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는 유연한 연합전략 구사해야”
    2009년 09월 28일 03: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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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에서 계속]

97년 체제의 이중성-민주개혁적 정치와 신자유주의경제의 결합

다음으로, 손호철 교수의 97년 체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하여 몇 가지 점을 부언하고자 한다. 손호철 교수는 두 가지 층위의 분석을 혼돈하고 있다고 조희연, 서영표를 비판하고 있다.

단기지속, 중기지속, 장기지속이라는 구분을 대입해 본다면, ‘체제’ 분석은 중기지속 국면에 대한 분석이 될 것이다. 97년 체제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라는 규정은 장기지속이라는 분석 속에서 주어지는 경제적 규정이라고 생각된다. 이를 중기분석을 위한 체제 분석에 적용하는 데서 오는 문제점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필자가 97년 체제가 신자유주의체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손호철 교수가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적 체제로의 전환은 오히려 장기적인 변화의 맥락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97년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성격, 그리고 그것의 대전환적 성격에 동의하지만, 그것은 97년만의 계기성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중기분석의 시각에서 보면, 97년 체제는 ‘민주개혁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모순적 결합체제’로 파악되어야 한다. 이 이중성의 관점에서 볼 때, 87년 체제의 부분적인 상향발전이면서, 다른 한편에서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로서의 08년 체제의 성격(손호철이 하위체제라고 하는 것)을 동시에 갖는 것이다.

   
  

물론 손호철 교수가 반론에서 쓰는 바와 같이, 손 교수의 분석에서 이미 사회체제는 경제체제와 정치체제의 결합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틀 내에서 이러한 이중성을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것을 전적으로 이러한 이중성에 대한 분석의 여지가 없는 식으로 서술함으로써 손호철 교수가 ‘오독’이라고 항변한 부분에 대해서 필자는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몇 가지 점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손호철 교수 자신도 61년 체제를 개발독재체제 혹은 발전국가라고 할 때, 체제 규정 자체가 이미 정치적 규정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61년 체제는 개발독재국가라고 하는 특성과 그리고-식민지 근대화와 구별되는- 식민지 이후의 자본주의화 과정이라고 하는 특성이 결합된 체제이다. 이런 점에서 97년 체제의 정치적 성격을 체제 규정에서 주변적인 것으로 상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필자는 일관되게 97년 체제는 한편에서는 정치적 변화와 다른 한편에서는 경제적 변화가 착종된 체제로 보고, 그 결합에서 나타나는 변화의 운동적 함의를 분석하는 것이 ‘체제론 논쟁’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97년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지배적 성격으로 설정하고 그것에 의해 체제 규정을 도출하는 것은, 그 자체가 거시역사적 과정을 중기분석의 명제로 전환하는 의미도 있거니와, 97년 체제론을 제기하는 의미에 부적합하다고 보는 것이다.

87년, 97년, 08년 체제는 기본적으로 ‘정치레짐’이다

우리는 “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는 모두 일차적으로는 정치레짐으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라고 표현하였는데, 필자는 여전히 이것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손 교수는 사회체제 속에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를 나누고 경제체제로서의 성격(신자유주의 체제)을 97년 체제(사회체제)의 지배적 성격으로 설정하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오히려 필자는 87년 체제, 97년 체제, 08년 체제가 정치적 전기에 의해 구조화된 정치체제로서의 지배적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단지 정치경제학적 관점에서 그러한 정치체제의 성격을 경제구조적 조건과의 연관 속에서 분석하는 것이 타당한 순서라고 생각한다.

손 교수의 논리로 하면, 사실 경제체제 변화라는 점에서는 80년 전두환 정권 이후의 변화도 대단히 중요한 것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80년 체제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정치적으로 박정희 체제와의 연속성 상에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자유주의체제라는 규정은, 현단계 전세계 3~4개 국가를 뺀 모든 국가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그만큼 ‘추상적’ 진술이라고 하는 점이다. 전세계 200개 넘는 정부를 다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하는 수준의 일반적인 논의라고 하는 지적을 해야겠다.

