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저씨, 그거 대통령이 많이 했거든요?"
        2009년 09월 21일 04: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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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를 하다보면 개인감정은 자제해야 하지만, 21일 열린 국무총리 인사청문회를 보며 짜증을 금할 수 없었다. 비교적 여유로운 표정으로 청문회장에 앉은 정운찬 후보자의 입에서 줄기차게 ‘왕년에’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왜 짜증이 났던가? 이미 1년 반 넘게 이명박 대통령에게 줄기차게 들어온 말이기 때문이다.

    왕년이 아니라 지금이 중요하다

    "공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으로 모두발언을 시작한 정운찬 후보자는 "대통령과는 어린 시절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사실이 이명박 정부에 참여한 것에 대한 이유라도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어진 정운찬 후보자의 ‘왕년에’는 특히 ‘병역면제’ 사유에서 빛을 발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부자감세’에 대한 질문에까지 ‘왕년에’가 튀어나온다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모습.(사진=정상근 기자) 

    "형제 같다"는 Y모자 업체 사장으로부터 “용돈으로 소액을 받았다”며, 그 소액으로 “1천만원 정도?”라 말하는(강운태 민주당 의원 질의 답변 중), 서초구 방배동에 사는 정 총리후보자가 학자로서 해 왔던 기존의 발언을 뒤집고 부자감세에 대한 명확한 입장조차 밝히지 못한 채 “나 역시 가난했기에 그들의 마음을 안다”고 거듭 ‘읊조리는’ 것은 그야말로 ‘안습’이다. 

    ‘왕년에’가 무슨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양 말하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최근 좀 나아졌으나 이 대통령의 초창기 라디오 연설 등에서의 단골메뉴가 ‘왕년에’였다. 주로 ‘가난한 시절’ 당했던 고통, 그러나 이를 딛고 일어선 ‘용기와 희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년 반동안 해왔던 정책은 무엇이었나? ‘왕년’을 위한 정책인가? ‘현재’를 위한 정책인가? 그는 수백억원 대의 재산가다. 왕년에도 가난하고 지금도 가난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노점상 출신이면 노점상 폭력 면죄부 되나

    이들의 이 같은 화법에서 기자는 일종의 ‘우월감’까지 느껴진다. ‘꼰대’ 같은 느낌도 든다. 그리고 옹색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들의 우월감은 용산참사와 부자감세를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설명해 준다. 과거가 어쨌든 과일노점상을 했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노점상들에게 가한 폭력, 집에서 살 수 없어 가정교사로 남의 집에서 살았다는 정운찬 총리후보자의 용산참사 발언이 현재 이들의 본질이다.

    정운찬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정부는 감세의 70%가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에게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동의하는가?”라고 묻자 “경험적 연구를 게을리 해 긍정도 부정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신문만 좀 들여다 봤어도 알 일인데, ‘쪽팔림’을 무릅쓰고 짐짓 무식을 연출한다.

    그는 같은 내용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는 "정부가 중산층, 서민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거짓말했던 정 총리였다.

    이정희 의원은 “정부는 중산층 기준을 과표 8,800만원으로 잡고 감세 혜택 대부분이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에 돌아간다고 주장했다”며 “8,800만원을 받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되나”고 물었고 정 후보자는 “5% 정도?”라고 답했다. 이정희 의원이 밝힌 답은 “0.5%”에 불과했다.

    이 의원은 이어 “정부는 계층별 총액만을 합산하고 있지만, 이를 1인당 감세액으로 바꿔 계산하면 중산층 1인당 감세액은 1,205,033원인 반면 고소득층 1인당 감세액은 40,433,147원으로, 고소득층 1인당 감세 혜택은 중산서민층 1인당 감세액의 무려 33배에 달한다”고 지적했고, 그제서야 정 후보자는 “그 통계가 맞다면 고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저씨, 그거 대통령이 많이 했거든요?"

    우리가 듣고 싶은 것은 그들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냐’가 아니라 지금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총리 인사청문회는 그의 도덕성 검증만큼 향후 그의 정책적 방향에 대해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 중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을 제외하고는 정 후보자의 정책 방향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는데, 그렇다면 부자들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 정체성을 듬뿍 담은 말 한마디를 ‘작렬’시켰다. 이어 “부자만을 위해 감세하는 국가는 없다”며 “잘 모르는 비전문가들이 ‘부자감세’라는 말을 쓰는 것”이라고 사실을 호도하고 나섰다.

    그런데 차라리, 나 의원이 솔직하다. 왕년에 그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든, 남의 집에 들어가 가정교사로 살았든, 그것이 그들이 탈루한 세금을 오늘에야 냈다는 것을 용서해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가난을 동원하면 현재의 부자 중심 정책이 면죄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혹시나 인사청문회 이후 정 총리 후보자가 “공주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거듭 얘기하며 부자감세, 용산참사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합리화 시키려 한다면 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아저씨, 그거 대통령이 이미 많이 했거든요, 국민들 그거 안 속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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