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의 야먕, 순욱의 민생개혁 정책
        2009년 10월 05일 12: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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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억수씨.

    황제, 가장 값비싼 허수아비

    조조를 끌어들여 이각과 곽사를 평정한 황제는 조조에게 거의 통째로 조정을 맡기다시피 한다. 조조는 스스로 승상이 되어 조정의 대권을 틀어쥐고 순욱은 일등공신으로서 시중(侍中)겸 상서령(尚書令)에 임명되어 조정의 대사를 좌우할 자리에 앉게 되었다.

    황제는 황실의 면모를 일신하기 위해 우선 연호를 건안(建安)으로 바꾸었다. 조조가 낙양에 입성할 때 래대안(來大安) 깃발을 들고 들어왔기 때문에 황제가 건안(建安)으로 화답한 것이었다. 툭하면 제후들간의 전쟁으로 난리가 일어나던 당시에 평화와 안녕은 백성들이 바라는 최고의 소망이었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던 돈을 주워 주머니에 넣듯이 황제를 차지한 조조는 의욕에 불탔다. 조조는 앞선 실권자들과 다른 정치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조조는 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백성들의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조조는 전군에 명(命)을 내려 함부로 약탈과 살상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백성들에게 토지와 식량을 나눠주었다. 자신이 청년 시절 처음 관직을 받았을 때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관대작들의 자식들까지 벌을 내렸던 것처럼 엄정하게 국가의 제도를 운용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황제는 중원 천하에서 가장 값비싼 허수아비였다. 처음에는 외척과 환관에 휘둘리는 허수아비였고 황건 농민 봉기와 십상시의 난으로 이들의 기득권 체제가 무너진 뒤에는 동탁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동탁이 죽은 뒤에는 이각과 곽사의 허수아비로 지냈다. 이제 황제는 조조의 힘을 빌려 겨우 황제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형식적 황제가 그대로 있었을 뿐, 사실상 정권은 계속 바뀌어왔던 셈이다. 황제의 배후에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세력들이 모두 정치를 엉망으로 하는 바람에 집권 기반이 부실해지고 이 때문에 잦은 내분과 암살이 이어졌던 것이다.

    순욱의 꿈

    이것은 순욱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순욱은 황건 농민 봉기라는 거대한 충격을 통해 이후의 지속적인 정권교체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황건 봉기가 실패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성과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기존의 낡은 지배체제를 크게 흔들었고 그 결과 연속적인 정권교체를 이뤄낸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덕에 황건당에 뿌리를 둔 내가 오늘날 결국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젊음이 한낱 이루지 못할 하룻밤의 꿈은 아니었구나. 나의 젊음이 다 쓸데없는 것은 아니었구나!"

    순욱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지난 날의 회한과 감상이 순욱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욱은 세상 모든 것들에 감사하고 싶어졌다. 원래 머릿속에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그려본 이념작가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들 중 대개의 경우는 자신이 그린 세상 그림을 단지 머릿속의 그림으로 간직했을 뿐, 실제 눈앞의 현실로 이뤄놓고 죽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순욱은 자신이 조조를 만나, 행복한 이념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일정한 권력 기반 위에서 눈앞의 현실로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낙양은 너무나 철저히 파괴되어 있어서 도읍이라 볼 수 없었다. 당장 재건이 시급했다. 그러나 이 대목에서 조조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허물어진 낙양을 보수하느니 차라리 다른 곳으로 도읍을 옮기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낙양은 예전의 황궁이 있던 곳으로 황제의 다른 세력기반이 존재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조는 아예 황제가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황제의 지지기반이 전혀 없는 전혀 새로운 땅으로 황제를 강제 이주시킨다.

    조조, 천도하다

    그곳은 허창이었다. (이후 위나라의 본거지가 된 이곳을 사람들은 허도라고 불렀다.) 조조의 주도로 도읍을 옮기고 황제를 이주 시키는 것 자체가 조조의 실권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조는 서둘러 도읍을 옮긴다.

    허도로 도읍을 옮기자 황제는 조조에게 큰 땅을 하사한다. 이 땅은 매우 커서 한 개의 현(縣)전체에 달하는 규모였다. 물론 말은 하사지만 조정의 실권을 이미 조조가 쥐고 있는 판국에 이것은 황제가 하는 일종의 정치적 몸짓에 불과했다. 어차피 자기 땅도 아닌 것을 그냥 조조의 땅이라고 선언해 준 것이다.

    그러나 조조의 꿈은 이미 ‘대토지 소유’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다. 조조는 어떻게 천하를 모조리 평정할 것인지를 골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자기 손아귀 속의 황제가 자신에게 거대한 토지를 하사하자 조조의 입가에는 슬며시 비웃음이 번졌다.

    "황제가 나에게 토지를 내려? 후후!!"

    이 때 조조는 황제가 내린 땅을 사양하는 글을 모든 백성들에게 발표한다. 이렇게 조조가 긴 글을 써서 황제가 내려준 선물을 사양하는 바람에 사람들은 황제가 조조에게 준 선물은 기억을 못하고 조조가 쓴 ‘글’만 기억하게 되었다.

