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전략회의를 아시나요?
    2009년 09월 29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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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3일 노무현대통령이 서거했다. 모두가 놀라고 비통해 했다. 기획재정부 역시 당황했다. 무엇보다 다음날 아주 중요한 국정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행사는 연기했지만 워낙 막중한 일이라 더 미루진 못하고 3일 후에 개최했다.

재정전략회의, 들어보셨나요?

이 행사의 이름은 ‘재정전략회의’이다. 대통령이 주재하고 모든 장관들이 모여 국가재정의 전략적 배분을 논의하는 자리이다. 정부의 국가재정 의사결정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필자는 재정전략회의라고 답한다.

여기서 국가재정의 주요 전략이 사실상 결정된다. 지금 논란의 한복판에 있는 4대강사업도 이 자리에서 정해졌고, 내년 예산안(기금 포함), 5년 중기재정운용계획의 기본골격도 이 회의에서 논의된다. 올해 언론은 이 회의에 대해 크게 보도하지 않았다. 정부가 회의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게 근본 원인이지만 언론 역시 재정전략회의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탓이다.

어떻게 5월에 열리는 재정관련 회의가 다음해 예산안을 미리 정할 수 있단 말인가? 2007년부터 우리나라에 ‘재정전략’ 개념이 도입되었다. 이는 우리나라 국가재정체계에서 획기적인 변화이다.

이 변화를 이끌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만약 그가 올해도 대통령이었으면 서거 다음날인 5월 24일과 25일 이틀간 과천 근방 연수원에서 부처 장관들과 재정전략회의를 가졌을 것이다.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이 넥타이를 풀고 배석자 없이 이틀간 합숙하면서 말이다. 그만큼 파격적이고 무게 있는 회의이다.

국가재정, ‘행정’을 넘어 ‘전략’으로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출범했다. 국가재정을 편성하고 심의해야 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급한대로 식민지시대의 재정법을 본따 사용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재정을 다루는 법이 정비된 것은 예산회계법이 제정된 1961년의 일이다. 30년 후인 1991년에는 기금관리기본법도 만들어졌다. 비로소 국가재정의 두 기둥인 예산과 기금을 다루는 법제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후 예산과 기금 모두 국가재정이므로 하나의 법체계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생겨났다. 이에 2006년 반세기 동안 재정관련법으로 역할을 담당했던 예산회계법과 그 친구 기금관리기본법이 폐지되고, 대신 양 법을 통합해 국가재정법이 제정되었다.

국가재정법 제정을 계기로 우리나라 재정구조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국가재정법은 예산과 기금을 통합하는 형식적 변화를 넘어 국가재정운용의 틀을 근본적으로 새로 짜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가재정에 ‘전략’이 등장한 것이다. 국가재정이 종래 ‘행정관리’의 역할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국정전략’의 추진자로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시장권력에 굴복한 노무현대통령이었지만, 그래도 국가재정체계 개혁은 인정해줄만 한 그의 성과다.

재정전략회의, 분야별․부처별 지출 한도 미리 정한다

현재 정부의 국가재정 편성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전략적 재정배분’과 ‘중기재정운용계획’이다. 전략적 재정배분은 정부가 자신의 국정전략에 의거해 분야별(복지, 교육, SOC, 국방 등 16개 분야)․부처별 지출 규모를 정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다음해 정부총지출 규모, 복지분야 지출 비중, 보건복지가족부 예산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적 재정배분을 5년 기간으로 설정하면 중기재정운용계획이 된다.
어제 기획재정부가 내년도 예산안(기금 포함 총 292조원)을 공개했다. 올해보다 무려 10조원이 줄어든 지출안이다.

정부는 10월 1일 예산안 관련 두 개의 문서를 국회에 제출한다. 하나는 “2010년 예산·기금안”이고 다른 하나는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안”이다. 전자가 바로 전략적 재정배분안이고 후자는 이를 5년간 적용한 중기재정운용계획안이다.

이 두 문서의 기본 골격이 어디서 정해질까? 바로 5월 재정전략회의이다. 재정전략회의에서 분야별․부처별 지출 규모가 정해지면 다음해 재정운용의 큰 틀은 일단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각 부처 장관은 재정전략회의에서 정해진 재정배분액을 가지고 자신의 부처로 돌아가 그에 맞추어 예산을 편성하게 된다. 이후 후속과정에선 배정된 지출 한도를 기준으로 부처 내부에서 세부 항목을 조정하는 일만 남는다.

