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 "진실은 이렇습니다"
By mywank
    2009년 09월 18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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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 운명이야기

1.

언젠가부터 이런 이야기들이 돌았습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첫 번째 타겟이고 박변호사 당신이 두 번째"라고. 과연 최열 대표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영장이 두 차례나 기각되고 마침내 불구속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내가?

너무도 엉뚱하고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일소에 붙였습니다. 아니, 십년을 하루같이 이 세상의 좋은 변화를 위하여, 이웃과 사회의 이익을 위하여 나름대로 온 몸과 마음을 바치고 열정을 불살랐는데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타겟이 되어 수사를 받는다니! 이명박 정부가 그렇게 이성과 합리성, 상식도 없는 정권일까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런 생각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상식과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정권이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곳곳에서 저에 대해 묻고 조사하고 다니는 것들이 제 귀에도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나 지방정부, 민간기업과 했던 많은 일들이 중단되거나 파기당했습니다. 희망제작소, 더 나아가 제가 관여하였던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에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비슷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심지어 대운하에 반대한 교수들마저 국정원 직원들의 전화를 받거나 뒷조사를 당했다고 합니다.

2.

이런 황당한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나요? 지난 수십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과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나는 늘 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질그릇’ 같은 존재라고 말해왔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나긴 노고와 투쟁의 끝에 얻은 인권과 민주주의라고 하더라도 우리의 관심이 그것으로부터 멀어지고, 그것을 지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는 순간,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민권연맹 ACLU (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본부 정문 앞에는 이렇게 씌여 있습니다.

Freedom is the price of permanent vigilance
자유는 영원한 감시의 대가이다

그렇습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노력을 게을리하는 순간 우리가 힘겹게 일구어온 민주주의, 인간의 존엄성, 자유와 가치, 삶의 질 – 그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엄연한 진실이 지금 저와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쓰라린 교훈이 되고 있습니다.

3.

저는 참여연대를 떠난 이후로는 정부 비판이나 투쟁, 애드보커시 운동과 일부러 거리를 두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점차 절차적 민주주의를 확보해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인권이나 민주주의가 많이 진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운동을 맡겨놓고 나는 다른 새로운 운동의 영역을 개척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실천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 운동이었습니다.

특히 희망제작소는 정부와 지방정부, 기업 등 우리 사회의 주요한 파트너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습니다. 시민들의 좋은 아이디어를 모아 실현하는 사회창안, 은퇴한 전문직 리더들에게 봉사와 나눔으로 인생후반전을 설계하도록 하는 행복설계아카데미, 꿈과 길을 잃어버린 젊은이들과 사회인들에게 다시 꿈을 심어주는 소셜디자이너스쿨,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소기업사장이 되도록 하는 꿈을 꾸는 소기업발전소, 지역을 살리고 활성화하기 위한 각종 연구.세미나.컨설팅 등이 바로 희망제작소의 야심찬 대한민국 희망만들기 프로젝트였습니다.

세상에는 운명이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저는 결단코 이런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제 저는 대한민국의 희망이라는 것이 결코 제 마음대로, 제 계획대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해 왔던 일을 좀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더 이상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느끼면서 내 자신이 당하고 내 주변이 당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정리하고, 그 대안을 위해 싸우겠다는 다짐과 결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바로 그런 다짐의 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제2 진정으로 성공하기를 바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의 인연 이야기

1.

이명박 대통령을 처음 만난 것은 서울시장 시절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이미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그만두고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 사업을 열심히 벌이고 있었습니다. 특히 이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선된 뒤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직후 나는 그 분을 찾아가 만났습니다.

그 때 나는 "월급을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좋은 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하면서 환경미화원과 소방대원을 위해 기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환경미화원들은 새벽, 주로 미명에 일합니다. 그때가 가장 차들이 적게 다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때는 대부분의 차들이 속도를 많이 내는데다가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가장 많이 나는 시간대이기도 합니다.

환경미화원들이 사상을 당하고 공상으로 처리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주는 돈은 대단히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이들과 그 유족의 삶은 힘들기 마련입니다. 소방대원이라고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들의 유자녀를 돕기 위해 아름다운재단은’등불기금’이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여기에 기부해 주실 것을 요청드렸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이대통령의 월급은 바로 이 기금에 4년 임기동안 전액 기부되었습니다.

