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꺼이 ‘이론주의자’가 되겠다”
        2009년 09월 24일 10:0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서 교수의 글 「일상의 정치공간에 대한 통찰 부족」이라는 글(<레디앙> 2009년 9월 23일) 잘 읽었습니다. 서 교수도 잘 알지만, 이 글은 다음과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한국체제논쟁을 다시 생각한다」(<한국과 국제정치> 2009년 가을호)에 대해 조희연, 서영표 교수가 「체제논쟁과 헤게모니전략」(<마르크스주의 연구> 2009년 가을호)라는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이를 <레디앙>이 「손호철 97년체제론은 경제주의적 편향」(2009년 9월 10일자)라는 글로 요약소개한 것에 대해 내가 「내가 신자유주의환원론자라굽쇼?」(<레디앙> 2009년 9월 16일자)라는 반론을 쓰자, 서 교수가 재반론을 한 것입니다. 서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체제논쟁과 헤게모니전략」의 문제 의식 중 <레디앙>의 요약소개에 빠진 부분을 중심으로 나의 글을 비판하며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습니다.

    체제론이 추상적이라는 지적에 동의,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서 교수의 글에 99%(100%는 아니고 1%가 빠지는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겠습니다) 동의합니다. 구체적으로 나의 체제론이 아주 추상적인 분석에 머물러 구체적인 정세적 계기와 일상적 정치공간에 대한 통찰에 부족하다는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하여 이 같은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나아가 대항헤게모니전략과 관련해 대안적 공동체운동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 등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를 전제로 몇 가지 명확히 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우선 내가 원래 「한국체제논쟁을 다시 생각한다」를 쓴 이유입니다. 나는 「한국체제논쟁을 다시 생각한다」를 통해 복잡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로 하여금 글을 쓰도록 만든 문제의식은 너무도 간단합니다.

       
      

    97년 경제위기로 한국사회가 완전히 신자유주의로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다 지나간 87년 체제나 읊조리고 있는 87년 체제론에 대해 우리 사회는 이미 신자유주의로 바뀌었고 우리 사회의 주모순은 신자유주의문제라는 것을 부각하고 싶었습니다(97년 체제론).

    나아가 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97년 체제를 08년 체제가 대치했다는 주장을 통해 반MB전선만을 강조하고 대동단결론을 주장하는 일부 논자들이 틀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해주고 싶었습니다.

    즉 MB정권 출범 후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 김대중-노무현정부의 좌파신자유주의에서 우파신자유주의로의 우경화, 냉전적 남북관계로의 후퇴 등이 일어났지만, 이를 특징으로 하는 08년 체제가 신자유주의와 제한적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97년 체제의 특징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08년 체제는 97년 체제의 하위체제이며, 따라서 반신자유주의 문제를 반MB 문제로 환원시키거나 대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87년 체제는 주모순이 아니라 주모순의 주된 측면이며 반신자유주의투쟁과 반MB투쟁을 결합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습니다.

    반MB환원론 올인에 대한 비판이 내 체제론의 목적

    나는 나의 글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아니 많은 분들이 “교수라는 자들이 쓸데없이 이 같은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나”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서 교수도 이 부분만은 동의하리라고 믿습니다. 그렇다면 됐고 내가 글을 쓴 목적은 달성된 것입니다.