오히려 개별 정부 하에서, 그것이 구체적인 정치와 어떻게 결합되어 작동하는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극(極)추상적인 진술을 아주 구체적인 진술처럼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97년 체제에 대해서 손호철 교수의 논지에 대해서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97년 체제의 이중성’이다. 앞서도 서술하였듯이, “민주정부 10년간의 정권이 신자유주의정책을 취해서 실패했다”라는 식의 단순분석을 피해가기 위해서, 필자는 97년 체제의 이중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손호철 교수도 지적하는 것처럼, 경제와 정치의 결합으로서의 사회체제라는 관점에서 볼 때, 97년 체제는 모순적이고 이중적인 체제라고 본다. 우리는 “97년 체제는 한편에서 독재적 보수 세력이 집권세력으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고 자유주의 세력이 집권세력이 된다는 점에서 87년 체제의 발전이면서, 다른 한편에서 자유주의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프레임에 포획되는 새로운 ‘퇴행’의 시기로 파악될 수 있다. 전자의 측면에서 97년 체제는 87년 체제의 부분적 실현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87년 체제의 새로운 전환이고 좌절이다”이라고 언명하였다.

97년 체제의 이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97년 체제가 한편에서는 87년 체제와 다른 한편에서는 후속하는 08년 체제의 두 전환점에서 양면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이행기’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87년 체제가 61년 체제의 모순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민중적 투쟁에 의해서 조성된(물론 지배세력의 응전과 저항세력의 분열에 매개되는) 체제라고 한다면, 08년 체제는 87년 체제의 전면적인 역전의 성격을 띄고 있고, 보수우파 세력이 주도하는 체제이다. 97년 체제는 한편에서는 87년 체제의 과제의 부분적인 상향실현의 시기이면서, 08년 체제를 예비하는 모순적인 체제이다.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헤게모니 균열에서 발생하는 국민정치 공간의 공백

마지막으로 08년 체제와 관련하여, 필자의 배경적 문제의식으로서 두 가지를 강조할 수 있겠다. 첫째는 신우파(신보수)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결합으로 인하여, 97년 체제 하에 존재하던 이중성과 모순성이 현저하게 축소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97년 체제의 이중성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민주개혁적 정치와 신자유주의적 경제의 결합은 후자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억제하고 정치적 저항으로 현재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율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된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신우파(신보수)정권이 출현하여 신자유주의 정책기조를 전면화함으로써 다양한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가 촉발하는 모순과 저항이 확산되고, 대중들의 저항성이 현재화될 가능성이 커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반신자유주의적 경제로만 환원될 수 없는 ‘반신자유주의적 정치’의 폭넓은 공간을 출현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08년 체제 하에서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균열은 보다 폭넓은 ‘국민정치의 공백’을 출현시키게 되었고, 이는 반신자유주의세력으로 하여금 국민정치적 공간에서의 ‘유연한 헤게모니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공간을 확장시키게 되었다는 것이다.

   
  ▲ 사진=손기영 기자

97년 체제를 경과하면서, 반독재 자유민주주의세력은 87년 체제의 많은 정치개혁의 의제를 실현할 수 있었지만(비록 불철저하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담지자가 됨으로써, 또한 신자유주의적 개방화에 따르는 파국적인 사회경제적 효과에 응전하지 못함으로써, 대중적 지지기반의 이반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 97년 체제의 이중성에서 발원하는 반독재 자유주의의 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 균열, 신우파정권의 전면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에서 발원하는 새로운 이반들을 어떻게 ‘진보적인 헤게모니적 접합’ 혹은 ‘좌파적인 헤게모니적 접합’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호철 교수는 반론에서 사실 우리의 입장에서도 구체적인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상이 얻어지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필자도 이를 인정한다. 사실 손호철 교수는 여러 토론회 발제를 통하여, 다양한 경로들을 예시하면서 다양한 가능성들을 제시한 바도 있다.

반신유주의와 공공성 실현을 위한 새정치연합?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라고 하면, 필자는 이런 아이디어를 내고 싶다. 먼저 반신자유주의 정치를 담지하는 ‘연합적 정치주체’가 대중들에게 가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08년 체제로부터 이반하는 대중들이 정치적으로 수렴될 수 있는 정치적 구심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필자가 상상해 본다면, 현재의 분화되어 있는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들이 “신자유주의 반대와 공공성 실현을 위한 ‘새정치연합’” 같은 연합적 구심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민노당, 진보신당, 사회주의 노동자 준비위원회, 사회당, 기타 진보적 제세력들이(스스로의 조직들을 유지하면서도) 진보적 정치연합을 가시화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국민정치 공간에서의 헤게모니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안타깝지만 현실은 이미 반신자유주의적 정치세력들 각각의 복잡한 이해관계들과 정서적 관계들로 인하여 가장 ‘합리적인’ 정치적 실천이 제약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반신자유주의적 세력 내부의 균열이 유연한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을 제약하기도 하며, 또한 아예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에 대한 관점이 부재하여 이러한 실천이 제약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반신자유주의 정치세력이 새로운 공백 정치공간에서 우파정치세력과 반독재 리버럴과 경쟁 각축하면서 대안적인 ‘국민적-대중적 세력’으로 부각하기 위한 각축을 유연한 헤게모니 전략에 기초하여 행하는 것을 필자는 상상한다.