2.

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가게 초창기에 ‘지상 최대의 벼룩시장’이라는 큰 행사를 우리가 주최했습니다. 잠실 올림픽경기장에 여러 기관, 단체, 시민들이 헌 물건을 가지고 나와 파는 일종의 벼룩시장을 연 것입니다. 이틀 동안 진행된 이 행사는 30여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큰 반향을 얻었고, MBC는 7시간 동안 행사 전체를 생중계하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해외에서 귀국하자말자 긴 시간을 내서 잠실운동장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엄청난 인파에 고무받아 이대통령은. 차후에 벼룩시장을 지속적으로 열기 위한 장소를 물색하는 등 다양한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습니다. 그래서 뚝섬 영동대교 아래에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습니다

그후에도 이대통령은 아름다운가게 행사에 여러 번 참여하였고, 아름다운가게 본부 사무실을 방문하여 아름다운가게의 미래발전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받고 명예고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3.

뿐만 아니라 나는 서울시의 ECO-COUNCIL이라고 하는, 이대통령의 자문기구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매달 한번씩 모이는 이 회의에서 서울시의 환경과 지속가능한 정책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그 논의의 상당 부분은 서울시 정책에 반영되기도 하였습니다. 뚝섬의 서울숲이나 상암동 난지도 골프연습장 취소 등의 조치는 대부분 여기서 논의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런 만남과 논의를 통하여 나는 개인적으로 이대통령과 친하게 지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실용적 정책과 의견 수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내가 2004년 독일을 3개월 여행하게 되었을 때 베를린 도시국장을 꼭 만나보라고 소개해 주기도 했습니다. 나도 독일에서 돌아와 세계인권선언의 조문을 울타리에 새겨 넣는 테마공원을 한번 만들어보라고 권유해서 승낙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대선에 돌입하고 있는 때여서 더 이상의 진전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 ECO-COUNCIL의 멤버 중의 한 사람인 문국현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고 또 다른 멤버였던 사람들이 정치권을 오갔지만 나는 이 선거과정에는 일체 중립을 지켰고 정치과정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원칙이기도 하였습니다. 내가 어떤 정파적인 입장에 설 이유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러자고 변호사까지 그만두고 지난 20-30년을 이런 공익적 활동에 나섰겠습니까? 제가 권력에 관심이 있었다면 진작 청와대나 장관직을 맡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제안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심지어 한나라당조차 저를 국회의원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여러차례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돌처럼 보아왔습니다. 그것이 오늘의 저를 있게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대선이 끝나고,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그리고 언젠가부터 세상이 완전히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좌우갈등이 깊어지고 대북관계는 단절되고 공안기관이 부활하였습니다.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유명해졌다는 말 대신에 어느 날 일어나 보니까 완전히 20-30년 전의 세상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예전에 내가 알았던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과거에 잘못 본 것일까요?

제3 지역홍보센터 이야기

– 합법성. 정당성을 잃어버린 막무가내식 행정조치

1.

지역홍보센터는 전적으로 나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추진된 것이었습니다. 내가 일본의 지방정책을 둘러보던 중 지역의 모든 정보와 자료, 특산물을 한 곳에 모아놓고 팔고 제공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경 유라쿠죠에 있는 <고향정보플라자>나 <마치카라무라카라>, 여러 현이 자신들의 특산품을 팔기 위해 설립한 <안테나샵> 등이 아주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지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동경이라는 수도에 이런 마케팅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유사한 것이 있는지 조사해 보았더니 전무했습니다. 관광공사 1층에 가 보았더니 몇몇 지방자치단체의 소개 팜플렛이 보이긴 했지만 매우 부족하고 체계도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관광과 지역홍보의 현실에 놀랐습니다. 한국 사람들, 특히 공무원들이 수없이 일본과 동경을 오갔을 덴데 어찌 이런 지역홍보센터 하나 없을까 애가 타고 안타까웠습니다.

2.

