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연예인 사랑? 애국주의?
쥐떼들은 조용히 제 갈 길 간다
    2009년 09월 17일 01: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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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쯤 전, 인터넷에서 가수 한 명이 한국 비하 발언을 했다는 기사 한 줄을 지나가며 본다. 그런가보다. 클릭조차 안 한다. 2PM? 재범? 알 수 없는 기호같은, 수많은 제조된 아이돌 그룹 중 하나. 거기까지 도저히 펼쳐줄 에너지는 없다.

한국 비방, 한국 사람들 입만 열면 하는 것

그리고 한국 비방, 그거 한국 사람들 입만 열면 하는 거 아닌가. 아니, 어느 나라 사람이나 자기 사는 나라 욕 하면서, 투덜대면서 산다. 그걸 공개적으로 하면 좀 민방한 일이 될 뿐. 패스해 준다. 고등학교 때 담배피다 재수없게 학생주임한테 걸린 것처럼, 그렇게 걸렸나보다 했다.

잠시 바빴던 관계로 며칠 인터넷을 건너뛰다가, 나흘 만에 인터넷에 들어왔다. 그 가수 이야기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인터넷이 그 가수 얘기로 도배되어 있다. 많이 읽은 기사 1위부터 10위까지. 영애씨 결혼 이후 다시 연예인 한 사람이 인터넷을 장악한다.

   
  ▲ 그룹 ‘2PM’의 재범 (사진=JYP 엔터테인먼트)

이쯤 되면 그 누구도 모르고 넘어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결국 "뉘신지…" 하던 사람들까지 낱낱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만들어 주는 대한민국 인터넷 언론의 위력!

그가 미국으로 돌아갔단다. ‘아, 미국에서 온 애였구나’. 그러고 보니, 왜 사람들이 그렇게 과민반응 했었는지 대충 감이 온다. 겉은 노랗고 속은 하얗던 친구가 돈 벌기 위해선 노란 놈 행세하다가, 뒤돌아선 하얀 놈이 돼서 노란 놈들을 깔본, 뭐 그런 구도.

에피소드를 보는 두 개의 시각

갑자기 그 옛날 스티브 유의 이름까지 덩달아 검색어 순위에 올라가 있다. 네이버나 다음 뿐 아니라, 아줌마들 사이트들까지. 그 가수에 대한 분노와 그래도 어린 친구에 대한 아량 부족의 사회를 탓하는 의견들이 엇갈리고 있다.

사흘 쯤 뒤, 제정신 아닌 현정권의 대표 희생양이 돼서, 잠시 지쳐있던 진중권씨가 느즈막히 입을 열어, 이 사태에 대한 진보진영의 입장을 정리해 주신다. ‘애국주의 광기가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극’이라고.

그리하여, 이 사건을 치졸한 애국주의의 망령으로 진단하는 입장과 한국을 졸로 보고 돈이나 벌려고 했던 철부지에 대한 지당한 지탄으로 해석하는 두 가지 입장이 맞서 본격적인 사회적 논쟁의 2라운드가 펼쳐지는 중이다.

어쩌다가 지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좀 떨어진 입장에서 이 사건을 지켜본 나로선, 미미한 가십성 사건 하나가 어떻게 인터넷 공간에서 대형 사회적 문제로 가공되고 포장되며 논리를 확대재생산 하는지, 이 평범한 사건을 향해, 이 곳 저 곳에서 뿜어낸 포연이 가득한 전쟁터로 변한 인터넷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하였을 뿐이다.

사건은 미미하였으나 그 전개는 장대하였다

각설하고, 이토록 사소한 사건을 가지고 온 나라가 이렇게 큰 법석을 떨 수 있단 사실 자체가 나로선 놀랍다. 나이 어린 한 가수가, 더 어렸을 때, 이 나라를 개인적으로 비판하는 말을 했기로서니,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 그 어떤 문제를 일으킨단 말인가.

