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들 감옥갈 때, 당구만 쳤는데"
        2009년 10월 05일 12: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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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사람들이 진보신당 창당 이전에 만들었더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벌였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를 강제 해고한 박성수 회장이 다니는 ‘사랑의 교회’앞 알몸 예수 퍼포먼스, 그리고 지난해 여름 대운하를 반대하며 부산에서 서울로 달렸던 까발리아호, 4대강 정비를 반대하며 낙동강 하구에 펼쳐진 까발리노.

    톡톡 튀는 ‘행위예술가’

    톡톡 튀는 진보신당표 퍼포먼스는 모두 한 사람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작가 이문열 책 반납운동으로 2001년 <오마이뉴스> 올해의 인물이 된 사람,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 바로 진보신당 부산시당 해운대당원협의회 소속 화덕헌씨가 그다. 

    그는 부산시당 해운대 당원협의회 부위원장을 하고 있으며 시장선거기획단에 참가하고 있고, 부산시당 웹집 ‘야무진’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또한 부산시당에서 사진강좌도 열고 있다. 민주노동당에서 진보신당으로 분당할 때 함께 참여한 그는 사실 소개가 필요 없는 유명 당원이다. 그런 그와 2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 *

    – 민주노동당 때부터 쭉 활동해오다. 분당과정에서 진보신당에 참여했다. 분당에 나선 이유는 무엇이고, 진보신당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인가?

    = 분당과정은 다들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나? 이제와서 다시 그 이유를 꺼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민주노동당 안에 있는 모습들은 진보진영이 극복해야 할 모습이라고 봤다. 그런 생각으로 탈당에 나섰고 창당에 참여했다.

    나는 친북에 찬성한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라는 구조 안에 있는 종북적인 경향성은 진보진영이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좌파는 아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정책 등의 부분에 찬성하는 것이 있어 진보신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부산시당에서 사진강좌를 하고 있는 화덕헌씨.(사진=부산시당) 

    친구들 감옥갈 때, 난 당구만 쳤다

    – ‘진보적 정책’에 동의되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

    = 나는 운동을 안 해봤다. 때문에 노동운동이나 노동정치는 잘 모른다. 나는 환경문제나 여성문제, 소수자 문제 쪽에 많이 동의가 되었다. 사실 난 얼치기다. 내가 84학번인데 데모를 한 번도 안 해봤다. 그런 부채의식도 있었다. 우리 친구들이 감옥 갈 때 나는 당구만 쳤다.(웃음)

    그러다가 ‘안티조선’ 운동을 하면서 사회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 이전에는 중산층 수준의 사회의식이 있었는데, 특히 채무감, 그런 것 때문에 진보신당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 해운대 당원협의회나 부산시당, 그리고 진보신당에서 활동은 어떤가? 재미있나?

    = 우리 해운대는 너무 재미있다. 모임이 잘 되고 서로에 대한 신뢰나 유대감도 깊다. 이 곳에서 활동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다. 특히 해운대는 당원들 간에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 구성도 아주 좋은데, 위원장은 아주 오래된 운동권 출신임에도 마인드가 열려있다.

    다른 당원들 중에는 시민 운동하던 사람도 있고 나 같은 얼치기도 있다. 그야말로 진지한 사람, 발랄한 사람 참 다양한데 그들 간에 신뢰가 깊은 것이다. 대부분 창당을 주도한 당원들이라서 생긴 동지의식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부산시당이나 진보신당 전체를 놓고 보면 아쉬움이 있다. 조금 고참이라 할 수 있는 운동권 출신들, 이 양반들이 자신의 역할들을 잘 안하는 것 같다. 겸손해서 그런지, 나 같은 날라리들이 설치니 언짢은지.

    부산시당도 그렇다. 그게 아쉽다. 창당 과정에 주체적으로 주도한 것이 아니라 떠밀려 들어와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는데, 운동을 오래하고 정당을 오래했던 고참당원들이 힘들어하고 지쳐있는 것 같다.

    "나 같은 ‘날라리’ 당원들이 설치고 다녀서…"

    – 진보신당이 보여준 기발한 퍼포먼스들의 아이템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아이템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 인생 차제가 워낙 기발하다.(웃음) 나는 운동을 잘 모르고 정치를 잘 모른다. 그냥 보통사람의 감수성 수준에서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했으면’ 하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당원들에게 그 아이디어 말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해운대가 좋은게, 내 같잖은 아이디어를 제출하면 이를 너무 잘 받아들여 준다. 그 아이디어가 진행이 안 되면 오히려 빨리 하자고 독려한다. 사랑의 교회 앞 퍼포먼스 때는 당원들이 ‘빨리 벗자’고 하더라.(웃음)

    그러니 잘 되는 것이다.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으면 잘 안된다. 같이 동력을 굴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해운대 당협은 내 철없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수용해 실천하려 한다. 지금 같아서는 아이디어만 내면 실천이 되니, 힘든 것들은 하지말자 해야 하는데, 무조건 하자고 하니까 겁난다.(웃음)  

       
      ▲다른 당도 따라하게 만든 부산시당의 해운데 피케팅 퍼포먼스.(사진=부산시당) 

    – 사랑의 교회 퍼포먼스, 까발리아호, 까발리노, 다른 퍼포먼스가 있었나?