    이것은 글의 위력이기도 하거니와 황제와 조조 사이의 정치력 싸움에서 조조가 승리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했다. 황제의 선물을 사양한다는 것은 이미 조조가 황제보다 내용상 더 상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조조가 발표한 글을 양현자명본지령(讓縣自明本志令)이라고 한다. 여기서 ‘양현’이란 황제가 조조에게 내린 봉읍을 사양한다는 뜻이고 ‘자명본지’란 자신의 본 뜻을 밝힌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본 뜻이란 조조가 스스로 ‘천하를 탈취할 뜻이 없음’을 말한다. 그러니까 황제가 준 현(縣)을 사양하면서 자기가 황제를 구한 본 뜻을 해명한다는 얘기였다.

    여기서 잠시 조조의 양현자명본지령이 어떤 내용인지 살펴보고 지나가자. 조조는 이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양현자명본지령

    "내가 본래부터 무슨 큰 뜻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 관리로 입문하였을 때 나는 군(郡) 하나 정도 잘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었다. 나중에 나라가 혼란스러워져 나라를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에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터에 뛰어들었다. 이 때 까지도 나는 단지 역적 동탁을 정벌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했는데, 부지불식간에 내가 이런 자리(한나라 승상)에까지 오르게 되었고, 그새 나의 정치적 야심도 조금씩 커져서 지금 나는 제환공(齊桓公)이나 진문공(晉文公)처럼 되고 싶어졌다. 처음엔 몰랐지만 정치에 참여하면 할수록 ‘꼭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불타는 일념이 자꾸 생겼다.

    그러나 나는 황제의 자리를 찬탈할 생각까지는 없다. 나는 한나라 승상이 된 것으로 이미 만족하고 있다. 인간의 자리 욕심이 끝없다고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만족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겠다. 나는 이 자리 만큼은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가 이 나라의 중심에서 자리잡고 있지 않으면 수많은 제후들이 스스로 황제를 칭하고,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오르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조조가 없었다면 이미 수많은 제후들이 황제를 칭하고 왕을 표방해 이미 중원 천하는 갈갈이 찢겨진 혼란한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잠재적 역적들을 모두 평정해 천하를 평온케 할 때 까지 나는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혹자는 나더러 이제 황제를 구하고 공적을 이루었으니 물러나 이름을 남기는 것이 어떤가 하고 말한다. 실권은 모두 내놓고 단지 명예만 얻은 채 젊은 나이에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라는 얘기다.

    절대로 그렇게는 할 수 없다. 승상자리도 그만둘 수 없고, 병권도 내놓을 수 없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지금 병권을 내놓으면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나의 준비된 반대파들이 당장 몰려 들 것이다. 그러면 내 가족, 부하들뿐만 아니라 황제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미 개인 조조가 아니다. 나 조조는 나와 내 정파의 상징물이다. 내가 권력을 포기하는 순간, 나는 지금까지 온갖 죽을 고비를 함께 해온 내 부하들의 손에 먼저 죽을 것이다. 그러니 난 지금 권력을 내놓을 수 없다.

    황제가 내게 준 거대한 땅도 필요 없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권력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추구해왔다. 토지와 재물 같은 유형자산에 눈이 멀어 있었다면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소원은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동서남북에서 황제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제후들을 평정해 이 나라를 태평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은 나 밖에는 할 사람이 없다. 황제를 지키면서 천하를 통일할 도덕적이며 능력을 갖춘 인물은 나 외에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때까지 나는 조정의 권력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시는 이 땅에 나처럼 불행한 신하가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낮에는 장수들과 밤에는 문인들과

    조조는 이 글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권력에 대한 태도를 밝히고 있다. 일단 스스로의 권력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그래 나 야심있다." 는 입장을 솔직히 밝히면서 ‘꼭 내가 아니면 안된다.’ 라는 권력형 자만심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조조는 동시에 자기 권력의지의 한계까지 언급하고 있다. 조조는 ‘처음엔 작았던 야심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커졌지만, 그래도 황제의 자리를 탐할 계획은 없다. 그저 이 나라를 다시 통일해 태평성대를 복원하는 하자는 것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조는 글쓰기를 좋아한 문장가였고 독서가였다. 전투를 할 때마다 항상 대오의 중앙에 그 전투의 명분을 큰 글씨로 적어놓고 진격하기도 하였다. 조조는 틈틈이 병서의 주해를 정리하거나 시와 산문을 지었고 서예에도 뛰어났다. 한 시인은 조조를 일러, "낮에는 장수들과 함께 견고한 적진을 무너뜨리고, 밤에는 문인들과 함께 화려한 저택에서 시를 지었다."고 할 정도였다.

    따라서 조조의 집정 시기에는 문학이 크게 흥성하였고 이 시기의 문화적 흐름을 건안문학(建安文學)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양현자명본지령은 호탕하고 솔직하게 조조의 권력의지를 표방한 글로 이 건안문학의 효시가 되는 글이었다.