청소년의 국가관에 심각한 손상이라도 가져오는가?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이던 이미지와 그가 실제로 구사하는 어법에 차이가 커서 그것으로 인해 온 국민이 정신적 외상이라도 입었단 말인가? 어떻게 모든 언론들이 시시각각으로 이 사건의 추이를 삼풍백화점이라도 무너진 것처럼 심층보도하고 앉아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대체…

같은 말을 한 사람이 일본의 신임총리쯤 된다면 또 모르겠다. 그건 중대하고, 심각한 외교적 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대중에게 흘릴 때에는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위한 복선을 그 말이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한들 지금처럼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지 않다. 몇몇 색깔이 분명한 정치집단에서 상징적인 퍼포먼스 몇 번 해주고 끝났을 것이다.

‘대박’ 만난 ‘찌라시 언론들’

왜?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이 정권이 어려워하는 그런 문제는 오래 뉴스를 장악하지 못한다. 그걸 덮어줄 연예계의 사소하나 거대한 폭풍으로 즉각 둔갑할 수 있는 뉴스들이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 사이 MB는 얼렁뚱땅 최악의 시나리오로 소리 소문 안내고 슬금슬금 기어가고.

마치 노무현의 “대통령 못해먹겠다” 발언처럼. 사소한 말꼬리를 하나 잡아서, 정권 자체를 공격하는 신호탄 삼아 언론들이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듯이.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질 한줌의 고깃덩어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찌라시 언론’들은 적어도 일주일 치의 장사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건수를 발견하고, 천지가 진동할 듯 한 강력한 파장의 어조로 이 소식을 타전한다.

시시각각으로 스포츠 중계하듯이 그 가수와 주변의 반응. 네티즌의 태도 등을 보도해주고 IT강국의 네티즌으로서의 의무감을 강력하게 충동질 당한 네티즌들은 각자 한마디씩을 거들며 기꺼이 언론의 성원에 보답한다.

재범의 사건은 그것을 거대한 사회적 문제로 발전시킨 언론들의 정성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준(!) 네티즌들의 활약에 힘입어, 1일주일치의 정치 경제 사회 지면에 담겨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들을 혼자서 삼켜버린다.

인천공항철도, 위장전입 뉴스는 실종되고

이상득 ‘자식 놈’ 입에 털어 넣으려고 슬금슬금 민영화 준비하던 인천공항 얘기 따위는 여전히 포털에서는 모로쇠로 일관하고 있고, 임진강 참사는 그야말로 재범 이야기로 여론을 슬쩍 비껴갔으며 위장전입이 기본 조건인 것처럼 보이는 인사청문회가 얼렁뚱땅 넘어가는 중이다.

날이면 날마다, 고현정의 미실, 박지성의 연봉과 김연아의 환상연기 이야기로 인터넷은 도배되고, 소위 대중문화 평론가들은 강호동의 웃음과 유재석의 웃음의 차이를 면밀히 분석한다.

먹통 정부 아래서 기가 찬 일들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보니, 한편으론 지치고 또 한편으론 둔감해진 사람들의 머릿속이 절반쯤 그런 연예/스포츠계의 달콤짭짤한 소식들로 채워지고 나면, 그들이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하고 창조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절대적이고도 물리적인 시간과 에너지는 얼마 남지 않는다.

한국사회가 텔레비전과 인터넷에 휘둘리는 모습과 그것에 소모하는 방대한 사회적 에너지를 바라보노라면, 전씨가 20여년 전 심어놓은 3S의 뿌리는 IT강국 안에서 이토록 징그럽게 자라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것은 한류라는 거룩한 이름으로 포장된 또 하나의 성역인 것을.

한국 사람들의 지독한 연예인 사랑

이 자그마한 에피소드가 초대형 사건으로 번졌다는 것. 문제는 오히려 거기에 있다. 문제를 야기한 첫 번째 조건은 한국 사람들의 지독한 연예인 사랑에 있다. 국민배우 이영애가 감히 우리 허락도 신고도 없이 한 남자와 어느 날 결혼을 했다고 과거형으로 국민들에게 알려왔을 때, 이 나라는 거의 패닉상태였다.

