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의 인생, 가치있는 패배들
        2009년 10월 03일 02: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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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치의 산 증인이자 그 자체로 한국 현대사의 역사인 백기완 선생의 자서전이 나왔다. 그 자신이 작사하고 오늘날까지 투쟁의 현장에서 불리는 노래, 임진곡의 서두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백기완, 한겨레출판, 16,000원)가 그 제목이다.

    1933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백기완 선생의 어린시절, 해방공간의 어지러움과 6.25, 그리고 피난살이, 독재정권 타파와 민주화 투쟁, 이산의 아픔과 이후 통일운동, 노동자 해방운동과 최근 ‘반MB 투쟁’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와 싸워온 그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책 표지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좌절과 실패로 점철된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평생을 남북통일과 노동자해방을 위해 싸워왔지만 오늘날 어느 것 하나 어려움을 겪지 않는 현실을 바라보면 그의 회고가 정확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치’란 이름만으로 옥살이와 가택연금을 반복하는 시련의 삶을 살아온 그에게 패배는 역설적으로 역사의 진보이기도 했다. 그가 있었기에 권영길이 나왔고, 강기갑, 노회찬, 심상정이 나왔다.

    한평생 어두운 곳에서 투쟁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저자와 같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역사는 반 발짝씩이나마 진일보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그가 ‘패배’라고 규정한 인생은 무의미하지 않은, 가치 있는 패배였음을 이 책이 증언한다.

    그리고 한발 한발, 내딛기 어려운 발걸음으로 용산참사 현장, 쌍용차 투쟁현장을 다니며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호통을 내지르는 그가 증언한다.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은 순 우리말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달동네’, ‘동아리’, ‘새내기’ 등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들어낸 작가의 역량이 집대성한 셈이다. 때문에 혹자는 이를 이문구의 <관촌수필>을 연상시킨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책 속에는 순우리말을 만들게 된 에피소드들도 소개돼 있다. 한 예로 달동네라는 단어는 육이오 때 관악산 사당동 산자락에 천막을 치고 아이들을 모아 ‘달동네 학교’라고 썼던 데서 연유한다. “비록 다 타버린 잿더미이지만 그 위에 눈이 하얗게 쌓이고 마침 달이 뜨니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어서 ‘달동네’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추천의 글을 쓴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떠올리기만 해도 정신 번쩍 든다고 하는 백 선생. 그러나 이 책으로 만나보니 선생은 한 방울 이슬 같았다”고 평했다. 단 위원장은 “그러다가 그 이슬 한 구석에 쭈그린 짐승의 생명력 같은 패기, 쪽빛처럼 맑은 생각들, 들이대는 해방의 정서, 그 희망에 놀라 나는 소릴 질렀다. 이건 찬비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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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소개 –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일생을 반독재, 해방통일 운동에 바친 영원한 재야인.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나 혼자 공부했다. 1950년대엔 농민운동, 나무심기운동, 도시빈민운동을, 60년대엔 한일협정반대투쟁을 전개했으며, 70년대에 장준하 선생과 함께 반유신 투쟁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1호로 구속되기도 했고, 80년대엔 전두환 정권 밑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며 감옥살이를 했다. 1987년,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민주세력을 통합하여 군사독재를 끝장내고, 분단ㆍ부패 세력을 없애고자 했다.

    요즈음은 우리 겨레의 이야기 속에 숨 쉬는 민족문화와 민중문화를 끄집어내 새롭게 창작하는 일과 우리말 살려 쓰기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민중해방사상의 뿌리를 다듬고 ‘통일의 알짜는 노나메기’라는 나름의 철학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저서로 『항일 민족론』, 『백범어록』(편저), 『통일이냐 반통일이냐』 외에 수필집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장산곶매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우리 겨레 위대한 이야기』,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누가 백성노릇을 할까』, 『나도 한때 사랑을 해본 놈 아니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부심이의 엄마생각』이 있고, 시집 『이제 때는 왔다』, 『젊은 날』, 『백두산 천지』, 『아! 나에게도』와 영화극본 『대륙』, 『단돈 만원』, 『쾌지나 칭칭 나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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