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주의 세력이 극우보다 위험?
        2009년 09월 23일 08: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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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노르웨이에서 총선이 진행됐습니다. 제게 가장 유의미한 결과는 두 가지이었습니다. 첫째, ‘자본주의 전복’을 외치는 가장 급진적인 진보 정당인 적색당(일종의 공산당이라고 할 수 있음)은 2%도 득표하지 못하여 국회의원 하나 만드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급진적인 ‘반자본주의적’ 담론의 대중화가 얼마나 어려운지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반자본주의 담론 대중화의 어려움

    둘째, 급진성과 현실성을 잘 구비한 듯했던 ‘신좌파적'(말하자면 급진적인 사민주의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좌파당(사좌당)은 표를 많이 까먹고 말았습니다. 4년 전만해도 8.8%의 득표율을 올렸던 사좌당은 이번에는 6.2%밖에 못얻었지요.

       
      ▲ 박노자

    사좌당의 ‘맏형’ 격인 노동당(온건 사민주의)은 4년 전보다 더 많은 표를 받았기에 노동당-사좌당-중앙당 (농민당, 보호무역주의)의 연립좌파내각은 예전대로 그냥 존속될 수 있겠지만, 그 안에서의 사좌당의 몫은 좀 줄어들 모양입니다. 사좌당은 과연 왜 이렇게 좌초됐을까요?

    아주 간단하고 냉소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몸을 너무나 노골적으로 팔아서 문제"라는 시각은 있습니다. "몸을 팔았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사좌당의 고유 의제 – 아프간 주둔 노르웨이군 철군, 나토 탈퇴, 빈곤의 완전한 청산 등등 – 를 실행할 의향이 전혀 없는 보수적인 사민주의 색깔의 노동당이 주도하는 내각에 사좌당이 합류한 것은 ‘연애 결혼’이라기보다는 ‘타산 결혼’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맏형 노동당이 사좌당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국정을 비교적으로 보수적 기조로 운영했지만, 사좌당은 불편한 마음을 참고, ‘국정 운영 수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노동당과는 사실 많은 면에서 ‘성격 불일치’가 심해도 사랑이 별로 없는 이 관계를 청산하지 않고 계속 내각에서 버틴 이유는, 유권자들 앞에서 ‘국정 운영 유경험자, 책임 정당’으로 보이고 싶어서였습니다.

    물론 이와 동시에 사좌당 주도층(간부층)의 적지 않은 관직에 대한 ‘관심’도 있었던 모양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여기까지는 정치인의 속성이니까 그렇다 치고, ‘국정 수업’을 위한 사좌당의 ‘억지 내각 합류’를 유권자들은 결국 별로 좋게 봐주지 않은 모양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민주의 좌파당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좌당과 같은 ‘사민주의보다 왼쪽’인 정당을 찍어주는 사람을 크게 봐서 두 가지 부류로 볼 수 있어요. 첫째, 자본주의보다 더 나은 세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얻겠다는 이상주의자들이고, 둘째 우파 집권을 막고 복지 지출의 증강을 얻으려는 ‘복지주의적 현실주의자’들입니다.

    문제는 무엇인가 하면, 첫째 부류의 유권자들은 좀 까다로운 성격이라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사좌당의 타산적인 온건 사민주의자들과의 억지 동거를 처음부터 좋게 보지 않았는데, 그 관계가 지속되면서 사좌당의 의제가 하나도 반영이 안되고 꼭 "몸만 팔고 화대도 못받는" 듯한 기색이 역역하기에 아예 상당수가 사좌당을 떠난 모양입니다.

    사좌당과 노동당의 현실적 노선 사이에 별차가 없다면 차라리 힘이 더 센 노동당 안에서의 급진파를 키우든지 아예 투표를 안하든지, 하여간 그런 분위기들입니다.

    그리고 ‘복지주의적 현실주의자’들은 역시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사좌당을 지지하는 데에 늘 주저하는 마음은 있습니다. 이상주의 파들이 떠남에 따라 힘이 더 빠지니까 이들도 역시 떠날 준비를 하지요. 복지 예산 따내기에 역시 힘이 센 노동당이 더 쓸 모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이들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대중들에게 어필하겠다고 ‘사랑이 없는 노동당과의 동거’에 몸과 마음을 판 ‘급진 개혁주의적’ 정당은, 바로 일부분의 대중들에게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재미있는 역설이네요…

    우리가 여기에서 받을 수 있는 교훈은요? 현실 정치의 요구도 당연히 있지만 우리 이상을 너무 싸게 팔아버리면 그 값도 못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정치판 같으면 노르웨이 노동당과 같은 거대 사민주의 정당은 없는데, 한국의 진보정당으로서 극히 ‘몸조심’해야 할 것은 각종의 ‘노빠’류 – 포퓰리즘을 구사할 줄 아는 소부르주아적 자유주의 색깔의 주류 정당 내지 세력 – 와의 관계입니다.

    우리의 이상을 너무 싸게 팔지 말자

    권력을 아직도 못얻은 ‘노빠’류 정치인은 가끔가다 입바른 소리도 할 줄 알지만 권력을 득하기만 하면 부르주아 정치의 ‘풀 코스’가 따를 것입니다. 부정부패부터 그 무슨 새로운 해외 파병까지, 부르주아 정치인이 할 수밖에 없는 모든 짓을 다 할 것은 불보듯 뻔하지요.

    한국의 진보정당은 이런 류의 정객들과의 관계에 몸과 마음을 바친다면 그 불가피한 낭패에 대한 책임까지 지게 될 것이고, 때이른 변절로 소신파 지지자들의 마음만 상처입힐 것입니다. 간디의 말대로, 윤리적인 정치는 최선의 정치입니다. ‘양심’ 등을 가장하면서 진보를 유혹하는 부르주아 리버럴이야말로 어쩌면 이명박씨 류의 극우보다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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