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파' 심판-실리주의 최종 승리
금속산별 놓고 총자본 vs 노조 대결
By 나난
    2009년 09월 27일 11: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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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훈 후보의 현대차 지부장 당선은 그가 지칠 줄 모르는 도전 끝에 위원장 자리에 올랐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가 될 법하다. 하지만 이번 현대차 조합원의 선택은 개인 이경훈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로 대표되는 노선과 흐름을 선택한 것이다.

‘민주파’ 비판, 경제적 실리 선택

대부분의 언론이 강경 대 온건, 정치 대 실리라는 부적절한 이분법으로 상황을 해석하면서 후자의 승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조합원을 개고생시키고, 현장을 무시한 금속노조" 등 당선자의 발언을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민주노조’ 노선의 실패 증거로 최대한 부각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탈퇴’ 전망이라는 성급한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곳도 있다.

노동계 안팎의 인사들은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내부의 변화를 예상하는 언론 보도가 ‘과도’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당수는 이번 선거 결과가 그동안의 현대차 지부의 ‘민주파’와 금속노조, 민주노총에 대한 조합원의 비판적 평가도 작용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금속연맹 사무처장을 역임했고, 이번 금속노조 임원 선거에 부위원장에 당선된 현대차 울산공장의 김호규씨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먼저 "그간 민주파 집행부는 2~3차 결선에서 51~52%의 득표율로 2위와 4~5% 포인트 수준의 차이밖에 보이지 않았다”며 “사실상 5% 차이를 놓고 조합원들의 표심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경훈 현대차 지부장 당선자. 

이번 선거에서 이경훈 후보는 전체 투표자 4만288명 중 2만1,177표(52.56%)를, 권오일 후보는 1만8,929표(46.98%)를 얻었다. 두 후보 간 표차는 5.58% 포인트(2,248표)였다.

하지만 그는 2천 명 정도의 표심이 이경훈 후보쪽으로 이동한 것은 “민주파 집행부에 대한 냉혹한 평과와 사회적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는 이와 함께 “조합원들 나이가 많아지면서 개인주의, 실리주의화 되는 경향이 있고, 09년 임단협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누가 더 경제적 요구를 해결해 줄 수 있는가’라는 점이 판단의 기준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산별노조 실패, 현장에 실망과 혼란 줘

한국국노동운동연구소 임영일 소장도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에 대한 부정적 여론과 내부적인 불만 여론이 이번 선거 결과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는 “금속산별노조 전환 후 중앙 집행부가 산별노조로서의 금속노조 위상을 세우는 데 실패했다”며 “원칙적인 입장을 가진 집행부가 현대차에 들어 서 있었음에도 산별노조 전환이라는 기조를 유지하지 못한 채 사퇴 등의 혼선을 반복하며 현장에 실망과 혼란을 줬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주목되는 결과 분석은 현대차 지부 선거는 금속의 산별전환을 저지하기 위한 현대차 자본은 물론 전체 자본의 ‘핵심적 이해관계’와 맞물린 선거라는 점을 강조하는 시각이다. 이와 관련 전직 민주노총 지도부 가운데 한 인사는 "금속의 산별 전환을 막기 위한 전체 자본과 산별 세력의 대립이 이번 선거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차 지부 위원장 출신인 금속노조 박유기 위원장 후보와 기존 산별노선을 지지하는 현대차 지부장이 당선될 경우 금속산별로의 전환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회사 쪽은 이를 막기 위해 "노골적인 선거 개입"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차 최고 경영진이 "박유기가 위원장이 되면 교섭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고 전했다.

한편 현대차 내부 ‘민주파’ 일부가 이경훈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과 이 후보가 금속노조 김창한 후보를 지지하면서 ‘어용’이라는 비난에 대해 방어막을 치는 등 ‘좌로 한 클릭’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그의 당선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일부에서 나왔다.

"민주파 일부 선거운동 도와준 것이 결정적"

이와 관련 노동계 한 관계자는 2,248표의 차이에 대해 이는 “민주파 활동가의 이경훈 후보 지지”의 결과라며 “전통적인 민주파 활동가이며 민주노동당 지도부였던 이모씨가 이경훈 후보에 힘을 실어줬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또한 이경훈 후보도 금속노조 6기 임원선거에 출마한 김창한 금속노조 전 위원장을 지지하고, 수석부위원장으로 나온 박상철 후보가 자신을 밀고 있다는 등 자신도 ‘민주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색깔 세탁’을 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경훈 지부장 체제의 출범 이후의 전망과 관련, 언론들의 ‘호들갑’에 가까운 성급한 예측 보도와 달리, 노동 쪽의 시각은 이번 선거 결과로 ‘요동치는’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다.

