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아홉, ‘용산의 아픔’을 담는다
        2009년 09월 21일 10: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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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을 생각하면, 습관적으로 카메라에 손이 간다.”

    지난 17일 오후 보름 만에 교복을 입고,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이학원군(19)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그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그는 성적 때문에 고민이 많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자, ‘용산’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다.

    교복을 입은 사진가

    사진과 영상을 모두 잘 찍는 촬영기자가 꿈인 그는 방송영상 관련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얼마 전부터 수시모집에 응시하고 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매일같이 찾던 ‘용산’을 잠시 떠나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왠지 모로는 ‘허전함’은 그를 다시 참사 현장으로 이끌었다.

    “보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참사 현장이 많이 변한 것 같다. 주변 건물들이 더 많이 허물어져 있고, 사람들의 발길도 줄어든 것 같다. ‘용산’이 허전해 보인다.” 

       
      ▲ 이학원군이 남일당 앞에서 참사현장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사진=손기영 기자)

    그가 ‘용산’을 찾은 계기는 두 가지 ‘욕심’ 때문이었다. 하나는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부와 맞서보고 싶은 생각이었다. 앞서 그는 지난해 방학을 이용해, ‘태안기름유출사고’ 이후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경험이 있었다.  

    “기름유출 사태 이후, 태안군이 ‘100만 자원봉사자들로 인해 바다가 깨끗해졌다. 태안으로 오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지만, 사고 현장 근처 섬들에서는 아직 바위에 기름이 흐르고 있었다. 제가 그 모습을 촬영해 태안군 관계자들에 보여주고, ‘엉터리 홍보’의 문제를 따졌다.

    당시 태안군은 제가 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이를 무시했지만, 이후 공중파 뉴스에서 태안군의 미흡한 ‘뒤처리’ 문제를 지적하는 보도가 나가자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던 기억이 난다. ‘태안군하고도 싸웠는데, 정부와 싸우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라는 자신감으로 ‘용산’을 찾았다.”

    태안에서 용산 남일당으로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학생 신분인 그에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그는 용산참사 현장 그리고 투쟁하는 유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정부와 맞서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해 보였다.

       
      ▲ 사진=손기영 기자

    “정부의 말이 항상 옳지 않다는 사실을 용산에 알게 되었다. 정부는 끝까지 ‘참사의 책임은 (농성을 벌인) 철거민에게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유족들이 참가하는 집회는 죄다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정부에 대한 불만은 이뿐 만이 아니었다. 그는 “정부는 ‘무시 전략’을 펼치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용산의 아픔을 지우려고 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용산참사 현장에서 예술인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가수들은 노래를 부르면서, 신부님들은 미사를 드리면서, 촛불시민들은 촛불을 밝히면서 참사의 아픔과 기억들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카메라는 제게 그런 존재이다.”

    <레디앙>에 사진 제공하기도

    그는 그동안 아마추어 사진가 활동을 하며, 고민도 있었다고 한다. 정작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레디앙>을 통해, 독자들에게 용산참사 집회의 모습을 생생히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찍은 사진들을 ‘싸이월드’에 올려 보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런 곳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블로그를 이용하는 방법도 잘 몰라 내심 고민이 많았다. 그러던 중 지난 6~7월 <레디앙>에 제 사진을 제공할 수 있었고, 많은 분들에게 ‘용산’의 모습을 알릴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 지난 7월 13일자 <레디앙>에 실린 이학원군의 사진

    그는 “용산은 항상 우울하지 않다”고 말한 뒤, “문화예술인들이 ‘용산’을 찾아 남일당 주변에 그림을 그렸던 날, 참사현장이 정말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처음으로 유족들이 웃는 모습을 본 것 같다”며 “당시 찍은 사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또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예전처럼 마음 편히 용산참사 현장을 찾고자 했다.

    “유족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등 ‘과격한’ 모습이 언론에 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일부 오해를 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용산참사 유족들은 우리 어머니와 같은 평범한 시민이다. 자신들을 몰라주는 세상을 향해, 한 번이라도 목소리를 내려고 ‘거친 투쟁’에 나서는 것뿐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용산참사 현장으로 거처를 옮긴 유족들의 하루를 카메라에 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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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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