네티즌 수사대가 자발적으로 가동되어, 그녀의 감춰둔 신랑의 신상이 몇 시간에 안에 낱낱이 공개된 것은 물론이다. 그녀의 일은 우리 집안 일. 나 자신의 일이라도 되는 듯 샅샅이 알아야 하고 네티즌으로서 한마디 해줘야 한다.

수년 전 드라마 허준에서 예진 아씨로 분했던 황수정이 마약 흡입 혐의로 체포되었을 때에도, 연예인 한 사람의 흔하고 흔한 마약 복용으로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토록 곱디 고운 예진아씨가 어찌 이렇게 감쪽같이 우리를 속였을 수가 있냐는… 멀리서 전해 듣는 사람으로선 한참 어이가 없던 원성이 바다 너머까지도 들려왔었다. 그녀에 대한 무서운 질책과 배신감을 안겨준 데 대한 분노는 여전히 삭지 않는 분위기다.

드라마와 현실, 텔레비전에 보여지는 하나의 예능 상품으로서의 가수와 그의 현재의 모습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하고 싶어하지 않는 한국사람들의 연예인 집착증은 현실의 삶을 방해하는 데까지 이른다. 전 세계로 드라마를 수출하는 드라마왕국답게, 한국에는 한 드라마를 수백 번씩 반복해서 보고, 종영 뒤, 해가 지나도 함께 모여서 같은 드라마를 시청하며 파티를 벌이는 드라마 폐인 동호회까지 넘쳐나는 와중이다.

국민 여동생, 국민 가수, 국민 언니, 국민 배우 등을 공유하며, 온 국민이 한마음이 되어 연예인을 사랑하거나 미워한다. 자신의 별일 없는 인생은 정처없이 흘러가게 내버려 두고, 연예인들 인생에 훈수 두고, 그들이 숨기는 사생활을 캐고, 드라마가 조율해 주는 희로애락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채워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간다.

정치하기 너무 쉬워지는 사회

이런 상황에선 검은 속을 갖고 정치하기 너무 쉬워진다. 텔레비전에 완벽 포섭된 시민들, 연예뉴스가 절반을 차지하는 인터넷의 뉴스 공간, 과잉으로 충전된 네티즌들의 열정. 그 어떤 순간에도 물타기가 가능해진다. 언론이 한 입으로 잠시 한 곳을 가리키는 동안, 국민들의 시선은 일제히 한곳으로 몰리고, 쥐떼들은 조용히 제 갈 길을 갈 수 있다. 

   
  ▲ 사진=JYP 엔터테인먼트

재범 사건이 본격적인 사회적 이슈로 확대된 지점은 전통적인 논쟁의 코드 ‘민족주의’의 작동에 있었다. 민족주의를 건드려주면 애들 싸움을 금세 어른들 싸움으로 뻥튀기 시킬 수 있다.

재범은 미국인이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론 한국인이다. 박진영은 나름 여러 가지 계산 끝에 그러한 재범을 ‘수입’해다가 그룹의 멤버로 투입시켰을 것이다. 얼굴은 미끈한 한국 청년인데, 본토 영어가 되고, 어쩐지 미국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좀 달리 봐주는 문화식민지로서의 무시 못 할 효과도 계산되었을 터. 네티즌들이 보여준 불같은 반응 속에는 미국에서 온 그에 대하여 우리가 품고 있었을지 모를 선망의 시선이 조롱으로 돌아왔던 것에서 오는 불쾌감, 그 자격지심이 작동했다.

한국사회엔 미국에 대한 거대한 사대주의가 전사회적으로 작동하고, 우린 반세기 넘게 그들의 봉노릇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나라 개도 안 먹는 쇠고기를 넙죽 받아줘가며. 거짓말을 빌미로 일으킨 전쟁에 열심히 군대 파병해가며.

이러한 사회적 역학을 잘 이용해서 비즈니스 하는 박진영이 데려다 놓은 어린 친구가, 이 이상한 나라에서 풍겨지는 사대주의의 냄새를 벌거벗은 임금님을 조롱하듯 장난스럽게 지껄여 준 것이다. 물론 그 아이의 발언엔 이런 심오한 뜻 같은 건 없었을 테지만.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몇 년씩 연습생 노릇을 하는 그 고달픔에 대한 자기식의 넋두리였을 테지만.

