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보 하나 못내는 정당
        2009년 09월 18일 06: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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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이 안 보인다. 10월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안산 상록을, 수원 장안, 강원 강릉, 경남 양산 등 총 4개의 지역구에 등록된 수많은 예비후보들 중 ‘진보신당’ 네 글자를 등장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은 양산과 수원 장안에, 창조한국당도 강릉에 예비후보가 등록했다.

    그나마 특정 후보가 거론되며 출마가 유력시됐던 서울 은평을 지역도 1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정으로 10월 재보궐선거 지역에 포함되지 않게 되었다. 결국 지금과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 맞는 이번 10월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은 객(客)이 된 것이다.

    선거의 구경꾼이 되다

    왜 그럴까? 상황을 살펴보자. 실제로 양산에는 특정 후보가 거론되긴 하고 있지만 본인이 강하게 고사하고 있다. 격전 지역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수원 장안의 경우 노회찬 대표가 15일 <PBS>라디오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수원은 후보를 낼 계획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강릉 역시 출마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똑같다. 조직력도 후보도 없어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안산 상록을에는 적극적인 선거개입을 하고 있지만 임종인 후보는 엄연한 무소속 후보다. 또한 임종인 후보에 대해서는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 역시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

    이것이 진보신당의 현실이다. 중앙당의 한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이번 재보궐선거 지역이 당세가 미약한 지역”이라고 말했지만 ‘공교롭게’ 그런 것일까. 경남 양산의 경우 양산시위원회 소속 지역 당원은 27명에 불과하다. 

    결국 현실의 진보신당은 ‘정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에서 당선 여부와는 상관 없이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정당이다. 지난 4월 재보궐선거에서 조승수 의원을 당선시키며 화려한 조명을 받은 진보신당이지만 전국에는 울산 북구 같은 지역보다, 양산, 강릉 같은 지역이 훨씬 더 많다. ‘공교롭게도’가 아닌 것이다.

       
      ▲지난 해 3월 2일 진보신당 창당준비위 출범식 모습.(사진=레디앙) 

    물론 후보를 내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는 창당 후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이런 현실이 개선되고 있냐는 것이다. 당장 서울시당, 인천시당, 경기도당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 공식적인 광역시도당도 출범시키지 못했다.

    광역시도당 출범 못 시킨 곳 더 많아

    올해 하반기 줄줄이 창당 계획이 잡혀 있지다지만, 진보신당 소속 국회의원을 보유하고 있는 ‘진보정치 1번지’라는 울산지역 조차 광역시도당을 창당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창당 후 첫 총선에서 그야말로 브레이크 안 드는 용달차를 빌려 죽을 각오로 운전해가며, 후보 혼자 명함 다발 주머니에 꽂고 맨발로 뛰어다니며 ‘진보신당’ 이름 알리기에 급급했던 현실과 지금은 얼마만큼이나 차이가 나는가? 창당 초기 “굶어죽을 각오로 나왔다”지만 1년 반의 시간은 농사를 지어도 2모작을 했을 시간이다.

    특히 문제는 조직이다. 진보신당은 조직사업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나? 결과를 보면 좋은 점수를 매길 수가 없다. 창당 때부터 “노동자들의 대량입당,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에 참여하지 않은 옛 당원들에 대한 조직적 입당”을 말해왔지만 성과는 대단히 미약하다. 노동자 밀집지역이라는 울산도, 창원도, 양산도 여전히 당세는 부끄러울 정도다. 

    당원배가 사업은 의외의 곳에서 이루어졌다. 창당 초기 지못미 당원이 들어왔고, 촛불당원이 들어왔다. 이 같은 현상으로 진보신당이 ‘진보의 외연확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진보신당의 노력의 결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그런 당원들의 추가 조직을 못한 당의 ‘실력’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내부 당원들의 결속력은 얼마나 다져졌나? 지난 12일~13일 열린 당원한마당에 ‘활동가 당원’을 제외하면, 과연 몇 명의 ‘촛불당원’과 ‘지못미 당원’이 참여했나? “당원들의 자발성에 불을 지르겠다”고 기획한 사업이지만, 불꽃이 크게 타오른 것 같지는 않다. 이 같은 기획성 이벤트의 성공 또는 실패는 자발적인 일상 활동의 결과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진보신당의 오늘은 여전히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신당은 지난달 12일 광역시도당 위원장 워크숍에서 16개 광역시도 단체장 전 지역 출마를 ‘결의’했다. 그리고 이미 검증된 득표력을 지니고 있는 김석준 부산시당 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했고 노회찬 대표의 출마 선언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당원이 몇 백 명에 불과한 다른 시도당의 경우 ‘결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윤난실 진보신당 2010위원장은 “보궐선거와 지방선거는 질이 다르다”며 “당세는 미약하지만 16개 광역시도당에는 좋은 후보들이 있고 이들은 10년 전 진보정당을 만들어 냈던 선봉들”이라며 낙관했다.

    다시 재보궐선거로 돌아가자 두 개 지역에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경기도당의 이홍우 위원장은 “현재 우리의 조건과 현실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실망은 안 했지만, 이 정세에 주도적 역할, 변수를 만들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아쉽다. 그렇지만 진보신당은 지난 1년 동안 창당만 하면, 조직 체계만 잡히면, 대의제만 완성되면, 단일지도체제가 이루어지기만 하면 ‘새로운 진보의 날개’를 달고 함차게 날개짓을 할 것이라며 줄기차게 외쳐왔다. 

    그런데 바로 오늘에 이르러도, 새로운 정당의 상이 다른 정당들과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고, 선거에 후보조차 못 내는 정당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사실 더 아쉬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신당의 오늘은 무척이나 조용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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