이런 센터 하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관광공사 사장님께 이야기해야 하나, 누구에게 이야기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우리 연구원들에게는 <지역홍보센터> 설립계획안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행정안전부와 SBS가 주최하는 민원봉사대상 심사위원회에 참석하였다가 당시 행정안전부의 박명재 장관님을 만나 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함께 만들어보자고 하셨고, 직원들에게 지시하여 몇 달 만에 서울 한복판인 프레스센터 1층에 <지역홍보센터>를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관료들의 고집으로 우리가 꿈꾸던 대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행안부 공무원들은 처음부터 조직을 너무 키우려고 하였습니다.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처라고 하여 지역홍보센터 위에 지역진흥재단을 만드는 데는 동의하였으나, 재단의 독자적인 사업들이 확정되기 전에는 최소 인원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거듭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행안부의 뜻대로 돌아갔습니다. 상임을 하며 전용차를 타는 재단 이사장에, 상임이사, 사무국장이 줄줄이 임명되었습니다.

그래도 희망제작소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본인들이 와서 보고 놀랄 정도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지역홍보센터를 만들고 다듬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지역의 축제정보, 관광정보, 투자정보 등 자료와 정보는 물론이고 각 시.군.구별 특산물의 전시.판매까지 원스톱으로 가능하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3.

행정안전부와 희망제작소는 위탁계약을 맺어 3년간 운영하기로 합의하였고, 이 합의문에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실현을 목표로 양자간의 선의와 성실로 지방정부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로 하였습니다. 그 계약서는 의례적인 갑을계약이 아니라 민간기관인 희망제작소의 권리가 상당히 반영된 나름대로 평등한 계약이 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런 계약 내용대로 1년간 운영을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참 웃기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위탁계약을 맺어 희망제작소가 10여명의 인력을 선발.파견하여 운영하고 있는데, 그 상위기관인 지역진흥재단은 별도로 20여명의 공무원을 파견하거나 채용하여 사사건건 운영에 개입하고 참견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지역홍보센터의 특정지역 팜플렛이 하나라도 필요할 때에는 자신들을 거쳐 해당 지자체에 연락해서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말하자면 지역진흥재단 공무원들은 아무런 할 일도 없이 우리만 바라보고 이러쿵저러쿵 참견하려 들었습니다.

사실 이름 그대로 ‘지역 진흥’을 위해서는 오늘의 지역이 맞닥뜨리고 있는 많은 문제들을 분석하고 연구하고 보고서나 대안을 내는 일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이런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재단에 와 있는 공무원들이 대부분 1년간 파견인 데다가 제대로 지역이슈를 연구하고 대안을 제시할 의욕이 처음부터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우여곡절과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희망제작소는 위탁된 지역홍보센터를 정착시키고 자료를 제대로 수집.공유하고, 지역홍보를 위한 다양한 이벤트를 개최하며 특산물 판매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년 정도 지나면서 이제 이러한 정착단계를 거쳐 보다 더 활발한 사업을 펼치기 위하여 내년도 사업을 준비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4.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지역진흥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잠깐 만나서 저녁을 먹자는 연락이 와서 만났더니 희망제작소와의 위탁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그야말로 아무런 근거와 설명이 없는 일방적 통고였습니다.

형식적으로는 경제위기에 따른 예산절감이라고 내세웠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명분일 뿐이었습니다. 그 얼마 후에 열린 이사회에서 희망제작소와의 위탁계약해지 안건과 함께 통과된 예산안을 보면 당해년도보다 그 다음해 예산 규모가 더 컸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폭거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국가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법률과 계약, 그리고 상식과 신뢰에 기초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의 일방적 해약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위탁계약서에서 명시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좋은 거버넌스 모델을 만들자고 한 약속은 헌신짝처럼 내버렸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실무자의 판단인지 백방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밉게 본 실무자 한 두 사람의 소행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금방 드러났습니다. 왜 말도 안 되는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항의 겸 문의하기 위하여 행안부 실무국장, 차관, 심지어는 청와대 담당 비서관에게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대답은 높은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서 자신들은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차관도, 청와대 담당 비서관도 정확히 모르는 일이라면 누가 이 사태에 대해 알고 있다는 말입니까?

제4 하나희망재단 이야기

– 모든 기업이 떨고 있답니다

1.

하나은행과 저와는 아주 특별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름다운재단이 처음 설립될 때부터 하나은행의 김승유 행장(지금 하나은행 지주회사 회장)님은 아름다운재단의 이사였고, 따라서 아름다운재단과 아름다운가게의 400여억원에 이르는 모든 기금은 하나은행에 예금되고 관리되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은행은 우리의 주거래은행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몇 년 전, 하나은행의 임원들이 모두 참여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의 조찬모임에서 제가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한국이 대기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소기업들을 많이 키워내야 하고, 이것을 지원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역설하였습니다.

