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연화는 민주당 헤게모니로의 종속"
        2009년 10월 05일 12: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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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희연-서영표 교수와 손호철 교수의 논쟁,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중요한 논쟁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든 앞으로도 이 논쟁이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현재 조-서 교수와 손 교수 사이의 가장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는 이른바 ‘08년 체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있어서 조 교수는, 손 교수가 모든 문제를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경제주의적 편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치체제 상의 변화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합니다. 97년 체제와 08년 체제는 경제적으로는 모두 신자유주의일 수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헤게모니’와 ‘보수주의 헤게모니’로 명확히 구분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 조 교수는 ‘체제’라는 것을 경제체제보다는 오히려 정치레짐(political regime)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08년 체제의 실제적 출현을 이론적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고, 또 새로이 등장한 보수주의 헤게모니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발전시키는 과제를 좌파의 중심적 과제로 부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조 교수는 ‘국민정치 공간’에 개입할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연합전략’을 고민해야 된다고 역설하고, 87년 체제를 계승하는 ‘급진적 민주주의’가 좌파의 대안이 되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조희연-서영표의 입장은 라클라우-무페의 이론에 근거

       
      ▲ 국내에 포스트 맑스즘을 전파한 라클라우와 무페의 저작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조-서 교수의 이러한 입장은 주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1985년도 저작 『Hegemony and Socialist Strategy』에 근거한 것입니다. 국내에 이 책은『사회변혁과 헤게모니』 (출판사 터)라는 제목으로 오래 전에 번역된 바 있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독자들로서는 매우 구하기 어려운 책이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조-서 교수가 사용하는 몇몇 주요 개념들을 <레디앙>에 기고한 글에 직접 친절하게 설명하신 것도 아니기 때문에(아마 다른 곳에서는 하지 않았을까 추측됩니다만), 라클라우-무페의 논의를 접해보지 않은 일부 <레디앙> 독자들은 도대체 ‘헤게모니’니 ‘접합’이니 ‘급진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이해하는 일부터가 매우 버거웠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논쟁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라클라우-무페의 기본 개념을 알기 쉽게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 과정을 통해서, 조-서 교수의 입장에 대해 약간의 문제제기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 개념부터 간략히 정리해 봅시다. 이들에 따르면, 헤게모니 구성체(hegemonic formation)는 근본적으로 두 가지 조건을 갖습니다.

    첫 번째는 그것이 사회의 다양한 그룹들 또는 부분들(계급적, 성적, 지적, 인종적, 생태적 따위의 문제에 관련된)을 접합하되, 단순히 접합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적인 방식으로 또는 적대를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접합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양한 세력들을 접합해서, 기존의 헤게모니적 권력에 대해 ‘적대’하는 또 다른 역사적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대하는 두 진영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경계선이 ‘불안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두 진영의 적대가 이미 너무 확실하고 공고한 것으로 나타나 중간지대에 부유하는 집단들(말하자면 부동층)이 별로 없게 된다면, 역설적으로 ‘헤게모니 전략’을 사용할 필요는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다양한 세력들을 하나로 끌어 모으기 위한 접합적 실천이 헤게모니적 실천인데, 이미 사회가 완전히 양분되어 싸우고 있다면 흩어진 그룹들을 접합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냥 양대 진영이 싸워 이기든지 지든지 전투를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는 것입니다. (2001년 영어판 135~136쪽).

    그렇기 때문에 라클라우-무페에게서 ‘헤게모니’라는 것은 “단순한” 전근대 사회가 아니라 주로 “복잡한” 근대 산업사회 이후에 등장한 현상, 또 “제3세계”보다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로 가능해진 현상이라고 설명됩니다.

    이들이 주로 생각하는 ‘비(非)-헤게모니적 적대’ 모델은 전근대의 ‘도시 공동체 대 농촌공동체’의 적대나 ‘식민-지배자 대 식민지인들’의 적대인데(천년왕국운동, 식민지 해방운동), 이 경우에는 적대의 선이 너무 분명한 것으로 미리 주어져 있기 때문에 싸움이 단순해지고 헤게모니적 실천이 필요 없다는 것이지요.