박진영 비즈니스와 사회적 역학

듣는 한국인들은 얼굴이 벌겋게 되면서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와서 대학교수들이 그 문장은 조롱이나 비하가 아니었다고 말해도 그렇게 ‘해석’ 될 수 밖에 없었고 여전히 그렇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제 아무리 네티즌들의 벌떼 같은 공격이 사람의 혼을 빼놓는다지만, 치명적인 방향타를 잡아주는 건 물론 언론이다. 아무리 곳곳에서 네티즌의 청원이 진행되고, 이명박에 대한 탄핵이 진행되고, 인천공항 민영화 반대 서명이 진행되어도, 언론이 그것을 받아주지 않으면, 문제는 결코 사회적인 이슈로 등극하지 않는다.

보수언론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고, 마침 이 카드를 사용해서 지나가줘야 할 곤혹스런 청문회들도 줄을 잇고 있었다. 진보 성향의 언론들에게는 또 민족주의, 애국주의와 싸워줘야 할 사명감(!)이 있으니 또 그들대로 흥미로운 소재다.

이렇게 들어맞는 서로의 이해는 이 사건을 사회적 이슈의 본좌에 올려놓는다. 그러나 애국주의를 둘러싸고 철없는(?) 네티즌들과 똑똑한 좌파지식인들이 벌이는 웹상의 논쟁 또한 이미 너무 고전적인 싸움의 공식이 된 느낌이 든다. 이 논쟁이 감춰버리는 또 다른 사회적 문제들은 맘껏 번식중인데 말이다.

순발력 넘치는 인터넷 공간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가벼움은 순간적인 격한 감정을 걸러줄 아량이나, 자정 능력 같은 것은 진작부터 갖고 있지 않다. 절제 없이 격렬하게 쏟아지고 나서, 늘, 잠시 뒤엔 반론이 고개를 들게 마련이다. 재범의 글에 조건반사처럼 “양키 고 홈”이란 반응이 쏟아졌던 것은 웹상에서 너무도 뻔한 수순이다.

사건이 드라마로 ‘등업’되다

문제는 이게 동네 놀이터에서 한 대씩 공평하게 치고받은 게 아니라, 한 명을 향해서 수만 명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공격하는 공포스런 참사로 빚어지고, 당하는 사람은 주로 만인에게 신분이 드러난 존재이나, 공격하는 사람들은 아이디 뒤에 숨어있는 수만의 익명의 존재들이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견디기 힘든 인격살해가 쉽게 자행된다.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 연예인은 수만 명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고, 대박의 꿈과 장밋빛 인생을 포장해서 자신을 상품처럼 팔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동안, 그들의 복근은 이미 그들만의 것이 아니며, 사람들이 자신의 블로그 어딘가에 저장해 놓고 있는 수집품들인 것이다.

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상대적으로 큰 것이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사회적 반향은 지나치게 격렬하다. 진중권 같은 투사는 단단한 맷집과 자신의 논리를 무기로 끝까지 백만 대군과 싸우며, 한나라당 일당들은 뻔뻔함을 무기로, 잠시 국민 앞에 사과드리고 나서, 눈치봐서 하던 짓을 계속한다.

재범 사건이 하나의 드라마로 등업했던 순간은, 연예인들에게서 보여지는 전형적인 한국적 수순, 대충 사과하고 며칠 자숙한 다음, 컴백하는 것이 아니라, 나흘 만에 보따리 싸서 미국으로 가버렸던 지점에 이르러서다.

그로서는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간 거다. 그런데, 집이 미국이다 보니, 그 행위 자체가 거대한 퍼포먼스가 되어버렸다. 그의 입국을 저지하기 위해 공항에 구름떼처럼 몰려든 팬들. 시애틀에 도착해 아빠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는 사진까지 참으로 이슈의 완성도를 높이는 완벽한 그림이 연이어 그려졌다.