특히 오늘날 한국정부가 말하는 사회적 기업은 너무 좁은 개념이어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취약계층이 운영하거나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농촌소기업, 청년소기업, 시니어들이 벌이는 소기업, 전통문화를 전승하는 소기업, 커뮤니티 비즈니스 등을 포괄하여 창조적 소기업활동에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희망제작소는 이미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소기업발전소라는 조직의 틀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국민이 소기업가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2.

이 강의가 인연이 되어 하나은행 실무진과 희망제작소 연구진이 오랜 세월동안 수십차례 실무적 미팅을 하였고, 하나은행이 300억을 출연하여 하나희망재단을 만들고 이 재단의 이사진은 양측이 추천하여 구성하기로 하였습니다. 특히 희망제작소가 선정하여 지원을 요청하는 소기업들에 대해 하나희망재단은 별도의 심사 없이 자금을 지원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런 실무적인 논의를 거쳐 합의한 내용은, 2007년 7월 당시 하나은행장과 내가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마이크로크레딧에 많은 언론은 큰 관심을 가지고 집중보도하였고, 그에 따라 희망제작소에는 수많은 문의가 빗발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희망재단의 설립과정에서 정부에서는 말 그대로 2000만원 이하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하지 않으면 법인세제 혜택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고, 우리는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것 외에도 위에서 설명한 카테고리의 소기업 비즈니스 전체에 대해 지원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면서 정관을 어떻게 만들지, 정부의 입장을 어떻게 조율할지 설왕설래하다가, 정부의 가이드라인과 하나은행의 요청을 우리가 받아들여 일단 2000만원 이하 마이크로크레딧부터 진행하는 것으로 양보함에 따라 2008년 가을 간신히 재단 설립 등기를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재단 출범 사실은 별도의 기자회견을 통해 보도되었지요. 그 뒤 하나은행은 1차로 100억을 출연하였고, 희망제작소는 1단계 지원사업으로 소규모 자영업을 하려는 금융소외자들을 공모하여 그 중에 50명 가량을 선정하여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래 희망제작소가 구상했던 다양한 소기업 지원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추가 협의가 필요하였고, 정관을 일부 개정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올해 초 제가 금융위원회를 방문해 설득하고 실무진에서 기획재정부 등과 협의해 정관을 일부 개정할 수 있는 길을 텄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김정태 하나은행장과 만나 재단 기금의 절반은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에 쓰고, 나머지 절반은 애초 합의했던 다양한 소기업 지원사업에 투입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하나은행 부행장과 희망제작소 부소장도 배석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정부(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와 하나은행. 희망제작소 간에 아무런 이의가 없도록 모든 문제가 정리된 것입니다.

3.

그런데 그 며칠 뒤 너무 어이없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하나희망재단 이사회에서 정관 개정안이 부결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은행은 희망제작소와의 사업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지원하기로 했던 50명의 금융소외자들에 대한 지원과 관리도 하나희망재단이 직접 인턴들을 채용하여 시행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동아일보와 함께 마이크로크레딧 사업을 한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이 와중에서 하나은행의 행장이나 부행장 등 책임 있는 임원이 저에게 와서 공식적으로 왜 그 큰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는지, 우리가 기자회견을 통하여 밝혔던 그 공적 발표는 어디로 갔는지 해명한 바가 없었습니다. 제가 하나은행과 가지고 있는 오랜 관계와 신뢰를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후 김승유 하나은행 지주그룹 회장님은 아름다운재단 이사를 사임하였습니다.

한두 달 후 하나은행의 한 임원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국정원 직원들이 오가면서 이 사업에 개입을 하여 희망제작소와의 협력관계가 중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을 그만두는 과정에서 하나희망재단의 이사들도 그 영문을 몰랐다고 합니다. 재단 이사장인 김정태 행장의 일방적인 통고가 있었을 뿐 희망제작소와 사업을 그만두는 이유나 사유를 설명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저는 두어 차례 하나희망재단 이사진과의 간담회를 통하여 향후의 소기업지원방안에 대하여 설명을 드린 바 있었고, 이들은 모두 저나 희망제작소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큰 기대를 나타내 보이기도 했는데 말입니다. 국정원의 개입사실은 또 다른 경로로도 이야기를 들은 바 있어 저는 이 사건에 국정원이 개입한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제5. 국정원의 사찰은 제 주변을 상대로 수없이 벌어졌습니다

1.