    반면 선진 자본주의 또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워낙 사회가 복잡해서 그렇게 두 진영이 갈라지는 일이 드물고, 그래서 좌파의 싸움은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다양한 세력들을 접합할 수 있는 헤게모니 전략에 입각해 행해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라클라우와 무페의 문제설정의 핵심인데, 왜 이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했는지는 이 책이 나온 시점만 생각해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80년대는 계급을 중심에 놓는 전통 맑스주의 담론이 적어도 유럽에서는 설득력을 상실하고 68년 이후 탄생한 다양한 신좌파 운동들의 폭발을 경험한 이후였습니다(85년 서문 참조).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 전략은 이러한 상황에서 다양한 좌파세력들을 하나의 블록으로 만들어 당시의 사회체제 내지 권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길을 모색하는 중에 나온 것이지요. ‘어, 우리하고 좀 비슷하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조-서 교수가 이러한 라클라우와 무페의 입장을 채택하게 된 것은 저로서도 일정하게 수긍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급진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이제 라클라우와 무페의 ‘급진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간략히 정리해봅시다. 이들의 급진 민주주의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고찰이 필수적입니다. 라클라우-무페는 1789년의 프랑스 혁명을 “민주적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말하자면 정치사에서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인데, 이 사건은 그 자체로 근대적인 ‘헤게모니 전략’이 정치의 중심적 전략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단절점을 표시할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담론이 그 이후 오랫동안 헤게모니를 쥐도록 만들어 줍니다.

       
      ▲ 1789년, 불타는 바스티유 감옥

    이 ‘자유-민주주의’ 담론의 헤게모니는 부분적인 변화들을 동반하더라도 거의 1970년대까지 지속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복지국가 및 그것의 위기가 최후의 국면을 이루지요). 그리고 나서 70년대 말부터 (레이건, 대처) 신자유주의 헤게모니가 등장하여 기존의 헤게모니를 대체하게 되는데, 라클라우-무페에 따르면 그 담론 전략의 핵심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두 계기를 분리하고, ‘자유’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데에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신자유주의 이론의 계보를 형성하는 하이에크, 프리드먼, 노직 등의 자유지상주의자들이 한 짓이 바로 그 짓거리지요.

    라클라우-무페의 헤게모니 전략으로서의 급진 민주주의론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가운데 오히려 민주주의 쪽으로 더 무게 중심을 옮기려는 전략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기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급진적이고 다원주의적인 민주주의 쪽으로 밀어부쳐, 말하자면 그것을 ‘좌경화’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확실히 조-서 교수의 입장하고 상통하는 면이 있지요?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하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라클라우와 무페에 따르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이후 헤게모니적 정치를 출현시켰지만, 그 자체가 헤게모니에 입각한 혁명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두 적대하는 진영이 선명하게 갈라져 있던 상황에서 발발한 혁명이었지요(저는 이 점에 대해 조금 다르게 생각하지만, 어쨌든 이들 설명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라클라우-무페는, “엄밀하게 봤을 때, 인민/앙샹레짐의 대립은 사회의 두 형태들 사이의 적대적 경계가 분명하고 경험적으로 주어진 구분선으로 나타났던 마지막 순간이었다”고 말하면서, 그 이후로는 점점 더 사회적 적대의 경계가 불안정하고 모호해졌다고 말합니다(151쪽).

    나중에 신자유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헤게모니를 대체하고 지배적 헤게모니로 등장했을 때에도, 여전히 “대립하는 두 체계” 사이의 선명한 구분선이 복귀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복귀하지 않기 때문에, 급진 민주주의적 ‘헤게모니’ 전략이 필요해지는 것이지요.

