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좌파, 87체제 진정한 계승자돼야
        2009년 09월 28일 07: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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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호철 교수의 반론 글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하였다. 손호철 교수도 정리하였듯이, 필자・서영표 그리고 손교수 간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97년 체제의 지배적 성격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성격을 인정하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현단계 주요전선을 바라봄에 있어 단순히 ‘반MB전선’으로 일면화하는 시각이나 반대로 ‘반신자유주의적 전선’으로 일면화하는 시각에 비판적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특별히 손호철 교수의 글은, 사회체제를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결합으로 이해하고 하나의 체제를 여러 하위체제들(노동체제, 헌정체제 등)의 구성물로 정교화해낸 것 등은 현대 정치변동에 대한 진보적 분석틀을 이전 보다 진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하고 있다.

       
      ▲ 조희연 교수(사진=레디앙)

    사실 논쟁이라는 것이 이념적 기반이나 현실 인식이 다를수록 논쟁의 쟁점도 선명하고 논쟁하기도 좋다. 그러나 이번 논쟁은 진보적・좌파적 학술진영 내부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일반 사람에게는 무엇을 가지고 논쟁하는지도 모호하고 쟁점이 불분명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진보적・좌파적 진영 내부에서도 다양한 미세한 차이들이 논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좋고 그것들을 이론적・실천적으로 분명하게 해내는 것은 진보적 학술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손교수와의 많은 공통성을 전제로 하면서도, 논쟁을 통해서 제기하고자 했던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몇가지 점에서는 미세한 차이를 명확화히 해내는 방식으로 몇가지 점을 논술해보고자 한다. 여기서는, 논쟁이 ‘건조한 개념 논쟁’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논쟁의 배경이 되는 필자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서술하는 식으로 논쟁을 풍부화해보고자 한다.

    반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뛰어넘는 반신자유주의적 정치학적 고민으로

    필자가 손호철 교수에 대해서 제기하고 싶었던 것은, 현재의 정세와 그에 대응하는 실천적 방향과 관련하여 ‘반신자유주의 경제’라는 본질적 규정을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반신자유주의세력(더 나아가 반자본주의세력이라고 표현해도 좋다)이 어떻게 현실의 복합적인 대중정치의 공간에서 대중들의 잠재적인 저항성들을 전유하면서, 보다 풍부한 ‘반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정치’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이를 필자는 “‘반신자유주의 경제학’만이 아니라 ‘반신자유주의 정치학’, 그것도 ‘복합적인 반신자유주의 정치학’, ‘복합적인 반신자유주의 헤게모니 정치학’의 고민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표현하였다.

    필자는 ‘경제주의적 경향’은 필자를 포함하여 진보적 분석 일반의 문제점이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많은 진보적 분석에서 핵심적인 규정으로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라는 범주가 사용된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것이 현실분석의 출발점이 아니라 ‘종착지’이자 ‘만능 설명장치’로 사용된다.

    80년대 이후 한국의 진보적 분석이 얼마나 풍부화되어 왔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진보적 분석은 많은 경우 환원주의적 분석으로 경도되고, 그 결과 현실에 대한 복합적 분석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대중들의 정치적 의식이 발전하게 되면서, 때때로 진보적 분석은 대중들에 의해 ‘뻔한 이야기’를 반복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되기도 한다.

    복합적 현실과 진보적 분석 간의 이러한 괴리는, 보수가 비판해 들어오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사실 2000년대 이후 현재의 뉴라이트의 등장과 확산, 그들의 지적 도전도 사실 바로 이러한 진보 분석의 환원론적 공백에 기인하는 지점이 많다.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해서 실패했다는 설명방식

    사실 97년 초 진보논쟁 과정에서도 이 점은 쟁점화된 바 있다. 당시에도 최장집 교수와 손호철 교수 등과의 논쟁에서 필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는, "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정책을 취해서 실패했다"라는 식의 신자유주의 환원주의적 설명이 사실은 설명이 아니라 ‘동어반복’이라고 하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는 다양한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하였다. 그러나 많은 분석에서 신자유주의정책을 선택했으니까 실패했다고 단순 환원논법으로 이해된다.

    그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서 우리가 끌어내야 하는 교훈과 성찰은 ‘반신자유주의’를 하면 되는 것이고, 그러한 비판을 하는 나는 반신자유주의적 입장에 서있으므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 없게 된다. ‘그들’의 주체적인 계급적 한계의 문제이므로 말이다. 필자는 동일한 결론이 나오더라도 복합적 분석의 경로를 통해서 가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난 20년 동안의 진보적・좌파적 분석의 불모화 – 많은 훌륭한 분석들도 많지만 – 도 이런 문제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서영표 교수가 지적하는 대로, 대중들의 삶의 차원이나 경제적 차원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차원과 상호작용하면서 만들어내는 복합적 현실이 그러한 분석에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한국에서도 맑스주의가 풍부화되고 더 나아가 ‘한국적 맑스주의’가 발전되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현실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이 이미 발견된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의 일반적 진리를 ‘적용’하는 문제로 왜소화되기 때문이다.