    조조가 이렇게 글을 써서 자기 권력의지를 솔직하게 표현하기 전까지는 이런 일은 거의 없었다. 정치가들은 대개 천자로부터 벼슬을 받음으로써 관직에 임용되었을 뿐이었다. 이렇듯 백성들에게 자기 권력의지를 공표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그 때까지는 거의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러한 조조의 시도를 조금씩 따라 하기 시작했다.

    순욱의 민생 개혁정책

    조조의 양현자명본지령을 읽은 순욱은 크게 기뻐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순욱이 바라던 바였다. 조조는 스스로 야심을 인정하면서 "나는 천자가 될 생각이 없다. 그러나 실권을 포기할 생각도 없다." 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것이 순욱이 볼 때는 권력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였다.

    "천자의 자리를 탐하지 않는 순수한 실권자!"

    이것은 권력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치부해 버리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내가 꼭 그 권력을 사적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이 순욱이 그리는 순결한 권력의 상징이자 권력에 대한 이상적인 태도였다. 권력의 방관자도 아니고, 권력의 사적소유에 매몰되는 것도 아닌, 바로 그 역할을 조조가 해주고 있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물론 조조가 말한 ‘나 아니면 안된다’ 는 태도가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순욱이 보기에는 이것이 진정으로 솔직한 권력의지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는 것 보다는 내가 하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불타는 일념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권력의지가 아니었다.

    조조가 양현자명본지령을 발표한 이후, 순욱은 천하의 안정을 위한 민심합의안을 발표했다. 순욱은 이로써 둔전제를 확대하여 경제적 기틀을 확실히 하는데 우선 중점을 두었다. 관아에서는 유랑농민들을 모아서 먼저 땅과 식량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정착하는 농민들에게 소와 농기구를 빌려주고 소출의 6할을 받았다. 그 밖에 다른 땅세는 물지 않았고 부역도 하지 않았다. 비율로 따지자면 관아에서 가져가는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처음엔 반발하는 여론도 있었으나 이런 부정적인 여론은 오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명목상 덜 가져가면서도 실제로는 이것저것 부담이 많은 다른 제후들의 지배 방식보다는 차라리 한 가지 근거로 조정이 많이 가져가고 백성들에게 혜택도 많이 주는 체제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실 둔전제 하의 농민들은 유일하게 한 가지 종목의 세금만 부담했던 것이라 계산하기가 쉬웠다. 둔전제는 많은 이익을 주었다. 마음대로 이사 가는 것만 금지되었을 뿐, 다른 장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난리통에 집과 토지를 잃고 유랑하던 농민들은 앞 다투어 둔전객이 되려고 했다.

    조조, 천하통일을 꿈꾸다

    순욱은 내치의 안정 위에서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는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황제를 둘러싼 주변 제후들의 군사력은 이제 모두 조조의 잠재적 위협이었다. 이 군사력을 정리하지 못하면 애써 잡은 권력기반이 순식간에 날아갈 위험이 상존했다.

    조조가 차지한 영역은 산둥반도에서 중원천하의 한 가운데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천하의 한 가운데 부분이라 사방팔방으로 진출하기도 좋았지만 남과 북에서 동시에 공격받기도 쉬운 지역이었다.

    조조의 북쪽으로는 원소가 거대한 군사적 기반을 갖추고 있었고 그 위에는 공손찬이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조조의 남쪽으로는 원술이 역시 거대한 군사력을 갖추고 스스로 황제를 칭하기 위해 준비중이었다. 그 밑으로는 유표가 다스리는 형주가 있었고 그 아래는 길고 긴 장강이남 지역이었다.

    조조의 동쪽으로는 여포와 유비가 서주를 장악하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광할한 익주지역이 펼쳐져 있었는데 서북지역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오랑캐들이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조조는 이 수많은 제후들을 모두 제압하고 통합해 황제의 통제권 안에 편입하는 천하통일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조조와 순욱이 먼저 눈독을 들인 곳은 조조의 본거지와 가장 가까운 서주 지역이었다. 서주는 곡창지대라서 조조가 벌써 여러 차례에 걸쳐 접수하려고 시도했던 지역이었다. 이제 서주로 진격할 시간이 되고 있었다. 순욱은 이 지역을 큰 희생 없이 장악하기 위해 유비와 여포를 서로 싸우게 만드는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두 마리 호랑이가 하나의 먹이를 다투게 하는 계책)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로 한다.

    한편, 조조가 양현자명본지령이라는 일종의 정치강령을 발표하자 서주를 지키고 있던 유비는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유비에겐 이런 문서 생산능력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자신은 동생들과 순전히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일련의 무협집단을 꾸려왔으나 유비도 요즘은 부쩍 인재의 부족을 느꼈다. 유비의 신하 중에 무장이 아닌 사람은 미축이 유일했다. 그러나 미축도 본래 상인 출신이라 이념작가는 아니었다.

    유비는 그동안 늘 지식보다는 감각을 중시 여겼었다. 유비는 어린 시절부터 책에 늘 이렇게 적어놓고 다녔었다.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식 대신 체내에 감각을 축적하라.!"

    그러나 조조가 지었다는 긴 글을 읽어보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라를 만드는 판에 뭔가 이런 글을 하나쯤 지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각만으로는 천하를 얻을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천하를 운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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