    조희연이 ’08년 체제’를 강조하는 이유

    그런데 이렇게 놓고 보면, 조 교수가 왜 08년 체제의 독자성을 증명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매달리는지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제가 짐작하기에 조 교수가 08년 체제를 강조하는 것은 사실 다음과 같은 생각이 그 아래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조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97년 체제의 이중성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민주개혁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결합은 후자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억제하고 정치적 저항으로 현재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율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신우파(신보수)정권이 출현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전면화함으로써 다양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촉발하는 모순과 저항이 확산되고, 대중들의 저항성이 현재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반신자유주의적 경제로만 환원될 수 없는 ‘반신자유주의적 정치’의 폭넓은 공간을 출현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97년 체제는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개혁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명한 적대선이 억압되었지만, 이제 08년 이명박 정부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두 개의 진영으로 보다 선명하게 갈라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기에 조 교수가 97년 체제와 구분되는 08년 체제의 출범을 인정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만일 정말 사태가 그렇다면, 논리적으로만 봤을 때 좌파는 이제 상당히 수월한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왜냐하면 적대가 예전보다 훨씬 선명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주어짐에 따라, 별다른 헤게모니적 전략을 채택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회적 그룹들에 대한 이삭줍기를 할 수 있고, 좌파 진영(camp)을 손쉽게 생산할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유주의 헤게모니는 상당히 해체됐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는 라클라우-무페의 입장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고 조 교수의 표면적 주장과도 일관되지 못한 것입니다.

    라클라우-무페에 따르면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등장으로 헤게모니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필요성이 생겨나는 것은 선명한 적대선이 생기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이 정확히 반대로 복잡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조 교수는 97년 체제와 08년 체제 사이의 차이를 유독 강조하면서, “08년 체제는 87년 체제의 전면적인 역전의 성격을 띄고 있고, 보수우파 세력이 주도하는 체제”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보수가 스스로를 세련되게 만드는 “진화”를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이제 보수가 드디어 정권을 장악하여 경제와 정치에서 지배가 모두 일치하게 됨에 따라 ‘적(enemy)’이 분명해졌으므로, 우리는 87년 항쟁과 같은 ‘국민’ 대 ‘이명박 정부’의 대적 전선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한다는 말입니다.

    또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국민정치 공간”에 개입하기 위한 “유연한 연합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범국민운동본부를 상기시키지요).

    여기서 프랑스 혁명과 87년 항쟁 사이의 비교가 요긴합니다. 라클라우-무페에게는 프랑스 혁명의 결과로 생겨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역전은, 그렇다고 프랑스 혁명에서 나타났던 선명한 대적 전선(전근대적 싸움)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하지만 조 교수에게는 87년 체제의 전면적 역전은 87년 싸움을 재현할 가능성 또는 그것을 적어도 다르게, 말하자면 “급진적”으로, 반복할 가능성으로의 복귀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 교수가 08년 체제의 출현을 강조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로서 급진 민주주의 헤게모니 전략을 채택함에 있어 08년 체제의 출범을 인식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고, 오히려 혼란만 가져온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87년 이전의 상황으로 우리가 복귀했다는 착각 속에서 중간계급 헤게모니 또는 더 정확히 말해서 ‘민주당 헤게모니’에 (말로는 아니지만) 스스로를 종속시키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반MB 전선’의 강조가 그것이지요(저는 반MB 전선의 유효성은 이미 촛불의 패배로 인해 끝났다고 생각하며, 정확히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급진민주주의 전략을 택할 필요성이 더더욱 생겨난다고 보는 편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시대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

    여기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기를 다시 회고해 봅시다. 저는 이들이 행한 것이 정확히 ‘자유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공격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행해졌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이에 관해서는 조 교수의 글에 chldnjs이라는 이름으로 답글을 남겨놨으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김-노는 레이건-대처와 다를 바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지금 이명박 정권은 김-노 정권의 정치적이면서 동시에 경제적인 신자유주의를 보다 더 효과적으로 완성하기 위해 싸우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정권 교체에 따른 일정한 진지들의 공격적 재정비가 이루어지자(이데올로기적 성격의 제도들의 장악과 NGO에 대한 공격), ‘중도 실용정부’를 다시 표방하면서 그야말로 국민적 동의를 얻기 위한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하고 있지요. 그 결과 이명박 지지율이 50%에 육박하는 결과가 벌어지고 있고요. 이렇게 현재의 상황은 선명한 대적전선의 등장하고는 거리가 먼 상황입니다.