여러 사람들이 이런 저런 걱정의 말을 전해오기 시작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처음에는 그것은 그저 소문일뿐, 저를 상대로 사찰을 하거나 계좌를 뒤질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저의 착각임이 곧 밝혀졌습니다. 여러 사람으로부터 구체적으로 저와 저 주변을 사찰하고 다닌 사례를 듣거나 확인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사례를 들어볼까요?

➀ 모재단에 가서 강연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재단의 이사장께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국정원에서 찾아와서 박변호사에 대해 자세히 탐문을 했다. 너무 이상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말해주면 심란할 것 같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야기해주려고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국정원은 사람의 주변을 이렇게 탐문하고 다니는 것입니까?

➁ 나는 모그룹이 세운 재단의 이사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 회장님의 청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해 온 사회공헌 활동을 보다 더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사재를 털어 재단을 만든다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몇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하여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는 것에 불과한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재단의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국정원에서 연락이 와서 월급을 얼마나 받는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자세히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사실 그 이사직은 명예직이고,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회의비 명목으로 30만원을 받아 봉사활동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왜 국정원은 개인의 봉사활동까지 꼬치꼬치 묻고 다니는 것입니까?

➂ 나는 한 기업의 사외이사로 벌써 수년째 활동해 왔습니다. 이것 역시 그 기업이 보다 투명하고 책임 있는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추려는데, 늘 투명성을 주창해온 저가 사외이사로 참여하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아들여 일하게 된 직책입니다. 이것 역시 두 달에 한번씩 이사회에 참석하여 회사의 여러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업무입니다.

거기에서 나오는 월급은 모두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의 ‘아름다운조합'(월급이 적은 간사들을 위한 공제조합)과 ‘공육기금'(연구원들의 교육을 위한 기금)에 기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한 바 국정원 직원이 내 활동내역에 대해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 국정원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개인의 사적 활동에 개입하는 것입니까?

2.

제 주변을 사찰하고 다닌 것은 이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나는 과거 윤석양 이병에 의해 폭로된 보안사 민간인 사찰 명단에도 들어 있어, 보안사의 사찰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그 때 집단소송을 제기하여 기백만원의 배상금을 받기도 했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오늘날, 국가기관에 의해 이런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인 사찰활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 저는 경악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3.

이런 마당에 희망제작소의 사업은 줄줄이 취소되거나 이유 없이 연기되었습니다. 어느 지역 구청과도 여러 가지 사업을 논의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이유 없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습니다. 지방의 어느 시 공무원교육에 관하여 실무자들끼리 이야기가 오가고 아주 긍정적인 의견으로 이야기가 되었는데 위로 올라가서 결재시간이 오래 지체되다가 결국 없던 일로 되었다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전화가 와서 희망제작소가 공무원 교육하는 것을 자세히 파악해 보려했던 일도 있었습니다.

제6 아름다운가게를 둘러싸고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1.

국정원의 개입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름다운가게는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헌 물건을 기부받아 수선하고 이를 판매하여 남는 수익을 자선에 쓰는 순수한 자선단체이고 친환경단체입니다. 그 과정에서 수천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자신의 귀중한 시간을 바쳐 운영하고 그 수익은 정부의 손길이 미쳐 닿지 않는 불우한 이웃과 이들을 돕는 풀뿌리단체들에게 배분하고 있습니다.

2.

그런데 이 정부의 사찰과 억압의 망령은 이곳에까지 손을 뻗쳐왔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무서운 일이지만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우선 아름다운가게의 자선활동과 관련한 몇 가지만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➀ 아름다운커피 모 대학점 오픈 건
2009년 4월 모대학 카페 오픈식이 끝난 이틀 뒤 국정원 직원이 그 대학 총무과를 찾아와 아름다운가게를 왜 지원했는지를 문의하였습니다. 특히 "좌파단체들의 자금줄이며 운동권 출신 직원들이 대다수인 아름다운가게를 후원한 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문의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가게는 가난한 이웃과 풀뿌리 단체들을 지원해 왔지 특별한 이념을 가진 단체를 지원한 바가 없습니다.

