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리포터 마법은 복지국가의 산물
        2009년 09월 24일 09:48 오전

    Print Friendly

    비정규 보호법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현 정권의 노동정책은 그동안 많은 문제를 일으켜 왔다. 노동부 장관의 비정규직 실업 대란에 대한 지나친 경고에서부터, ‘정규직 자체를 없애버려야 한다’는 노동연구원장의 반노동적 망언(妄言)까지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에 비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는 중요한 노동 문제가 있다. 그것은 13만 명에 이르는 대학교 시간강사의 문제이다.

    비정규교수 노조 측은 비정규직법 시행에 따른 시간강사 해임이 전국적으로 5,000~1만여 명에 이를 것으로 자체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강사 해고 현황은 비정규교수 노조 분회가 있는 대학에서만 파악될 뿐 암암리에 정리해고가 시행되고 있는 대학은 현황 파악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해고의 폭풍은 주로 박사학위가 없는 4학기 이상 된 시간강사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우리의 법률과 정부는 아직 이들 고학력 비정규 노동자들을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에는 주 15시간미만 근로자는 비정규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따라서 급하게 해고 했던 시간강사들에 대한 구제 정책도 정규직 전환의 의무가 없는 주당 5시간 이하의 강의를 다시 맡기는 형태의 미봉책에 그치고 있다.

    고급인력 활용시스템

    여기서 우리는 시간강사 문제를 단순한 비정규직 문제 이상의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대학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잉 공급된 대학의 질 관리와 구조조정 등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일단 국가 발전의 근본이 되는 고급인력 활용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첫째, 이 문제는 무분별하게 증설된 전국 400여개의 대학이, 재학생들의 등록금에 과도하게 의존한 학교의 재정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력을 필요로 해서 생긴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나친 대학 설립은 정상적인 교육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부동산 투기 수익과 각종 이권에 연관된 측면이 크다는 점에서 대학 시간강사 처우 문제와 같은 부작용은 이미 예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입학자원 감소와 경제난으로 인해, 대학 진학 인구가 크게 줄어들어 많은 대학들이 심각한 경영난을 맞고 있다. 이에 따라 각 대학들은 전임강사 이상의 정규 교수 충원 보다는 값싼 임금으로 메울 수 있는 시간강사를 선호하게 되어, 일부 대학은 전임교원 확보율이 20%에도 못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름이 대학일 뿐, 가히 시중 학원 같은 수준에서 버젓이 운영되고 있는 형편이다.

    교육의 문제는 전문성과 책임성이 따르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고등교육인 대학 교육의 경우 시간강사가 교과목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어렵고, 평가 결과에 근거하여 학점을 객관적으로 주는 것도 쉽지 않으며, 학생에 대한 책임 있는 지도도 불가능하므로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이다.

    시간강사, 준공무원으로 채용해야

    따라서 ‘대학등록금 취업 후 상환제’를 준비 중인 현 정부라면, 당연히 대학의 질 관리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소비자를 위해 교육서비스라는 상품의 질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은 시장원리에도 부합할 것이다. 장기적으로 대학평가를 통한 대학의 통합과 폐쇄 등의 구조조정까지 준비하여 학부모와 학생 개인의 부담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이러한 맥락에서 우선, 대학교 시간강사를 ‘학술진흥재단’ 산하의 준국가공무원으로 채용하고 필요로 하는 대학에 파견하는 제도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가칭 “고등교육지원단”을 설립해 시간강사에 대해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와 고용보험 등의 4대 보험을 자동적으로 보장해주며, 기본적인 생활 급여를 보장하고 정규교원 등으로 채용되기 전까지 신분보장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국가 고급인재활용시스템의 일환으로 ‘국가인재지원법’을 제정할 것을 촉구한다.

    과거에도 새로 건국한 나라의 지도자들은 구현령(求賢領) 등을 반포하여 국가적으로 인재를 널리 모집해왔다. 최근에도 대기업들은 인재 발굴이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좌우할 근본적인 자산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재를 찾아 백지 수표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실은 이와는 사뭇 사정이 다르다. 외국에서 학위를 받은 박사급 고급 인력 10만 명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대학교 시간강사로 전전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소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고급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양성된 고급 인력들이 일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은 더 중요하다.

    ‘국가인재지원법’ 제정하라

    우리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국가인재지원법’의 제정을 통해 이들 고급인력들을 지원하고 활용하는 국가적인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연간 12조 원에 이르는 국가 연구개발비의 일정 부분을 이공계 전공자들을 위한 자유공모 과제로 할당한다면, 수많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연구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BK21 사업 등을 통해 대학원생들을 지원하는 일은 해왔으나, 졸업 이후 취업의 폭이 좁아 이공계 기피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 된 지 오래다. 청년과학자 지원 사업 등으로 박사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 이내의 연구자에게 소규모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사업도 하고는 있으나, 아직 규모가 미미한 실정이다.

    ‘국가인재지원법’을 제정하고, 이에 따라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연구자들에게 공모에 의해 연구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열심히 휴대폰과 LCD를 팔아서 매년 수조원의 이윤을 외국 기업에 로얄티로 갖다 바치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면, 대중(對中)무역의 흑자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심각해지는 대일무역 역조를 타계하고 싶다면, 연간 국가 연구비의 얼마라도 이들 청년 연구자들에게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인문계 전공자들에게는 해마다 한 권씩 책을 저술하도록 하고, 이를 통해 인문과학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09년 2월 실시된 문화체육관광부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공공도서관은 아직 644개에 불과하며, 국민 1인당 장서 숫자는 1.18권에 불과하다. 인구 대비 도서관 숫자 역시 선진국의 1/5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한다. 우리는 이렇게 부족한 지식국가의 인프라를 먼저 확대해야 한다.

    또, ‘국가인재지원법’에 따라 일정한 기준을 충족하는 연구자들이 1년에 한 권 이상의 저술을 하도록 하고, 그중 선정된 도서를 국가가 구매하여 전국의 공공도서관에 배포하도록 지원하면 국민들에게 풍부한 교양을 성취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인문 관련 학문의 획기적인 육성이 가능해 질 것이다. 이미, 일본은 전국의 7,000여 개의 공공도서관에서 서적을 구매하도록 제도화하고 있다.

    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는 품격 있는 국가, 그래서 한류가 지속적으로 세계인의 로망이 되는 국가, 전 국민이 마음대로 원하는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는 국가, 고급 기술의 원천특허를 가지고 로얄티로 생활하는 국가, 와이브로 같은 수십조 원의 부가가치를 가지는 혁신적인 신기술이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국가는 ‘무력한 시간강사’로 전락해 있는 국가의 고급인력을 잘 지원하고 충분히 활용하는 ‘보편적이고 적극적인’ 복지국가 시스템을 제대로 건설할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2009년 9월 24일
    사단법인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