 두면서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의사를 집중적으로 검증하려고 할 것이다. 또한 정전체제 하에서 북한의 일방적인 핵포기의 부당함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도 요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9.19 공동성명에서는 “직접 관련 당사국들은 적절한 별도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가질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남북한과 미국, 중국의 참가가 유력하다. 북한이 말하는 ‘다자회담’은 바로 이것을 겨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관계정상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통한 비핵화를 추구한다’는 북한의 협상 전략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MB 정부의 전략적 패착

다시 한국의 태도가 중요해진다. ‘그랜드 바겐’이라는 자기 덫에 걸린 이명박 정부는 마치 이 구상이 “북핵 해결의 근원적 처방”인 것처럼 포장하면서 5자간의 협의에 치중하는 모양새이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전술적 변화’로 폄하하면서 기다리기 전략을 고수하는 것도 문제이다. 외교를 통해 달성해야 할 목표인 ‘비핵화’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데에 따라 나온 전략적 패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전임 정부들이 부시 8년간 ‘미국의 좁고도 좁은 범위’에서 허덕였던 것과는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북한이 남북관계 정상화에 강한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 역시 호기이다. 무엇보다도 비핵화 달성을 위한 핵심적인 상응조치들, 즉 경수로 제공과 평화협정 체결, 그리고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과 한미군사관계의 변화에서 한국은 핵심적인 당사자이다.

주도적 역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의 차별성에 대한 집착과 한 건을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올 수 없다. 전임 정부의 성과 계승과 넓어진 외교적 공간의 활용을 바탕으로 치밀한 전략적 사고를 할 수 있을 때, 한국의 비핵평화 외교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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