➁ 모은행 아름다운가게 지원에 관련한 건
2009년 6월 국정원 직원이라고 밝힌 사람이 모은행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아름다운가게와 무슨 관계가 있길래 오랜 시간 많은 돈을 지원했느냐"라고 문의하였습니다. 그 은행은 아름다운가게가 벌이고 있는 특정 프로젝트를 몇 년째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었습니다.

➂ 경기지역 모 시 평생학습관 공동행사에 관련한 건
2009년 5월 자선바자회 행사 진행관계로 미팅할 때 관련자가 "국정원에서 전화를 받았다. 아름다운가게의 행사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답니다. 아름다운가게는 그 시의 평생학습센터의 요청으로 그 행사에 참여해달라고 요청받아 그 행사 개최와 관련하여 상의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3.

실제 문제는 이보다 더 심각합니다. 이러한 국정원의 행태를 일반 대기업들이 모를 리 만무합니다. 대기업들의 정보력이 대단할 뿐만 아니라 상호간에 이러한 정보를 유통까지 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름다운가게나 희망제작소의 일에 대한 국정원의 사찰과 압력은 당연히 알려지기 마련입니다. 아니, 우리는 그 이상의 수준이라고 단언합니다.

2009년 5월 또다른 시중은행과의 정기적인 자선바자회 행사를 한 달 앞두고 진행과정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행사가 취소되었습니다. 윗분들이 결정한 일이라고만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아름다운가게와 관련한 소문들이 작용했을 거라고 담당자가 이야기했답니다. 이후 박원순 변호사의 ‘국정원개입의혹’ 보도 후 해당 담당자가 전화하여 하나은행이 거론된 이유와 내용을 문의하고 그 은행이 거론될 것에 대한 불안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4.

이렇게 하여 아름다운가게와 그동안 수년에 걸쳐 자선행사를 해온 대부분의 대기업들의 행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취소되었습니다. 과연 국가권력이 이렇게 개입해도 되는 것입니까?

제7 민간단체들에 개입하는 국가권력

➀ 사례1 – 사회투자지원재단의 경우
이 정부가 집권한 뒤 어느 날, 사회투자지원재단의 모 상임이사가 한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습니다. 이야기인즉슨, 나라는 존재가 정부부처로부터 사회투자지원재단이 지원을 받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말고도 이 재단의 이 00 연세대 교수도 그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교수님은 참여정부하에서 대통령 직속 무슨 위원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정부가 중심이 되어 사회투자지원재단을 만들었고, 그때는 정부쪽에서도 여러 차례 간청하면서 이사를 맡아달라고 해서 거절하다 못해 맡은 것이었는데 지금 와서 못마땅하다니 참 우습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일 하나 줄이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으므로 당연히 물러나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다시 상임이사를 났더니 그가 하는 말이 이번에는 그 이사장과 자신마저 별로 마땅치 못한지 정부가 완전히 지원을 끊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회투자지원재단은 민간재단으로 변모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쨌든 정부가 부추겨서 만들어진 민간재단에 그 구성원 몇 사람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 재단 전체를 보이코트 하는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 정부 하에서 수없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➁ 사례2 –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경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전 사무총장이 저에게 전화를 해서 상의를 해 왔습니다. 자신은 아무런 잘못한 것이 없는데 자꾸 물러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실무 담당자들이 노골적으로 요청해 올 뿐만 아니라 이사장을 시켜서도 압박을 가해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감사를 하겠다고 하기도 하고, 아래 사람들까지 힘들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엄연히 민간기관인데 임기까지 있는 상임이사를 이렇게 쫓아내는 것은 공적 기관에 대한 존중과 상식과 사리를 뒤엎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을 자꾸 한다면 그 정부가 상식 있는 정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신뢰받기 어려운 일이지요.

