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이제 면허증 갱신합시다
        2009년 10월 04일 11:2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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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영일 한국노동연구소 소장. 

    1991년에 운전면허를 땄으니 이제 운전경력이 만 18년이 넘는군요. 그동안 운전했던 차량 종류도 유난히 많았습니다. 이제는 단종이 된 엑셀이 첫 차였는데, 그 이후 쏘나타 II, 쏘나타 III, EF 쏘나타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NF쏘나타까지 주로 쏘나타를 탔지만, 그 중간에 르망, 구형 아반떼, 엘란트라, 그리고 LPG 싼타모도 탔었지요. 첫 차인 엑셀과 쏘나타 II를 제외하면 모두 중고였지요.

    미국에서는 포드 토러스, 이름 모를 클라이슬러 소형차를 탔던 적이 있고, 캐나다에서는 지엠 소형차를 렌트해서 몰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가끔 단병호 전 위원장님의 11인승 대형 카니발도 운전하고, 큰집에 가면 매그너스도 운전합니다. 언젠가 1.5톤 트럭도 몰아본 기억이 납니다. 그게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군요. 그 사이에 면허도 경력을 인정받아 1종으로 승격했지요.

    요새 많은 사람들이 자동에만 익숙해서 스틱 운전은 못하더군요. 그러나 나는 자동, 수동 모두 문제가 없지요. 2007년 일본에 있을 때 일본차를 운전해보지 못한 것이 섭섭했어요. 일본은 오른쪽 운전석이어서 사실 좀 겁을 냈지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시도해보려는 마음도 있습니다.

    나의 운전 실력

    이만하면 어떻든 베테랑 운전수 아닐까요? 나이도 들어 전처럼 무리하게 차를 몰지도 않고, 주차비 조금 아끼려다 벌금 내는 일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거칠게 운전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거의 화를 내지 않고, 너 그러다가 오래 못살지, 그러고 웃고 말 정도의 여유도 생겼습니다.

    그런 한편, 요즈음 운전과 관련해서 조금 문제가 생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최근에 이상하게 조금씩 접촉 사고를 내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세 번이었어요. 며칠 전에도 슈퍼에서 나오다가 다른 차 뒤를 약간 긁었습니다. 주차하다가 조금씩 벽이나 기둥을 건드리기도 하고, 집에서도 이상하게 후진 주차가 잘 안되어 몇 번이나 수정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새 운전에 좀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왜 그럴까, 나이 들면서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요새는 좀 긴 운전은 아예 안하게 되었습니다. 웬만하면 걷거나 버스, 지하철을 타려고 합니다. 급하면 딸애한테 운전해달라고 하기도 하지요. 운전 오래 한다고 베테랑이 되는 것은 아닌가봅니다. 베테랑은커녕, 주기적으로 운전교육 다시 받고 면허증 새로 따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해보았답니다.

    2.

    요즈음 일본말 공부도 할 겸 일본 드라마를 자주 봅니다.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한국 드라마 보셨나요? 그게 원래 일본 드라마입니다. 일본에서 같은 제목으로 11회 방영된 것을 번안한 것이지요.

    주인공의 옆집에 사는 젊은 여자가 있는데, 사람 사귀고 연애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쩐지 실수만 연발하고 잘 안 풀리는 타입입니다. 이 여자가 혼자말로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어쩐지, 나는 면허도 없이 길에 나선 운전자 같아.” 사람 사귀고 연애하는데도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이 여자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면 농담 같지만은 않아요.

    이 좌충우돌의 압권은 이 여자가 자기 개를 좋아하게 된 주인공이 그 개에게 하는 말을 자기에게 하는 말로 잘못 듣고, 주인공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오해하고 자기도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이었어요. 이 정도라면 사랑에도 면허증이 필요할지도 모르겠군요.

    사랑의 면허증?