김호규 당선자는 “집행부의 변화를 대단하게 보는 것도 우습다”며 “현대중공업이나 기아, KT, 쌍용차처럼 민주노조운동이 힘을 잃거나 민주노총을 탈퇴로 보는 것은 지나친 사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경훈 당선자가 말하는 ‘한국형 산별노조’의 내용을 살펴 의견 차이가 있으면 논의를 통해 합의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일 소장은 “현대차의 경우 그간 민주파가 집권해왔음에도 민주파 내에서도 ‘친기업’ 성향의 집행부가 올라온 적이 있어, 큰 사이클로 볼 때 ‘이상’할 것은 없다”며 “보다 ‘실리주의적’인 동시에 ‘노사협조적’인 집행부가 되지 않을까 전망된다”고 말했다.

"큰 변화는 없을 것"

울산 지역 상황에 밝은 노동계 한 관계자도 "과거 (어용으로 비판받았던)이영복 위원장 시절에도 민주파와 어용이 집행부를 주고받고 하면서 선거가 진행됐다"며 이번 결과도 그런 ‘지도부 순환’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동시에 친기업쪽 지도부가 구성된 것은 민주노총 출범 이후 처음이라며 "현 단계에서 가능성을 점치기는 쉽지 않지만, 현대 재벌 차원에서 현대그룹 소속 단위 노조들을 묶는 조직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민주파 권오일 후보와의 표차가 크지도 않을 뿐더러 금속노조에 대한 현장의 신뢰가 살아있다”며 따라서 “KT, 쌍용차 등의 민주노총 탈퇴와 같은 흐름으로 현대차지부를 해석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다른 노동계 관계자는 “집행부의 변화가 조합원의 변화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민주파로 불리는)현재의 현대차 집행부 역시 쌍용차 연대 등 투쟁을 하지 않았으며 향후 투쟁 기조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속의 산별 전환 프로그램이 이번 선거 결과 일정 수준 제동을 걸린 것은 분명하다. 이경훈 당선자는 당선 후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형 산별노조, 현장을 중심으로 희망을 갖는 금속노조로 거듭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산별노조가 완성될 때까지 현대차지부에도 단결권, 교섭권, 체결권을 위임해 스스로 고용과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해, 오는 10월 기업지부 해소, 지역지부 전환을 앞둔 금속노조 조직재편에 브레이크가 걸릴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산별전환 제동 걸릴 듯

그는 현실을 강조하며 기업지부 해소 자체를 반대해온 것으로 알려져 산별전환을 두고 중앙과 지부 차원의 갈등도 예상된다. 이와 관련 임 소장은 “금속이 산별중앙교섭을 추진할 때 최대 사업장인 현대차의 참여가 중요하다”며 “향후 산별노조로서의 집중력이 커지는 상황에서 현대차 임원선거의 결과가 부정적인 영향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임 소장은 “오랜 시간 기업별 시스템을 유지해온 상황에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 “산별운동 차원에서 볼 때 원하건, 원하지 않건 중앙과 지부 간의 호흡조절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한형근 대외협력국장은 “새로 당선된 집행부가 금속노조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며 “실질적으로 기업지부를 존속하고자 했던 집행부는 이전에도 있어 왔다. 그 문제로 더 논란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이번 금속노조 임원선거 결과의 조합원 결정을 존중한다”며 “향후 현대차 지부와 금속노조 간의 큰 변화는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 결과 ‘민주파’로 불리던 세력이 노조 권력을 획득하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는 조합원들의 선택에 따른 것으로, 선거 부정이나 어용 시비로 시끄럽지 않은 것은 형식적인 차원에서는 ‘민주노조’의 의미가 확장됐다는 역설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민주노조’ 의미 확장?

다만 내용적으로, 노동자 편에 서서, 연대의 폭을 넓혀가는 노조의 일상 사업이 지속적으로 수립되지 않고, 조합원들의 참여를 유발하는 적극적 노력이 부재할 경우 현대차 지부는 산별 지향과는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급속도로 기업별 실리노조로 전환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민주’파라는 용어의 적절성도 따져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반민주 구도로 정세를 설명하는 것이 퇴행적이듯, 민주-어용의 구분법도 이제는 퇴행적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민주노조는 이제 어용과의 선명한 대립 전선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을 넘어서, 민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 하는 과제를 앞두고 있는 셈이다.

물론 자본의 노조 와해 또는 장악을 위한 의도는 ‘불변’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어용’의 위험성은 상존하는 것이지만, 이를 막아내는 것은 위원장이나 특정 지도부가 아니라 결국은 조합원의 힘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경훈 지부장 당선이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대부분 이 같은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현대차 지부 내의 ‘민주’를 내세운 수많은 정파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의 ‘조합원 중심’을 강조하는 여러 정파들이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교훈을 도출해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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