➂ 사례3 – 사회연대은행의 경우
얼마 전 어떤 모임에서 사회연대은행 상임이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난번 정부 지원 대상에서 사회연대은행도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그 이유는 이사진 중에서 참여정부와 친했던 인사들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회연대은행은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마이크로크레딧사업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의 실적과 경험으로 비추어보아 배제될 수가 없는 기관이었습니다. 그 대신 이제 설립된 지 몇 달 채 되지 않은 이른바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거액의 정부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사회연대은행에게도 큰 시련이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 자신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경험과 실적이 전혀 없는 단체들에게 거액의 지원을 했다가 이들이 제대로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예산의 낭비나 부패가 있는 날이면 그 모든 책임은 결국 정부가 져야 할 몫이 아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런 잘못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공정성을 잃어버린 정부의 행태를 앞으로는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➃ 사례4 – 어느 시민단체 평생회원을 사임시킨 사례
더 심각한 일들도 벌어졌습니다. 어느 시민단체의 평생회원들 중에 한 사람은 기업의 임직원이었는데 그 사람이 국정원으로부터 간접적으로 "어떻게 시민단체의 회원이 될 수 있느냐"는 이야기를 듣고 평생회원의 신분을 정리한 사례가 바로 그것입니다. 시민단체의 평생회원 리스트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국정원의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데다가,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회원을 그만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까? 국정원의 권력남용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➄ 사례 5 – 한 여성단체 후원 취소 사례
한 여성단체가 후원회를 열었는데 어느 중소기업에서 전화가 와서 "여성민우회는 불법시위단체라고 하는 명단이 와서 지원을 못하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에까지, 지원하지 말아야 할 단체의 리스트를 보내고 강제한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➅ 사례 6 – 민변 회원에 대한 사건수임 금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소속된 변호사들에게 공공기관들의 사건을 수임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법률고문직에서 해촉된 사람들도 여러명 있다고 들었습니다. 공공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알아서 가장 유능한 변호사에게 사건의 수임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왜 어느 변호사에게는 수임하지 말라는 것입니까?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내가 여기저기서 들은 것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니 훨씬 더 많은 국가권력의 개입 사례가 있을 것입니다. 과거 제5공화국 아래에서 고문사례 보고회가 열렸듯이 이제 국가권력의 부당개입과 사찰사례를 보고하는 보고회라도 열어야 할 판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창피합니다. 어찌하다가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가 되었습니까?

제8 사찰의 망령이 살아나다

– 국정원의 사찰 최고 책임자는 누구인가

1.

이렇게 심각한 사찰활동과 개입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닙니까? 국정원의 개입이 일상화되고 구조화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에서 기업 활동을 하는 한 분의 말에 따르면 지금 지방의 국정원 지부들도 과거와 완전히 다른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국정원 지부장을 찾는 경우가 늘었고, 이 사람들과 식사를 가끔 해야 안심이 된다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국정원의 과거 위상이 복원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역으로 보면 국정원이 일상의 정치와 기업 활동, 시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2.

지금까지 말씀드린 일들이 국정원 직원 몇몇의 우연한 실수나 잘못일까요? 굉장히 조직적이고 일상적인 감시활동을 전면화하였다고 하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 아닐까요? 사찰의 대상이 나 혼자만이 아닐진대 얼마나 광범한 사람들을 상대로 이런 활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저는 많은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특별히 반정부인사이거나 국가안보에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이렇게 하는 정도라면 정부의 여러 활동에 반대하고 투쟁하는 사람들에게는 오죽하겠습니까?

3.

이런 상황에서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인 국정원장과 나아가 대통령이 이런 일을 모를 리가 없다고 봅니다. 국정원 직원의 한두 번의 실수도 아니고 이렇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사찰과 감시가 일어나고 있다면 이것은 국정원을 운영하고 집행하는 책임자의 철학과 원칙, 기능과 활동의 방향이 바뀌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시민사회나 정치적.비정치적 영역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으며 이것을 지휘하고 집행하는 부서가 존재하며, 나아가 이것은 그 책임자인 국정원장과 대통령의 지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9 모든 거버넌스가 무너지다

– 이 정부가 절대 실패하는 이유

1.

이 정부는 이렇게 민간을 사찰하고 시민단체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21세기는 시민사회와 제3섹터가 활성화되고, 이들의 공익적이고 헌신적인 활동에 의해 사회가 훨씬 더 투명하고 민주적이며 보다 더 인간적이며 체계적인 사회로 진전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제 개인의 생각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보편적 상식이 되었습니다. 시민사회는 정부와 기업 섹터와 더불어 사회를 움직이고 이끌어가는 중요한 기둥이 된 지 오래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이러한 NGO, NPO들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함께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다양한 행정과 개혁, 변화를 추동하고 있지 않습니까?