    한국 현실의 특수성에 대한 주목, 그것에 대한 일반론적 천착이 있지 않는 한, 한국적 맑스주의는 없다. 그 결과, 한국의 특수한 현실(혹은 신자유주의적 현실) 속에서 다른 많은 나라의 현실에서 발견할 수 없는 새로운 ‘맑스주의적 일반론’이 한국에서 발견・천착될 가능성이 지적으로 제약되게 된다. 이것은 손호철 교수에 대한 비판이 아니고, 논쟁에 임하는 필자의 배경적 문제의식을 서술하기 위한 것이다.

    용산, 평택과 광화문

    나아가 논쟁의 실천적 문제의식과 관련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예컨대 2008년과 2009년을 거치면서 우리에게는 3가지 상이한 전장(戰場)이 있었다. 광화문, 용산, 평택이 바로 그것이다.

    2008년 광화문의 촛불시위가 2008년 체제에 대한 다양한 이반들의 수렴이었다고 한다면, 용산은 2008년 체제 하에서 추동되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전면화, 그 일부로서의 도시 개발전략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 그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에 대한 저항이라고 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2009년 6・7・8월의 평택 투쟁은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정리해고에 대한 생산현장에서의 저항이었으며, 전형적인 ‘계급전쟁’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3가지 저항은 바로 08년 체제 하에서의 다양한 저항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는 일차적으로는 경제위기를 명분으로 하여 작업장에서의 노동자들에 대한 공세로 나타나게 되고 이에 대한 저항이 출현한다. 평택투쟁이 이를 보여준다.

    나아가 자본의 공세는 도시 재개발을 둘러싼 독점적 경제이해집단들이 세입자와 영세상인들의 이해를 무시하면서 재개발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그것을 독점하는 시도로 나타나게 된다. 용산 투쟁은 이에 대한 저항이고 희생이다.

    그러나 자본운동의 전사회화 속에서 그에 대한 저항은 이러한 영역을 넘어서서 보다 대중들이 일상적인 전삶의 영역에서 나타나게 된다. 교육의 현장에서, 그리고 식생활의 영역에서 첨예하고 확장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와 맞닥뜨리게 된다. 광화문 투쟁은 바로 이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바로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체제로서의 08년 체제 하에서, 이처럼 질을 달리하는 다양한 저항들을 어떻게 진보적으로 수렴할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필자가 굳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저항적 이반과 잠재력이 대중들의 전삶의 영역에서 발현된다고 하는 점을 주목하면서 ‘좌파적인 헤게모니적 접합’의 관점에서 다양한 이반과 저항의 접합과 결합을 사고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 2008년 촛불집회

    진보적・좌파적 입장에서는 평택과 용산의 민중적 투쟁을 광화문 투쟁의 핵심적인 성격으로 가져가기 위해 투쟁해야 하지만, 광화문 촛불의 복합성을 고려하면서, 이에 급진적으로 개입하려고 하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급진적 정신에 서면서도 어떻게 광화문 정치에 개입할 것인가하는 것, 나아가 광화문의 촛불정치를 어떻게 급진정치화할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화문 촛불정치의 ‘개량성’을 지적하거나. 왜 광화문은 용산과 평택과 결합하지 않는가하는 식의 접근방식은 소극적인 접근방식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좌파정치, 사회주의정치, 급진진보정치가 국민정치적 공간에서의 헤게모니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하는 고민을 제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적 문제의식들을 필자는 가지고 있다.

    이런 전제적 논의 위에서, 손호철 교수의 이전 글에 대한 몇가지 지점에서 비판적 논점을 제기해보고자 한다.

    진보적 사회과학에서 87년 체제를 이야기할 수 없는가

    손호철 교수는 “87년 체제론과 같은 색맹 사회과학, 나아가 반MB 대동단결론이 우리 사회의 소위 운동진영, 비판적 학계에서도 ‘다수파’이기 때문에 이를 이론적으로 혁파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

    손호철 교수가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당 등 반독재 자유주의정당과 진보적・좌파적 세력 간에 존재하는 차이들을 사상하고 ‘제2의 6월 항쟁’을 촉구하는 식의 논의에 대해 비판하고 있고, 이에 대해 필자도 동의한다.