    = 바닷가에서 바캉스 시즌에 피케팅 퍼포먼스를 했다. 해수욕하는 사람들과 한데 어울려서 민영화 반대 퍼포먼스를 했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언론악법 퍼포먼스를 했는데 이게 언론들이 관심이 많다보니 <한겨레>, <경향신문>, <MBC> 등에 나왔다.

    다른 당에서 따라하는 것도 좋아

    – 그러고 보니 진보신당 부산시당의 피케팅 퍼포먼스 이후 다른 당들이 해수욕장을 돌아다니며 같은 퍼포먼스를 했었다. 황당하지 않았나?

    = 그렇게 히트 한 번 치고 나니까.(웃음) 언론악법 퍼포먼스를 바캉스 피크 기간보다 일찍 했었다. 이를 다른 당들이 받아서 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것은 누가 하든 좋은 것 아닌가? 따라 해주면 좋지. 내가 사진 작업하는 사람인데, 보통 보면 사진 찍는 분들은 자기 사진 잘 알리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개방한다. 따라 해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더 많이 기록될 수 있고, 최초에 한 사람이 빛날 수도 있다.

    – 혹시 준비하고 있는 다른 아이디어 있나? 비밀이 아니라면 공개해 달라.

    = 12인승 자전거를 준비하고 있다. 해외토픽에서 본 것인데, 1톤 트럭 같은 긴 트럭에 마주보고 앉아 자전거를 탄다. 이를 한 두명이 앞에서 방향을 잡고 끈다. 네덜란드에서는 마주보며 맥주를 마시고, 미국 쪽은 등지고 앉아 소리를 지르더라.

    그 자전거가 까발리아 못지않게 이목을 끌 것이라 생각했다. 그걸 만들려 하고 있는데, 설계단계는 아니고 현재 구조는 다 파악한 상황이라 곧 제작에 들어갈 것이다.

    – 그걸 어디에 써먹을 거냐?

    = 내년 선거 때, 요긴하게 쓸 것 같다. 이게 괜찮으면 당 내 지역위원회 보급 사업을 해볼까한다. 사회적 기업으로 키우면 어떨까? 백수 몇 명 살릴 수도 있고.(웃음)

    이문열 "당신 부모 전라도지?"

    – 옛날 얘기를 잠깐 해보면, 예전 이문열 책 장례식을 주도하다가 이문열씨로부터 "’‘부모가 전라도일 것"라는 말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

    = 너무 태고적 얘기라.(웃음) 사실 그때부터 내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장례식’을 통해 이문열씨에게 책을 고이고이 보내주었는데 이게 와전되어 ‘분서갱유’란 표현까지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관에 담아 잘 전달했다.

    그런데 이문열씨가 그걸 거부해 관이 돌아왔고, 이것을 그대로 가져다가 고물상에 10원에 팔았다. 이걸 10원 주고 사시니, 고물상 할아버지가 너무 미안해 하시더라.(웃음)

    어쨌든 그런 일이 있은 뒤 이문열씨가 부산에 찾아왔다. 이문열씨는 내가 전라도 사람인 줄 알고 찾아왔는데 내 부산 사투리 발음이 워낙 ‘네이티브 스피커’ 수준이라, 그럼 부모가 전라도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내 책이 전라도에서는 잘 안나가니, 틀림없이 부모나 주변 친구가 전라도다’라는 것이다. 물론 기분 나빴다.

    – 노사모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진=화덕헌.

    = 노사모는 아니었다. 사회문제에 눈을 뜬 것이 강준만씨의 책 ‘김대중 죽이기’를 보면서 부터였다. 그래서 97년도에 김대중을 찍었다. 그런데 2002년 선거에 임박해서는, 이대로 가다가 또 노무현을 찍겠다 싶더라. 그래서 대통령 선거 3일 전에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선거운동을 했다.

    만약 내가 당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비겁하게 비판적 지지를 할 수밖에 없겠더라. 투표소 딜레마라는 것이 있지 않나? 이를 극복하는 방법이 입당이라고 봤다.

    노사모라고 오해를 받은 것은 민주당 경선이 히트를 쳤던 당시 <인물과 사상>의 의뢰로 경선을 취재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때 노사모들을 알게 되었고, 안티조선 운동에 노사모들이 많았기 때문에 연관되었던 것 같다.

    지역에서 재미있게 사는 모델 만들어야

    – 진보신당에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나?

    =특별히는 없다. 나는 지금까지 잘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조금만 더 잘하자고 말하고 싶다. 당이 신생정당이지 않나? 다만 아쉬운 것은 운동경력이 있는 당원들이 거창한 일 말고 자기 지역에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그런 역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지역위원회 소속 당원들 간에도 술 먹고 노는 것 보다 교인들끼리 하는 심방예배처럼 스킨십을 늘려야 한다. 당원들끼리 만나 서로 생활을 나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지역당원들과 함께 지역 현안에 맞는 지역진보를 이루는 것이 멀리 내다봐서 중요하다.

    사실 중앙당이 잘하고 못하고는, 방법이 없다. 욕을 한다고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진짜 진보정치, 진보정당을 보는 시선을 바꿔야 한다. 같이 망치를 들고 나가 혁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역에서 재미있게 사는 모델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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