    여성학을 하시는 모 여자 교수님은 사랑은 아니더라도, 결혼, 특히 자식 출산과 관련해서는 ‘자격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십니다. 혼인신고 한다고 부부가 되게 해서는 안 되고 아이 생겨서 낳았다고 부모가 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지요.

    결혼해서 가족을 구성한다는 것과 관련된 복잡한 일들에 대해 공부하고 교육받고, 특히 자녀 양육과 교육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야 한다는 것인데, 그게 자연스럽게 되지도 않고 학교 교육과정에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으니 이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글쎄요, 그럼 운전 면허증 비슷한 국가자격증 제도를 결혼과 자녀 출산에도 도입해야 할까요? 결혼 전에 ‘결혼학원’, 출산 전에 ‘출산학원’을 다니게 해야 할까요? 좀 그렇긴 하지만, 어떻든 주위에 ‘무면허 부부’나 ‘무면허 부모’가 너무 많지 않은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물론 나도 무면허였지요. 

    3.

    지금은 독일에 교환교수로 나가 계시는 강 모 교수님, 이름을 이야기하면 노동자들 중에서도 많이 아실 정도로 노동문제 연구도 많이 하고 교육도 많이 해 오신 분이시지요. 이 분이 독일 가시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전망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좋은 방안이 없느냐" 이런 말 안 해본 활동가들 별로 없지요?

    금속노조 쪽인 듯한데, 교육 후에 이런 질문을 하는 간부에게 강 교수가 그랬답니다. “당신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냐? 그러면 당신은 그 직책을 맡을 자격이 없지 않느냐, 그런데 왜 그 자리에 있느냐, 당장 내려가라.” 답답해서 한 질문인데 그런 말을 들었으니 당사자도 열 엄청 받았겠지요? 질의응답이 아니라 거의 쌈박질이 될 뻔했다고 합니다.

    강 교수가 독일에서 이메일 몇 번 보내왔고, 얼마 전에는 논문도 한편 보내 왔습니다. 우리 노동운동의 소위 ‘정파문제’를 분석하는 내용이었어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었지만, 강 교수의 논지는 대략 이렇습니다.

    정파가 아니라 분파인 이유

    첫째, 한국 노동운동 내에 활동가들은 더 이상 ‘정파’ 활동가들이 아니다. 둘째, 이 정파들은 그 내용을 들여다보니 전혀 정파 가 아니다. 그저 ‘분파’일 뿐이다. 셋째, ‘분파’의 틀 속에 갇힌 활동가들은 오로지 자기 분파가 조직의 권력을 장악하는 일에 거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다. 넷째, 따라서 연대가 필요한 부분에서 분열을 일삼고, 격렬한 노선투쟁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오히려 담합을 일삼는다. 다섯째, 따라서 한국 노동운동이 재생하려면 제대로 된 정파들이 (재)형성될 필요가 있다.

    ‘정파 등록제’ 이야기는 잘 아시지요? 사실 나는 이것이 우리 운동에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어 별로 찬성하지 않았지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등록을 하려면 자기 정파의 정체성, 운동에 대한 입장과 전망, 중요 사안에 대한 정책 등을 공개적으로 제출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동안 그런 것도 없이 인맥으로만 뭉쳐 있었다면, 등록을 위해서라도 그걸 다시 만들거나 재정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러면 아, 나는 이런 정파 소속이고 이런 생각과 자세로 운동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겠지요.

    혹은 어, 내 생각은 다른데, 그러면 나는 더 이상 이 정파 소속원일 수는 없겠구나, 이럴 수도 있겠지요. 혹은 이건 나와 같은 생각이구나, 나도 저 정파에 가입해서 활동해야겠다, 이럴 수도 있고요. 정파 교육도 다시 활성화되어야 하겠지요. 여러 가지로 효과가 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어떤가요, 그것도 결국 지금의 정파들(실제로는 분파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겠지요? 그런 합의가 가능할까요?

    4.