앞에서 이야기한 반신자유주의세력 내부의 적극적인 연합이 이루어진다면(주체의 진보적 재구성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기초로 ‘공백’이 된 국민정치적 공간에 보다 유연한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폭도 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각축은 ‘경쟁’의 측면도 존재하지만, 반MB투쟁 속에서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진보적 분파들과 연대 견인하는 노력도 포함할 것이다. 이러한 실천에 우리는 이미 ‘김상곤 모델’의 경험이 있다.

많은 경우 적극적인 헤게모니적 개입전략보다는, ‘누가 친신자유주의적 세력인가’를 판별하는 ‘판별사’적 관점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국민정치적 공간에 반신자유주의 세력, 혹은 반자본주의 세력이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하는 적극적인 개입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국민정치 공간의 열림과 닫힘

사실 돌이켜 보면, 1987년 이후 진보적 좌파적 정치세력의 약진을 위한 공간은 국면에 따라서 부침해 왔다. 1987년 군부독재체제가 붕괴되는 상황은 주체의 준비정도가 충분하였다면 진보적 좌파적 세력의 약진의 공간일 수도 있었다. 브라질의 정치세력화의 경험에서 본 바와 같이, 반독재 투쟁과 진보정치세력화의 과정이 일체화되었다면 훨씬 더 큰 성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1차의 열린 공간은 폐쇄되었다. 이처럼 1차의 열린 공간이 닫힌 이후 오랜 동안의 ‘진보정치세력화’의 노력이 어렵게 전개되었고, 2004년 ‘보수의 의회독점’이 균열되는 시점에, ‘진입’의 기회가 열렸다.

이제 진입을 넘어, 확장과 약진의 기회가 열려야 할 것이다.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이 국민정치적 공간에서 배타적인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못하게 된 현재의 상황은 진보정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는 새로운 ‘열린 공간’이라고 생각된다.

단지 87년의 1차의 열린 공간과 동일하게 주체의 조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우리의 우울함이 있다.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면, 일차적으로 반신자유주의적 세력들의 연합적 재정렬과 나아가 유연한 헤게모니적 개입전략을 통하여 이 새롭게 열린 공간에서 대약진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08년 체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97년 체제와 신자유주의적 공통성을 확인하는 데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필자는 08년 체제가 진보적 운동에 대해서 갖는 전환적 성격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08년 체제는 열린 시기이기도 하지만, 도전의 공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정치적 전기로서의 08년 체제의 성립은, 61년 체제의 주도적 집단으로서의 개발독재적인 파쇼적 보수와 구별되는 ‘신자유주의적 보수’의 부상을 가져왔고, 이는 일종의 ‘보수의 진화’의 성격을 띄고 있고, 이는 저항정치의 대대적인 혁신과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08년 체제로부터의 대중의 이반을 수렴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 점은 필자가 「신자유주의적 불평등/신보수정권 시대의 ‘복합적 반신자유주의 정치’」, <진보평론> 35호. 2008년 여름호에서 자세하게 서술한 바 있다).

여기에 진보적 좌파적 정치의 새로운 도전과 가능성이 존재한다. 반독재 자유주의세력과 구별되어 있다는 점만으로도, 민주정부 10년의 주도집단이 아니었고 그에 대한 비판세력이었다는 점만으로도, 새로운 대안적 주체로서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는 주체의 응전에 따라 상이한 결과가 나타나는 비결정론적인 공간으로 주어지고 있다.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손호철 교수가 97년 체제 중심론적 시각을 견지하는 것은, 97년 체제의 신자유주의적 성격, 그리고 08년 체제의 하위체제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킴으로써,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친신자유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 반MB연합처럼 ‘도로 민주당 중심 연합’으로 회귀하는 것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필자도 이러한 경고 자체에 대해서 동의한다. 단지 이러한 결론이 필자와 같이 97년 체제의 이중성과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균열이라고 하는 논리적 경로를 통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다.

97년 체제와 08년 체제의 차이를 신자유주의적 체제라는 점으로 주변화시키는 방식보다는, 그 정치적 차이를 부각시키는 방식을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존경하는 선배님이자 존경하는 선생님인 손 교수님의 체제론에 대해서 오독을 무릅쓰고 과도하게 논점을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염려가 생긴다. 널리 양해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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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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