    손호철 교수는, 80년대 반파시즘 투쟁 및 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출현한 87년 체제에 대한 ‘우파적 시각’이나 ‘자유주의적 시각’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필자는 87년 체제에 대한 새로운 급진적 재해석과 좌파적 전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필자는 사실 한국의 급진주의는 80년대의 급진적 운동과 87년 민주항쟁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서구에서 사회주의자 등 급진주의자들은 시민혁명의 급진적 계승자들이었다. 19세기에 ‘사회적 민주주의’가 혁명적 공산주의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런 점에서 08년 체제 하에서 진보적・좌파적 세력은 87년 체제의 부정이 아니라, 87년 체제의 합리적 핵심으로서의 민주주의의 진정한 실현자, 즉 진정한 급진적 민주주의자로 표상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87년의 자유민주주의세력과 급진민주주의세력

    조금 자세히 서술하면 이렇다. 필자의 시각에서 보면, 80년대의 운동과 87년 6월 민주항쟁에서 정점에 이른 ‘반파시즘 투쟁’에는 두가지 흐름이 있었다고 본다. 즉 자유민주주의적 지향(및 그것을 담지하는 세력)이고 다른 한편에는 급진민주주의적 지향(및 그것을 담지하는 세력)이다. 후자에는 NL과 PD, 트로츠키주의, 무정부주의, 기타 다양한 변혁적 흐름들이 포괄될 수 있다.

    87년 체제가 ‘위로부터의 보수적 민주화’의 경로로 현실화되면서, 87년 이후의 한국민주주의와 정치에서 전자의 자유민주주의세력이 헤게모니가 관철되었다. 이른바 ‘비판적 지지’도 이것의 한 표현이다. 이러한 87년 체제 하에서 급진민주주의세력은 주변적 위치에 존재하였다.

    87년 체제의 ‘적자’로서의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은 아래로부터의 민중적・시민적 투쟁에 힘입어 97년에 집권세력이 되는 단계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집권세력이 된 이후, 국가의 제약성과 집권 시점에 발생한 외환위기의 제약 효과, 그리고 반독재 자유주의세력 자체의 사회경제적 불철저성 등에 의해 제약되면서,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개방화의 방향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내부화에 따른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모순들에 대하여 대응하지 못하면서, 반독재 자유주의 정부 10년 만에 헤게모니를 상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여기서 반독재 자유주의 정부 집권기가 10년을 경과하는 시점에, 대중들의 다양한 이반들이 나타났다. 그람시가 이야기한대로, “사회집단들은 그 역사적 과정의 일정 시점에서 전통적으로 지지해온 정당으로부터 유리된다. 즉 그 당은 기존의 조직형태로 보나 또한 그 당을 구성하고 대표하고 지지하는 일정한 구성원으로 보나, 이제 그 계급 혹은 그 계급분파를 대표한다고는 인정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은 위기가 발생하면, 그 시점의 정세는 불안정하고 위험한 것이 된다”.

    이러한 위기의 지점에는 다양한 가능성이 주어진다. 2007년이라는 전환 시기, 대중의 광범한 이반이 나타나는 지점에 – 87년 체제의 급진민주주의세력이 새로운 대안적 세력으로 부상하는 것이 아니라 – 퇴행적으로 우파세력들이 대중들의 불만과 이반을 ‘우익적인 헤게모니적 접합’을 성사시키는데 성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제 08년 체제, 이명박 체제라고 하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이미 헤게모니를 상실한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의 권토중래(捲土重來)의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우파세력들의 헤게모니 지속으로 갈 것인지, 87년 6월 민주항쟁의 급진민주주의적 계승자들이 대중들의 새로운 지지를 획득할 것인가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의 가능성은 반독재 자유주의 세력의 헤게모니가 크게 균열되었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여기서 손호철교수가 주장하는 것처럼, 급진민주주의세력은 무조건적인 반MB 대동단결론에 빠지지 않으면서 새롭게 우파적 재(再)헤게모니화를 저지하면서, 진보세력・좌파세력의 대약진의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87년 체제의 급진민주주의 세력의 중대한 약진과 응전의 시점에 있는 것이고, 바로 87년 항쟁의 진정한 계승세력으로서의 급진민주주의세력이 국민적-대중적 정치세력으로 부상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렇기 위해서 어떻게 진보적・좌파적 정치세력들이 대중들에게 다가갈 것인가하는 고민이 필요하다. 87년을 부정하는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87년의 항쟁에 내재한 진정한 급진적 지향들을 반독재 자유주의세력이 신자유주의에 ‘좌절’해버린 바로 그 지점에서 제기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필자가 87년 체제의 급진적 재해석을 하고자 하고, 61년 체제-87년 체제-97년 체제-08년 체제의 상호연관 분석에서 87년 체제의 위상을 강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도 여기에 있다. 한국현대사에서 아래로부터의 민중투쟁의 최고봉이고 개발독재체제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강제한 87년의 계기성과 잠재성을 분석에서 주변화시켜서는 않된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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