    노동운동에도 면허증 제도가 있나요? 공식적으로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엄연히 있어 온 것을 우리 모두 압니다. 특히 민주노조운동에 있어서는. 내가 노동운동 활동가들과 구체적으로 부대끼기 시작한 1986년 당시부터 느낀 것이지만, 대부분의 활동가와 지도부들은 다 각자의 ‘운동 계보’가 있었어요.

    학출 활동가들은 너무나 분명한 두 가지 족보가 있었지요. 출신학교와 정파가 그것입니다. 현장출신 활동가들은 어땠을까요? 그들 역시 대부분 ‘나는 운동을 누구(어디)에서 배웠다’는 명확한 정체의식이 있었습니다. 노동운동의 리더십이 조직적으로 형성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그 내부에서 엄격한 교육과 훈련과 검증을 통해 노동운동 활동가로서의 ‘면허증’을 발부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사고라도 치고 활동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 행위를 하면 이를 내부적으로 엄격하게 규율하여 ‘면허 취소’나 ‘하방 재훈련’ 조치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민주노조운동 면허증

    이 정도는 되어야 ‘정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드는군요. 지금은 거꾸로 공조직에 올라가 엄청난 사고만 쳤는데도 조직의 온갖 힘을 이런 자를 보호하는데 투입하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기에 하는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민주노조운동, 민주노총의 도처에서 무면허운전, 음주운전, 성향불량 운전자의 폭주운전 등과 같은 사고가 빈발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심지어 정식면허 이전에 연습 더 하라고 발부한 임시면허증만 가지고 겁도 없이 계속 대형 트럭을 몰로 다니는, 그런 지도부나 활동가들도 심심찮게 봅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저 모골이 송연하고 정신이 아득한데,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이대로는 안 될 듯하고, 이제 민주노조운동도 공식적으로 면허증 제도를 도입해야 될 때는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정파 면허증이 안 통하잖아요? 정파가 진짜 정파가 아니라고 다들 생각하지 않아요?

    그럼 지금 면허증들은 다들 시효 만료된 것이거나 급조된 불량면허증이니 모두 폐기하고 재발급 받게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누가 발급하지요? 이제는 공조직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하냐구요? 방법은 있지요.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노조의 교육 시스템과 연계 지으면 되거든요. 단, 이 역시 정파(분파)들 간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일이지요. 음 역시….

    5.

    노조 선거의 철입니다. 공공, 금속노조를 위시해서 여러 노조와 지부에서 선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연말에 있을 민주노총 선거가 대미가 되겠지요. 앞으로 예상되는 노동 현안들을 생각할 때, 우리 노동운동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리더십의 재구축을 요구하는 정황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어떨까요, 우리의 노조 민주주의는 그 시기에 요구되는 최적의 지도부를 선출해낼 수 있도록 작동하고 있을까요? 노동운동이 이미 대중운동이 된지 오래인 상황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중민주주의는 정말로 힘들고 어렵고 골치 아픈 것이지요. 그렇다고 계급민주주의로 돌아가자고 할 수도 없지요. 교육훈련 시스템과 결합된 면허증 제도가 그것을 좀 보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6.

    올 여름 좀 무리했나 봅니다. 지난 주말부터 감기 몸살이 심하게 왔는데, 열이 안 떨어져 검사받으러 갔더니 신종플루 의증이라고 타미플루를 먹으랍니다. 좀 나아지긴 했는데, 영 시원찮고 머리도 맑지 않습니다.

    여러분, 면허증들 가지고 계시지요? 여러 개 가진 분들도 있지요? 웬만하면 모두 자진해서 갱신합시다. 나는 몇 개는 아예 폐기했는데, 나머지 한 두 개도 폐기는 아니라도 갱신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운전면허 갱신 통지서가 왔었어요.

    처음에 시덥잖게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역시 그런 면허관리 공공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올 가을과 겨울, 전 세계가 신종 플루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할 듯합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 * *

    * 이 글은 노동사회교육원(소장 김정호)이 발행하는 간행물 ‘연대와 소통'(2009년 9~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교육원과 필자의 동의를 얻어 옮겨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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