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짐한 몸, 넉넉한 마음
        2009년 09월 25일 04: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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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벤스의 그림에서 알몸으로 서있는 미의 세 여신을 보면 가슴은 거의 쿠션만하고, 엉덩이는 어지간한 베개만하다. 틀림없이 그 시대에는 살집 좋은 사람이 아름답다고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푸짐한 몸을 가져야 일등신붓감 대접을 받았던 것이 우리나라에서도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이었다.

    몸에 대해 야박해진 세월

    그러나 세월이 몸에 대해 야박해지면서 지금은 좀 넉넉한 몸매를 가진 것이 꽤나 흉잡히는 시절이다. 뚱뚱하다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게 여겨지는 것만도 억울한 일인데 자기관리 제대로 못하는, 그래서 푸대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밀쳐져 이리저리 치이다보면 좋던 성격도 뾰족뾰족 모가 날만 하다. <룩앳미>의 롤리타가 그런 사람이다.

       
      

    롤리타는 문화계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유명한 작가를 아버지로 둔 한창 나이의 아가씨다. 연극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예술적 감성도 지녔고, 길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낯선 사람에게 웃옷을 벗어 덮어줄 정도로 마음 씀씀이도 넉넉하다.

    그런데 그 마음씀만큼이나 넉넉한 살집 덕분에 세상살이가 팍팍하다. 그래서 사람들 속에서 안으로는 주눅들고, 겉으로는 성깔에 날이 서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권력에서 떨어지는 떡고물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기를 이용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롤리타는 자기와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새엄마나 스스럼없이 다가온 남자친구에게까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새엄마는 충분히 예쁘고 날씬하면서도 여전히 몸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모처럼 만난 남자친구는 형편이 어렵던 중에 롤리타 아버지가 준 도움을 감사히 받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이다.

    롤리타의 몸과 마음을 두루 아껴준, 그래서 마침내는 롤리타의 두뺨을 행복으로 발그레하게 물들인 그 청년은 영화에서 유일하게 롤리타 아버지를 자발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다. 롤리타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누구보다 상냥하고 너그러운 이 청년은 사실 롤리타보다 더 많은 편견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사랑과 편견

    세바스티앙, 그 청년이 선택한 이름이다. 원래 이름은 라마드, 아마도 알제리나 아랍계 출신일 것이다. 세상살기 편하자고 이름은 바꿨지만 이방의 분위기는 쉽사리 바뀌지 않아서 취직도 더 어려운 것일 터이고, 제 돈 내고 차 마시는 카페에서 제대로 손님접대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험악한 막말을 들어야했을 것이다.

    그래도 자존심은 짱짱해서 억울하면 덤벼보라는 카페 종업원의 도발을 참아낸 것이 자기가 비겁해서가 아니라 싸움이 싫어서였다고 끝끝내 밝힌다. 롤리타의 피해의식이 빚어낸 오해를 벗어버리기 위해 롤리타 아버지의 도움도 거절한다. 그러고서야 사랑을 얻는다.

    어쩌면 롤리타가 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아버지의 독선적인 권위를 떨쳐버리는 것보다 세바스티앙이 세상의 눈총에서 자유롭기가 더 어려울지 모른다. 뚱뚱한 롤리타와 이방인 세바스티앙 짝은 통통한 방송 리포터 브리짓 존스와 멋들어진 인권변호사 마크 짝보다 넘어야할 산이 많을 것이다. 괴물 슈렉과 못생긴 피오나 공주가 결혼한 다음에 더 힘들었던 것처럼.

    지금은 이주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이 낯설지 않은 세상이다. 우리 곁에서 <룩앳미>의 행복한 결합을 보고 싶다면, 우리야말로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몸짱이나 세계화 따위 허울 좋은 구호에 앞서 ‘룩 앳 마이셀프’하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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