예산안 편성, 어떻게 진행되었나?

한해 예산안이 마련되는 과정을 올해 일정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작년 12월 기획재정부가 각 부처에 ‘2009~20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지침’을 통보했다. 이 지침에 따라 부처는 기존 재정사업에서 새로 생긴 변동요인을 반영하여 부처별 ‘중기사업계획서’를 1월말까지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기획재정부는 이 자료를 기초로 4월에 향후 5년간 분야별, 부처별 재정배분 몫을 담은 ‘2009-13년 국가재정운용계획(시안)’을 마련했다.

   
  

이에 5월 재정전략회의는 이 시안에 기초하여 내년 분야별, 부처별 재정지출 한도를 설정했다. 예를 들어, 올해 복지분야 지출이 80조원이었는데, 내년에 그리고 앞으로 5년간 얼마로 할 지가 이 자리에서 결정되었을 것이다(이 회의에서 결정되는 수치는 엄격하게 대외비로 관리된다). 또한 4대강사업(22조원), 신성장동력육성사업(25조원) 등 정부의 핵심사업도 여기서 논의되었다.

이후 각 부처는 재정전략회의에서 정해진 지출한도에 따라 6월말까지 내부 지출조정을 거친 부처요구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지난 7월 초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요구안(기금 포함)이 총 298.5조원이라고 밝혔다. 올해 301.8조원보다 3.3조원이 작은 규모이다. 물가상승분 반영은 고사하고 오히려 절대규모를 줄이는 요구안이다. 근래 벌어진 ‘4대강사업 과다 지출, 민생예산 삭감’ 논란이 모두 이 예산요구안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어제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최종 예산안을 보면 내년 정부 총지출은 291.8조원으로 올해보다 무려 10조원이 감소한다. 아직 부처별 세부 내역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무더기 민생예산 삭감이 예상된다.

올해 정기국회는 어느 때보다 뜨거운 예산 논란을 벌일 것 같다.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번에 단단히 대응할 모양이다. 마침 오늘 국회에서 야4당, 시민사회단체, 진보적 연구소 등이 모두 결집해 민생예산대회를 개최한다.

전략은 전략으로 맞서야

지금가지 국가재정 이슈는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는 때를 전후에 떠올랐다. 이 때 정부 예산안이 확정되고 국회가 심의에 나서기 때문이다. 진보운동 역시 이 때 재정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다. 이제 국가재정체계가 변화한 만큼 진보운동의 활동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가장 먼저 대응해야할 대상은 재정전략회의이다.

올해 재정전략회의는 언론의 큰 관심 없이 지나갔다. 노무현 서거 정국의 영향도 있었지만 진보운동 역시 주목하지 못했다. 경제위기를 맞아 전국민실업급여제, 사회서비스 1백만 일자리, 획기적 복지지출 확대 등을 요구한다면 내년 재정배분이 논의되는 재정전략회의에 맞서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재정전략회의에 주목하자. 이를 위해 개별적인 복지요구 사안이 아니라 진보적 대안재정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대안재정전략에는 총지출 규모, 분야별 재정 배분, 전략적 핵심사업, 재원조달 방안 등이 포함될 것이다. 진보적 가치를 담기 위해서 총직접세율, 복지지출, 사회임금(혹은 기본소득) 등도 핵심 목표로 상정될 수 있다.

곧 국회 안팎에서 본격적인 예산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이미 정부가 정해놓은 예산안 규모 프레임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민생예산 삭감분을 보전하라는 요구 이상을 넘기 어렵다. 앞의 연재글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값을 하려면 지금보다 100조원 이상의 재정을 더 사회복지에 지출해야 한다. 정기국회 대응도 중요하지만 여기선 ‘전투’만 허용될 뿐이다.

전략에는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 상반기 정부의 재정전략회의에 대응해야 하고, 이를 위해 진보의 대안재정전략을 만들어가야 한다. (대안재정전략은 연재 결론부에서 다루어지고, 다음 글에서 ‘중기재정운용체계의 도입과 의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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