    나의 분석이 이를 넘어서 서 교수가 비판했듯이 그 때 그 때 역동하는 정치정세를 읽고 개입할 수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거나, 사람들의 불안과 잠재적 저항이 교차하는 일상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에서 서 교수의 비판을 100% 수용합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고추상적인 체제분석이 이것까지 해주리라고는 믿지 않고 그것은 다른 분석으로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때 그 때 역동하는 정치정세를 읽고 개입할 수 있는 통찰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서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담론과 괴리된 고답적인 이론적 담론’에 머무는 체제분석을 무엇 때문에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고추상성의 체제론이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87년 체제론과 같이 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색맹사회과학, 나아가 97년 체제 대체론으로서의 08년 체제론을 통해 반MB론에 올인을 강요하는 반MB대동단결론에 대한 비판 기능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87년 체제론과 같은 색맹사회과학, 나아가 반MB대동단결론이 우리 사회의 소위 운동진영, 비판적 학계에서도 ‘다수파’이기 때문에 이를 이론적으로 혁파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당연할 것 같은 이 같은 추상적 논의를 장황한 논문을 통해 주장하는데 시간과 지적 노력을 낭비해야 하는 것이 우리 사회과학의 현실이라는 점에서 논문을 쓰면서 우리의 지적 현실이, 나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추상성의 수준에서 97년 이후의 신자유주의적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색맹사회과학(87년 체제론), 나아가 97년 체제 대체론으로서의 08년 체제론이라는 반MB대동단결론을 비판하는 나의 97년 체제와 하위 체제로서의 08년 체제론을 전제로 하여 신자유주의가 구체적 정세에서 대중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청년실업, 사오정, 쌍용차 등),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피폐화하고 있는가(민주적 권리의 공격, 강부자, 용산 참사 등)를 분석하고(레닌의 표현을 빌리면 “구체적 상황의 구체적 분석”) 이에 개입해 나가는 것은 앞으로 해 나가야 할 또 다른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조희연-서영표의 체제론이라고 대항헤게모니전략 도출되지 않아

    다만, 한 가지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이는 앞에서 내가 서 교수의 글에 99%밖에(100%는 아니고 1%는 빠지는)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서 교수가 지적했듯이 우리의 분석이 그 때 그 때 역동하는 정치정세를 읽고 개입할 수 있는 통찰력, 나아가 사람들의 불안과 잠재적 저항이 교차하는 일상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데 동의합니다.

    나아가 대항헤게모니전략이 우리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며 이와 관련, 대안적 공동체들에 주목하고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국가의 민주화, 시장의 사회화를 추구해 나가야 한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내가 갖는 의문은 이 같은 주장들이 조희연, 서영표가 주장하는 ‘87년 체제-97년 체제 관계론’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내가 신자유주의환원론자라굽쇼?」에서 이미 지적했듯이 조희연, 서영표가 87년 체제론에 집착하는 것은 87년 이후 나타난 다양한 진보적 운동들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같은 운동들은 97년 체제에도 계승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운동을 어떻게 활성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부활의 성령사처럼 죽은 87년체제를 붙잡고 사그라진 운동이 살아나기를 기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신자유주의와 반MB를 복합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나의 ’97년-08년 복합체제론(08년은 하위체제라는 점에서 대문자 97년에 소문자 08년으로 표기된)을 채택하시고 여기에 서 교수의 급진민주주의론에 기초해 역동하는 정치정세와 사람들의 불안과 잠재적 저항이 교차하는 일상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석과 전략을 더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론은 이론

       
      ▲ 발리바르

    내친 김에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논쟁을 하고 있자니, 문득 프랑스공산당이 PT독재론을 폐기하고 선진민주주의론을 채택하던 PT독재 논쟁 당시 발리바르가 한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전술 전략적 필요성, 실천적 요구는 중요하고 실천이 좌파이론의 궁극적인 목표이지만 그렇다고 이론을 실천적 필요, 전략적 필요에 꿰어 맞출 수는 없다. 따라서 실천적으로 왜 그래야 하는지 잘 알지만 PT독재론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주장처럼 실천적 요구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이론을 실천적 필요에 꿰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반MB투쟁이 절실하다고 08년 체제의 수준을 격상시켜 97년 체제를 대체한 것이라고 이론을 꿰어 맞출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조희연 교수나 서 교수가 나의 이 같은 생각이 ‘이론주의’라고 비판한다면, 나는 ‘이론주의’라는 주홍글씨를 감수하고 나갈 것입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