       
      ▲ "김대중-노무현은 레이건-부시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이러한 계기에 좌파가 택해야 하는 헤게모니 전략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기회에 민주당과 친노진영을 완전히 무능력한 자들로 낙인찍으면서, 중간계급의 이탈자들을 좌파 블록으로 끌어당겨 명실상부한 대안 세력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조교수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 지금 강조해야 하는 것은 헤게모니 ‘투쟁’이지, 결코 유연한 연합전략이 아닙니다. 특히 민주당, 친노세력과 사안별로 유연하게 연합하려고 들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제좌파가 모여서 하나의 블록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조 교수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신)자유주의와 확연히 구분되는 급진 민주주의의 내용들을 생산해야 한다는 점에도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 또 (맑스주의자들이 좀처럼 사고하지 못하는) 시민권에 대한 발본적으로 혁신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서 ‘새로운 보편성’을 확보하는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도 적극적으로 동의합니다(서영표 교수가 말한 “시민사회의 활성화, 국가의 민주화, 시장의 사회화”는 중요한 제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는 “국민정치”를 위해 유연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시민권의 급진화를 의미하는 것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이 글에서 말한 것은 어쩌면 조-서 교수가 이미 다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괜한 오해를 한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만일 정말 그렇다면, 08년 체제를 유독 강조하는 것은 불필요한 논란만 낳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한 번쯤 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유연화’는 김대중-노무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면죄부

    정말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사회적/경제적 시민권 뿐만 아니라 정치적 시민권을, 더 나아가서 문화적 시민권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함에 있어, 08년 체제의 출현을 특화시키면,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의 신자유주의에 면죄부를 주거나, 특히 그들의 정치적 신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 반정치(anti-politics)에 대한 비판의 칼이 “유연하게”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끝으로 한 가지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은, 라클라우-무페에 따르면 헤게모니는 무엇보다도 흘러 다니는 요소들을 끌어당겨 하나의 연쇄 속에 접합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매듭(nodal point)의 생산을 통해 가능해집니다.

    이는 제 식으로 돌려 말하면, 일종의 ‘지배어’의 발명과도 같을 것입니다. ‘민주주의’에 버금가는 지배어가 없기 때문에, ‘반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것은 지배어가 될 수 없어 보입니다(그냥 대안 없는 반대로 들리기 때문이지요).

    조 교수 말마따나 우리는 다시 ‘민주’라는 지배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저도 듭니다. 아마도 ‘급진 민주주의’라는 말은 너무 이론적인 냄새가 많이 나고, ‘더 많은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사실 이 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사용된 말로 알고 있습니다. 의미심장하게도 그것은 노무현 탄핵 당시, “탄핵 반대”를 했던 친노세력이 아니라 “국민발의, 국민소환”을 주장하며 나왔던 일군의 사람들이 들었던 구호였습니다.

    정치적 급진 민주주의의 투쟁은 이미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봐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지는군요. 이제 논의의 방향이 08년 체제를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이러한 새로운 지배어로서의 “더 많은 민주주의”의 구체적 내용들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것을 생산하기 위해 좌파들이 모여야 하며, 그렇게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조 교수의 말에 동의합니다.

                                                          * * *

    * 이 글의 필자는 1968년 출생으로, 국내에서 대학을 다니다 자퇴한 후 미국에 가서 스토니 부룩 뉴욕 주립대학 철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2년에 뉴욕 뉴스쿨대학에서 철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현재 시카고 로욜라 대학에서 철학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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