중동 건설현장과 한국 음반 시장

뒤늦게 전문가까지 동원되어서 오역의 문제가 제기되고, 팬들은 소속사를 향해 강력한 항의를 하며, 네티즌들의 경거망동을 꾸짖는 지식인들의 지원사격이 줄을 잇는다. 사실 지금 그를 향해 오히려 유리하게 돌아가는 사태의 후폭풍까지가 그에겐 이해할 수 없는 악몽이 아닐까.

그가 다시 돌아오거나 말거나,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돌아오면 청년의 꿈이 성취되는 것이고, 미국에 머물면 좌절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입장에서도, 한국의 대중음악사에 아이돌 그룹이 음악적, 예술적 기여를 한 적은 서태지 이후 없었다.

원더걸스가 미국 진출에 성공하면, 박진영은 더 큰 자본을 획득하고 그 몇 명의 젊은 여성들도 자본주의 관점에서 썩 짭짤한 20대를 보낼 수 있을 뿐. 국위선양이고 나발이고, 한국사회에 남는 건 쥐뿔도 없는 것처럼, 2PM도 박진영이 알고 있는 재테크의 한 방식으로 생겨난 상품일 뿐이다.

70~80년대 아저씨들이 중동 가서 몇 년 일해서 한몫 잡듯이, 재범도 몇 년 한국에서 고생 좀 하면서 돈 좀 벌려다가, 좌절된 것일 뿐. 보상이 큰 동네에선, 일이 어긋났을 때의 리스크도 큰 법이니 마음에 상처가 좀 크게 남긴 할 것이다.

이 기회를 계기로 세상에 대해서 그가 새롭게 눈뜰 수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가 단단한 바탕을 가진 친구라면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 술 더 떠서, 연습생 시절부터 그가 겪었던 한국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그룹 제작 과정을 그의 솔직한 화법으로 기록한 책이라도 한 권 남길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만…

다 빼앗긴 자들이 보여주는 의외의 동업자 심리

의외의 관점이랄까 발견이랄까. 많은 사람들이 소속사 사장 박진영을 동업자 혹은 동종업계 관련자의 입장에서 나무란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이건 그 어린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 가수들을 잘못 관리한 소속사의 잘못이다.” “박진영이 일을 잘 못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소속사가 재빠르게 언론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소속사가 재범을 며칠 동안 방치했다. 몇 년 동안 데리고 있던 아이를 그렇게 무성의하게 보내는 게 아니다.” 등등…

   
  ▲ 사진=JYP 엔터테인먼트

너무나 익숙한 말투로, ‘박진영, 일 제대로 처리 못 하는데’, 하고 나무라는 그 네티즌들의 꾸지람들을 등너머로 지켜보면서 또 한 번 놀란다. 뭔가. 이 턱도 없는 동업자 심리는.

겨우 중학교 정도를 다니고 있었을 나이. 그 나이에 학교와 부모님을 떠나, 댄스가수가 되겠다고 수년씩 낯선 곳에서 연습생으로 지내는 그 아이들. 그들의 인생은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육되고 실험되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나 혼자만 던졌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선택된 자들로 추앙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대박주의 세상에서 그 대박으로 가는 길에 한 번 제대로 나서본 것만으로도 어린 나이에 큰 행운을 잡았다고 주변에서 모두 축하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린 이미, 그토록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그 시절 마땅히 누려야 할 정서적, 문화적 양식들을 차단당한 채, 대박을 향한 트레이닝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만큼, 자본을 위해 도구화된 인간의 삶에 대한 현재의 지배이데올로기에 젖어버린 것일까.

기획사 SM의 성공과 대중음악의 암흑시대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이수만의 SM이 달리기 시작한 탄탄대로는 한국 대중음악의 기다란 암흑의 터널과 시작을 같이한다. 90년대까지, 우리는 감수성과 삶을 조율해주고 다독여주는 대중음악가들이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그들은 굳이 인디라는 타이틀을 걸지 않고도 자신의 음악을 했고, 작은 대학로 소극장에서 콘서트를 하며 그들이 만든 노래들을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그들로 인해 우리가 술을 마시거나 실연을 당하거나, 눈을 맞을 때, 듣고 싶어지는 그런 노래들은 늘 우리 곁에 늘 풍성하게 있어왔다.