2.

그런데 이렇게 시민사회를 적대적으로 모는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몇 개나 됩니까? 일부 시민단체가 촛불시위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이들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지원을 중단하며 핍박을 계속한다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더구나 시민사회는 다양성을 생명으로 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기능 외에도 정부의 기능을 보완하고 대체하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극우적인 단체 일부를 제외하고 그동안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위해 헌신해온 수많은 단체를 모두 적대적인 관계로 설정하고 이들을 감시.사찰하고 억압한다면 그 단체들보다는 이 정부 자체에 더 큰 손실이 올 것임이 분명합니다.

원래 어떤 정부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중간전달기관, 중간지원기관, 이른바 인터미디어리(INTERMEDIARY)기관이 필요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시민단체이고 NGO.NPO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이런 거버넌스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킨 상태에서 정부의 정책이 일선과 현장에 제대로 전달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제10 진실을 땅에 묻으면 자라서 폭발합니다

-국정원이라고 흑을 백으로 만들 수 있나요?

1.

권력이 세상을 모두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공공기관과 공무원은 물론이고 기업과 언론, 개인으로서의 지식인마저도 그 권력 앞에 순종하거나 벌벌 떨고 있습니다.

이 정부에서 권력이 얼마나 순식간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새삼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대 피땀을 흘리며 구축해온 민주적 질서나 시민의식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음을 새삼 깨닫고 있습니다.

2.

현 정부는 권력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권력은 무소불위로, 그리고 자의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권한 안에서 거기서 정해준 절차에 따라서만 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것은 정당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가 행사하고 있는 권한은 정당성도 합법성도 결하고 있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이것은 명백히 위헌․위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선량한 상식을 갖춘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도 어려운 일입니다.

3.

비록 당장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보복과 억압의 두려움 때문에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직은 정권의 초기이고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지 모릅니다. 특히 기업을 한다거나 공직에 있거나 보복을 당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나 이제 내년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권의 후반기로 들어서면 진실은 한순간에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무소불위로 휘둘렀던 이 정권의 불법부당한 행사와 조치, 정책 등은 도마 위에 오를 것이고, 정권이 끝난 뒤에는 그 다음 정권에 의한 단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한 일이 또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국정원의 비열한 사찰행위와 그 은폐는 이 정권이 끝나면 반드시 심판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인과응보이고, 역사의 필연의 법칙입니다.

제11. 다시 원점에서

1.

지난 봄 희망제작소 창립3주년 겸 후원회에서는 그동안 희망제작소를 드나들었던 기업인들이나 대기업의 임원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철새처럼 모두들 날아갔습니다. 권력의 향배에 눈치를 보는 세태에 참 절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권력에 밉보이면 어느 순간 날아갈지 모르는 마당에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였습니다.

2.

이렇게 세상은 변하였고 희망제작소나 나는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부기관과의 파트너십을 기초로 창의적이고도 협력적인 모델을 통하여 새로운 한국사회를 열어보겠다는 생각은 상당부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정부와의 거버넌스를 통한 컨설팅, 대기업의 후원 등에 의존하는 정책은 폐기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희망제작소의 재원은 이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건강한 시민들의 후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희망제작소는 금년 1월부터 회원중심 재정구조를 선언하였고 회원모집에 주력해 왔습니다. 그 사이에 거의 절반 정도의 연구원들이 희망제작소를 떠나야 했고 희망제작소가 야심차게 추진해오던 사업의 상당부분은 접어야 했습니다.

3.

다시 원점에 섰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뜻있는 사람들이 고초를 겪고 있는 마당에서, 역사의 후퇴가 불가피한 이 시점에서, 나나 희망제작소만 잘 된다는 것도 사실 염치없는 일입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많은 이들과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할지 모릅니다.

이제 다시 새로운 각오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 후퇴와 싸우며 한편으로는 긍정적인 미래의 변화를 위해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것은 대단히 엄중하고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미래의 희망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늘 그랬듯이 시련과 수난은 늘 우리의 즐거운 동반자였습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그랬듯이 우리는 절망하지 않고 다시 압제와 싸울 것이며, 역사와 미래는 우리 편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열정을 다 바쳐 일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9월 17일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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