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서의 1학년 2학기가 즐거웠던 이유
        2009년 10월 01일 04:46 오후

    Print Friendly

    "아빠! 좋은 소식이 있다"

    한달 전 쯤 영서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말을 건다

    "뭔데?"

    줄넘기 6총사에 들어간 영서

    "나 줄넘기 6총사에 들어갔어! 현수가 대장인데 남자 아이들 중에서 줄넘기 잘 하는 아이들이 함께 모임 만든거야"

    놀랬다. 영서는 운동신경이 잼병이라 줄넘기를 잘 하는 아이 축에 못 들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줄넘기는 핑계고 맘에 들어 하는 아이들끼리 모인거야"

       
      ▲ 왼쪽에서 4번째가 필자의 자녀 영서, 그 옆 가장 키가 큰 아이가 현수다 (사진=윤춘호)

    기분이 좋았다. 영서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 만들기, 친구 사귀기가 힘들었다. 이런 문제로 놀이치료 과정도 2년 가까이 했다. 자기 감정을 잘 제어하지 못하고 말보다는 폭력이 앞섰다. 특히 자기보다 몸집이 작거나 여자 아이의 경우는 더 심했다.

    1학기 말에는 영서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다른 친구들이 영서와 짝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 얼마나 마음이 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들 모임에 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모르겠다(그런 모임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 다음날에도 또 모임 얘기다. 이젠 숫제 자랑이다.

    또래모임 멤버만의 혜택

    "줄넘기 6총사에 들어오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를 걸. 오죽했으면 2학기가 됐는데 이제 겨우 6명만 모인 거니까 말이야. 그리고 우리 모임은 전부 남자만 들어와야 돼"

    "그래서 그 모임에 들어가면 뭐가 좋은데?"

    "여러가지 혜택이 있지. 일단 칠판에 이름이 안 적혀. 우리 6총사 중에 한 명이 반장이 되면 서로 안 적어주기로 했어. 그리고 이동할 때도 같이 모여서 다니고 그래"

    칠판에 이름이 안적힌다는 것. 아! 이건 대단한 특권이다.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패를 구성하고 그 패에겐 1학년 아이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부러운 특권이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 윤영서 (사진=윤춘호)

    "난 사실 현수한테 잘 보이고 싶어"

    "왜 현수가 싸움을 잘해서?"

    "현수가 싸움도 잘하긴 하지만 애가 괜찮아. 우리 모임에서도 대장이고 우리가 다 그렇게 하기로 했어"

    현수는 영서 생일잔치때 한번 본 아이인데 영서보다 머리 하나는 큰 아이다. 단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통솔력 있지만 아이들과 친하면서도 위협적으로 대하진 않았다. 누가 봐도 참 괜찮은 아이다 싶었다. 그 며칠 뒤엔 6총사가 7총사가 됐다는 얘기도 들었다.

    2학기 들어와선 학교 가는 게 영 기분이 좋아졌다고 했다. 이게 다 자기가 7총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교가 파하고 학원 차가 오는 시간에도 심심하지 않고 재미있게 7총사들과 놀 수 있어서 좋다고 여간 기분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탈퇴 당했어"

    그렇게 잘 지낸다고 하니 안심이 됐다. 영서가 다니는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이다. 이 아이들이 6학년까지 그대로 올라간다. 같은 반으로 말이다. 1학년때 친구들 관계가 어긋나기라도 하면 6년 내내 힘들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 잘 지낸다면 영서의 교우 관계는 한시름 놓은 것이다.

    어제 큰 아들과 밤길을 산책하다가 학교 얘기가 나왔는데 친구들 얘기가 신통치 않다. "학교는 좋은데 친구들은 모두 안 좋다"고 했다. 이런, 또 무슨 문제가 생겼나 보다

    "너 줄넘기 7총사는? 혹시 탈퇴 한거니?"

    "아니. 탈퇴 당했어" 하며 아빠를 올려다는 보는데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슬프다.

    "이유는 뭔데?"

    "이유는 없어. 현수가 그냥 나가달래. 나 대신 자민이(여자)가 들어갔어"

    부모의 솔직한 속마음

    영서가 반 모임에서 탈퇴한 이유는 나는 모른다. 궁금하지만 물어본다고 가르쳐줄 녀석도 아니다. 생각컨대 줄넘기 7총사에서 여자아이를 영입한 것이고 그 대신에 영서가 내쳐졌을 것이다. 아니면 또 무슨 사소한 폭력 사건으로 인해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영서 스스로 나온 것이 아니라 ‘탈퇴 당했다’는 것이다.

    "난 괜찮아. 별로 뭐. 탈퇴해도 상관은 없어"

    이런 모습이 사실 가장 안 좋다. 자기 기분에 대해 솔직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나쁜 모습으로 표출되기 마련이다.

    "영서 기분이 많이 안 좋았겠다. 듣는 아빠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말이야"

    "아니. 난 괜찮다니까. 뭐 사실 다른 모임에 들어가도 되니까."

       
      ▲ 왼쪽에서 세 번째가 현수, 그 옆이 영서 맨 오른쪽 아이가 후세인이다 (사진=윤춘호)

    영서네 반에는 아버지가 방글라데시인인 ‘후세인’이라는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를 중심으로 또 다시 모임이 생겼다는 것이다.

    "내가 후세인 모임에 들어간다고 하면 아마 다들 환영일걸"

    현수가 주도가 된 7총사나 후세인이 앞장서서 만든 모임이든 아빠 마음으로는 어디든지 들어갔으면 하는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도 저도 아니고 그저 혼자만 남게 되는 경우면 내가 더 슬플 것 같다. 그리고 탈퇴 당했다는 아픈 마음이 자연스럽게 치유됐으면 좋겠다.

    그런데 학교에서 이런 모임들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 선생님들은 알고는 계실까?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