외환위기 몇 년 동안, 이 동네 역시 살벌하게 정리가 한번 되고 나서, 그 때부터 자기 음악을 하는 멀쩡한 가수, 음악하는 인간들에게는 ‘인디’라는 부담스런 타이틀이 붙여진다. 물론 이 시기는 음반의 시대가 음원의 시대로 급격하게 변모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음악들이 음반에 담기던 시기와는 달리, 음원의 시대에서 음악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음향적 장식품으로 전락한다. 더 이상 가수는 음악성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승패의 관건은 얼마나 많이 TV에 등장하여 현란하게 춤을 추거나 입담을 과시하거나, 미모를 뽐내느냐에 달려있다.

인디가 아닌 나머지는 뭐냐. 원로가수 아니면 인조인간들이다. 핑클, SES, HOT, 동방신기, 원더걸스, 2PM 등. 반지하연습실에 모여 라면 끓여 먹으며 오밀조밀 음악을 만들던 사람들이 어느 날 음반도 만들고 그래서 텔레비전에도 나오게 된 그런 가수들이 아니다.

시대를 노래하는 대중음악을 박탈당하다

막강한 자본과 소위 ‘스타제조방식’을 가동시킬 줄 아는 매니지먼트사에서 공식에 따라 외모를 중심으로 캐스팅되고, 몇 년 동안 훈련을 받아서 어느 날 하나의 상품으로 탄생하는 상품이다. 그들은 노래 하고 춤도 추고, 연기도 하며, 적절한 입담도 갖추어야 한다. 성공의 열쇠는 예능프로에서 얼마나 자주 얼굴을 보여주고 적절한 재치를 선보이느냐에 달려있다.

더 이상 시대와 함께 웃고 울어줄 우리시대의 음악은 없고, 철따라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몇몇 대박 난 인기그룹만 있다. 비, 보아, 동방신기를 알아도, 그들의 히트곡 하나를 따라 부를 수 없다. 음악은 없고 트렌드와 ‘스타’만 있다. 그들은 철저하게 계산되고, 조직되고, 조작된다. 음악적 승리는 없고, 몇몇 독점 자본가들의 경제적인 성공만 있다.

사람들은 마치 옆집 일이라도 되는 듯, 양현석과 박진영, 이수만의 능력을 그들이 길러낸 가수들이 거두어들이는 경제적 성공으로 판가름하며 점잖게 어떤 기획사가 더 유능한지에 대한 품평회를 한다. 이 나라에 너무 많은 문화평론가들이 대활약을 해주신 결과다.

한국영화가 90년대 이후 꾸준한 질적 성장을 거듭할 수 있었던 것이 스크린쿼터라는 제도와 영화진흥위원회라는 막강한 진흥기관에 힘입은 것이라면, 대중음악의 비참한 내리막길은 그 어떤 대중음악의 다양성과 진흥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도 원칙도 없이, 오로지 자본의 논리에 의해 통합되고 해체되는 대중음악계의 질서에, 최소한의 음악적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 어떤 공적인 개입도 없었던 데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빼앗긴 음악에 대한 안타까움은 없고, 그것을 빼앗긴 그 자리에 굴뚝 높은 공장을 차린 몇몇 자본가들이 구사하는 그들의 조련 테크닉을 보며 자기 일인 듯 훈수를 두고 있는 어른들. 그 공장에 기꺼이 들어가 기꺼이 실험대상 조련대상이 되어, 나도 같이 대박의 꿈을 이뤄 부모님의 고생을 덜어드리겠다는 어린 아이들.

재범 사건이 보여준, 아이돌 그룹 제조 현장의 에피소드는, 결국 자기 시대를 노래할 대중음악을 박탈당한 오늘의 한국인이 맞이하고 있는 비극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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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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